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일곱 번째 설교: 양의 문과 목자가 되시며 양을 위해 목숨 버린 그리스도,
하나님과 하나이신 이 분을 믿고 따라가는 축복
(찬송 38장)
2024-3-18, 월
맥락과 의미
요한복음 10장은 9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곳 다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께서 피해 가셨습니다.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 목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안식일에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 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나은 자를 출교했습니다.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참된 목자인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빛을 주었습니다.
9장에서 참된 목자로서 행동하신 예수님은 10장에서는 말씀으로써 다시 설명하십니다. 위험 가운데서 예수님은 정직하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1. 양의 문과 목자되신 예수님: 목숨을 버려 구원하고 인도하심(1-21절)
2. 수전절: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가르침, 유대인은 믿지 않음(22-42절)
1. 양의 문과 목자되신 예수님: 목숨을 버려 구원하고 인도하심 (1-21절)
1) 목자와 문의 비유 (1-6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다, 양의 목자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이라는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며 먹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예수님의 양은 그분의 음성을 알아 듣고 따라 갑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분께로 나오도록 불러 주십니다. 문이 되시고 목자가 되신 예수님은 성전과 제사장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 가운데서 인도하십니다. 삶 가운데에서도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십니다. 양들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문 밖으로 나옵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고 또 예수님 안에서 바깥으로 나와서 다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비유의 적용: 양의 문과 목자 (7-18절)
8-10절: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으로 들어가고 풍성한 꼴을 먹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11-18절: 11,14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하십니다. 선한 목자인 예수님은 문을 통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계속 인도해 가시는 목자이십니다. 이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갑니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릅니다. 삯꾼 목자는 이리들이 와서 양을 찢고 해칠 때 도망쳐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이리와 싸우십니다. 사탄과 싸워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15절에 양들을 위하여서 목숨을 버리십니다.
이 비유 자체가 조금 특별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없습니다. 이 비유는 독특한 목자를 보여줍니다. 얼마 후에 십자가에 달려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드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들은 서로를 압니다. 그보다 먼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아십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부부가 침실에서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친근한 하나되심에 성도도 참여합니다.
17절에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행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에 반해서 강제로 목숨을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18절에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온 세상의 권세를 갖고 당신의 삶에 대한 권세를 가진 분으로서 이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명령을 받아서 스스로를 복종시키셔서 목숨을 내어놓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겸손히 순종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선한 목자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사람들의 반응(19-21절)
예수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귀신 들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귀신 들린 사람이 소경의 눈을 뜨는 기적을 행할 수 없다.” 의견이 갈립니다.
2. 수전절: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가르침, 유대인은 믿지 않음(22-42절)
1)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가르침 (22-30절)
22절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수전절은 성전을 수리했던 절기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이 제단에 돼지로 제사드린 것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을 정결케 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주전 165년).
23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예수님께서 다니셨습니다. 행각은 우리나라의 정자와 같습니다. 위쪽에 지붕이 있고 벽은 없이 기둥만 있는 건물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장소입니다.
24절에 그때 많은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요?” 25절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한다” 하십니다. 26절에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 하면서 양의 비유를 이어 가십니다.
복음이 똑같이 전파되지만 예수님의 양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궁금해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양이라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들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크시기 때문에 아무도 이 양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나(예수 그리스도)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30절) 양들의 구원에서 이 사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 삼위일체 중에 한 분으로서 양들을 구원하시고 먹이십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에 대한 반대, 예수님 책망 (31-32절)
31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다가 돌을 들어 치려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신으로 불렀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4절에 시편 82:6을 인용하여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구약의 말씀의 직분자들을 보고 신이라고 했습니다.
36절에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서 세상에 보내신 내가 아버지와 동등하다 말하는 것을 왜 너희들이 믿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38절에 “내 하는 일을 보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들어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38절 후반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다시 그들의 손을 빠져 나가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아 알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3) 요단강 지역으로 떠나가심 (40-42절)
예수님은 요단강으로 가서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42절에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믿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던 것이 참되었다고 판단하면서 믿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 말씀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듣지 못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정에서 이 말씀을 듣고 읽을 때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와 하나되신 분으로서 우리와 하나 되십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아버지가 아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안에 계신 그 교제 안으로 우리를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 교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됩니다(16, 38절)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세례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이미 연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어서 그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배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되고 경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살아갈 때 선한 목자되신 예수께서 먼저 가시면서 우리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갑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바랍니다. 말과 행동으로 주의 복음 드러내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요한복음 10장은 8-9장과 연결됨
요한복음 10장은 8-9장과 흐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① 9:41과 10:1 사이에 새로운 전환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또 10:19에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을 두고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분쟁이 일어났다는 표현은 9:16에서 피차 쟁론이 되었다는 말과 동일한 말(스키즈마)입니다.
② 10:21에 예수님이 귀신들렸는가에 대해 논쟁할 때에 “어떻게 귀신들린 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며 9장의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③ 10:30에도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다시 돌로 치려 했다는 것은 8:59에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0:39에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로 이어집니다. 8장 마지막의 흐름이 9장에서 10장까지 계속 연결됩니다.
<참고> 22절, 수전절
수전절은 성전을 수리했던 절기라는 뜻입니다. 성전을 정결케 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전 2세기에 유대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왕(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성전 제단 위에 이방신에게 돼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얼마 후, B.C. 165년에 이스라엘의 성전이 혼란했는데 유다 마카베우스라는 지도자가 반란을 일으켜서 성전을 다시 재건합니다. 그 날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입니다.
구약성경 율법에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의 역사적인 사건을 따라서 전통으로 받아들인 절기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성경에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도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어떤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하는 여러 기념일들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도 유익할 때는 할 수 있습니다.
<참고> 23절,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예수님께서 다니심 (페리파테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보내신 성령님께서 제자들(사도들)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전파의 초기에 주로 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모였습니다(사도행전 3:11 5:12). 사도들이 이 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이 사도들에 의해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계시록 2:1에 일곱 촛대 안에 예수께서 다니셨다는 것과 같은 말(페리파테오)입니다. 성전 안에 다니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교회 가운데 영적으로 거니시며 함께 하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주는 말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 교회 안에 거니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