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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창세기-025 야곱의 나그네길1(창세기 28장 1-5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28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28장]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창세기 27장으로 가서 보면,
[창세기 27장]
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했는데,
우리가 맨 그저 회색,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고 회색, 늘 콘크리트 이런 것 보고 살면 눈이 나빠진다는 거죠.
안 신경, 안구 신경이라든지 안구에 있는 그 혈관이 너무 미세하기 때문에 우리가 음식을 조금만 잘못 먹어도 바로 눈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음식이 깨끗하면 눈이 오래토록 밝고, 음식을 정한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물이 나쁘거나 공기가 나쁘면 제일 먼저 눈에 표가 나타난다는 거죠.
아마 여러분 세계에서 제일 안경이 많이 팔린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죠. 그야말로 안경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안경 나라라 할 정도로 온 국민이 거의 안경을 써야 돼.
우리 집에는 참 저가 이제 일찍 눈이 안 좋아졌고 따라서 아이들도 뭐 거의 안경 다 써버리니까 그리고 우리 집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안경을 썼고, 그래서 전부 이제 다 안경 쓴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눈이 안 좋아지니까 여러분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이라고 할 정도로 눈이 참 중요한 거죠.
그래서 내가 보니까 이 이삭이 그 고기를 좋아하더라고 글쎄..
여기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여러분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면 눈도 빨리 망가지고, 그 다음에 귀도 어두워지고, 더 심하면 치매도 빨리 와요. 피가 자꾸 탁해지니까 그래요.
저는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는 편도 아닌데, 안과에 가서 검사하니까 왼쪽 눈 안구에 작은 혈관 하나가 아주 미세한 혈관 하나가 안 좋은 거야.
맨 그저 회색.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고 회색 콘크리트 이런 것 보고 살면 이제 눈이 나빠진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눈동자 이렇게 하면 한쪽 코너 4분지 1정도 조금 흐리게 보여요.
여러분 그 4분지 1은 그 눈이 두 개니까. 눈이 8분지 1정도 아주 조금 흐린데, 온 눈이 다 흐린 것 같아요. 그 희미한 게 자꾸 가리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안경에 뭐가 묻었나 싶어서 그 닦고 또 닦고 했는데, 그게 아니고 문제는 안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눈 안에 있었어요. 눈 안에..
아무리 현대에 안과 기술이 발달해도 그 너무 미세한 혈관이 막히니까 그것은 뚫을 수도 없고 그 모세 혈관을 확장시키는 무슨 약을 처방해 주는데 그걸 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육신의 눈은 점점 어두워지는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나이에 벌써 눈이 어두워지나 보다 그래서 참 이삭 같은 분 앞에 황송한 이야기인데 그 130세 정도 되니까 눈이 어두워지는 겁니다.
이분이 180세 까지 살았는데 그러면 눈 어두운 체로 몇 년이야? 어휴! 50년을 눈이 어두운 체 이삭이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거기다가 28장 보면 알 수 있는데 야곱은 야곱대로 밧담 아람으로 자기 외가에 가서 살고, 에서도 이제 조금 있으면 집을 나가거든..
그럼 아들 둘 큰 아들 작은 아들 다 그저 눈이 어두운 아버지 내 팽개치고 가버렸는데 이삭이 눈이 어둡다는 얘기죠.
물론 종들이 있으니까 생활에는 뭐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앞을 보지 못하면서 아들이 그 뭐 눈을 가지고도 큰 아들인지 작은 아들인지 그것도 분별 못하는 그렇게 되가지고 50년을 산다는 것은 참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눈이 어두웠다 그런 예기를 하고 있습니다.
27장 2절,
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아이고 이 어른이 앞으로 50년 살 건데, 그것도 모르고 눈이 어두워지니까 아마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졌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3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도 많이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죠.
5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14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17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그래서 에서가 사냥하러 간 사이에 리브가가 그 아이가 그저 겉돌기만 하는 에서보다는 엄마를 졸졸 따르고 하는 그 야곱에게 복을 받게 해야겠다 해서, 염소 고기를 가지고 요리 해 가지고, 그 에서는 이 피부에 팔뚝에 털이 많은 그 털사람이고 야곱은 매끈매끈한 사람이라..
그럼 갈랐으면 될 텐데 범사에 에서는 너무 사람이 외향적이고, 반면에 야곱은 너무 또 내성적이고 그래요. 이 거 좀 갈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죠.
형제간인데도 너무 치우치는 겁니다.
그래서 염소 털로 꾸며가지고 ‘너 형이 와서 너의 아버지 축복을 받으면 안 되니까 네가 가서 받아라.’
