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金瓊(본명 김경숙)시인은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를 마치고 국립 경상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 박사과정 중이다. 1998년 ‘개천문학상’과 199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학과경계 문학상’과 제15회 ‘사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붉은 악보』와 『연애』를 출간한 바가 있다.
김경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풍경은 주로 바다와 강,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전통적인 자연물들이 많다. ‘순천만 물수리’를 비롯하여, 등대, 새섬바위, 신수섬 뻐꾸기, 삼천포 항구, 늑도, 굴레섬에서,자란만에서 등으로 다양하며, 개해당화, 초승달 훨훨, 왜가리, 수국의 그림자, 달의 민낯, 모과나무 유언, 해인사 산앵두꽃 등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는 주변의 자연물들도 많다. 이런 풍경을 묘사하는 시인의 언어는 고요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그런 고요함 속에 시인의 직관은 더욱 오롯이 빛난다. 더불어 시인은, 자연을 논리 이전의 직관력으로 인식한다. 그 직관력은 우리 삶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이 김경 시인의 남다른 매력이다. 삶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무늬, 그 결들을 자연스럽게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삼천포 항구
김경
삼천포 선창가 삼진여인숙 앞 동백은
해풍에 흔들리면서 핀다
서러운 시 한 구절 같이 서럽게 핀다
전어 밤젖 파는 아지매들 앞치마에 삼천포 아가씨 노랫말이
붉게 묻어나고, 새벽어시장에서 리어카 커피를 파는 초등학교친구
춘식이 집사람도 빨간 커피를 팔고 있다
한 그릇에 천 원받는 선창가 보리밥집 앞에도
짭짜름한 봄이 들어앉았다
용궁수산시장 찾아오는 아침 첫 갈매기 같은
형제상회거나, 돼지언니네 초장집 같은 어시장 골목마다
알가자미와 봄도다리와 노래미가
달뜬 바다의 슬하에 들락날락 한다
대여섯 살 아이들까지 혼잣말 하는 바다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삼천포
봄 한철의 모시조개 속에
몇 묶음의 꿈을 놓은
은사시나무처럼 부지런한 항구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운 진삼선 2
김경
문 닫힌 역사驛舍의 쓸쓸함이 덩그러니 남아
목청을 잊은 지 이미 오래인 이곳
어머니는 진삼선 마지막 종착역 ‘삼천포역’을 지나칠 때면
추억처럼 이 말 저 말씀 하신다
어머니처럼 내게도 서너 마디
흙집 같은 추억의 거처가 이곳에 있다
무궁화호 기적소리 끝닿는 종착역에서
백구두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린 계집아이
역사驛舍 앞 선술집 합죽한 주인 아지매와 뱃사람들의 멱살잡이와
그 멱살 끝에 어여쁘게 피던 다알리아 꽃담부랑이 있었다
순천을 담아 싣고 하동을 지나,
진주를 꺾어 달려오던 진삼선 기차 길에
가슴 큰 처녀가 처녀 적에 잠깐 만났던
전라도 말을 하던 그가
이곳까지 따라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철길은 끊어지고
사람과 추억은 남아 내내 그리운,
그리운 진삼선,
무엇보다 나는 박재삼시인 기념사업을 위해 그가 동분서주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좋은 일에는 또 그만한 어려움이 따르는 게 세상사인 모양이지만,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언젠가는 귀한 결실을 이룰 것으로 믿고 있다.
시들로 미루어보건대 그의 열정이 과할 망정 어느 구석도 삿됨을 용납할 성 싶지 않다. 내부의 이 거침없고 순결한 힘이 잘 달아오를 때, 그의 시 쓰기는 속례(俗禮)의 어설픔과 진부함을 단숨에 돌파한다. 고향과 모태로의 성공적인 귀환을 달성하는 동시에 고향의 상투성을 성큼 넘어서는 것 또한 바로 이 힘을 빌어서인 것. 그의 열정이 더욱 잘 간직되고 잘 벼려져 세월이 갈수록 향기를 더하게 되기를 바란다. /김사인(시인)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장소에 고유한 방식으로 정주할 권리가 있다. 기획된 근대는 토착적 장소로부터 사람을 떼어내어 유동적인 시스템 속에 떠도는 부유물로 만든다. 속도와 스펙터클의 사회가 장소애를 대체하고 모든 장소는 개성 없이 소비 교환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장소성을 잃어버린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소외와 사물화다. “낮잠 자던 만이 파르르 떨” “고요한 파장”(「순천만 물수리」 중)으로 가득찬 이 시집은 시가 구체적 장소와 만나 풍경이 되는 지점을 아득하게 펼쳐 보인다. 파도의 숨결로부터 리듬을 익히고, 바닷가 바위무늬 같은 삶들로부터 이야기를 얻었으니 “서너 살 배기 아이들까지 은비늘 푸른 바다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삼천포 항구』를 누군들 찾고 싶지 않으랴. 바다를 품은 시집 위에 배를 띄워라. (손택수 시인)
--김경 시집 {삼천포 항구}, 도서출판 지혜, 값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