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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10:20 한자의 한글화작업, 서원소장 판각문과 원문을 병기하여 다시 올리다.
창절서원소장 판각기문
寧越新建六臣祠宇上樑文 영월신건육신사우상량문 / 1685년6월24일 울진현령 吳道一
【원문은 『서파집(西坡集)』권25 상량문(上樑文)에 수록되어 있고,
창절서원 소장 판각은 경술년(庚戌年 1790년, 정조 14) 겨울에 강원도관찰사 칠원漆原 윤사국尹師國이 다시 새겨 걸었는데
원문과는 달리하여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순으로 되어 있고, 일부문장이 제외되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하고, 글자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하여, 원문과는 다르게 판각된 문장은 이해를 돕기 위해 병기하였다.】
樹百世之倫常 수백세지륜상。백세의 떳떳한 인륜 수립했으니
可無崇報之擧 가무숭보지거。존숭(尊崇)하여 보답치 않을 수 있겠는가!
聳一邦之瞻仰 용일방지첨앙。온 백성이 공경히 우러르니
合有揭虔之儀 합유게건지의。제향을 올리는 건 마땅한 일.
載拓荒基 재척황기。이에 황량한 터를 개척하여
有儼華構 유엄화구。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우를 지었지.
恭惟 공유 생각건대
成先生 三問 성선생 삼문。성삼문 선생은
氷霜志操 빙상지조。지조가 얼음과 서리처럼 냉엄하고
鐵石心肝 철석심간。간담이 바위와 무쇠처럼 견고했지.
搦管詞垣 익관사원。시단에서 붓을 휘두르면
文章逼大家 문장핍대가。대가의 솜씨는 핍진(逼眞)한 문장이라!
數橫經法 수횡경법。경연에서 경전을 강론할 때는
幄論思有古人風 악론사유고인풍。옛날 어른의 풍모를 지닌 논변이었지.
【서원 소장 판각문
成先生성선생 성삼문 선생은
志操氷霜지조빙상 지조가 얼음과 서리처럼 냉엄하고
心肝鐵石심간철석 간담이 바위와 무쇠처럼 견고했지.
橫經法幄횡경법악 경연에서 경전을 강론할 때는
論思有古人風론사유고인풍 고인의 풍모를 지닌 논변이요
搦管詞垣익관사원 시단에서 붓을 휘두르면
文章逼大家數문장핍대가수 대가의 솜씨는 핍진한 문장이라!】
朴先生 彭年 박선생 팽년 박팽년 선생은
性質沈雄 성질침웅。성품이 침착하며 뜻이 넓고 깊어
學識精透 학식정투。학문(學問)과 식견(識見)이 매우 훌륭하고
飭躬則繩趨而尺步 칙궁칙승추이척보。법도에 따라 신중히 행동했으니
模範士林 모범사림。사림의 모범이 되었다네.
摛藻則地負而海涵 이조칙지부이해함。문장은 땅과 바다처럼 드넓으니
本源經術 본원경술。그 근본은 경서(經書)에 관(關)한 학술(學術)이네.
【서원 소장 판각문
恭惟朴先生공유박선생 생각건대 박팽년 선생은
風儀峻整풍의준정 기풍이 준엄하고
器宇沉凝기우침응 도량이 중후했네.
摛藻則地負而海涵이조칙지부이해함 문장은 땅과 바다처럼 드넓으니
本源經術본원경술 그 근본은 경학(經學)이고
飭躬則繩趨而尺步칙궁칙승추이척보 법도에 따라 신중히 행동했으니
模範士林모범사림 사림의 모범이 되었다네.】
李先生 塏 이선생 개。이개 선생은
韓山世胄 牧老雲孫 한산세주 목로운손。한산의 명문세족으로 목은의 후손이라네.
標松儷玉之貞姿 표송려옥지정자。백옥과 소나무와 같은 곧은 성품은
卽其天賦 즉기천부。천부적으로 받은 것이고
吐鳳雕龍之妙藝 토봉조용지묘예。봉황을 토하고 용을 아로새기는 절묘한 필력은
自是家傳 자시가전。대대로 가전되는 전통이네.
