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지성과 인류의 무지
- 한국 철학의 해결불가적 아픔을 중심으로 논함 -
본 카페지기(이재원)의 글
- 프랑스의 지성 -
인류사에 지성의 나라를 하나 꼽으라면 대개 프랑스를 지목한다. 지성(知性)에서는 대영제국의 후예 영국도 아니고 철학의 나라 독일도 아니고 20세기 정복대국 칭기즈칸 미국도 아니다. 그만큼 지성하면 프랑스이다. 왜 그럴까? 예술일까? 물론 예술도 한몫은 하겠지만 예술로는 많이 부족하다. 바로 프랑스 특유의 철학이다. 철학적 지성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판의 문화적 실존부류의 철학은 그 차원이 인류적 지혜로서는 극강(極强)의 수준이다. 하지만 본질이 조악(粗惡)하다.
2024년 1월9일에 1989년 3월 16일생으로 만 34세의 가브리엘 아탈이 프랑스의 제122대 총리가 되었다. 총리 역대 최연소란다. 왕족도 아니고 서민 출신이다. 절대다수의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지지를 하고 환호를 한다. 동성애자로 프랑스 최고급의 미남이다. 학벌도 좋다. 그랑제꼴 정치학교를 공보학 석사로 나오는 등 영재급 고급정치 지식인이다. 단연 국가의 모든 것은 정치에서 비롯되고 정치로 연을 맺는다. 이를 아는 프랑스인들이지만 지식인들마저도 숱한 계층과 사람에서 아탈을 총리로 거리낌 하나 없이 지지한다.
가히 소문(所聞)난 지성의 나라답다. 이런 나라가 2024년 3월 4일, 여성낙태자유권을 헌법34조에 명시했다. 나로서는 청천벽력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양원의원 925명 가운데 902명이 참석했고 50명의 기권표를 제외하고 852명 가운데 찬성표가 의결정족수 512표를 훨씬 넘게 나왔다고 한다. 기존 낙태허용법률만으로도 자유낙태가 충분한데 불가역을 위해 이를 헌법에 명기한 것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조악한 본질이 보기 드문 극심한 가뭄에 드러난 호수의 썩어서 형체가 말라버린 사체들의 뼈처럼 목불견(目不見)의 수준이다.
나는 철학적으로 생명에 있어서는 반출생주의자이다. 생로병사의 순환을 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실존(existence, Existenz)을 당해 태어났더라도 인생의 지복(至福)은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孤兒)라고 본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여 홀로 살 수 있는 최상급의 존재이다. 그 다음이 비혼(非婚)의 성직자가 나름 좋다고 본다. 역시 비혼으로 거추장스런 가족이 없다. 그러나 일단 인간으로 착상이 된 존재자는 100% 탄생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신(神,God)의 뜻이다. 로고스이든 창조주이든 신적 자아이든 이것은 그가 스스로 인간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 전장의 군인처럼 이유가 없다.
프러시아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은 그의 법철학 서문 중후반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하였다. 우파는 전항에 방점(傍點)을 두고 좌파는 후항에 방점을 두고, 변증·목적론자들은 헤겔처럼 문장 전체에 방점을 둔다. 인간세상은 이성과 법률만으로 모든 것을 바르게 풀기가 어렵다. 그 난제를 지성에 맡기고 있다. 그 지성이 지성의 대국이라는 유럽의 프랑스에서 먼저 무너졌다. 프랑스는 자유를 주소도 틀리게 관용으로 제 멋대로 포장하여 나름 시끄럽고 엄청나게 강조하지만 역시 좌파 사회주의 급진(急進) 국가이다. 목적은 자유라지만 그 골격이 민주(民主, 제도로서의 democracy를 넘어 정체(政體)로서의 democracism까지 포함)로 위장하여 속성은 영 엉뚱하게끔 사회주의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했는데 성립불가능한 날조성(捏造性)의 사상이다. 학문적인 논리를 생명으로 하는 철학이 아니다. 기계론적인 유물론에 변증법이 병립(竝立)하여 함께 설 수가 없다. 인류가 무지하여 통째로 마르크스에 속고 있다. 정신적용이 있든 없든 학자가 사유를 하든 말든 과학에 대한 물질적 사고방식에 자기 반성의 변증논리는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그냥 실험하고 발견하고 적용하여 성공하면 그 다음이 있든 말든 그것으로 일단 끝나는 것이다. 고양(高揚)을 위한 정신적 자기반성, 이런 것은 아예 없다.
