시정몽주(示鄭夢周)-민사평(閔思平)
정몽주에게-민사평(閔思平)
吾門鄭太學(오문정태학) : 우리들 중 태학 정몽주
如今有賢詞(여금유현사) : 지금 현명한 자식 있도다
況與愚孫遊(황여우손유) : 하물며 우리 손자와도 잘 지내니
胡不示猶子(호불시유자) : 어찌 자식처럼 대하지 않으리오
급암(及庵) 민사평(閔思平)
시서(詩書)를 즐기고 학문에 힘을 써서 이제현·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6편의 소악부를 남겨 한시가 민족문학으로서 적극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적(頔)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일찍이 산원·별장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관수찬(藝文春秋館修撰)·예문응교(藝文應敎)·성균대사성·
감찰대부를 거쳐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한 1348년 도첨의참리(都僉儀參理)가 되었다.
그뒤 수성병의협찬공신(輸誠秉義協贊功臣)의
호가 주어졌고,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이르렀다.
〈동문선 東文選〉에 시 9수가 전하며, 저서로 〈급암집〉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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