河先生 緯地 하선생 위지。하위지 선생은
學通典墳 行遵禮法 학통전분 행준례법。배움은 전분으로 이어지니
撰書辭秩 찬서사질。글을 지어 사직할 때에는
深惟履霜之危 심유리상지위。서리를 밟는 근심을 깊이 생각했고
登道露章 등도로장。길을 나서며 상소문을 올릴 적에는
首陳苞桑之戒 수진포상지계。가장 먼저 뽕나무 뿌리의 경계를 주달하였지
【서원 소장 판각문
河先生하선생 하위지 선생은
雍容禮法옹용예법 온화한 자태로 예법을 익히고
潛心典墳잠심전분 옛 전적을 잠심하여 읽었네.
登途露章등도로장 길을 나서며 상소문을 올릴 적에는
首陳苞桑之戒수진포상지계 가장 먼저 뽕나무 뿌리의 경계를 주달했고
撰書辭秩찬서사질 글을 지어 사직할 때에는
深惟履霜之憂심유리상지우 서리를 밟는 근심을 깊이 생각했지.】
柳先生 誠源 류선생 성원。유성원 선생은
雄文冠世 웅문관세。웅혼한 문장은 세상의 으뜸이니
卓識離倫 탁식리륜。탁월한 식견은 견줄 자가 없고
周章近侍之班 주장근시지반。시종신 반열에서 분주히 지내며
五色之線幾補 오색지선기보。오색 관복을 몇 번이나 기웠던가!
慟哭公退之後 통곡공퇴지후。관청에서 돌아와 통곡할 때에는
一斗之血彌丹 일두지혈미단。한 말의 붉은 피를 토해 냈다네.
【서원 소장 판각문
柳先生유선생 유성원 선생은
卓識離倫탁식리륜 탁월한 식견은 견줄 자가 없고
雄文冠世 웅문관세 웅혼한 문장은 세상의 으뜸이지.
周章近侍之列주장근시지열 시종신 반열에서 분주히 지내며
幾補五色之裳기보오색지상 오색 관복을 몇 번이나 기웠던가!
慟哭公退之餘 통곡공퇴지여 관청에서 돌아와 통곡할 때
彌丹一斗之血 미단일두지혈 한 말의 붉은 피를 토해 냈네.】
兪先生 應孚 유선생 응부。유응부 선생은
技妙穿楊 기묘천양。버들잎 뚫을 만큼 활솜씨 뛰어나고
行符懹橘 행부양귤。귤을 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네.
家無甔石之蓄 가무담석지축。집에 비축된 양식이 조금도 없었지만
而萱闈足甘毳之供 이훤위족감취지공。모친(萱闈)께 맛난 음식(甘毳) 넉넉히 봉양했고
位躋金貂之班 위제금초지반。지위는 시종신(金貂)의 반열에 올랐거늘
而蓬牖乏風雨之庇 이봉유핍풍우지비。초라한 창문은 비바람조차 가리지 못했네.
猗歟諸君子之懿烈 의여제군자지의렬。아! 여러 군자의 아름다운 충렬이
實間累百載而並生 실간루백재이병생。실로 수백 년 만에 동시에 생겼네.
當煕洽之際 당희흡지제。태평성대를 구가할 무렵에는
夙荷兩朝恩光 숙하양조은광。일찌감치 두 임금의 총애를 받더니
及革除之時 급혁제지시。왕위가 뒤바뀔 때에는
共辦千仞壁立 공판천인벽립。천인벽립의 절의를 함께 이루었네.
天命人心之有屬 천명인심지유속。천명과 인심이 귀속되었으니
豈不知時識幾 기불지시식기。어찌 시세와 기미를 몰랐겠는가!
民彝物則之所關 민이물칙지소관。인륜과 도리에 관계되므로
只欲捨生殉節 지욕사생순절。절의를 위해 삶을 버리고 싶었을 뿐
澟澟淸標 름름청표。늠름하고 고상한 지조는
昭日月而崒泰山 소일월이줄태산。일월처럼 빛나고 태산처럼 우뚝했으며
耿耿孤忱薄湯武而非堯舜 경경고침박탕무이비요순。일편단심의 의로운 충정은 요순과 탕무 조차 변변찮게 여겼지
同時幷命 동시병명。동시에 나란히 목숨을 바치며
不忘志士之喪元 불망지사지상원。지사로서 머리 잃는 것을 잊지 않았으니
曠世聞風 광세문풍。먼 훗날 그 기풍을 듣는다 해도
尙堪英雄之抆淚 상감영웅지문루。영웅(충신)으로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卓乎所成就事蹟 탁호소성취사적。그들이 성취한 우뚝한 사적은
槩與方正學而同符 개여방정학이동부。방정학과 궤를 함께하거니와
偉哉我國家規模 위재아국가규모。우리나라의 훌륭한 제도 역시
遠邁文皇帝之古轍 원매문황제지고철。문황제의 선례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方光廟震疊之日 방광묘진첩지일。바야흐로 세조의 위엄이 진동할 때도
不禁文稿之藏 불금문고지장。그들 문집의 소장을 금하지 않았고
逮當宁臨御之辰 체당저림어지진。당저[숙종]께서 등극하신 이후로는
亦許廟宇之刱 역허묘우지창。사당의 창건까지 윤허하셨네.