‘아이고 아버지가 아무리 눈이 어두워도 야곱인가 에서인가 그걸 못 알아보겠습니까? 들키면 내가 복은 고사하고 저주나 안 받을까 모르겠습니다.’ 하니까. ‘염려하지마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냥.’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래가지고 아주 제법 꾸며가지고 음성을 걸걸하게 에서처럼 해서, ‘ 내 아버지여’ 해가지고 그 너무 빨리 오니까 ‘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았냐?’ 하니까,
거짓말 하죠. ‘아 아버지 하나님이 나로 그저 사냥감을 순적히 만나게 해서 빨리 잡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저 이삭이 그 고기 냄새에 뿅 갔어. 고기 먹겠다하면서 그저 큰 아들인지 작은 아들인지 살피지 못하고 야곱에게 장자인 줄 알고 그 축복을 하는 거죠.
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 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다 먹고 나니까 에서가 헐레벌떡하고 와서는 ‘아버지 이제 잡아 왔습니다.’ 이삭이 깜짝 놀랬잖아요. 그래서 이삭이 ‘너는 누구냐? 제가 누구긴 누굽니까? 아버지 큰 아들 에서죠.’
‘그러면 방금 고기를 잡아서 내게 먹게 하고 축복하게 한 그건 또 누구냐?’
아이고 이래가지고 이 에서가 그냥 화가 나가지고 지난번엔 장자의 명분을 뺏더니 이제는 내 축복을 가로챘다 하면서 막..
에서라는 사람은 본래가 사람이 좀 호방하고 또 외향적이고 또 소탕해서 그런 거 뭐 째째한 것 가지고는 뭐 웬만해서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인데 아이 그날은 뭐 화가 많이 났어요.
36절에,
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면서 억울해 합니다.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하고 소리를 높여 방성대곡 합니다.
39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41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이 ‘아버지를 곡한다’는 말은 아버지 돌아가실 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곡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너도 곡한다 이제 너도 죽었다.’
그러니까 이 에서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동생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리니까 리브가의 마음이 다급해 지는 거죠.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이 ‘몇 날’ 이라고 간 것이 20년 걸리는 거죠.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까닥하면 야곱이 죽고, 야곱이 죽고 나면 에서가 집을 나가 버리고 하면 아들 둘 다 잃어버리는 꼴이 되니까, 그러면서 이제 리브가가 자기 남편 이삭에게 가서 한 마디 합니다.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내가 지금에서 이놈 자식이 말이야 장가를 잘못 가가지고 헷 사람의 딸 유딧, 그리고 바스마. 에서가 장가를 두 번 갑니다.
두 번 갔는데도 전혀 그 이삭에게나 리브가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고 근심이 된다는 말이죠.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에서의 아내들 다시 말하면 이삭의 큰 며느리들이 얼마나 마음에 안 찾던지, 그 며느리만 생각하면 리브가가 그저 살맛이 안 난다는 거죠.
그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내가 나의 생명을 싫어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장가도 잘 가야 하지만, 며느리도 잘 봐야 하죠.
그 옛날부터 어떤 며느리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그 집의 흥망성쇠가 갈린다고 했어요.
특히 우리 경상도 사람하고 이 히브리 사람들은 더 한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그런 면에서 아주 그 집안에 뭐가 잘 안되면, 그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 그 들어온 사람이 그 말 들으면 얼마나 참 기가 막히겠어요.
자기 잘못 한 것은 안 하고 그 며느리 탓만 하는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니까.
여기도 보니까 똑 그것도 한국 사람하고 같아.
여러분 이 성경에 보면, 성경에 있는 이야기가 그 꼭 한국 사람들 정서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 한국 교회가 빨리 부흥 됐는지 몰라.
서양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
그래서 이 며느리 생각만 하면 내가 내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까지 이 땅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한다면 내가 내 남은 여생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하면서 이 이야기는 야곱을 외가로 보내자 하는 그런 계획을 이삭에게 설득하게 하려고 리브가가 꾸며 만든 것이기도 하고, 아마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사실..
그래서 결국은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이제 ‘외가로 가라, 그 외삼촌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하면서 이제 보내는 거죠.
자, 28장 6절입니다.
[창세기 28장]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그러니까 에서가 보니까 ‘에서가 또 본즉’ 에서가 여태까지는 그런 것 모르다가 이제 보는 거야.
그러니까. 6절에도 ‘에서가 본즉’ 이렇게 하고, 8절에도 ‘에서가 또 본즉’ 이렇게 하더라.
여태까지는 그저 부모님 눈치도 안 살피고 막 그저 제 성질 내키는 대로 막 했는데, 가만 보니까 이 야곱도 그렇고 리브가도 그렇고 자기에게는 그 뭔가 서운하게 하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사람이 이심전심 이라고 뭐든지 마음이 비취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본즉 야곱에게는 이렇게 이렇게 다 지시도 하고,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 다시 말하면 헷 사람의 그 딸들로 며느리를 봤는데 에서가 보니까 자기 아내들이 둘이나 다 이삭에게나 리브가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거예요.
9절,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그러면 이제 에서가 장가를 세 번 간 겁니다.
세 번 가도 그 며느리들이 지금 이삭에게나 리브가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 것 같아요.
