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부산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임종찬
Ⅰ. 선배들이 이룩한 정형시 틀을 지켜야 한다.
시조는 애초부터 노래가사라 하여 시조(時調)라고 표기하였다. 그야말로 때때로 부르는 노래가 시조라 여겨 왔던 것이다. 옛 시조집 중에는 시조를 詩調라 표기한 책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표기한 건 틀리는 걸로 인정하였다. 한문화에 정신을 잃은 당시 문인들은 시(詩)란 언어상 한자어로, 형식상 한시(漢詩)형식으로 이룩되어야 시라고 여겼기 때문에 시조를 詩調라 쓰면 틀린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詩調라 표기한 사람은 時와 詩를 구분할 줄 모르는 무식쟁이가 아니고 나름대로 고집이 있었던 사람이라 생각 든다. 중국인 흉내 내어 지은 한시는 중국시의 아류에 불과하다. 한시 형식을 버리고 우리말, 우리 정서로 지은 걸 詩라 하지 못하여 時調라 한다면 이건 자기 폄시이고, 못난이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詩調라 표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중국어가 아닌 우리말과 글로 우리 식의 시상을 읊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쓴 건 아니었을까.
표기가 이리[時調] 했든 저리[詩調] 했든 한시와는 다른 우리시의 영역을 오랫동안 시조가 이루어내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시조는 주로 노래 부르는 창사로 활용되어 왔다. 창사라고 해서 시와 멀리 있다 할 수는 없다. 창은 노래 형식과 창사의 형식이 잘 어울려져야 창이 성립된다. 창사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조가 이렇게 창의 가사로 불리어 오는 동안(어떤 땐 창이 아니라 율독으로 전해져 오는 동안) 우리도 중국 같이 또는 여러 나라 경우와 같이 우리 정형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움직임의 본격화가 바로 1920년대 소위 국민문학파와 KAPF와의 논쟁 시기이다.
문학 이론이 밝지 못한 시대라 논쟁 자체가 무게감 없이 시끄러웠지만 그런대로 의미는 있었던 논쟁이었다. 국민문학파 측은 어째서 시조가 민족문학 혹은 국민문학이며 시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신통하게 지적하지도 못한 채 고함만 컸었다. KAPF 측은 시조는 유한계급들이 먹고 마시고 하는 자리의 유흥을 위한 노래였으므로 민족문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치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지였다. 이들은 주로 작품 내용, 그것의 향유계층을 문제 삼았다. 말하자면 고시조의 창작의도와 향유계층과 내포된 관념 이것이 민족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일이 아니라는 게 시조부흥의 반대론자들 주장이었다. 시대가 바뀌면 내용도 바뀌고 창작 주체도 바뀌게 된다. 당시 무산계급을 옹호하는 입장에 선 진보주의자들에게는 고시조를 문제 삼을만하지만 현대시조 측면에서 보면 이게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상품을 계속 생산하려면 구매자라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문학도 문학소비자(독자)가 없으면 문학을 생산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문학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문학 형식이란 꼭 한 가지 정서만 담으라는 법은 없다. 모처럼 시조를 두고 논쟁하여 시조에 대한 인식을 높혔다는 의미에서 이 논쟁은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시조를 단단한 형식으로 새로 출발시켜야 한다는 논지가 등장하게 된 점이다. 조윤제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고시조에서처럼 형식이 들쭉날쭉해서는 정형시라고 할 수 없으므로 정형시로서의 시조 형식을 단단하게 만들자는 주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창의 가사는 창에 얹어 부르기 때문에 음절의 가감이 있어도 창하기에는 큰 불편이 없다. 고시조집에 실린 고시조(단시조)들은 일정 형식과 거리를 둔 들쭉날쭉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두고 정형시라 말하기엔 곤란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정형시로서의 단단한 형식(음절수의 조정)을 갖춘 시조 탄생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업은 고심 끝에 이룬 훌륭한 일이었다. 실지로 이 형식에 맞추어 최남선, 이병기, 이은상을 비롯하여 정인보, 조운, 그 뒤를 이어 이호우, 김상옥, 조남령, 장응두, 오신혜, 이영도 등 여러분들이 시조의 모범을 보였다.
