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 해결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여기 그들만의 방식으로 유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베테랑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담컨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부부가 될 것이다.
PART 01
김선우·박혜윤 부부
싸우라, 또 싸우라!
결혼 10년 차. 지겹도록 싸웠다.
심지어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오는 길에도 싸웠다.
본인들처럼 싸우지 않는 부부들이 신기하지만 부럽진 않다.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을 통해 이 부부는 완성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싸웠다
이 대화를 나누고 싸웠다. 아내 혜윤 씨의 말이다.
“이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머리를 밀었거든요. 괜찮냐 해서 정말 좋다고 했어요. 그리고 본인 생각을 물어봤죠. 거울을 보면 좋다 안 좋다 판단이 되잖아요. 그럼 됐잖아요. 그런데 우물쭈물하는 거예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경청하는 남편 선우 씨.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본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땡 끝나니까 서운하잖아요.”
이렇게 매일 싸운다. 하도 많이 싸워서, 부부가 책도 썼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라는 책이다. 본인들의 리얼 싸움기를 적었는데, 정말 다양한 주제로 많이도 싸웠다. 그들은 신문사 입사 동기다. 같은 일을 하지만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외모도 말투도 극과 극. 180㎝ 넘는 키에 커다란 체구의 남편 선우 씨는 말도 느리다. 작은 키의 깡마른 혜윤 씨는 말의 템포와 양이 남편의 두 배다. 매사 싸울 일 투성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신문사 입사 동기의 인연이 부부로 이어졌다. 아내 박혜윤 씨의 눈에 남편 김선우 씨가 쏙 들어왔다. 사귀자는 고백도, 결혼하자는 말도 아내가 먼저 했다. 억울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내 혜윤 씨의 말을 빌리면)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랬다.
“초반에 데이트를 하는데, 화장실에 간 남편이 너무 한참 만에 오는 거예요. ‘자기 똥 쌌어?’라고 물어보는데, 화를 내는 거예요. 어떻게 ‘똥 쌌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자기가 생각했던 여자친구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가. 그런데 똥을 안 싸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도대체 그게 뭐가 문제예요? 뭐,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겠죠.”
이런 식이다. 결혼할 때 에피소드도 있다. 독서와 음악을 좋아하는 선우 씨의 엄청난 책과 음반을 본 혜윤 씨의 첫 마디는 “이거 보지도 않는 건데 버리면 안 돼?”였다. 선우 씨는 기겁했다. 어떻게 책을 버릴 수가 있지 하고 .
이 정도는 귀여운 에피소드다. 신혼 초에는 이런 일도 있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같이 회사 다닐 때예요. 회사에서 무지하게 전화가 들어와 있는 거예요. 제가 늦잠을 잤는데, 아내가 절 깨우지 않고 혼자 출근을 했지 뭐예요.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요. 정말 그때 받은 문화충격이란.”
우리가 끊임없이 싸우는 이유는?
순간적으로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게 아니다’라는 마음이 들 때 싸움이 된다.
“순간에 존재하는 것,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좋아요. 결혼으로 따지면, 백년해로가 목적이 아니에요.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런 명쾌한 철학이 있기에 혜윤 씨는 싸움에 당당하다. 오히려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싸움이 이토록 유치하고 치사할 줄 몰랐을 때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철학이 달라진 건 아니다.
“뭔가 의견이 다르다면, 그게 뭔지 알아서 빨리 결론이 나오기를 바랐어요. 그게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살다보면 절대 싸우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왜 이렇게 사소한 걸로 화를 내느냐는 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 분들이 잘못된 건 아닌데, 저희 부부는 그렇지 않게 살려고 결정했어요. 아무것도 흘려보내지 않고 파고드는 거죠. 이 사람을 위해서 뭔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싸우는 목적 중 하나는 자신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싸우다보면 나의 장점도 알게 된다.
“그냥 화가 나지는 않아요. 근원적인 이유가 있고, 다른 이유가 있어서 화가 나는 거예요. 싸우다보면 그걸 알아가게 돼요.”
주로 싸움 유발자의 캐릭터를 갖게 되어버린 혜윤 씨가 논리적으로 말한다. 그녀는 결혼의 목적이 백년해로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
“싸우다보면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있어요. 다 알았으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되는데 알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이죠. 절망은, 역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웃음)
극과 극은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가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니 둘의 표정이 환해진다. 먼저 혜윤씨부터.
“외모가 마음에 들어요. 키가 크고 뚱뚱한 남자. 그런 남자를 좋아해요.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외모를 보거든요.
성격은 어차피 안 맞기 때문에 외모라도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저는 이런 성격, 외모 좋아해요. 짧은 머리 좋아하고요, 특이하지만. 모든 것이 좋았어요. 성격만 빼고.”(웃음)
좋아하는데 성격이 이 정도로 셀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이 확실하고, 옆에서 잡아줄 수 있는 스타일을 원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지만. 책 쓰면서 농담 삼아 “나중에 이혼하면 어떡하지?”라는 대화를 많이 나눴단다.