한편 여러분 기억해 놓으세요.
에서가 장가를 세 번 간 것 때문에 가끔 질문이 올라와요.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질문이 올라오는데 아내가 셋이라고 되어 있죠. 나중에 또 한 번 더 갈 겁니다.
10절에,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5절에 거기 줄을 그으세요.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그러니까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나이가 한 70세 정도 됐다고 성경에 그런 것 계산을 해 놓지 안했는데, 계산을 해보면 70세 정도 됐는데, 장가도 가지 못하고 그리고 이제 형에게 맞아 죽을까 싶어서 이제 쫓겨서 밧단아람으로 가는 그 처량한 신세죠.
그리고 그 들판에서 잠을 자는 겁니다.
그쯤 되면 두렵고 자기 형제와 미래가 불투명하고 과거라는 것은 그저 형을 속이고 또 아버지를 속이고 그리고 집에서 그 형과 화목하지 못하고, 그리고 지금 떠나와서 들판에서 잠을 자야 되고 길은 알지 못하고 그 일말의 그 불안이 있을 그런 때에 그 잠을 자는데 그 꿈속에 하나님 나타나신 거죠.
그래서 보니까 사닥다리가 쭉 땅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 있는데, 그 사닥다리 맨 꼭대기 보니까 그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그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 이런 걸 본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꿈이지만 아주 너무 선명하게 말씀하시는데,
첫째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다 하면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밝히시고,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 관계 그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또 너와의 관계를,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이게 이렇게 계승되어지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가, 이삭에게 이 약속은 상속되었고, 다시 야곱에게로 이어져 내려갑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로 이어가고, 다시 다윗의 자손 왕손으로 쭉 내려와서, 마침내 요셉에게 까지 예수님의 양 아버지 요셉에게까지 계속 이어지는, 상속되고 유전되어지는 그런 약속이죠.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이죠.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이야기는 제가 왜 줄을 그으라고 하느냐 하면, 앞으로 야곱 이야기를 해 가는 동안에 항상 이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서 줄을 그어 놓으라고 한 겁니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게 참 유치한 신앙이죠. 아니 여호와가 거기 밖에 없습니까? 자기 꿈에 나타났다고 해서 거기에 하나님이 있다 하면서, 여러분 하나님이 그런 장소에 메이는 하나님이 아니잖습니까?
전에 제가 뭐 처음 믿을 때 그 때 뭐 여기 저기 산에 산기도 하러 간다고 하고, 또 무슨 기도원 간다고 해서 그런 것 보면, 어떤 사람이 그 바위에서 기도 하다가 하나님 만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그 바위는 자기 바위라는 거야. 하나님이 그 바위 밖에 못 내려옵니까?
그러니까 꼭 응답 받으러 그 바위에 가는 거야. 꼭 야곱의 그런 신앙이죠. 그게..
그거는 참 아주 졸속한 신앙입니다.
여러분 적어도 여리고 기생 라합만 봐도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여기 있다는 거야. 내가 그걸 몰랐구나 하면서..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 여기서 하늘로 올라가는 구나! 야, 사다리가 여기 있다야!’ 그러면서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다 하면서 이런 신앙 고백이라는 것은 높은 신앙 고백이 아니고 아주 유치한 신앙 고백이죠.
훗날 남북이 갈라지고 북 왕국은 이스라엘이 되고 남 왕국은 유다가 되었을 때, 그때 이 이야기를 가지고 이것을 근거를 삼아가지고 ‘하나님이 벧엘에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 집에 있지 않겠냐?’ 하면서 ‘벧엘에 있다. 예루살렘에 있다’ 하면서 옥신각신 하는 것의 그 근거가 여깁니다. 그러면서 야곱이 그 판 우물물도 있고, 이 야곱이 만났던 이걸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이고 북 왕국 사람들이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벧엘’ 할 때, ‘벧’ 하는 것은 ‘집’이라는 말이고 ‘엘’은 ‘하나님’이죠. 하나님의 집이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라는 곳이었는데 그 이름이 훗날 벧엘이 됐죠.
20절에,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아이고.. 쩨쩨한 소리죠.
전부다 따지고 보면, 아니 야곱이 그런 약속 안 해도 하나님이 그리 해 준다고 했잖아요. 여기보세요.
아까 14절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찌며..’ 했어요.
자손이 동서남북에 편만하게 된다는 것은 안 죽는다는 것 아닙니까? 야곱이..
결론이 그 정도 되어 있다면 그 과정이라는 것은 보장 돼있는 것 아니예요?
또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그것만 해도 충분한 거지, 거기다 더 구체적으로 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그 지킨다는 것은 그런 것 십일조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하나님이 집을 지어 주든지 안 지어 주던지 간에, 그런 것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그 약속 해주신 것은 건성으로 듣고 지가 또 따로 서원하는데,
그러니까 야곱이 그 서원 한 것 그런 것 별로 상관이 없는 건데 두려우니까 그렇게 하는거죠.
