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휴대전화로 민원 불가 단순 민원은 AI가 처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월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 발표
지난 7월 사망한 서울서이초 교사 사건을 계기로 교권 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다. 앞으로는 학부모가 교원 개인의 휴대전화로 민원을 제기할 수 없게 하고 단순·반복적 민원은 인공지능(AI) 챗봇 등을 통해 자동 처리한다. 또 교원이 아동학대로 무분별하게 신고당하는 일이 없도록 법령과 학칙에 따른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범죄로부터 분리한다. 서울서이초 교사의 경우 사망 전 학급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해 다수의 학부모로부터 민원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10명의 학부모가 고인에게 개인 휴대전화를 비롯해 문자메시지, 하이톡 메신저 등을 통해 연락했다. 고인은 학부모들에게 ‘제가 미처 살피지 못했다’, ‘송구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8월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이같이 교원의 교육활동 방해를 넘어 생명을 위협하며 공교육 붕괴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교권 침해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수업 방해 땐 학생 휴대전화 분리 보관
이번 종합방안은 ▲교권·학생 인권의 균형 ▲교권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교원·학부모 소통 관계 개선을 뼈대로 한다. 먼저 교권·학생 인권의 균형과 관련해 학생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던 규정들을 손본다. 지금까지는 학생인권조례에서 규정한 ‘사생활의 자유’에 따라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이로 말미암아 수업에 방해를 초래할 경우 교원이 2회 이상 주의를 준 뒤 휴대전화를 분리 보관할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받지 않을 자유’로 교원이 학생에게 칭찬을 하는 것도 금기시돼왔다. 칭찬도 차별로 인식한 탓이다. 앞으로는 칭찬이나 상 등을 통해 학생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또 학생의 ‘휴식권’으로 수업 중 잠자는 경우에도 지도가 곤란했던 문제는 교원이 주의나 지시를 통해 수업 참여를 독려할 수 있게 한다. 교육부는 소지품(휴대전화) 분리 보관, 훈육 시 교실 밖 분리 방법, 담임교사의 학급생활 규정 등 구체적인 현장 안내 사항을 담은 고시 해설서를 9월 중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또 학생 인권과 교권이 균형 잡힌 학생인권조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의 자율적 개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학생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수정하는 전면 개정을 예고했다”면서 “앞으로 이 같은 사례를 적극 발굴해 다른 시·도교육청으로 확산하겠다”고 전했다.
자료 교육부
정당한 생활지도, 아동학대 취급 않도록
교권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차원에서는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부가 올해 교원(2만 2084명)과 학부모(1455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원의 87.7%, 학부모의 49.1%는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육활동의 어려움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동학대 위반으로 신고돼 교원이 조사나 수사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앞으로는 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원의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범죄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소극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에 따라 교권보호위원회는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한다. 피해교원이 요청할 경우 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며, 학교장이 사안을 은폐하거나 축소하지 못하도록 교원이 교육감에게 징계의결을 요구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아울러 지금까지는 교육활동 침해 피해를 입은 교원에게 특별휴가를 지급하는 등의 우회방식으로 학교가 소극적으로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침해학생을 즉시 분리하거나 우선 조치(교내봉사,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등)하게 한다. 학생이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가중조치하고 중대한 침해조치 사항(학급교체·전학·퇴학 등)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방침이다. “중대한 교권 및 교육활동 침해는 학교폭력과 마찬가지로 학교생활기록에 남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시·도별로 보장 범위의 편차가 있는 교원배상책임보험은 상향평준화된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교원배상책임보험은 교원이 교육활동 중 입은 법률상 손해에 대해 보장한다. 보장범위는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은 최대 2억 원, 형사소송은 최대 5000만 원 한도다. 정부는 당장 2024년부터 보장 범위를 확대해 피해교원에 대한 두터운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이 민원’ 교육활동 침해유형 신설
서울서이초 교사 사건을 비롯해 최근 학부모가 교원의 개인 휴대전화로 민원을 제기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늘면서 이에 따른 교원·학부모 간 소통 관계도 크게 개선한다. 앞으로는 교원이 개인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민원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아도 되며 사생활 등 교육활동과 무관한 민원에 대해서도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 민원은 교원 개인이 아닌 기관(민원대응팀)이 대응하는 체계로 개선한다. 학교에서 일일이 직접 대응하던 단순·반복적인 민원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이나 AI챗봇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자동 처리한다.
