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족들로 붐비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이곳은 동남아 배낭여행의 중심지로 불린다.
최근 TV에서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백일섭 이순재 등 낯익은 70·80대 연기자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이야기입니다.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 낯선 세상에서 경험할 두려움 섞인 좌충우돌.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한때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배낭여행에 황혼의 연기자들이 도전했다는 사실부터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짧은 경험 한 토막. 약 20년 전 군 복무를 마치고 영국 런던과 벨기에 브뤼셀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내 유스호스텔에 머물고 있는데, 같은 방에 스코틀랜드에서 온 또래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토요일을 "쌔털데이"라고 발음하던 그는 그 유스호스텔에 3주간 머물 작정을 했습니다. 오로지 파리에서만 그렇게 머문다는 것입니다. 여행이 아니라 파리에서 3주간 사는 것입니다.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같은 유명 관광지뿐만 아니라 파리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입니다. 1년간 그 배낭여행을 위해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7박 8일에 유럽 4, 5개 나라를 겉핥기로 찍고 돌아오는 우리의 여행 패턴과는 너무 달라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실 배낭족들이 많이 몰리는 도시는 생각만 해도 활기가 넘칩니다. 헐렁한 반바지에 조금은 지저분한 샌들을 끌고, 머리 위까지 짐을 쌓아올린 배낭. 그것도 모자라 땀에 전 작은 배낭을 배 앞쪽으로 메고 도시를 활보합니다.
그럼 부산은 어떨까요.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지리적으로 보면 부산은 동북아의 배낭여행 중심으로 자리 잡을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부산역을 중심으로 일명 '텍사스'로 불리는 곳이 있고, 상해거리와도 가깝습니다. 국어 간판보다 러시아와 중국 간판이 많이 보일 정도입니다. 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일본과는 배로 연결됩니다. 김해공항까지도 3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도 다양합니다. KTX를 타면 서울이나 경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교통 여건은 충분합니다.
최근 게스트하우스가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부산역을 중심으로 많이 생겼습니다. 배낭족들이 찾는 저렴한 숙소가 확보된 것입니다. 부산 동구 일대 산복도로 주변으로는 부산의 특성을 살린 민박을 키워보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외국 배낭족들이 부산항의 기막힌 야경을 보면서 머물 수 있는 민박이라면 꽤 매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통이 편리하고, 배낭족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린 숙소만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까요. 동남아 배낭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와 베트남 하노이의 '항박' 거리를 보면서 부산을 생각하게 됩니다. 태국인보다 해외 배낭족들이 더 많이 보이는 방콕 카오산 거리를 보면서 배울 점이 없을까 찾아봅니다.
올여름 부산에는 많은 여행자가 찾았습니다. 피서객뿐만 아니라 대학생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나 어느덧 부산의 대표 상품이 된 갈맷길이 부산으로 여행자들을 끌어모읍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광안대교 위에서의 번지점프나 광안대교 주탑 오르기, 수영만에서 요트 맛보기, 황령산 야간 산행, 광안대교-북항대교-남항대교-을숙도대교 느리게 걷기 등등. 새로운 시각에서 만든 여행 상품이 나온다면 좀 더 매력적인 도시로 변신하지 않을까요.
◆방콕 카오산 로드 / 없는 게 없는 배낭족의 '무법천국'
- 약 400m 남짓한 골목길, 여행사·환전소·게스트하우스 등 빼곡 - 캄보디아·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 육로로 야간버스로 갈수 있어
카오산 로드에 있는 여행사.
"어디서 왔어요? 중국? 한국? 일본?" 귀찮을 정도로 따라오는 양복점 점원의 손에 카탈로그가 들려 있다. 영화배우처럼 보이는 모델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잔뜩 무게를 잡은 사진들. 점원을 따라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1980년대 시골에나 있을 법한 양복점이 나온다. 동남아 최대의 배낭족 거리,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샌들을 질질 끄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곳. 카오산 로드에 양복점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색 풍경이다.