그래서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그 먹는 거만 챙기는 거죠.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맨 날 그 언약이나 뭐 바라는 것의 수준이 기껏 그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런 겁니다.
여러분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 오셔서 사도들에게 최소한도 그런 것 걱정하지마.
하나님이 또 야곱처럼 할까 싶어서 미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런 것 걱정 하지 마라. 또 이 이후에 적어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면 그런 것은 염려 안 해도 된 다는 겁니다.
그 증거로 그 광야에서 꼭 무슨 사람이 무슨 밀농사를 짓고 떡이 있고 빵이 있어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만 잘 들으면 뭐 어떻게든 먹고 사는 길이 있다. 봐라! 그 40년을 광야에서 농사도 안 지었지만 하나님이 먹이 실 수 있잖습니까?
저도 처음에 전도사로 갔을 때. 정말 내가 그런 뭐 믿음이 있었는지 무모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전도사가 되었을 때, 그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긴지 몰라요. 생활비 그 어디서 나오는지 봉급은 뭐 그것도 모르고 갔어. 진짜로요.
나는 뭐 처음에 정부에서 주는 줄 알았어요. 처음에요. 아니면 뭐 총회가 있고 뭐 노회가 있으면 거기서 내려오는 줄 알았어.
그런데 보니까 아무것도 없잖아. 아이 기가 막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가져간 양식을 우리가 농사짓다 갔으니까 다 먹고 그리고 이제 나 모르게 이제 장모님이 뭐 좀 갔다 줘 가지고 내가 신학교 가 버리면 그 사이에 장모님이 삭 다녀 간 거야.
그렇게 하는데, 성도들이 뭐 없으니까. 성도들이 해 봐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할머니 두 사람, 맨 날 담배 농사짓는다고 정신없는 남자 집사 한명, 간질병 걸린 사람 두 사람하고, 주일 학교 학생 대여섯 명 오는데, 전혀 전도사가 뭐 굶는지 몰라요.
양복 멀쑥하게 입고 다니니까 모르는 거야. 정말..
그래서 어느날 아내와 저녁에 싸운 거야. 열심히 싸웠어. 하여튼 다행히 사택이 동네 외곽에 있어 가지고 동네 사람 모르게 싸우는 거죠.
나중에는 뭐 언성이 높아지고 옥신각신하고 고함을 냅다 지르고, 막 하여간 오늘 저녁까지 먹었지 않았느냐. 그 우리 집사람 지론은 ‘당신이야 사명감을 딱 잡고 가는 데, 내가 무슨 사명이 있느냐? 이 애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일 아침 아이들하고 굶게 생겼다고.. 얼마나 싸움을 오래 했는지 내 생각에 한 시간 넘어 싸운 것 같아요.
한참 쌓이고 쌓인 것, 나는 뭐 쌓인 것이 없는데 집 사람이 쌓인 거야.
그래서 말 안하고 있다가 이제 말 나오니까 할 말 안할 말 다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면목도 없고 대책도 없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 참 가족들 놓고 그 먹을 것이 없으니까 그 참 기가 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쪽 벽을 보고 앉아있고 집사람은 이제 저쪽 벽을 보고 앉아있고.. 더 이상 할 말 이 없으니까 어색하게 침묵이 흐르는데 아이고 갑자기 마루에서 뭐가 뻥하고 소리가 나는 거야. 뇌성벽력이 응답하잖아 봐. 그래 얼마나 놀랬겠어요.
야 전도사가 또 부부싸움 하니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나보다 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기도 그렇고 해서 나오는데 세상에 그 교회 남자 집사님 그 권인혁 집사님이라고 지금은 천국 가셨는데, 이분이 농사를 지어가지고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은 거야.
그래서 ‘전도사님 집에 양식이 있는가 모르겠다. 너 이것 좀 갖다 드리고 오너라.’ 해서 쌀을 한 자루 넣어가지고 그 중학생 딸아이에게 머리에 이어졌는데 얘가 그걸 내릴 줄 모른거야. 그러니까 마루에 던지듯이 내린거죠.
여러분 그 학생이 어저께 우리 집에 왔다 갔어요. 40살이 되가지고 중년 아주머니가 되어서 왔더라고.. 어제도 그 얘기 하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그래서 지금 와서 전도사님 아무것도 없고 그 사모님이 굶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야. 그 때마다 와서 이것들이 얻어먹고 가고 말이야. 싸가지 없이..
우리가 한참 부부싸움 하고 있을 그 때에 하나님이 그 권인혁 집사님의 마음을 움직여가지고 그 쌀을 자루에 넣어가지고 그 딸에게 머리에 이어주는 그 때였어.
그래서 그 마루에 나가보고 그 쌀자루 보니까 하여튼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더라고 그래 다시 방에 들어가서 내가 집사람 손을 붙잡고 참 많이 울고..
‘봐라! 우리가 조금만 참았으면 영광을 볼 수 있지 않았겠느냐? 성경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염려하고 싸웠으니..’
