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따라 역따라 구름에 달 가듯이 발걸음 따라 흘러간 간이역
간이역(簡易驛)
간이역(簡易驛)은
한국철도공사가 되기 이전인 구 철도청에서부터 사용하던 행정 분류로 이용객이 적고 효율성이 낮아 역장이
배치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역을 말한다. 간이역의 역장은 인근 보통역의 역장이 겸임하여 운영하나 간혹 역장이 있는 보통역
이라도 간이역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800여개의 간이역이 있는데 그중에는 기차가 아예 정차하지 않거나,
역사(驛舍)는 철거되고 승강장만 남은 역도 많다.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사진작가들의 주요 촬영 대상이 되거나 많은 문학·음악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두 종류의 간이역이 있는데 배치간이역과 무배치간이역이 있다. 배치간이역은 역장이 없지만 역무원이
상주하며 여객화물 또는 운전취급을 하는 간이역으로 '운전간이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부 배치간이역에서는 역무원에게
승차권을 발권 받을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역도 있다. 2010년 4월 48개 역이 있다. 무배치간이역은 말 그대로 역장도 역무원도
없는 역이다. 이러한 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일단 기차에 올라 타 기차의 승무원에게 직접 발권을 받아야 한다. 무배치간이역
이라도
1일 평균 승강 인원이 각 500명 이상일 때는 배치간이역으로 승격 가능하다. 2010년 4월 188개 역이 있다.
오지가 청정지역으로 날개를 달았다 -
봉화역.16
■청정지역(淸淨地域)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오지가 지금에 와
청정지역이란 이름을 달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상북도는 예로부터 산세가 험해
인근 마을을 다니려 해도 산 넘고 물 건너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지금은 청정지역으로 이름나 있지만 경북의 오지중 하나로
유교적 문화를 갖추고 태백산맥의 정기를 품고 있는 봉화를
찾았다.
안동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북향, 40여km이니 차로는 40여분이 걸리고 기차로는 영주를 거쳐 50여분이 걸린다.
산세가 험
하지만 수려하고 선비정신이 깃든 예절의 고장으로 불리며 골골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첩첩산중(疊疊山中)이란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그 중에는 경북의 진산으로 불리는 청량산이 대표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일전 TV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봉화를 본관으로 쓰는 고려의 신하였으나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사극드라마의 인기에
맞물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 진
것이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런 오지인데다가 차가 많이 없던 시절에 서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기차가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추억을 찾아 청정지역으로 Healing(힐링)여행을 가는 것이다.
■선비마을
오지에서 유교적이자 선비마을의 대표적인 곳은 의성
김씨의 해저(바래미)전통마을과 안동 권씨의 닭실(달실)마을, 그리고
의성 김씨의 황전마을 등이 자리한다. 이외에 열거할 다양한 씨족 마을이 있지만 지면상 줄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독립운동가 정신이 담긴 바래미마을은 해저(海底), 말 그대로 하상(河上)보다 낮은 바다였다는 뜻으로 바래미 또는 해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시대 항일운동을 한 의성김씨의 집성촌으로 영남유림의 요람이라 불린다.
심산 김창숙 선생을 주축으로 한 파리장서사건 이후 독서회라는 항일비밀단체가 조직되고 주민이라면 일본형사들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만큼 몸소 애국을 실천한 마을이다.
또한 지역민에게 달실이라 불리는 곳은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는 뜻의
'금계포란'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조선 연산군 때 기묘사화로 물러나 낙향한 충재 권벌 선생이 터를 잡은 곳이며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영남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불리는 곳이다. 거북바위 위의 청암정에서
솔바람 맞으며
인생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면 좋겠다.
