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열받아 쓰는 거라 글이 매우 거칩니다. 거북할 수 있으니 미리 양해 구합니다.
그리고 아래부터는 경어체 생략하겠습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쓰레기 영화(아니 그냥 쓰레기)를 보았다는 느낌이다.
개념 제대로 말아먹은 안드로메다성 고증이야 그렇다 치고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드라마 '기황후'도 그렇게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좋은 현상인가?)
등장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볼 때 이 '개연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적 정합성'을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중시하며,
판타지건 공포물이건 간에 이 요소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얼밀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내적 정합성'은 '개연성'보다 조금 넓은 개념이다.
'개연성'이란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 캐릭터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내적 정합성'이란, 물론 '개연성'도 포함하지만 그밖에도
미리 설정된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상식과 합리적인 추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자면, <반 헬싱>에서 드라큘라가 어떻게 번식(?)하느냐는 설정의 문제이지만
길이가 백 미터쯤 되는 돌다리가 한쪽이 거의 완전히 끊겼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설정의 특혜를 그런 돌다리에까지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내적 정합성'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내적 정합성'을 완벽하게 위배하고 있다. 참으로 장한 노릇이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짚어보겠다. 물론 내적 정합성과는 무관하지만 결함이라 할 만한 사항도 논할 것이다.
1. 제목
뭐가 망한 게 있다고 '부활'인가? 전편인 '300'에서 페르시아가 망했는가? 진 것은 스파르타가 아닌가!
'흥기'같은 표현이 너무 어색하다면 다른 표현을 썼어도 좋았을 것이다. 어차피 충실하게 옮길 맘은 애당초 없지 않았나.
2. 고증
어느 정도는 각오했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2-1. 크세르크세스가 매끈한 대머리로 나온 거야 전편부터 그랬지만, 이게 말도 안 된다는 건 지적해야겠다.
그 시대 페르시아 왕이라면 다들 곱슬거리는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다는 건 상식이다.
2-2. 페르시아 전사들의 차림새 = 탈레반 + 닌자. '이게 뭥미?'
내가 보기에는 이런 차림새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반감/공포감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보는 (서양) 관객이 이슬람에 대한 적대심을 페르시아 전사들에게 그대로 투영할 수 있게 해놨다는 말이다.
반대로 '페르시아 군에 대한 적개심' ->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 순서로 전이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무튼 이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교묘한 술책이라 할 것이다.
'고대 서구 문명의 적 : 페르시아 = 현대 서구 문명의 적 : 이슬람'이라는 등식이 (무의식적으로) 성립하게 되니까 말이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짓거리다. 내가 쓸데없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2-3. 그런데 일부 전사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 당시 페르시아 전사들은 그런 가면을 쓰지도 않았지만,
그 가면이 (서구 시각에서) 다분히 중국풍이라는 게 더 문제다.
이렇게 해서 현대 서구 문명을 위협하는 두 기둥, 이슬람과 중국이 고대 페르시아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어이가 없다.
2-4. 영화에서 페르시아 전사들이 그리스 전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영화니까' 라고 하진 말자.)
그들에겐 투구도 방패도 없었다. 당할 수밖에 없도록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페르시아 군은, 둘 다 버젓이 갖추고 있었다!
2-5. 선박이 불타는 장면에서... 그 화려한 화염이 그 시대에 가능했을까? '해머 던지기'는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시대에는 뭔 짓을 했어도 그런 불을 지를 수는 없었다.
그 정도 화력을 선보일 수 있었을 비장의 무기 '그리스의 불'은 동로마 제국 시대에 가서나 나온다.
3. 캐릭터
3-1. 아르테미시아는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노예나 포로가 아니라 여왕이었다(페르시아에 종속된 동맹국이긴 했지만).
그리고 함대의 총사령관이 아니라 그저 일개 장군 중 한 사람이었을 따름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서 크세르크세스가 "우리 군에선 남자가 여자이고 여자가 남자인가!"라고 탄식했다지만)
그녀가 이 전쟁에서 수행한 역할은 돋보이긴 해도 그렇게 크지는 않다.