“그때는 왜 이혼하게 됐는지 써야죠!”
혜윤 씨가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인터뷰를 경청하던 선우 씨가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단다.
“많이 싸우는 부부들에게 글을 써보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글로 쓰니까 정리가 되더라고요. 정말 효과가 있었어요. ‘내가 어떻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꼭 해보세요.”
PART 02
이백용·송지혜 부부
외롭지 않을 때까지 인정하라!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감성 에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이 한 권 있다.
<결혼 후 나는 더 외로워졌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제목에서 이제 갓 결혼한 부부의 독백이 떠오르지만, 이 책의 저자는 30년 차 부부다.
한국코칭센터에서 전문코치과정을 담당하는 이백용 교수와 한국피아노교수법연구소를 설립한 송지혜 교수 부부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아직도 많이 다른 우리 부부
서로 다른 기질을 가졌다고 소개하는 부부지만, 30년 내공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닮은 분위기를 내는 부부에게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역시, 부부관계 관련 서적을 내고 각종 강연장에 함께 다니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반전의 첫 대답.
“지인들에게 ‘아직도 쓸 게 있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못 다 한 말들이 많아요.(웃음) 신앙, 가치, 식성 등 비교적 코드가 맞는 편이지만 여전히 다른 점이 많거든요. 맞지 않은 부부입니다.(웃음) 다만 이걸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풀어보면 조금 명쾌한 해답이 있어요.”
부부는 스스로 지극히 현실적이다. 결혼생활에 대한 허무맹랑한 기대따위는 없다. 30년 결혼생활은 그들에게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 아무리 부부의 연을 맺어도 끝내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며칠 전에 둘이 여행을 다녀왔어요. 6시간 장거리 운전으로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난 고생했으니까 보상받아야 한다며 마사지를 해달라는 거예요. 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간에 어지러워진 집 안 정리에 책임이 몰려왔죠. 이렇듯 둘의 욕구가 달라요. 그걸 채워주지 않으면 싸움이 되죠.”
송 씨는 남편을 잠깐 돌봐주고 본인의 욕구를 채우러 간다. 충분하지 않다는 남편의 말이 있었지만, 내 욕구를 채울 차례라는 말을 분명히 밝힌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해요. 허무맹랑한 기대를 가지는 것보다 훨씬 낫죠.”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지금?
문제도 여러 번 풀다보면 감이 잡히고, 시험도 경험이 많으면 요령이 생긴다. 부부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자꾸 고민하고 해결하다 보면 답이 보인다. 이 부부는 30년간 그 고민 속에 있어 왔고, 그 해결책을 기질이라는 데서 찾았다.
“서로의 욕구를 알아주자는 것에서 출발해요. ‘나는 늘 해주는데 뭐가 문제야? 대체 왜?’ 끊임없이 반문하잖아요. 이건 서로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예요.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는데, 실은 자신의 다리만 긁고 있는 셈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진 기질이란 게 각자 다른데, 그것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부부 솔루션의 시작이다.
“아이를 낳을 때 엄마들은 경험할 거예요. 병원에서 앞으로 진통이 얼마 정도 남았다, 몇 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 어떤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예상하고 참게 되잖아요. 결혼생활도 그게 포인트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뭐지?’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끝이 없어요. 상대방은 나와 다르다는 개념을 가지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져요.”
서로의 다른 기질을 인정할 때 행복이 시작된다
“며칠 전에 공연장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저희가 앉은 자리에서는 무대가 잘 안 보이는 거예요. 저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가 보이는 곳으로 갔어요. 남편은 사람들도 많은데 자리를 지키라고 했죠. 거기까지 갔는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 속상하잖아요. 남편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주의. 젊었을 때라면 대단한 싸움이 났을 텐데, 그냥 넘어갔어요.”
이게 부부가 말하는 다른 기질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티격태격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사람이 결혼을 할 때는 외롭기 때문이잖아요. 재미있는 것이, 가장 싫었던 부분이 가장 좋은 부분이 되기도 해요. 신뢰가 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깨우치면서.”
부부 관련 이야기를 하다보면 ‘부부가 꼭 행복해야 할까?’라는 반문을 듣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을 하잖아요. 더 잘 살기 위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더 이상 살기 힘든 부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물론 이백용 · 송지혜 부부 역시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 이 부부 역시 먼저 아프고 갈등했던 부부다. 이들의 이야기가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안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선우·박혜윤 부부가 알려줬다!
상황별 현명하고 똑똑한 부부싸움의 기술
부부싸움 10년 내공 김선우 · 박혜윤 부부는 말한다. 부부싸움이 결혼을 구원한다거나 배우자의 외도를 해결하는 건 아니라고. 다만 결혼이 약속하는 아리송한 안정과 행복에 매달리는 대신 부부싸움이 대변하는 진짜 삶에 대면하다보면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놀라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내공 100단 부부가 전하는 싸움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