眷彼錦城僻壤 권피금성벽양。저 금성 후미진 곳 돌아보니
蓋有魯陵古塋 개유노릉고영。노릉의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悲纏蜀帝之魂 비전촉제지혼。슬픔은 촉제의 혼백에 감기누나!
夜夜空山片月 야야공산편월。밤마다 조각달 아래의 텅 빈 산속에서
恨入王孫之草 한입왕손지초。원한은 왕손의 사초에 파고드누나!
年年斷麓殘春 년년단록잔춘。해마다 늦봄의 깎아지른 산기슭에서
今巡按使洪公萬鍾 금순안사홍공만종。금번에 관찰사 홍만종이
屬當使節之巡宣 속당사절지순선。때마침 왕명 받들고 이곳을 순시했는데
克軫齋廬之傾圮 극진재려지경비。허물어진 재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奏一牘而申請 주일독이신청。장계를 올려 개수를 요청한 뒤
卽蒙允兪鳩衆材而董工 즉몽윤유구중재이동공。곧장 윤허를 받고 많은 비용을 모아 공역을 감독하여
亟加修葺 극가수즙。단기간에 보수했으며
爰就旁區之奧址 원취방구지오지。인근의 호젓한 터에 나아가
幷建六臣之新祠 병건육신지신사。육신의 사당도 새로 지었다네.
顧一體祭祀之同修 고일체제사지동수。일체의 군신을 함께 제사지내니
定慰九地之精魄 정위구지지정백。구천의 영혼 위로하기에 충분하거늘
而累世因循而未擧 이루세인순이미거。이제껏 여러 해 동안 거행치 못한 건
蓋待今日之經管 개대금일지경관。오늘의 경영을 기다렸기 때문이리라.
謀及諸儒 모급제유。계획을 여러 유자에게 전하자
老少齊聲而共集 노소제성이공집。노소 가릴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모여들고
文移列邑 문이렬읍。통문을 여러 고을에 보내자
遠近承風而競趨 원근승풍이경추。원근에서 바람을 탄 듯 다투어 참여했다네.
命龜卜而定陰陽 명구복이정음양。거북점을 명하여 음양을 정하니
咸適其所 함적기소。모든 것이 마땅함에 부합하고
陳圭臬而辨方位 진규얼이변방위。규얼을 놓아 방위를 분별하니
各得其當木石交輸 각득기당목석교수。목재와 석재를 번갈아 옮기며 최적의 장소가 아님이 없었지.
吏勤而工勸 리근이공권。아전과 기술자는 근실히 일했고
斧斤迭作 부근질작。쉬지 않고 도끼질하니
材良而力贍 재량이력섬。훌륭한 자재요 넉넉한 인력이라.
因地之便宜 인지지편의。지세의 편의에 의지 했거늘
美矣川抱岳峙之勢 미의천포악치지세。아름답도다! 감돌아 흐르는 강과 우뚝 솟은 산의 형세여!
不日而輪奐 불일이륜환。며칠도 못되어 웅장한 건물 완성하니
隆然鳥革翬飛之形 륭연조혁휘비지형。웅장하도다!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형상이여!
內堂外廊之規 내당외랑지규。내당과 외랑의 법식은
蓋取羲經大壯 개취희경대장。대개『주역』대장괘大壯卦 에서 취했고
松茂竹苞之制 송무죽포지제。소나무와 대나무처럼 무성한 제도는
允侔周雅。斯干想氣節之巍峨 윤모주아 사간상기절지외아。
높고 높은 기상과 절의를 상상하니 진실로『시경』사간편斯干編을 따른 것이네.
