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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이웃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25-3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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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이 지중해로 세력을 뻗치자,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신성 동맹)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찔렀다.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것이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고 여겼다. 이를 기억하고자 성 비오 5세 교황께서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셨다. 1960년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을 바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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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너무도 익숙한 말씀이기에, 오늘은 ‘사마리아인’이 아닌 ‘율법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의 행동을 주목해 보면,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또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의도가 몹시 불순합니다. 아울러 그의 질문은 매우 형식적이며 기계적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이 질문을 다시 살펴보면, “나는 그 ‘무엇을’ 잘하고 있으며,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라는 교만함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화법으로 접근하십니다.
“누가 이웃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으십니다. 율법 교사에게는 ‘아무개’라는 이웃의 이름이 중요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웃이 되어 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율법 교사에게 하느님의 가르침, 곧 율법은 일종의 수학 공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가르치는 교사였으니, 율법의 계명에 관한 지적인 앎은 충분하였습니다. 그는 계명을 바탕으로 ‘무엇’과 ‘누구’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계명을 통해서 정작 중요한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지는 못하였고, 따라서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며 이웃이 되어 줄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그분의 계명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읽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율법 교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박형순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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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뒷담화」
누군가 제게 화를 내면서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어쩌면 그 사람이 제게 그럴 수가 있죠? 불만이 있으면 저에게 직접 말하지, 왜 뒷담화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뒷담화를 했다는 것, 그것도 부정적인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불만이고 이에 따른 ‘화’였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말이 ‘뒷담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뒷담화를 신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뒷담화입니다. 그러나 이 뒷담화가 돌고 돌아 듣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듣게 되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또 몇 번에 걸쳐서 전달된 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졌을 때에는 더 기분이 안 좋습니다.
예전에 어느 스님이 ‘뒷담화도 하나의 매너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의를 차리는 매너 때문에 당사자 앞에서 얘기하지 못하고 뒤에서 하는 것이랍니다. 이렇게라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뒷담화가 좋지는 않지만, 이를 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100%의 지지란 있을 수 없다고 하지요. 그렇기에 뒷담화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자신은 이 뒷담화를 하지 않는 데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진짜 사랑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이다(톨스토이).>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루가 10,25-37)
『心を尽くし、
精神を尽くし、
力を尽くし、
思いを尽くして、
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
また、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
(ルカ10・25-37)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being,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LK 10:25-37)
ロザリオの聖母記念日
네 마음을 다하고
ネ マウムル タハゴ
네 목숨을 다하고
ネ モッスムル タハゴ
네 힘을 다하고
ネ ヒムウル タハゴ
네 생각을 다하여
ネ センガグル タハヨ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チュニミシン ネ ハヌニムル サランハヨラ。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クリゴ ネ イウスル ネ モムカッチ サランハヨラ。
(루가 10,25-37)
『心を尽くし、
코코로오 츠쿠시
精神を尽くし、
세에신오 츠쿠시
力を尽くし、
치카라오 츠쿠시
思いを尽くして、
오모이오 츠쿠시테
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
아나타노 카미데 아루 슈오 아이시나사이
また、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
마타 린진오 지분노요오니 아이시나사이
(ルカ10・25-37)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being,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LK 10:25-37)
Memorial of Our Lady of the Rosary
LK 10:25-37
There was a scholar of the law who stood up to test Jesus and sai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Jesus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do you read it?”
He said in reply,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being,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He replie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do this and you will live.”
But because he wished to justify himself, he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Jesus replied,
“A man fell victim to robbers
as he went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They stripped and beat him and went off leaving him half-dead.
A priest happened to be going down that road,
but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pposite side.
Likewise a Levite came to the place,
and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pposite side.
But a Samaritan traveler who came upon him
was moved with compassion at the sight.
He approached the victim,
poured oil and wine over his wounds and bandaged them.
Then he lifted him up on his own animal,
took him to an inn, and cared for him.
The next day he took out two silver coins
and gave them to the innkeeper with the instruction,
‘Take care of him.
If you spend more than what I have given you,
I shall repay you on my way back.’