- 인류의 무지!!! -
난 우주에 인간들이 필요 없다고 본다.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별도로 명기할 것도 없다. 우리 인간들은 세포의 진화가 자체들의 불멸영생을 위해 언젠가는 멸할 태양계를 탈출하고자 만든 세포들의 작품이라고 본다. 인간들이 없어도 우주는 잘 돌아간다. 출생으로 세포들을 위해 고생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래서 난 반출생주의자이다. 하지만 착상을 한 순간 무조건 탄생하여 나이 120세를 채워야한다고 여긴다.
세포들의 작품, 인간들!!! 그래서 인간들이 검푸른 은하수처럼 깜깜하고 공간도 없이 상하(上下)로 깊은 요단강 위에서 인류라는 수레의 시간을 생멸적으로 타고 변증법적으로 지식과 지혜의 영혼을 위해 계속 상급(上級)으로 발전한다는 Hegel의 논리는 그 자체가 엉터리 모순이다. 이를 직시한 쇼펜하우어가 오히려 더 정확했다.
헤겔도 이러할 진데, 나의 경험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선천적으로 매우 무지해서 철학을 할 수 있는 두뇌가 태생적으로 전혀 안 된다고 본다. 과학적 학문인 wissenschaft를 할 수 있는 두뇌의 종족이 아닌 것이다. 그냥 바퀴벌레 마냥 3차원의 세계에서 2차원으로 살고 있다고 본다. 나의 모교 학부대학과 교육대학원, 그리고 서울대, 부산대, 교원대대학원 등에서 자격 연수 및 학위 수강을 해 본 결과 등이다. 기타 나의 교직 경험 등으로 수없이 말할 수 있지만 지면(地面)이 길면 곤란하므로 그런 실증은 그만 논한다.
- 한국 철학의 해결불가적 아픔 -
나의 학창시절에 행복하게도 나의 타고난 능력에 과할 정도로 수 많은 철학은사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도대체 철학을 하는지 잡학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학벌도 짱짱하다. 국내 sky급 대학에다가 독일 뭔스터, 뭔헨, 베를린 대학, 프랑스 소로본 대학, 미국 뉴욕 대학 등등 박사급이다. 일본 동경대도 있었다. 1970년대 당시에 고졸이라도 싹수가 노란 자들은 잘라서 바로 떨어뜨려버리는 4년제대학입학정원의 두 배수만 패스하는 대학입학예비고사를 거쳐 입학금을 돈으로 내고 4년제 종합대학 인문부에 가야만 강의실에서 겨우 만날 수 있는 인재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끼리끼리의 살생부 오징어 게임 경쟁인 지능대전(知能大戰)에서 마지막 단계에서 밀린 생계형으로 2류들만 모여서 그런가? 교사도 교수도 근원적인 본질을 선천적으로 모른다. 무조건 100% 4년제 대졸 이상으로 엄격한 공개 전형을 필(畢)한 전문 자격사인 교사, 교수들로 국가로부터 나름 법적으로 철벽(鐵壁) 보호를 받는 교원집단이 이 모양인데 , 그냥 본인들의 힘만으로만 알아서 살아 가야할 생계형 다른 부류들은 알 필요도 없다. 같은 인간이지만 등급(等級)이 다르면 주지하다시피 사용용어도 급(class)이 다르다.
철학 가운데 유대인 탈무드형의 계급정치철학이 있다.
