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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골프 투어 에세이<3> 서닝데일 | |
볕 잘 드는 여름날,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스코틀랜드의 링크스를 그렸다면 캔버스는 초록색이 아니라 연보랏빛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봄날 금수강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처럼, 여름날 스코틀랜드의 링크스는 보랏빛 꽃을 피우는 헤더가 지천이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6번 홀과 12번 홀의 이름은 헤더가 많이 핀다는 뜻의 헤더리(heathery)다. 스코틀랜드엔 헤더라는 이름의 코스도 있다. 무릎 높이 정도 자라는 관목의 일종인 헤더는 공이 들어가면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친 러프이지만 그 색깔만은 황홀하다. 볕 잘 드는 여름날 방문한 서닝데일도 그랬다. 코스 관리를 담당하는 찰리는 “가장 좋은 때 이 골프장에 왔다”면서 기자를 환대했다. 코카시안답지 않게 키가 작고 여윈 그는 “헤더가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은 스코틀랜드의 여느 링크스가 아니라 서닝데일이 확실하다”고 약간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그는 스코틀랜드의 링크스에 가보지 못했다. 그냥 서닝데일의 헤더에 취했을 뿐이다. 그러나 서닝데일의 헤더는 눈부셨고 연보라색 헤더의 바다를 보고 있자니 술에 취해 비틀스의 명곡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들을 때처럼 몽환적인 기분에 빠졌다. 빛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모네의 그림이 거짓이 아닌 것처럼 찰리의 확신도 거짓이 아니다. 보라색은 부침이 심하다. 강렬한 햇살이 비치면 보라색은 그 어떤 색깔보다 화려하다. 그러나 먹구름이 낄 때 헤더의 보라색은 무채색으로 변해 페어웨이의 초록에 잠겨버린다. 고대 그리스에서 하늘의 색(파란색)과 인간의 피(붉은색)가 섞인 것으로 여겨진 보랏빛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색깔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매우 촌스러운 색으로 꼽히기도 한다. 천재가 좋아하는 색, 혹은 천재처럼 매우 불안한 색이 보라색이다. 1900년대 초 잉글랜드에서도 골프의 열기가 뜨거웠다. 잉글랜드의 대도시 주변에도 새로운 골프클럽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기말의 염세적인 분위기를 뚫고 20세기를 가장 먼저 시작한 코스가 서닝데일이다. 100명의 발기인이 1900년 클럽을 만들기로 했고, 1901년 런던 인근에 서닝데일 클럽이 문을 열었다. 서닝데일은 영국의 내륙 골프장 중에서는 최고의 명문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그런 서닝데일도 서자(庶子)에 불과하다.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잉글랜드에 있는 골프장을 업신여기며 특히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 있는 골프장은 골프 코스로 치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R&A는 서닝데일에 디 오픈을 개최할 영광을 주지 않았다. 여자 브리티시 오픈만 두 차례 개최했는데 2001년엔 박세리가 이곳에서 우승했다. 찰리는 보라색 필드를 가리키며 “보비 존스와 해리 바든 같은 훌륭한 골퍼들이 이 코스에서 저 헤더 숲 너머로 아름다운 샷을 했다”며 웃었다. 1926년 디 오픈 예선이 열린 이곳에서 6언더파 66타를 친 존스는 임종 직전 “내 인생 최고의 라운드였다”고 회상했다. 보비 존스와 해리 바든은 완전히 다른 골퍼다. 바든이 만든 ‘바든 그립’을 현재 골퍼의 90% 이상이 사용하고 있고 미국 PGA 투어의 최저타 상이 바든 트로피지만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존스에 비해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존스는 평생 아마추어였지만 바든은 프로였다. 초창기엔 아마추어리즘을 지키는 골퍼는 위대한 골퍼로 여겨졌고, 프로골퍼는 골프 실력만을 가진 광대였다. 현재 일류 프로골퍼들은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수퍼스타지만 바든이 활약하던 1900년대 초반 프로골퍼는 클럽하우스 정문으로 다니지 못했다. 명문 클럽의 회원들은 어떤 프로골퍼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면 돈을 걸어놓고 자신의 클럽 프로와 경기를 시켰다. 무술영화에 나오는 도장 대결 같은 이런 매치플레이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내면 클럽 프로 자리를 잃기도 했다. 바든은 미국으로 투어를 떠나서는 이런 매치플레이에서 88번 경기해 87승1패를 기록했다. 100년 전 고단한 여행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그는 현재의 타이거 우즈보다 뛰어난 기록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든은 불운한 생을 살았다. 가난한 집에선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 부잣집의 시동으로 들어가 창문도 없는 계단 밑 방에서 6년여를 보냈다. 이후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했고 골퍼로서 성공하기 시작할 때쯤 부인이 출산 중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부인과 함께 살면서 그의 인생은 대부분 먹구름 속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섯 차례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디 오픈 최다 우승 기록이다. 그가 가장 화려한 햇살을 받은 곳은 이곳 서닝데일이었다고 기자는 상상한다. 그는 이곳에서 형인 톰 바든과 한 조를 이뤄 디 오픈 우승자 두 명과 치른 경기에서 이겼다. 그가 가장 사랑한 형 톰은 그의 동지이자 라이벌이었으며, 스승이자 캐디였다. 어둠속으로 숨으려고만 했던 그를 일으켜 햇살 속에 데려다준 이가 톰이다. 톰도 훌륭한 골퍼였지만 자신이 일으킨 동생에게 뒤져 한 번도 디 오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서닝데일에서 열린 포섬 매치플레이는 그 둘이 이뤄낸 거의 유일한 승리였다. 찰리는 바든 형제에게 이곳 클럽 프로였던 잭 화이트가 져서 아쉽다고 했다. 찰리에게 맥주 한잔을 함께하자고 권했다. 그는 “나는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해가 기울면서 보랏빛 헤더는 땅거미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을 속에 비친 찰리의 얼굴에 골프를 사랑한 불운한 형제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
첫댓글 해리 바든의 애환이 서린 곳!
여자 브리티시 오픈만 두 차례 개최했는데
2001년엔 박세리가, 2008년엔 신지애가 이곳에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