수집어 수집어어서 다못타는 연분홍이
브끄려 부끄려서 바위틈에 숨어피다
그나마 남이볼세라 고대지고 말더라
-이은상 「진달래」-
이즐어 여윈저달 밤새껏 갔것마는
반쪽난 몸을끌고 빨리갈수 있었으랴
한낮이 기운하늘에 애처로이 떠있네
-오신혜 「반달」-
현대시조를 개척해내려 했던 시인들은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 여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구의 구분). 위 작품들은 음보식으로 묶어 표기하였다. 상당히 의미 있는 표현 아닌가. 이 시조형식은 무턱대고 만든 게 아니다. 고시조의 각 장을 네 토막 내고 각 토막을 평균 내어보니 이 형식이 되었고, 이렇게 시험 삼아 지어보니 형식으로 훌륭하다 여겨 이걸 시조형식이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형식으로 훌륭한 시조작품들이 다량 만들어져 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조를 배울 때에는 시조 형식은 이래야 된다고 배워 왔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시조의 형식은 이것이라고 여겨 왔는데 요즘 들어 이걸 흩어뜨려 애초 고시조 쩍으로 돌려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욕먹기에 마땅하다. 이렇게 되면 정형시로서의 시조는 언제 되는가. 아니 그럴 이유가 뭔가가 납득되지 않는다.
Ⅱ. 정형시는 들어서 정형을 느끼는 시
앞서 거론한 선배 시인들은 영시까지는 몰라도 한시를 이해하는 분들이었고, 일본의 정형시인 와카, 하이쿠를 이해하는 분들이었다. 우선 정형시로서의 한시의 경우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말은 중국어나 영어에서와 같이 성조(聲調,pitch)에 의해 어느 정도 의미 분화를 하는 말이긴 해도 중국어나 영어처럼 성조를 심하게 따지지를 않는 언어다.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VV OOV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OO VV⦾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OO OVV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VV VO⦾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VV OOV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OO VV⦾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OO OVV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VV VO⦾
杜甫 春望
조정은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성안에 봄이 되니 초목은 무성하네
시대를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한 맺힌 이별에 나는 새도 놀라는구나
봉화불은 석 달이나 계속 오르고
집에서 온 편지 너무나 소중하여라
흰 머리를 긁으니 자꾸 짧아져
이제는 아무리 애써도 비녀도 못 꼽겠네
V는 측성을 O는 평성을 ⦾은 압운을 나타낸다. 평성이라 함은 중국어 4성 중 평평하게 발음되는 소리라면 이것에 대한 변화음인 상성 거성 입성은 측성이라 한다. 5언 율시에는 평기식과 측기식의 두 종류가 있다. 이 작품은 제 1구의 두 번째 글자 破가 측성이므로 측기식 5언율시라 한다. 만약 제 1구 두 번째 글자가 평성이면 평기식 5언 율시라 한다.
이렇게 부호표시를 해놓고 보니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이 시를 읽는 것과 중국어를 잘 아는 사람이 이 시를 읽는 것하고는 영 다름을 알 수 있다. 부호 표시대로 읽을 때에 비로소 한시 형식이 정해놓은 정형시로서의 음악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형시는 음악시다. 다음은 영시를 구경하기로 한다.
My soul /is dark/--Oh! quick/ly string/
The harp/ I yet /can brook/ to hear;/
And let /thy gen/tle fin/gers fling/
Its mel/ting mur/murs o'er/(=over의 줄임말) mine ear./
Byron, My Soul Is Dark (바이런, 내 영혼은 어둡다)
* 밑줄 그은 부분은 강음이고 그 앞 음절은 약음 그리고 ∕은 음보 표시
내 영혼은 어둡다. --오! 어서 울려다오
하프를 들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다하기 전에
그대의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그 달콤한 속삭임을 나의 귀에 전해다오
정형시로서의 영시는 강음과 약음을 교차시켜 정형시를 만든다. 약강, 강약, 약약강, 강약약, 약강약, 강약강 등으로 묶은 이 단위를 음보라 한다. 위의 시는 약강 음보로 되어 있고 한 행에 4번 걸쳐 있으므로 약강 4음보격 시(imbic tetrametre)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영시의 정형시는 음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시임을 알 수 있다. 성조가 규칙적이니 음악시라 할 만하지 않는가.