부연하여 소개하면 철학적으로 사변적 조명을 하면 사농공상의 위계는 인류계급의 정치적 철칙이다. 신(神,God)도 피할 수 없다. 철학을 배제한다면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의 생계형 언어는 시종일관 동일률로 학적인 2세기 이래 그리스·로마형의 고전적(古典的)인 전통 표적요구형 사고력이 없다. 특히 무식(無識)과 무교양(無敎養)의 레드넥(redneck)으로 위장한 두번째 계급인 농업은 식량제공산업으로 숨어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산업의 제왕으로 정신계급인 사(士)들도 그 진가(眞價)를 모르고 있다. 현재 국제유대인곡물상들만이 무인도급의 피난처에 법인을 그림자로 만들어 세금도 안내고 떼돈을 벌면서 아무도 모르게 곡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가성비로 보면 150배 이상이다.
전 자국민(自國民)을 닥달하면서 몸과 정신을 갈아서 국제적 경쟁의 극진노동으로 만든 반도체글로벌산업도 가성비로 보면 계산이 곡물산업의 요수(夭壽)에 접근불가하다. 그 입구만 알면 돌대가리도 할 수 있는 산업이 곡물농업이다. 한국에도 농업경제학자가 국립대를 중심으로 제법 많지만 공중에 떤 달을 매일 보고도 만유인력을 모르는 자들처럼 그냥 대학에서 국민세금으로 주는 밥먹고 잘 산다. 이유는 국제유대곡물상인들에 의해 원초적으로 접근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입구가 어디 있는지 자국(自國)의 국가수반도 모른다. 탈무드에서도 삭제되고 없다. 현장 두뇌의 암송으로만 필드(field)로 전수되고 있다. 국제법률로 가시적인 실체의 종자특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치명적 피해자는 태양이 땡볕으로 작열하는 드넓은 검은 초원의 아프리카이다. 유라시아 전체가 간접 피해자들이다. 당하면서도 잘 모르고 지나간다.
철학은 당연하고 인류가 여전히 전체적으로 무지하다. 헤겔이 아무리 변증논리를 철학적으로 고창(高唱)을 해도 쇼펜하우어가 이미 헤겔 면전(面前)에서 논파했듯이 해결은 불가하고 또 해결할 필요도 원래부터 딱히 없다. 그 건(件)은 신 (神,God)이 제시(提示)하여 정시(呈示)된 존재적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냥 무늬만 바뀌면서 옷 입고, 혼자 살든 같이 살든 아래 가브리엘 아탈이 나오는 사진처럼 동성(同姓)이든 이성(異性)이든 남녀불문(男女不問) 자존(自尊) 가득으로 예전 선배와 똑 같은 모습으로 그냥 살면 된다.
상기의 사진으로 프랑스의 지성이 통째로 초라하게 보인다. 더 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 헌법 34조에 의해 프랑스인들은 모조리 문서상으로도 정신적 장애 불구자가 된 것이다. 자신들의 원초적 본래 모습이다. 갈리아인 답다. 지성이고 나발이고 간에 막 먹고 놀자판이다. 예전부터 독일과 프랑스 등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구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 다뉴브 강 동쪽은 정신문화적으로 여전히 농노노예의 왕조급 수준의 국가이다. 그건 유라시아대륙의 정치지도를 보면 표징(標徵)으로 볼 수 있다. 영국과 미국만이 겨우 근대정신의 산파, 스코틀랜드의 여진(餘震) 영향으로 그래도 작금(昨今)의 진정한 의미의 서구국가의 형태를 대서양을 중심으로 나마 전도사(傳道師) 모양 띠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미 내수용으로 대외 전도사의 자격을 소실 당했다. Toynbee적 도전과 응전의 서구적 본질적 정신에서 살짝 비껴나갔기 때문에 그런 용도(用度)인 씀씀이를 다해 스스로도 알고 타(他)로부터도 외면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