半天聳華山之色 반천용화산지색。허공에 우뚝 솟은 화산의 빛깔이요
訴冤恨之壹鬱 소원한지일울。억울한 원한을 하소연하는 건
千古咽錦水之波 천고인금수지파。천고토록 오열하는 금수의 물결이라!
良辰之禋祀昭明 량진지인사소명。좋은 날 밝은 혼령께 제사 지내니
宛登降之如在 완등강지여재。완연히 오르내리며 곁에 있는 듯
故主之堂封隣近 고주지당봉린근。옛 임금의 능침이 인근인지라
怳焄蒿之來憑 황훈호지래빙。제수의 향기로운 기운에 기대고 있는 듯.
式輿情之胥欣 식여정지서흔。이에 뭇 백성은 기뻐할 것이고
佇神理之無憾 저신리지무감。귀신의 이치에도 유감이 없을 터이니
脩樑將擧 수량장거 기다란 들보를 장차 올리면서
善頌斯陳 선송사진。송축하는 글을 이렇게 짓노라.
兒郞偉抛樑東 아랑위포량동。여보게들 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게나.
魯陵松柏鬱蔥蔥 로릉송백울총총。푸른 송백이 무성한 노릉
春生古峽花無數 춘생고협화무수。봄기운 돋은 옛 골짜기에 꽃이 무수하거늘
杜宇啼痕血點紅 두우제흔혈점홍。두견새 통곡하며 붉은 혈흔 점점이 남겼네.
兒郞偉抛樑西 아랑위포량서。여보게들! 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게나.
削立危巖半天齊 삭립위암반천제。하늘 높이 치솟은 깎아지른 암벽
薄暮灘流轉幽咽 박모탄류전유인。해질녁 여울은 도리어 나직이 흐느끼고
斷雲殘照亦含凄 단운잔조역함처。조각구름 저녁햇살은 처연함을 머금었네.
兒郞偉抛樑南 아랑위포량남。여보게들! 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게나.
衮衮澄江碧似藍 곤곤징강벽사람。넘실대는 맑은 강물 쪽빛처럼 푸른데
一曲淸吟怨夜月 일곡청음원야월。밝은 달 원망하며 한 곡조 맑게 읊조리니
有誰聞此不沾衫 유수문차불첨삼。그 누가 이를 듣고 옷깃을 적시지 않을까!
兒郞偉抛樑北 아랑위포량북。여보게들! 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게나.
甑鉢層巖萬丈矗 증발층암만장촉。만길 우뚝한 증산甑山과 발산鉢山의 겹겹바위
雨泣雲蒸渾似怨 우읍운증혼사원。눈물같은 비와 피어오르는 운무는 온통 원망하는 모습
百年深慟豈終極 백년심통기종극。어찌 삭힐 수 있으리오! 백년 묵은 깊은 서러움을.
兒郞偉抛樑上 아랑위포량상。여보게들! 들보 위에 떡을 던지게나.
白日昭昭天字曠 백일소소천자광。드넓은 하늘에 밝은 태양 빛나니
炳炳丹衷應照臨 병병단충응조림。혁혁한 충신들도 응당 광림할 터
令人猶覺髮森爽 령인유각발삼상。모골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절로 든다네.
兒郞偉抛樑下 아랑위포량하。여보게들! 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게나.
晩陰蕭瑟羃原野 만음소슬멱원야。쓸슬한 저녁 음기가 들판을 뒤덮을 즈음
三杯桂酒酹英靈 삼배계주뢰영령。좋은 술 석 잔을 혼령께 따르나
無限悲懷無處瀉 무한비회무처사。끝없는 비애를 쏟을 곳 없어라!
伏願上樑之後 복원상량지후。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
山川無恙 산천무양。산천이 무사태평하고
棟宇長存 동우장존。사우가 길이 보존되어
魂氣永有依歸 혼기영유의귀。혼백이 영원히 귀의하도록
灌鬯之典靡忒 관창지전미특。강신하는 전례 바뀌지 않고
人心庶幾奬勸 인심서기장권。사람의 마음을 권면하여
忠義之士蔚興 충의지사울흥。의로운 선비가 성대히 일어나기를.
致闔境之咸休 치합경지함휴。그리하여 온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俾來許而罔替 비래허이망체。후진들이 변함없이 계승하기를.
崇禎紀元後乙丑六月二十四日 通訓大夫 蔚珍縣令 吳道一
숭정 기원후 을축년(1685년, 숙종11) 6월24일 통훈대부 울진현령 오도일 삼가 짓다.