그래서 그 때 집사람도 뭐 속으로 좀 부끄럽죠. 약속을 했어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양식 문제 가지고는 다투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굶게 하시면 그냥 굶자! 이 무슨 창피냐! 그냥 굶어 순교 했으면 될 텐데 그렇게 싸워가지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철저하게 약속하고도 그 뒤에 또 몇 번 싸웠습니다.
그 양식 문제는 그때 그것이 큰 고비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안 굶어 죽었잖아요.
그 다음에 학비 때문에 싸우고 뭐 여러 가지 많이 싸웠어요. 뭐 교역자 치고 부부싸움 한 사람이 우리 집사람과 나보다 더 많은 사람 없을 겁니다.
기도하고 싸우고 능력 받아 싸우고 금식하고 싸우고 하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 한 것이 그 싸우면 또 맨날 내가 이겼어. 그러니 아내가 병이 든 거죠.
여러분 남자들 이기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니까 내가 이길 수밖에 더 있나.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도사는 져와 되는 건데 목사는 져야 되는 건데 그걸 몰랐어. 맨 날 이겼지. 참 믿음도 없고 집사람 전혀 믿음도 없이 그저 전도사가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집사람은 그저 은혜가 뭔지도 몰라. 그래 전도사로 간다고 가니까, 따라 오니까 그 기가 막힐 것 아니요. 그 아무 대책이 없어..
그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 집사람이 이 교역자 부인이 안 되고 싶은 이 사연이 있어요. 보니까. 자기 친정에 시집 오기 전에 저와 결혼하기 전에 친정집이 전도사님 사택하고 나란히 붙어 있는 거야. 전도사님이 하도 못살고 못 사는 것을 너무 많이 봤어.
그 장모님이 예수님 안 믿으면서도 항상 그 전도사님 양식이나 뭐 부식이나 이런 것 대주고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그저 우리 집사람 보기에는 전도사 되거나 그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국제 거지가 된다.. 그렇게 생각 하는 겁니다.
우리 집사람 처가는 뭐 산청에서 제일 큰 부자가 차황 군소에 박부자라고 천석꾼인데 그 집보다 우리 처가 나았거든요. 당시 큰 부자죠. 그 부자 집에서 구김살 없이 컸는데 나는 뭐 우리 동네에서는 제일 부자지만, 백석도 안 되거든요.
우리 집은 그런데 전도사가 되니까 한 석도 안 나오잖아요. 이 천석꾼 집 딸하고 이제 한 석도 안 나오는 거지 하고 살게 되니까 그 뭐 불평이 나오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지금은 집사람이 너무 믿음이 없었으니까 염려 할 수밖에 없고 이제 그 구차하게 돼서 고생했던 그런 이야기는 저는 이제 다 몰라요. 집사람이 다 일일이 다 말 안했기 때문에 사실은 저는 학교 가 버리면 학교를 7년 다니니까 7년 동안에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 어떻게 누구에게 이야기 했겠어요. 지금도 이야기 하면 눈물만 줄줄 흘려요. 그 때 이야기하면요.
그 아이들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 그런 게 상처가 돼가지고..
이 야곱은 확실히 약아 빠져서 양식도 챙기고 옷도 챙기고 그러죠.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 ‘십분 일’이라는 것이 이제 이른바 십일조가 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 분지 일을 바쳤다 하는 것이 있었고, 야곱도 그걸 어떻게 배웠는지 십분 일 드리겠다 했는데, 나는 그 뒤에 야곱이 무슨 십일조 했다 그런 말 한 번도 못 들어 봤어요.
아무리 봐도 안 나와 그런 게.. 그리고 뭐 벧엘에다 무슨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 그런 약속도 안 지켰고, 하나님은 약속을 다 지키는데 야곱은 안 지킵니다. 거의 다..
29장입니다.
[창세기 29장]
1 야곱이 발행하여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이스라엘 땅에서 보면 거기가 동방도 아닌데 그 북방이거든요.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땅. 거기서 지도를 놓고 보면 그 아람 지역이 정 북방은 아니고 북북동쯤 되겠죠.
어떻든 그래도 그쪽을 동쪽이라고 할 때, 하란 그쪽을 동방이라고 그래요.
그 ‘동방의 우스 땅에’ 할 때 그 지역이 동쪽이거든요.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거기를 동방이라고 하는 겁니다.
거기 그 어디서 기점을 해서 동방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동방 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웠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양떼에게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구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양에게 물을 먹이고는 여전히 우물 아구 그 자리에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형제여 어디로서뇨 그들이 가로되 하란에서로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가로되 평안하니라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가로되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
이 야곱이 웃기는 사람이죠. 지금 예쁜 처녀가 온다니까 딴 사람 보고 너는 저기 가서 더 먹이고 오라.. 이 사람들이 눈치가 없어가지고..
8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그러니까 이 라헬도 자기 아버지의 양을 치는 양치기 소녀예요.