황전은 누른 밭, 혹은 황학이 떼를 지어 서식 했다는 곳이라 해서 황전이라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도암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지역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효 시범 마을이기도 하다. 옆에는 이곳에 터를 잡은 호심
(湖心)이 자연염색 체험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봉화역(奉化驛)
다시 역으로 돌아가 보자. 군 단위의 위상과는
달리 외관상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입소문에 오르
내리는 군청에서 영주방향인 오른 쪽으로 1km정도에 위치한 역의 공식 주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072-1이며
영동선의 철도역이다. 1949년 11월 30일에 역사를 신축하여 준공하였으며 1950년 2월 1일 경북내성역으로 영업 개시하였다.
1955년 7월 1일 봉화역으로 역명을 변경했으며 1994년 9월 8일에 새로운 역사 즉, 지금의 역사가 되었다. 모든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며 역무실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다. 2013년 5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임시정차 했었다.
역전에 있는 낡은 점빵(가게를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에 들어가 보면 사람의
왕래가 적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안 되는 물건들에는 언제 손이 닿았을지도 모를 만큼 소복한 먼지가 쌓여있고 객을 맞이하는 자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늙은 개 두 마리가 널 부러져 있어 기가 막혔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조금 있으니 나이든 초로의 여주인이 개를 위해
먹이를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모습에 절로 질문이 나왔다.
‘그마이 이쁘이 껴(그만치 이쁩니까)?’
잠시 동안 나그네를 쳐다보던
쥔장이 답을 던진다.
‘이쁜기 아이라 야가 늘거가 지 심으로 밥을 몬 묵잔니껴, 그라이 우야노 내가 멕여야지(이쁜 것이 아니라 개가 늙어서
자기
힘으로 밥을 못 먹으니 어쩝니까 내가 먹여야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깊은 사랑이 담긴 행동임을 알고는 가볍게 뱉은
말이 후회된다.
■필사모
봉화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토박이와 외지에서 이주하여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존해 있다.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도 있지만 산 좋고 물 좋다는 사실들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타고 산과 들을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고 몰려드는 것이다.
여기에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구산동(龜山洞)에서 조금 떨어진 뒷결(後浦)이란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뒷결은
사방으로 4개의 산이 둘러친 것처럼 보여 4대문형식이라 하는데 왕의 기운이 있다는 소문이다. 이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
따라 삼천리다. 이곳에서 태어나 봉화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읍내에 눌러 사는 여장부가 있는데 바로
이문필(50)이다. 필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현 봉화군의 의장과 동향이라며 자랑질이다. 월급쟁이였던 신랑을 위해
가게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미용실부터 횟집을 거쳐 해물찜집까지 여러가지의 일을 거치지만 맛의 고급화를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보니 지인들이 늘어나 이젠 필사모(문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운영한다.
문필이는 부자 집에서
고이 자란 여자다. 아줌마 치고는 몸매가 너무 좋다. 자기 손으로 만든 된장이나 물김치는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은 본인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자기 스스로 자랑질이다. 그래도 이야길 나누다
보면 밉거나 역겨운 점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다들 스스로 필사모 회원에 가입하길 원한다니 친화력 강한 여장부는 여장부
인가보다.
문필씨는 함께 찾은 봉화역에서도 바지런히 옮겨 다니며 역무원들과
인사하며 필자를 안내하기에 바쁘다. 80년대에 역 앞에
있는 봉화여중을 다니면서 추울 때면 역사 내에 잠시 몸을 녹이곤 한 기억이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금은 군에서 자경의
목적을 띄고 있는 의용소방대, 경찰서 방범위원으로 순찰을 돌 때면 역을 둘러보고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일들이 있다고 한다.
순간 어디까지가 이 분의 영역권일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봤다. 자식들은 미래를 위해 외지로 떠나보내고 서예와 풍물 등 자기
개발을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는 그녀는 본인의 말처럼 고향지킴이로 너무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물으니 앞으로 지선(支善)이라 불러 달란다. 스승인 금헌께서 지어주신 아호라며 큰소리로 이야기
하지만 나에겐 소곤거리는 소리처럼 조용히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