庚戌冬改刻以揭 경술동개각이게 경술년(1790년, 정조14) 겨울에 다시 새겨 걸다.
關東按使漆原 尹師國謹書 관동안사칠원 윤사국근서 강원도관찰사 漆原칠원 尹師國윤사국이 삼가 쓰다.
【용어설명】
존숭(尊崇) : 높이 받들어 숭배함.
핍진(逼眞) :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법도에 따라 신중히 행동했으니[飭躬則繩趨而尺步] : 칙궁飭躬은 자신을 신칙하며 언행을 근엄하게 하는 것이다. ‘승추척보繩趨而尺步’는 법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문장은 땅과 바다처럼 드넓으니[摛藻則地負而海涵] : 이조摛藻는 문학적 재능을 펼친다는 뜻. 지부이해함地負而海涵은 대지가 만물을 싣고 바다가 모든 강물과 시냇물을 포용한다는 의미로, 규모가 거대하고 함축이 심오한 것을 비유한다.
전분(典墳)·전적(典墳) : 삼황 오제(三皇五帝)의 글을 말하는 것으로, 전(典)은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제요(帝堯) •제순(帝舜)의 5전(五典)을 말하고, 분(墳)은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의 3분(三墳)을 말함. 삼분과 오전(三墳五典)의 병칭으로 가장 오래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전설상의 전적들이다.
서리를 밟는 근심(履霜之危 리상지위 履霜之憂 리상지우) : 서리를 밟으며 겨울을 예측할 수 있듯, 일의 조짐을 미리 살핀 뒤, 머지않아 찾아올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 또는 서리가 내릴 무렵에 인척을 염려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뽕나무 뿌리의 경계(苞桑之戒포상지계) : 임금이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나라가 견고해질 수 있다는 의미.
잠심(潛心) : 마음을 가라앉힘
웅혼(雄渾) : 글이나 글씨 또는 기운 따위가 웅장하고 막힘이 없다
관청에서 돌아와 통곡할 때 : 1453년(단종1)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킨 뒤, 집현전에 명하여 정난녹훈의 교서를 작성케 했는데, 당시 집현전 교리였던 유성원은 갖은 협박 속에서 초안을 만들고는 집으로 돌아와 통곡했다.
버들잎 뚫을 만큼 활솜씨 뛰어나고(技妙穿楊기묘천양) : 전국시대 초나라 양유기는 활솜씨가 뛰어나 백보 밖에서도 버들잎을 쏘아 맞췄다고 한다. 기창(紀昌)이란 인물은 화살로 이[虱슬. 머릿니]를 명중시킬 수 있었다.
귤을 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네.(行符懹橘행부양귤) : 삼국시대 오나라 육적이 여섯 살 때 구강에서 원술을 알현하자, 원술은 귤을 내어 대접했다. 육적이 하직하며 절을 올릴 때, 품속에서 세 개의 귤이 떨어졌다. 원술이 “자네는 빈객이 되어 어찌 귤을 품에 넣었는가?” 라 물으니, 육적은 무릎을 꿇은 채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고 싶습니다.” 가 보인다.
모친[萱闈 훤위] : 萱闈는 부인의 거처, 혹은 모친의 거처를 가리키는데 훤당(萱堂)이라고도 한다. 시경 위풍 백혜에 “어떻게 원추리를 얻어 북당에 심을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내 마음을 병들게 만드네.”가 보인다. 훤초(諼草)는 훤초(萱草)라고도 하는데 근심을 잊게 만든다는 망우초(忘憂草)다.
家無甔石之蓄 而萱闈足甘毳之供 : 남효온의 <육신전>에 “집안이 가난하여 비축된 양식이 조금도 없었으니, 모친을 봉양하는 일에는 일찍이 넉넉지 않음이 없었다.”가 보인다. 감취(甘毳)는 맛있는 안주나 음식을 지칭하는데 감취(甘脆)라고도 한다.
시종신(金貂금초) : 金貂는 임금을 시종하는 신하의 관모장식이다. 한나라 때 시중과 중상시의 관모는 황금 구슬과 담비 꼬리로 장식하였다.
當煕洽之際 : 희흡(煕洽)은 ‘중희루흡(重熙累洽)’의 준말로 전후의 공적을 계승하여 여러 대에 걸쳐 승평의 시대를 구가하는 것이다.