3-2. 그것까지는 좋다 치자. 테미스토클레스를 불러 놓고(부른다고 건너간 것 자체가 미친짓이지만)
말싸움을 하다 말고 섹스??? 세상에 그 어떤 색정광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그 짓은 못 할 것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내가 얼마나 엄청난 쓰레기를 보고 있는가를 절감했다. 뭐 굳이 말하자면 볼 만하긴 했다.
3-3. 아르테미시아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보인 행동은 총사령관이 아니라 암살자의 행동이었다.
너무 따지는 것 같긴 하지만, 전쟁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총사령관은 없다.
적어도 자기네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면서 그런 리스크를 스스로 떠안는 얼간이는 없다.
3-4. 아르테미시아가 그리스 군 포로를 참수한 뒤 키스하는 장면에서,
나로서는 불가피하게 '살로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감독이 이런 것까지 의식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확신은 못하겠다).
하지만 그 장면에 설득력이 없었다는 것은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다.
3-5. 해전에서, 배 위로 말을 타고 다니는 멍청이가 이 영화 외에 어디 있었을까?
부서져 침몰하는 배 위로 잘만 뛰어다니더라. 페가수스쯤이나 되어야 그런 묘기를 부릴 수 있으려나.
4. 영상
4-1. <겨울왕국> 때와는 달리(이것도 곧 리뷰를 쓰고 싶지만), 이 영화는 3D로 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오직 3D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쓸데없이 연출한 장면이 너무 많았다. 역겨울 지경이었다.
4-2. 영화가 (뜬금없이) 끝난 뒤 나온 엔딩 크레딧은 <토르 : 다크 월드> 판박이었다. 그렇게 상상력이 없나?
4-3. 화면이 온통 검정 일색이다. 선-악 도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의도 때문이었겠지만,
가뜩이나 현실성 없는 내용에 화면까지 초현실적으로 우중충하니 정말 볼 맛이 나지 않는다.
<토르 : 다크 월드>도 이것보다는 밝았다!
5. 기타
5-1. 도대체 다리우스 갑옷은 어떻게 벗긴 거야? 가슴에 화살은 그대로 꽂혀 있구만. 벗기고 도로 꽂았나?
5-2. 음악이 너무 단조롭고 짜증날 정도로 도식적이며 상상력이 없다.
뻑뻑할 정도로 무겁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어떻게 했는지 현과 목관은 아예 있지도 않다.
당시 전쟁의 주역들이 이 영화를 봤다면 얼마나 황당해했을까. '우리가 저랬다고?!'
불민한 후손들 덕에 그들은 두 번 죽은 셈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한밤중에 이게 대체 뭔 짓이람... 하지만 이 글을 쓰지 않고서는 원통해서 눈도 못 감을 것 잠도 못 잘 것 같다.
리뷰할 게 한둘이 아닌데 하필 이딴 걸 제일 먼저 다루게 되어 유감스럽기만 하다.
첫댓글 자세히 분석하셨네요. ㅎㅎ
전쟁이 끝나자마자 영화가 끝나버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중하 평을 할 때 전 중을 줬어요.
후하게 주셨네요 ㅎㅎ
사실은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끝난 거 아닌가요? 돌격 장면에서 끝나던데^^;
그렇네요.
아르테미시아가 죽고 고르고 여왕이 출격하면서 끝나네요.
워낙 평들이 쓰레기라고 해서 안갈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근데 이런 쓰레기 영화에 이렇게나 길고 자세한 리뷰는 너무 열정과 시간의 낭비가 아닌지 ㅋㅋ 좋은 공연 리뷰에다 힘을 더 쏟아주세여... ㅠㅠ
예, 앞으로는 그래야겠어요^^;
툴툴리뷰같아요..ㅋ
그거야말로 제 전문이죠 ㅋㅋ
ㅋㅋ 간만에 도리안표 리뷰 반갑구먼. 자, 이젠 공연리뷰 좀? 제~~~발~~~ㅋㅋ
내킬 때 쓰겠네 ㅎ
ㅎㅎㅎ
말이 배위를 뛰는 장면묘사부터 실실 터진 웃음이 기타항목 다리우스 갑옷에서 빵.
감사합니다 두루두루 대신 고통 받아주셨네요.
아... 정말이지 살면서 이런 영화는 다시 안 봤으면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영웅' 어쩌구 하는 영화들(주로 히어로물이지만 이런 것도)은 일단 쓰레기로 분류하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