한낮 땡볕이 내리쬐는 카오산 로드. 노점에서 망고 과일주스를 하나 사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약 10년 전 처음 카오산 로드에 갔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간. 카오산 로드는 오히려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불야성'. 배낭족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식당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카페에서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동안의 고생담을 몇 배 부풀려 자랑하는 배낭족으로 넘쳐났다. 카오산 로드는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사이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 배낭족의 베이스캠프
카오산 카페에 배낭족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다.
과거 쌀시장이었던 카오산 로드는 태국 방콕의 차크라퐁 로드에서 타니오 로드까지 뻗어 있다. 불과 400m 남짓한 골목. 2차선 도로라고 하지만 노점상 탓에 골목길처럼 보인다. 옷가게와 여행사 환전소 미용실 레스토랑 클럽 인터넷카페 게스트하우스까지, 빼곡하게 밀집해 있다. 어렵사리 카페의 빈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지나가는 사람만 구경해도 한 두 시간은 후딱 지나갈 정도다.
'배낭족들의 베이스캠프'라 할 만한 카오산의 매력은 많다. 먼저 배낭족이 원하는 것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 왕궁 수산시장 등의 방콕 시내투어는 물론이고 태국의 유명한 관광명소인 치앙마이 트레킹과 정글 탐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태국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라오스 여행상품도 팔고 있다.
여러 형태의 숙소가 많은 것도 카오산에 배낭족이 몰리는 이유다. 카오산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다녀오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1만~2만 원가량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부터 3성급 호텔까지 몰려 있다. 하지만 시설 면에서는 차이가 크므로 객실 등을 확인하고 이용해야 한다.
카오산 로드 입구에 있는 상가(왼쪽), 베트남 하노이의 항박 거리를 배낭족들이 걸어가고 있다. 김용호 기자
■ 발마사지 1시간에 8000원
카오산을 가장 멋있게 즐기는 방법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나 과일주스를 마시면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배낭족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쉼터다.
휙 지나치듯 구경한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카오산 로드. 갖가지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태국의 쌀국수 요리인 팟타이는 약 1000원(30밧)에 먹을 수 있으며, 바나나 팬케이크 등 간식도 다양하다. 심지어 종류를 알 수 없는 벌레 튀김을 파는 노점상도 있다.
수수료를 따지면 은행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환전소도 즐비하다.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타이 마사지도 즐길 수 있다. 30분에 100밧(4000원), 발 마사지는 1시간에 200밧(8000원)이다. 장기 여행자를 위한 미용실도 눈에 띈다. 굵게 땋은 레게머리의 배낭족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염색은 800밧, 커트는 150밧이다. 이밖에 카오산에는 중고 서점도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배낭족을 안내하던 여행 책자를 비롯해 각종 잡지와 소설책 등을 판다. 배낭족 거리에서 인터넷 카페도 빠질 수 없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1분에 35원(1밧)이다. 컬러프린트는 1장에 20밧.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업소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운전면허증, 유럽 항공사 사원증, 하버드대 졸업장, 국제학생증까지 뚝딱 만들어준다고 대놓고 광고한다.
■ 방콕 관광 중심에서 동남아 중심으로
카오산에서는 캄보디아나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육로로 야간버스를 이용해 인근 국가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배낭족이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깔끔하고 정돈된 곳을 원한다면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 카오산이다. 좀 과장해서 무법천지로 보인다. "경찰은 뭐하냐"고 투덜거릴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카오산 입구에는 큰 경찰서가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필요한 곳에 친절하게 달려간다'는 상투적인 문패까지 붙어 있다.
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모두 카오산을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방콕 관광의 주요한 포인트인 것은 분명하다. 카오산에서 태국의 심장부와 같은 왕궁까지는 15분가량이면 걸어갈 수 있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건물이 인상적이다. 왕궁 주변에는 궁전과 사원 등이 밀집해 있다.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파이타이역까지 간다. 역에서 59번 버스를 타면 카오산에 닿을 수 있다.