지금도 그 쪽에 가면 대개 양 치는 목동 이라는 말은 하지만 소녀라는 말 하지 않죠.
처녀들도 더러 양을 치곤해요.
10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13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14 라반이 가로되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16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여기 라반의 두 딸 중에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다’ 이렇게 했는데, 이 번역을 잘못한 것 같아요.
제가 다른 번역을 좀 살펴보니까 레아는 안력이 부족 한 것이 아니고, ‘눈매가 부드럽고’ 라고 번역한 곳이 많아요.
킹제임스 성경도 보면 눈매가 부드럽고 좀 사람이 순하게 생겼어요. 레아는 사람이 좀 순하게 생겼고 라헬은 아주 곱고 아리땁고..
사실은 둘 다 아름다운 여인들인데, 그중에 라헬이 더 아름다워 보이지만, 레아가 무슨 안력이 부족하다고 번역을 했는데 ‘눈매가 부드럽고’ 그렇게 번역한 곳도 있습니다.
18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19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그렇다면 이제 77세쯤 되어서 결혼한 겁니다. 77세..
그리고 그 이후에 13년을 더 있는데, 그 13년 동안에 네 명의 여자들로부터 열한명이 태어난 거죠. 열한명하고 디나까지 하면 열둘이죠. 물론 베냐민은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태어나는 것이고..
그래서 13년 동안에 레아와 라헬, 빌하와 실바. 이 네 명의 여자로부터 11남 1녀가 태어난 거죠. 늦게 결혼했지만 애기를 많이 낳죠.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그런데 첫날밤을 지내고 보니까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막 따지는 거죠.
26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 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아 이사람 아주 딸 장사하죠.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이런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쪽에서는 이제 아직도 결혼 윤리라는 것이 지금처럼 이제 정리가 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그 이후에도 거의 근친들끼리는 너무 많이 결혼하기 때문에 근친결혼 때문에 생기는 유대인 고유의 어떤 병이 있어요. 페이스라는 유전병 같은 것이 있었다고 그럽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전에 섬기던 교회 원지교회에 가면 거기 재미난 경우가 있어요.
형님이 그 형수하고 결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형수의 여동생을 보니까 너무 예쁘니까 동생이 또 형님의 처제 되는 사람하고 그러니까 이중 결혼 한 겁니다.
형도 그 집 딸 동생도 그 집 딸 그렇게 결혼 했어요. 그분 지금 안수 집사로 있거든요. 여러분 그 괜찮나요? 그 흔치는 않죠. 그러니까 그 진짜 동서야.
그래서 잘 몰랐는데 그렇게 참 남편이 부인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그 어떻게 그렇게 사랑 하냐? 하니까 그 결혼 할 때부터 그렇게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보니까.
여러분 혹시 그런 것 들어 봤습니까? 잘 없는 일이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전혀 문제 될 것 없어요. 그렇죠? 그 뭐 다 남이니까 사돈 그러면 8촌인데 그러니까 뭐 전혀 문제가 없는데 뭐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는 뭐 그 정도가 아니고 한 남자에게 언니도 동생도 함께 시집가는 그런 경우죠.
그러니까 이런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 특히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성도들에게 혼자서 성경 읽으라고 그러면 바로 시험 들어요.
‘이런 쌍놈들 같으니라고. 너 교회 가서 이런 것 배우나?’ 그러면서 그 다음부터 성경 안 보려고 그래요.
나중에 조금 있다 더 가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세상에 이 야곱의 아들 중에 유다의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이고 그런 끔직한 일이 벌어지죠. 또 롯의 딸들 봐요. 그 나쁜 여자들이야 정말..
딴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우리 아버지는 하도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좋아 하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귀가 아예 안 들렸어요. 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다이나마이트 기술자인데 일본에 징용 가서 귀를 하나 완전히 멀어져 버리고, 그리고 농사짓다 제 나이쯤 돼서 이제 지리산에서 농사짓는데 여름에 이제 거름을 쇠스랑가지고 하는데 벌이 한 마리가 와서 계속 귓가에서 욍욍욍욍 하는 거야. 그래서 귀찮게 탁 때렸는데 고막이 나간 거야. 귀 한 개 남은 것. 그 길로 고막이 나가서 평생을.. 그 제가 볼 때 한 35년간을 귀가 하나도 안 들리게 살았어.
그래서 전도를 못하는 거예요. 이 말로는 그래서 제가 아무 철이 없을 때니까 아버지는 하도 책을 읽기 좋아 하시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거든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려고 우리 사랑방이 동네 사랑방 이니까 그래서 이제 아버지에게 책을 드리면 이걸 읽고 이제 전도까지 하지 않겠나..
참 순진한 것도 분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 성경책을 드렸는데 책을 보다가 창세기에서 이 참 끔찍한 딸들이 아버지를 성폭행 한 일이라든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강간 한다든지 강간은 아니지만 그 뭐라고 합니까?