특이 민원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는 새로운 교육활동 침해유형으로 규정해 제재한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 중탕기를 보내겠으니 소화력이 약한 자녀에게 우유를 데워서 먹여달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비롯해 매일 교원의 퇴근시간 직전에 전화해 한 시간 이상 악의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경우 등의 교육활동 침해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2023년 교원 3만 29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97.9%가 학부모의 악성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 정도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에 앞으로는 ‘교원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행위’,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 등을 교육활동 침해유형으로 삼고 사과와 재발방지 서약, 특별교육 이수 등의 제재 조치를 할 예정이다.
다만 민원 응대 시스템 변화로 교원과 학부모 간 소통이 줄어들지 않도록 학교의 소통 통로를 넓히는 노력도 병행한다. 많은 상담이 개별연락을 통해 준비되지 않은 채 이뤄졌던 문제를 사전 예약을 통한 질 높은 상담으로 전환하고, 학교장 중심으로 학부모 소통시간과 교육청 주관 학부모 특강을 활성화한다.
한편 정부는 이번 종합방안을 마련하기까지 교원 및 학생,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과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의견을 청취했다. 또 일반 국민의 의견도 20회 이상 폭넓게 수렴했다. 시·도 교육청 및 국가교육위원회와 교권 회복의 방향성과 대책을 협의하고 여·야·정 및 시·도 교육감 4자 협의체를 구성해 입법 추진에 뜻을 모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원이 홀로 직면했던 어려움에 대해 교육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교육부는 올해를 교권회복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교육주체 간 권한과 책임을 조화롭게 존중하는 ‘모두의 학교’를 만들어가겠다”고 전했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교권 및 교육활동 침해’ 국민 여론 조사
국민 과반, “교육활동 침해 정도 심각하다”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 원인으로 지목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2022년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조사한 결과 교육활동 침해로 심의를 받은 사례가 코로나19 이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의건수는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1197건), 2021년(2269건)에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2022년 3035건으로 다시 늘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2662건에 비해서도 많다.
교원지위법에 따른 교육활동 침해 유형으로는 ‘모욕·명예훼손(55.5%)’이 가장 많았으며 ‘상해·폭행(10.5%)’,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8.1%)’가 뒤를 이었다. 침해 주체는 ‘학생’이 대부분(92.2%)을 차지했지만 초등학교는 중학교·고등학교에 비해 침해주체가 ‘학부모’인 경우(33.7%)가 월등히 많았다. 학생의 경우 교원에 대한 ‘상해·폭행 유형’이 12.2%(2022년 기준)로 가장 많았고 학부모의 경우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20.8%)’와 ‘협박(11.9%)’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 같은 교육활동 침해에 대해 국민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KEDI가 2022년 국민 4000명에게 물은 결과 교육활동 침해 정도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54.7%로 조사됐다. 교육활동 침해 원인으로는 ‘학생인권의 지나친 강조’를 지목하는 답변이 42.8%에 달했다. 2023년 한국교총 조사(교원 3만 2951명 대상)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추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 83.1%가 동의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도 교육활동의 어려움으로 지목됐다. 교육부가 2023년 교원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데 따르면 교원의 87.7%(1만 9368명), 학부모의 49.1%(714명)가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육활동의 어려움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교원의 직무 특성이 반영되도록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등을 개정’하고 ‘아동학대 사례를 판단하는 자체사례회의 등에 교육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교육부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교실붕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제도개선과 교육적 해결방식을 병행해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