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고모령이 있습니다.
수성구 만촌동 파크호텔 남쪽길에서 팔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고모령이라고 한다는군요.
이 고개는 특히 현인의 노래, <비내리는 고모령>이 있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그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때엔 /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해이던가 /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그리고 이 고개에는 이름의 유래에 맞추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죠.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아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 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는데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 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 그래서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령이 되었고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제 머루눈의 반 수제자가 된 동기 여러분들은 이런 전설을 보면서 일단 웃음을 띠어야 합니다. ㅋㅋ...
뭐 앞의 내용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어머니는 대단히 유식하였던갑다.
문학박사라는 우리 동기 머루눈도 잘 모르는 저런 어려운 한자를 잘 알고 있어서 이름을 바로 저렇게 짓는구나... "
'~~을 뒤돌아 본다'는 모티브(이야기 속의 한 단위, 알맹이를 화소 또는 모티브라고 합니다.)는 전 세계에 흔합니다.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돌아보아서 돌이 되었다는...그런 이야기는 많죠?
홍수가 났는데 산으로 도피하다가 뒤를 돌아보아서 뭐 어떻게 되었다...라든지...(이야기 속의 그런 알맹이 하나를 화소, 모티브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는 없지만 돌아보며 이름을 짓게 되는 행위가 나오므로 비슷한 화소(모티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기를 좋아해서 무슨 이름 무슨 사건이 있으면 꼭 거기에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고 합리화 시키곤 합니다.
앞으로 내가 글을 계속 올리게 된다면 이런 예는 자꾸 나오게 될 것입니다.
땅이름은 저렇게 유식한 사람이 작명을 해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거기에 발붙여 사는 민중들이 지어서 붙이는 겁니다.
저 어려운 한자로 이름을 지어놓으면 누가 알아먹고 그 이름을 계속 부르겠습니까?
지금까지 신곡(사일, 새일)이나 한실, 농바우 이름을 본 것처럼 먼저 우리말로 된 이름이 먼저이고 한자 기록은 그 후대에, 미화되면서 붙여지는 수가 대부분입니다.
저 고모령이란 이름을 두고 어떤 사람은 고무령(高舞嶺)으로 풀이해서 새의 춤과 관련시키면서 고무(高舞)의 발음이 고모로 변화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저는 그 반대로 봅니다. 한자로 기록하면서 고모가 고무로 적혔다고 보는겁니다.) 또 어떤 이는 아버지의 누이인 고모(姑母)로 해석해서 여인의 다산(多産)을 희망하는 것이라고도 풀이합니다.
하기야 일손이 필요한 농경사회에서는 자식 많은 것이 최고였습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다산은 더욱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부족간에 싸움을 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여자를 뺏어오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여자가 있어야 아이를 낳고 그래야 전사가 많아져서 부족의 세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고모인가?? 이모는 왜 한 군데도 나타나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이 이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국에 고모가 들어간 지명은 많은데 이모가 들어간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고모령이란 이름은 대구에 있는데 고모산성이란 이름은 경기도 포천에도 있고 문경 진남에도 있습니다.
문경 국도에 진남휴게소가 있는데 그 바로 뒷산이 고모산성입니다.
그 산성은 복원하면서 오히려 훼손되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옛날 국도로 다닐 때에 올라가보니 조잡한 것으로 봐서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일 것으로 추정이 되어서 약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저 '고모'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가?
국어학적으로는 '감', '가마', '곰', '고모'..는 같은 계통에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경주 토함산 너머에는 감포항이 있죠? 문무수중왕릉이 있는 곳...
감포, 가마솥, 곰나루, 곰네미, 고모산성....전국에 흔한 감악산...
그런데 이 '감,곰'은 주로 크고 높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감포는 큰 항구란 뜻이며(신라시대에는 거기가 가장 큰 항구였음) 가마솥은 무쇠로 만든 큰 솥, 고모산성은 높고 큰 성,
곰네미는 곰이 넘어 다니는 곳이 아니라 큰 고갯길, 곰나루는 큰 나루터...감악산은 높고 큰 산..뭐 이런 뜻이 되겠지요?
감포를 한자로 甘浦로 적습니다. 甘은 달다는 뜻인데 포구에 무슨 단 맛이 있을리가.....
(곰나루의 '곰'을 산에 사는 곰으로 해석해서 곰나루는 웅진(熊津)으로 적습니다. 곰이 나루터에 왜 나타납니까? 곰나루의 곰을 원래와는 아무 상관도없는 산에 사는 곰으로 적은 결과입니다.)
우리학교 같이 근무하는 선배 한 명이 감포에서 터줏대감입니다.
거기에 놀러갔을 때 내가 감포가 무슨 뜻인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자를 뜻풀이를 해서
"여기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이라 물고기 맛이 좋아서 감포라고 한다..."고 하여서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염병할...바닷고기가 단맛이 어찌 날 것인가... 소금물에 절어서 짠맛이나 안 나면 다행인 것을...
즉 여기에서도 순우리말인 '감'이 한자로 기록되면서 뜻이 변질되는 것을 볼 수 있죠?
따라서 우리가 어떤 지명을 볼 때 한자를 가지고 뜻풀이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원래 우리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한자로 적을 때 뜻을 적었을까,,그냥 소리만 적었을까...를 판단하면서 한자지명은 2차적인 자료로 보아야 합니다.
신곡처럼 사일, 새일이라는 이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히 원래의 모습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어서 원래의 이름을 찾기가 곤란해 지는 수도 많습니다.
다곡은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인데 다행히 힌트가 하나 남아 있더군요.
이번 원흥사터와 주륵사터를 답사하고 나면 다곡주변에 관해서 써볼려고 합니다.
방학기간이라 시간이 많은 편이지만 사실은 진짜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지 못 하고 있는 중이온데,
그 일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이 쪽 카페에 글은 덜 쓸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저런 글 빨리빨리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은 고모가 없는 고모령을 알아보았습니다.
머루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