이런 비 윤리적인 이런 이야기 나오니까, 아버지가 유교적으로 대단한 분인데 그 얼마나 노발대발하는지 그 해명이 안 돼요. 해명이.. 너무 노발대발 하니까.
그래서 제가 이 창세기를 처음 나오는 어른들에게 읽게 하면 안 된다고 교회 와서 차근차근 그 믿음을 가지고 설명 해명해 가면서, 인간들이 타락한 후에 인간들이 이런 범죄를 범했다는 어떤 설명을 해 가면서 들어야지, 어른들에게 책 읽으라고 큰일 납니다.
내가 아주 너무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그 다음부터는 무슨 말을 해도 안 듣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제일 큰 기대를 했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7남매를 뒀는데 우리 형님들은 하도 이거를 많이 해가지고 이거. 뭔지 아세요! 엄지손가락 뒷걸음치는 거. 이것을 많이 해가지고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아버지 눈에 안 들고, 그리고 이제 제가 그 어려서부터 공부도 조금 잘 하고 일단 이걸 안하니까.
그래서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그게 또 예수를 믿어가지고 버렸다고 아버지가 뭐 내가 예수 믿은 거 참 형님들 이거 하는 것보다도 내가 예수 믿은 것 더 상심 한 거야.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 믿을 수가 없는 거죠. 거기다가 책을 보고 이렇게 오해가 되니까 다시는 대화가 안 되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제가 뭐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지도하는 사람하고 함께 읽어 나가야지, 혼자 읽게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특히 어른들에게 유교적인 사고가 딱 정리된 사람들에게 비 윤리적인 이런 것 읽혀지면 당장 오해 하는 거죠.
여러분 이런 이야기 아무도 안 하죠. 제가 대가를 지불 했으니까 이런 걸. 그러니까 어른들보고 성경 읽으라고 불쑥 내 밀면 안 된다고 같이 읽으면서 설명 해야지.
그래서 어떻든 이 사건이 이때부터 뭐 잘못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뭐 그 이전부터 벌써 아버지를 속이고 뭐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고 이 잘못된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약속을 했어요. 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약속하기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그런 약속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 약속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질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려야 되지, 그 야곱이 자기 인위적인 수단 방법을 가지고 잔재주를 가지고 이렇게 하면 자꾸 어렵게 하는 거야. 빨리 얻을 은혜를 자꾸 늦추게 돼. 빨리 힘을 얻을 걸 130년이나 나그네 길을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우리 샤론 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도 너무 인위적인 그런 잔재주를 가지고 그렇게 수단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도록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꾸 억지로 하니까 점점 더 멀어지고 어려워지고 나중에 야곱이 일생을 정리 한 것을 보니까 한 줄로 정리 해 놓은 것이 뭐예요? ‘내 나그네 길이 일백 삼십년 인데, 한 줄로 줄이면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되고 때를 분별할 수 있도록 판단력을 구해야 하지만, 언제나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때인지 그 잘 분별해야 합니다.
29절,
29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그래서 아내 얻기 위해서 14년을 보내고, 자기 양떼를 위해서 한 6년간 했지만 외삼촌 되면서 장인이 되는 라반이 그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라반도 괜찮은 사람 이였는데 야곱과 한 20년 사니까, 라반도 그저 완전히 사기꾼 되었습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여러분 내가 좋으면 내 주변 사람들이 좋아 집니다. 내가 좋으면 저절로 내 주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좋은 사람들이 모여져요.
그런데 내가 나쁘면 또 주변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들 됩니다.
그래서 자기 주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면 자기가 나쁜 사람이야. 보나마나.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 나쁜 사람들 모여 있으면 스스로를 돌아 봐야 돼요. 우리가 다..
야곱이 하도 고약하게 하니까 온갖 고약한 사람들이 모이고 또 좋던 사람들도 고약하게 되는 거야. 한 마디로 이 야곱은 어디가도 이 인간관계가 안 됩니다. 샬롬이 안 돼요.
혹시 우리 중에 그런 사람 없나요? 가는 곳 마다 덕을 세우지 못하고 인간관계 갈라지고 갈수록 사이가 더 안 좋아지고 결국은 헤어져야 되고..
그러니까 뭐 자기 한 배에서 나온 자기 형하고도 다투고 자기 아버지하고도 버성기고 지금 외삼촌 라반도 이제 버성기고 아내들 하고도 뭐 거의 사이가 안 좋고 말이죠.
아들들 하고 아버지 사이가 전혀 그 부자유친이 거의 안 돼요. 그러니까 일생동안 인간관계가 안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그 야곱의 못 돼먹은 그 성질 때문에.. 누구 탓이 아니야.
그래서 벌써 그 은혜의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일백 삼십년이나 뱅뱅 둘러서 가는 그런 교훈을 남기는 삶이 야곱의 일생이라는 거죠.
31절,
31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왜 총이 없을 까요? 총가지고 싸웁니까? 이런 것도 좀 번역을 새로 해야겠죠.
