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경남도민일보)
흔히 이탈리아 음식 하면 '고급스럽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국외 문물에 대한 한국 사람 특유의 경외심이 발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데 진주에 이런 '고급'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집이 있어 찾았다. "이탈리아 음식이 한국에서야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지 이탈리아에서는 이른바 '집밥'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스타를 포크로 찍어 숟가락을 대고 돌돌 말아먹죠.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네 국수 먹듯 그냥 포크로 떠서 후루룩 들이켜는 게 상식입니다. 한국 내 이탈리아 식문화는 너무 경직돼 있어요." 진주시 신안동 배영초등학교 옆 '비란치아' 박영석(37) 사장의 말이다.
비란치아는 이탈리아 가정식 레스토랑을 지향한다. 네 사람 앉을 수 있는 테이블 5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이지만 여느 이름난 이탈리아 레스토랑들보다 뛰어난 맛으로 손님들을 사로잡고 있다.
박영석 사장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그란구스또' 주방을 책임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우 안심 스테이크. |
진주 출신으로 경남대 사회과학부에 다니던 그는 3학년 때 학업을 중도 포기한다. 미래 구상을 위해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난 그는 어느 날 어린 시절 꿈을 추억하다가 '요리사'에 생각이 미치게 됐고 인생항로를 요리로 정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 길로 진주 유명 요리학원에서 한식과 일식 자격증을 딴 그는 진주 한 일식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을 걸었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한 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음식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기 일쑤였다. 일식에 대한 꿈을 접은 후 신림동의 한 한정식집에서 생선구이 담당을 맡아 1년 6개월 동안 근무한 것이 그나마 오래 일한 것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다시 진주로 돌아온 그는 누나 친구 소개로 레이크사이드 호텔에 취직하면서 양식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 음식은 원재료를 최대한 손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요리 철학에 맞았다. 이탈리아 음식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빠진 그는 서울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리스트를 뽑아 일일이 전화로 채용을 문의했다.
글라블락스(염장 연어 샐러드). |
마침 그란구스또 대표가 연락해 와 2시간 면접 끝에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잡았다. 3일간 테스트가 끝난 후 그의 실력과 성실함에 만족한 그란구스또 대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초년병인 그에게 '주임' 직함을 줬다. 당시 주임은 박 사장보다 2살 어린 이탈리아 유학파였다. 예상대로 일은 정말 고됐다. 휴일이면 늘 학원에 가서 파스타 공부를 했다. 이탈리아 요리 관련 책도 많이 봤다. 대표는 이런 그의 노력을 눈여겨봤다. 대표는 얼마 되지 않아 그를 과장으로 앉히고는 음식점 가까운 데 원룸도 마련해줬다. 매일 새벽이면 좋은 재료를 구하러 가락동 수산시장을 함께 다녔다. 박영석 사장은 이때 좋은 물건 고르는 법과 상인들 대하는 법을 익혔다.
그가 그란구스또에 취직한 지 1년 되던 해 대표는 한 달간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그 지역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두 먹어오라는 특명도 내렸다. 반년 간 준비 끝에 이탈리아로 간 그는 한 달 동안 모두 24개 도시를 돌며 그 지역 음식을 맛봤다.
마르게리따 피자. |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차장 승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 대리까지 승진했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에 주방 최고 관리자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이탈리아 유학이었다. 마음을 먹고 지난해 12월 업장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한데 일을 그만둔 후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내 대표에게 나만의 가게를 열겠다는 통보를 했다. 고향에서 작으나마 내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 것이다.
비란치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비란치아가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보다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신선한 재료에 있다.
고등어 오일 파스타. |
박영석 사장은 매일 아침이면 진주 중앙시장에 나가 양질의 재료만 골라 들여온다. "제철에 나는 정직한 재료로 누구나 한 번 먹으면 감동을 할 수 있는 접시를 내겠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냉동 해산물과 MSG는 절대 쓰지 않는다. 시장에 나오는 재료의 양과 신선도를 모두 따지다 보니 매일 재료 수급 현황이 다르다. 이 때문에 메뉴 또한 매일 바뀐다. 매일 들이는 신선한 재료만 쓰니 손님들은 믿고 찾을 수 있다. 어느 음식이든 신선한 기운이 입맛을 돋운다.
음식을 만들 때도 원재료 맛을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조리법을 지향한다. 한우 암소 안심으로만 만드는 스테이크는 약간의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다. 고기 자체가 가진 육즙만으로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소신이 깔렸다. 원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면 쉬이 비리기 마련인 고등어 오일 파스타도 손쉽게 만든다. 사진 취재 탓에 다 식어버린 파스타를 맛봤지만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고소한 맛이 났다.
이 밖에도 글라블락스(염장 연어 샐러드), 토마토 해물 파스타, 마르게리따 피자, 디저트인 리꼬따 치즈 타르트 등도 모두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직접 만들기 때문에 믿고 먹을 수 있다. 한마디로 '오너 셰프'(식당 주인 겸 주방장) 음식점의 장점은 모두 가졌다.
리꼬따 치즈 타르트. |
"요리는 종합예술입니다. 재료, 칼질, 구이 온도 등에는 물리학, 화학 등 종합과학이 숨어 있죠. 근데 인간미는 좀 없어요. 저는 제 음식이 사람마다 하나씩은 가진 '솔푸드(위안음식)'처럼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기를 바라요. 그러려면 좋은 재료로 배부르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 만드는 게 제 사명이라 생각해요. 이러면 감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겠어요."
<메뉴 및 위치>
◇메뉴: 그날 수급되는 식자재에 따라 매일 다름.
◇위치: 진주시 신안동 717-7(신평공원길87번길 4). 055-748-8893.
첫댓글 갑자기 배가 팍 고파지네.
마지막 접시가 예술이다.
사장님이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