천인벽립(千仞壁立) : 천인(千仞)은 천 길이라는 뜻으로, 산이나 바다가 매우 높거나 깊은 것을 이르는 말이며, 벽립(壁立)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벽처럼 서 있다는 뜻이다.
요순과 탕무 조차 변변찮게 여겼지 : 탕왕과 무왕이 걸왕과 주왕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요가 순에게 왕위를 선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세조의 왕위찬탈에 그릇된 역사적 정당성을 제공했다고 본 것이다. 남효온의 <애인생부> 추강집 권1 에 “창을 잡고 임금을 위협하는 자는 탕왕과 무왕의 공로를 자랑했고, 간교한 방법으로 선양을 취한 자는 순임금과 우임금의 충정을 빙자했지” 가 보이고, 백호 임제(1549~1587)의 <원생몽유록>에는 “요순과 우탕이 나라를 주고받은 이후로 간교한 방법으로 선양을 취한 자는 이들을 빙자했고, 신하로서 임금을 징벌한 자도 이들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풍조가 천 년 동안 도도히 넘실댔지만 끝내 구제하지 못했으니, 애석하게도 네 임금은 왕위를 찬탈하고 임금을 죽인 효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라는 대목이 보인다.
지사로서 머리 잃는 것(志士之喪元지사지상원) : 『맹자』 「등문공하」에 “지사는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사는 자기 머리를 잃는 것을 잊지 않는다.”가 보인다. 원(元)은 머리(首)를 지칭한다.
방정학(方正學) : 명나라의 충신 방효유(1357~1402)를 지칭한다. 일찍이 촉헌왕이 초빙하여 세자의 사부가 되었는데 그의 서실 이름이 정학(正學)이므로 정학선생으로 일컬어졌다.
문황제(文皇帝) : 문황(文皇)은 명나라 성조(成祖)의 시호다. 그는 조카인 혜제의 황위를 찬탈했는데, 당시 제태, 황자징, 연자령, 방효유 등의 무리들이 멸족의 화를 입었다.
세조의 위엄이 진동할 때도(震疊之日) : 진(震)은 ‘움직인다.’ 는 뜻이고, 첩(疊)은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금성(錦城) : 사천성 성도현 남쪽에 있던 성으로 금관성이라고도 한다. 금강(금강)이 영월을 에둘러 흐르는바, 영월을 지칭하기도 한다.
안사홍공(按使 洪公) : 홍만종(洪萬宗)을 지칭한다. 안사(按使)는 관찰사의 이칭이다. 송시열의 <寧越郡六臣祠記영월군육신사기>(『송자대전宋子大全』권144)에 의하면, 1685년(숙종11) 관찰사 홍만종은 도사(都事) 유세명(柳世鳴), 군수(郡守) 조이한(趙爾翰) 등과 의논하여 장릉 화소 안에 육신사(六臣祠)를 창건하였다. 노산군 묘소에 제향을 올린 것은 1516년(중종11)부터이고, 묘소를 정비한 것은 1585년(선조18)이다. 1685(숙종11)년에 육신사를 창건하고, 1705년(숙종31) 육신사를 장릉 화소 밖으로 이건했고, 1709년(숙종35) 에는 ‘창절(彰節)’ 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단기간에 보수했으며 : 宋時烈송시열이 호장엄흥도의 종인(宗人) 엄민도(嚴敏道)의 요청을 받아 1685년 7월 하순에 지은 『寧越新建六臣祠宇上樑文영월신건육신사우상량문』에 의하면, 【5월에 역사를 시작하여 7월에 준공하고 9월의 마지막 정일(丁日)에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낼 예정인데】가 보이고, 이천현감 朴泰輔박태보가 강원감사 홍만종의 명을 받아 1685년 9월에 지은 『六臣祠堂記육신사당기』 기문에 의하면, 【처마와 마룻대가 썩은 노산군묘우는 보수작업을, 육신사는 신축을 7월에 완공하고 9월 모일에 육신의 위패를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드렸다】 가 보인다. 즉 노산군묘우 보수와 육신사 신축은 5월에 시작하여 7월에 완공하였다.
규얼(圭臬) : 토규(土圭)와 수얼(水臬). 토지를 측량하는 기구.
륜환(輪奐) 웅장한 건물 완성하니 : 륜환(輪奐)은 건물이 높고 크고 많음을 형용하는 말이다.