우리말에도 고저 장단 강약이 있긴 있지만 방언마다 다르다
1) 말을 해라
2) 말을 탄다.
a) 눈이 온다
b) 눈이 아프다.
경상도 방언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1)의 ‘말’과 2)의 ‘말’ 그리고 a)의 ‘눈’과 b)의 ‘눈’을 고저로서 의미 분화를 할 수 있지만 다른 지방의 사람들은 고저로서 의미 분화하기보다 장단으로 의미 분화를 하거나 아니면 같은 성조로 읽는다.
장단이나 고저나 강약이나 간에 우리말로서 장장 단단단 장장 단단단 이런 식이 아니면 약약 강강 약약 강강 이것도 아니면 강약 강약 이것도 아니면 고저 고저 또 다른 형태의 시 형식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로서 성조를 기반으로 하는 정형시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고저 장단 강약은 읽는 사람의 취향에 어느 정도 맡겨두면서 일정한 음수의 통제 속에서 시의(詩意)를 나타내는 걸로 만들어본 것이 시조라는 것이고 일정한 음수 통제 단위를 영시와는 다른 우리 식의 음보라 이름붙인 것이다. 또는 음절수의 일정함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음수율이라 하여왔던 것이다. 음수율이든 음보율이든 서로 닮은 데가 있고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 음수율이라 해도 음보율에 보충을 받아야 하고 음보율이라 해도 음수율에 보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시조 형식이다.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고, 5 ․ 7 ․ 5음절로 되어 있으며 계절을 나타내는 계어(季語)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5를 읽는 시간이나 7을 읽는 시간은 같아야 한다. 시간의 등장성(규칙성) 안에서 소리결(sound texture)만 달라진다.
물론 시조에서도 율독(scasion)할 때 각 음보에 걸리는 시간은 같아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정형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음보 안에 음절수가 요령 없이 많고 적고 하면 한 음절에 소용되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져 템포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게 된다. 이러면 안 된다는 점을 앞 선배들은 알고 시조형식을 만든 것이다. 선배들이 애써 만든 시조 형식을 우습게 여기면 되겠는가. 안 되는 일 아닌가.
Ⅲ. 시조시인들이 시조를 망치고 있다.
과거 KAPF 쪽 문인들은 시조는 시대 조류에 맞지 않을 뿐더러 사실성(事實性)을 나타내기 어렵기에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시조는 온갖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시조시인 수도 시조전문지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자유시에 비하면 시인의 수에서도 작품 발표 수에서도 월등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옛날의 왕성한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으로는 앞으로도 별로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조의 황혼을 걱정하는가 하면 “그 고정된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땐 시조의 발전은 이제까지와 같이 정체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정형적 사고는 식민지적 사고라고 하면서 시조형식의 열림을 주장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시조시인의 수가 많아야 시조전성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시인의 수가 많아도 작품 질이 떨어진다면 전성기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시조 형식을 표현의 한계라 인정하면 안 된다. 시조 형식은 오히려 시조다움으로 견인하는 적극적 장치라 해야 옳다. 정형적 사고가 식민지적 사고라는 말은 영 이해되지 않는다. 무슨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하는가.
여기다 현대사설시조라는 작품을 쓰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사설시조는 정형시가 아니다. 형식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설시조는 자유시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것이다. 자유시가 만연한 이 시대에 일정 형식을 갖추지 못한 사설시조가 무슨 의미로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고, 열린 시조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무얼 열어야 하는지 그래야 할 당위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과연 무엇이 시조인가에 대해서도 필자는 강한 의문을 가진다.