◆하노이 항박·항베거리/ 무질서 속 질서 소박한 경유지
- 호안끼엠 호수에서 걸어서 15분, 흥청망청 하는 카오산 로드와 다른 매력 - '신 카페' 간판의 여행사·오토바이 많아 - 1달러 세탁소· 금은방 내 환전소 이색
지난 7월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은 66만 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8% 증가한 것. 태국에 카오산 로드가 있다면, 베트남 하노이의 배낭족 거리는 '항박' '항베'라고 할 수 있다. 카오산과 비교하면 규모나 밀집도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 오히려 소박하다고 할 정도. 반쯤 벗은 젊은이들이 맥주병을 들고 활보하는 장면도 보기 어렵고, 문신(tattoo)을 새겨준다는 가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밤새 흥청거리는 분위기도 아니다. 카오산에서는 택시 기사와 상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외국인이지만 항박 또는 항베에서는 베트남인들이 많이 오간다. 그러나 카오산과는 다른 항박 거리의 매력이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을 유혹한다.
■ 여행사와 숙소 밀집
항박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행상.
항베, 항박거리는 하노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호안끼엠 호수에서 15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당시 건축한 성 요셉 성당과도 가깝다.
항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여행사다. 신 카페(Shin cafe)라는 간판이 많이 보인다. 1990년대 베트남에 배낭족이 많이 몰리기 시작할 때 생긴 회사인데, 하도 이름을 도용한 가짜 업체가 많아 원조 회사는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하롱베이를 비롯해 하노이 근교로 떠나는 여행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항박이나 항베 주변의 숙소도 알선해 준다. 베트남 여행사의 80%가 이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므로 여러 곳을 둘러보고 비교해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다.
하노이의 배낭족 거리에는 다양한 등급의 호텔이 있다. 3등급의 비교적 괜찮은 호텔부터 주머니가 얇은 배낭족들이 선호할 만한 저렴한 숙소가 많다. 심지어 어떤 게스트하우스는 몇천 원에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사 등에서 소개를 받았더라도 반드시 방 내부와 시설을 확인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장기간 여행으로 땀에 전 옷의 빨래도 가능하다. 1㎏을 세탁하는데 1달러(1100원)면 충분하다. 호안끼엠 호숫가에 있는 하노이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시티뷰카페가 있다. 항베 거리가 쇼핑하기 좋지만 항박에는 배낭자들이 찾는 여행사나 숙소 등이 좀 더 많다.
■ 무질서 속의 질서
8달러짜리 호텔 예약을 알리는 항박 여행사 입구.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처음 접하는 것은 이색적인 풍경과 함께 자동차가 울려대는 경적이다. 도로는 물론 인도까지 점령한 오토바이도 지지 않고 경적 소리를 낸다. 좀 과장하면 택시기사는 10초에 한 번씩 경적을 울렸다.
운전 솜씨는 곡예를 넘어 예술 수준이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빠져나가고, 다닥다닥 붙은 그 비좁은 사이로 오토바이까지 밀려들어 간다. 그 틈으로 왕복 4차선 도로를 태연히 건너는 보행자도 있다.
항박이나 항베 거리도 오토바이 천지다. 인도에 주차한 오토바이 때문에 도로로 걸어가야 할 지경.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하노이의 표정은 밝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돌 수 있는 전기 관광차.
여행자들은 배낭족 거리의 허름한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으면서 피로를 달랜다. 한 그릇에 1000~2000원 수준이다. 몇천 원이면 온종일 밥 대신 먹어도 충분할 만한 양의 과일을 살 수도 있다. 밤이 되면 연인들이 몰리는 호안끼엠 호수를 산책하는 것도 좋다. 바게트를 바구니 담아 들고 다니는 행상이 있다.
항베와 항박거리 주변에는 금은방도 눈에 많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금은방 가운데 환전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