조혁휘비지형(鳥革翬飛之形)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형상이여 : 시경 소아, 사간에 “공중에 우뚝 솟은 건물은 마치 새가 깜짝 놀라서 날개를 펴는 듯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추녀는 마치 꿩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가 보인다. 혁(革)이란 변한다는 뜻으로 새가 날기 직전에 깜짝 놀라 낯빛이 변한 채 날개를 펼치려는 모양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형용하는 표현이다.
대개『주역』대장괘大壯卦 에서 취했고 : 대장괘(大壯卦)는 주역 64궤의 하나로서 강성하고 장대함을 의미한다.
소나무와 대나무처럼~『시경』사간편斯干編을 따른 것이네 : 건물의 번성함을 비유한 표현, 시경 소아 사간에 “가지런한 이 물가요, 그윽한 남산이라네. 떨기로 난 대와 같고, 무성한 소나무 같도다.”가 보인다.
능침(당봉堂封) : 당봉(堂封)은 네모난 형태로 높이 솟은 봉분을 가리키는데 분묘를 통칭한다. 당부堂斧, 부당斧堂 도 분묘를 지칭한다.
증산甑山과 발산鉢山 : 영월에 소재한 두 개의 산명(山名)이다. 황윤석의 <자규사子規詞>(이재유고)권5에 “ 높다란 증산은 발산과 더불어 푸른데, 희미한 오솔길은 낮에도 컴컴하구나.” 가 보인다. 증산의 위치는 보물 제1536호 월중도 제1면 장릉도에서 능상(능침) 뒤편에, 제7면 읍치도에서 왼쪽 위에, 제8면 영월지도 중앙부분에 장릉 바로위에 표기되어 있다.
밝은 태양 빛나니(白日昭昭 백일소소) : 성군(聖君)을 지칭한다.
후진들(來許 래허) : 來許는 후진(後進), 또는 내세(來世)를 지칭한다. 來許(래허)의 來(래)는 뒤(後후), 또는 잇는다(嗣사)는 뜻이고, 許(허)는 나아간다(進진)는 뜻이다.
오도일[吳道一. 1645년(인조 23)∼1703년(숙종 29)] :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680년(숙종 6) 지평·부수찬·홍문록에 선발, 1682년 헌납, 1683년 집의·지제교(知製敎),송시열을 공격한 박태유, 한태동을 옹호하다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울진 현령으로 좌천. 1687년 승지, 1689년 청풍 부사, 1692년 성주 목사, 1694년 개성부유수를 거쳐 대사간·부제학·강원도관찰사, 1696년 도승지·부제학·대사헌, 1697년 예문관제학·이조참판, 1698년 예조참판·공조참판을 지냈으나 청나라 사신의 예폐(禮幣) 문제로 견책을 당한 최석정을 옹호하다 양양 도호부사로 좌천, 삭출(削黜)되었다. 1700년 대제학·한성부판윤·병조판서. 1702년 민언량(閔彦良)의 옥사에 연루되어 희빈 장씨를 복위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장성에 유배되었으며 1703년 유배지에서 59세로 죽었다. 1706년 관작이 회복. 1729년 좌찬성에 추증. 울진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제향, 저서는 ≪서파집≫. 『숙종실록(肅宗實錄)』.『국조방목(國朝榜目)』.『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윤사국(尹師國) 1728년(영조 4)~1809년(순조 9) : 본관칠원(漆原,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 자는 빈경(賓卿), 호는 직암(直庵). 경력 : 대사성, 강원도감찰사, 형조판서, 한성판윤, 판돈녕부사. 1759년(영조 35)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곧 예문관에 들어가고, 이어 양호감운어사(兩湖監運御史)·지평·경상도암행어사·정언·수찬·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안동현감·동래부사가 되었다. 1783년(정조 7)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대사성을 거쳐 강원도감찰사가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서 공조·형조의 판서와 강화유수·한성판윤을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나이 80세가 되자 숭록대부(崇祿大夫)의 관계에 승진하여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서예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조정의 금보(金寶)·옥책(玉冊)과 당시 사찰·누관(樓觀)의 편액(扁額)을 많이 썼다.
【참고문헌】
『서파집(西坡集)』권25 상량문(上樑文)
『(역주)장릉지속편 부 장릉지보유』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 2011년
『창절서원지』(사)영월창절서원 2016년. 판각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학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정보』
『한국고전번역원』한국문집총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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