여기 보면 ‘세느와, 싸내’ 라는 말이 있는데, 레아를 자꾸 미워하는 거야.
야곱이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미워하면 안 되는데, 여러분 사람이 그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합니다. 그렇죠?
나는 사랑도 안 하고 미워도 안 한다 그런 부분은 없어요.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야. 중간이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래서 괜히 그 밉다는 겁니다.
아마도 라헬이 없었다면 그 눈매가 부드럽다는 것은 좋잖아요. 그런 레아가 사랑 받았을지 모르는데 라헬이 있으니까, 그 비교해서 또 미워하고 거기다가 내 생각에는 그래요. 내가 물어 보지는 않았는데 야곱이 왜 미워하느냐?
속았다는 거죠. 첫사랑을 가지고 속았다고 해서 아마도 이 레아를 상당히 미워했다는 거죠. 대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한 거죠. 그러니까..
이게 공평도 아니고 뭡니까?
하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데 아들이 없고, 레아는 아들은 있는데 사랑은 못 받고 이게 참 뭔가 잘못된 거야.
32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 사랑 받지 못한 여인의 한 소원이죠.
‘르우벤’ 이라는 것은 직역하면 ‘보라! 아들이다.’ 그런 뜻이야. 보라! 아들이다. 이렇게 이름을 지어가지고 부를 때 무슨 감정일까? ‘보라! 아들아. 보라! 아들이로다.’
참 이상한 게 월드컵이다 해서 나오는 국제 축구 선수들 이름 보니까, 이름이 어떤 것은 한 뼘 돼. 한 뼘.. 명 짧으면 다 부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
제일 이름이 짧은 게 한국 사람이야. 그렇죠?
중국 사람들과 글자는 같은데 중국 사람들은 한 글자가 음절이 두 개씩 돼요.
예를 들어서 한국(韓國) 해놓고 ‘한 궈’ 라고 하거든요.
여러분 우리는 딱 한글자 한음절 이니까 세계에서 제일 이름이 짧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일본도 보니까 이름이 길고, 남미 이런 데는 이름이 뭐 얼마나 긴지.
르우벤! 보라! 아들이다. 그 아주 감탄이죠.
..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제 아들 낳았으니까 사랑하겠지..’ 사랑하기는 뭘 사랑해?
33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하나님이 또 내 기도를 들으셨다.’ 하면서 ‘시므온’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또 들어 주셨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레아가 아들 이름 짓는 것을 보면, 이 레아가 착한 사람이야. 생기기는 수더분해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레아가 ‘보라 아들이다’ 한다든지, ‘시므온’ 이라 한다든지, 세 번째 아들 낳고는 이름을 ‘레위’라고 했는데 ‘연합 할 것이다.’ 이런 것은 믿음이 있는 거죠.
34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이제는 아들 셋씩이나 낳아 줬으니까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아들 이름을 ‘연합’이라고 지었어요.
35절,
35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거 참 불평 안하고 말이지.. 이 레아를 한 번 만나 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남편의 애정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애정을 담아서 하는 것을 보면 늘 그저 마음이 안 됐어요.
그래서 네 번째 낳고 이름을 ‘유다’라고 했어. 유다가 아니고 히브리어를 제대로 번역하면 ‘여후다’예요. ‘여후다’ 하는 것을 빨리 하면 ‘유다’ 그렇죠. 유다.
그 말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면서 끊임없이 이름을 긍정적으로 지었습니다. 레아가..
이런걸 보면 레아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썩 그렇게 특출한 그런 미녀형은 아닌 것 같아도 외모나 이런 것은 수더분해도 마음씨가 착하고 또 인내심이 있고 그리고 믿음으로 믿음과 소망을 버리지 않는 그리고 또 끊임없이 그 남편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착한 마음씨 가진 여인이 레아였어요.
그 다음에 계속 설교자들이 라헬만 자꾸 예쁘다고 해요. 야곱하고 똑같이..
레아가 많이 섭섭해 있는 거라. 지금까지 내가 레아를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볼 때 참 그 마음씨가 착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여인이 레아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결국은 이 레아의 소생에서 레위지파가 나온 것이죠.
연합이라는 그 말 때문에 그 말이 참 레아가 이름 지은 그 레위라는 그 이름이 하나님 마음에 든 거야.
그래서 레위자손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연합할 수 있도록 그런 역할을 그 이름대로 역할 분담을 해서 레위 지파가 나와 가지고 제사장이 거기서 나온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여후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지으니까 하나님이 영 마음에 들었어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니까 그 유다 자손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단지 이름만 잘 짓는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고, 레아가 그 남편으로부터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은 거죠.
혹시 우리 샤론교회 자매들보니까 다 남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같아서 해당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남편이 사랑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 야곱의 일생에 그 출발점이 여러 가지로 매우 어려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나그네 길을 출발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147년 동안을 야곱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애환을 겪으면서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 우리가 잘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