Which of these three, in your opinion,
was neighbor to the robbers’ victim?”
He answered, “The one who treated him with mercy.”
Jesus said to him, “Go and do likewise.”
2024-10-07「では、わたしの隣人とはだれですか」
+ロザリオの聖母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守護の天使記念日記念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ロザリオの聖母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テレジア、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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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7日は「ロザリオの聖母」の記念日ですが、これは1571年のギリシア・レパントの海戦でキリスト教徒がオスマン・トルコ軍に対して勝利を収めたことを記念して、聖ピオ五世教皇(1566~1572)によって定められました。この勝利は、ロザリオの祈り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聖母の助けによるものであると信じられています。またレオ十三教皇(1878~1903)は10月を「ロザリオの月」と定めました。(カトリック中央協議会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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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では、わたしの隣人とはだれですか」>
そのとき、10・25ある律法の専門家が立ち上がり、イエスを試そうとして言った。「先生、何をしたら、永遠の命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26イエスが、「律法には何と書いてあるか。あなたはそれをどう読んでいるか」と言われると、27彼は答えた。「『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力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また、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あります。」28イエスは言われた。「正しい答えだ。それを実行しなさい。そうすれば命が得られる。」29しかし、彼は自分を正当化しようとして、「では、わたしの隣人とはだれですか」と言った。30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ある人がエルサレムからエリコへ下って行く途中、追いはぎに襲われた。追いはぎはその人の服をはぎ取り、殴りつけ、半殺しにしたまま立ち去った。31ある祭司がたまたまその道を下って来たが、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32同じように、レビ人もその場所にやって来たが、その人を見ると、道の向こう側を通って行った。33ところが、旅をしていたあるサマリア人は、そばに来ると、その人を見て憐れに思い、34近寄って傷に油とぶどう酒を注ぎ、包帯をして、自分のろばに乗せ、宿屋に連れて行って介抱した。35そして、翌日になると、デナリオン銀貨二枚を取り出し、宿屋の主人に渡して言った。『この人を介抱してください。費用がもっとかかったら、帰りがけに払います。』36さて、あなたはこの三人の中で、だれが追いはぎに襲われた人の隣人になったと思うか。」37律法の専門家は言った。「その人を助けた人です。」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行って、あなたも同じようにしなさい。」(ルカ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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パク・ヒョンス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今日の福音は「良きサマリア人のたとえ」として知られるお話です。非常に馴染み深いので、今日は「サマリア人」ではなく「律法学者」の視点から見てみましょう。
彼の行動に注目すると、彼は「イエス様を試そう」とし、自分の「正当性を示したくて」イエス様に尋ねます。イエス様との対話における彼の意図は非常に不純です。さらに、彼の質問は非常に形式的で機械的です。彼は永遠の命を得るために『何を』すべきか、また隣人が『誰なのか』尋ねていますが、改めてこの質問を見直すと、「私はその『何を』うまく行っており、私の隣人が『誰』なのかよく知っている」といった驕りが見え隠れしています。
しかし、イエス様は彼に異なる話法で接します。「誰が隣人か」と答えるのではなく、「誰が強盗に襲われた人の隣人になったと思うか」と問いかけます。律法学者にとっては『誰それ』という隣人の名前が重要でしたが、イエス様は『隣人となること』をより重要視されました。
律法学者にとって神の教え、すなわち律法は一種の数学の公式のようなものでした。彼はそれを教える教師であったので、律法における知的理解は十分にありました。彼は掟に基づき『何を』と『誰を』について話すことはできましたが、掟を通して本来重要な神の慈しみを学ぶことはできておらず、したがって誰に対しても慈しみを施し隣人となることができない人でした。
そのような彼の姿はまさに私たちの姿に他なりません。私たちはイエス様について話すことができ、その掟もよく知っています。しかし、私たちがその中で神の愛と慈しみを読み取れないのであれば、私たちもまた律法学者と変わりない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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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完全なキリスト者でありながらも少しでも隣人に必要とされる主の慈しみを実践する愛の隣人となれ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