현재 우리가 만든 영화, 연속극 같은 영상예술이나 음악 K-POP이 세계에 수출되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국익에 기여하고 있음을 본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이것들은 물론이고(올해 노벨 문학상을 팝송 가수가 탔다.) 문학작품을 수출하여 문화강국임을 자랑하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 문학을 해외 문학시장에 수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 문학을 세계에 소개한다면 시조를 우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국에 이미 있거나 비슷한 품종의 수출은 구매력을 높일 수가 없기 때문에 시조를 우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조의 영역(英譯) 문제를 생각할 수 있고 시조의 영역을 생각하자니 제대로 된 시조를 골라야하겠기에 시조다운 작품이 강조 되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 정형시는 와카(和歌) 하이쿠(俳句)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것들이 자유시에 비해 월등히 많이 발표되고 있을뿐더러 시인이라 하면 으레 와카, 하이쿠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이를 정도다. 한국은 이와 반대로 자유시인이 월등히 많을 뿐더러 시인이라 하면 자유시인을 지칭하고 시조를 짓는 이는 시조시인이라 한다. 시인이라면 응당 시조 짓는 이를 이름이고 자유시를 짓는 이는 자유시인이라 이름 붙이면 안 되는가. 조선조의 중심 장르였던 시조가 소멸하지 않고 이렇게라도 연명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면 할 말이 없다. 가사문학은 아예 현대문학 장르에서 사라졌다.
현대시조의 형편이 어떠하든 우리 문학을 세계 문학시장에 내놓고자 할 때 시조를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식은 내용을 외화(外化)한 것이라면 시조의 단아한 형식 그 자체가 한국인의 정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뿐더러 세계 문학 그 어떠한 장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의 형태이므로 시조를 잘 다듬어서 세계 문학시장에 자랑스럽게 내보여야 하는 중요한 수출품목이 되어야 한다.
시 정신과 이미지를 3장 형식으로 정리하고 종장에서 시심을 완결하는 시조는 영시나 한시(漢詩)나 와카, 하이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이므로 세계 사람들이 놀라워할 수 있는 문학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본 시가의 간단한 형식을 두고도 서양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 영어권 사람들은 영어로 이것들을 창작하고 있다 하지 않는가. 이런 걸 보면서도 시조시인은 물론이고 시조를 연구하는 학자들까지도 세계문학에 있어서 시조가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계문학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서도 그러하겠지만 시조를 후손들에게 잘 전해주기 위해서도 시조는 형식을 잘 지켜 시조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형시는 일단 율독(律讀,scansion)한 소리가 소리로서의 정형화를 이루어야 하고, 들어서 쉽게 시의(詩意)가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귀로 들어서 음악성이 분명히 드러난 시가 정형시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형시의 이러한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조시인들이 많고, 시조의 형식인 3장 6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조시인들이 많으니 이게 작은 문제라 생각 들지 않는다.
어떤 이는 시조를 3행시라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시조의 장(章)은 자유시의 행(line)과는 다르다. 시조가 3장으로 이루어졌다 함은 세 개의 의미 단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작품을 이루어 낸다는 뜻이다. 한 장 안에 구가 두 개 들어 있어서 모두 6구로 되어 있는데 구는 장보다는 작은 의미단위로서 두 구가 결합될 때 보다 큰 의미단위인 장이 이룩된다. 한 구는 정확히 2음보가 되고 구와 구의 연결도 몇 가지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시조의 이 같은 형식을 부수는 것에서 현대시조의 그 현대에 값한다는 이상한 경향이 시조문단에 있는 것 같다. 시조의 형식을 부수어 버리면 시조가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1) 작은 방
창 너머엔
매미 우는 환한 푸름
그 풍경에 머리 두고
너는 꿈꾸는 창이
詩일까
행복한 소나기
잠시 흥건하다.
-김일연 「낮잠」 전문-
2) 바다가 보이는 마당에서 어머니는
햇살을 버무려 독 안에 담으신다.
맵고 짠 소망 한 동이 채워놓고 다독이신다
- 이수윤 「겨울바다」 일부-
3) 갇혀 사는 안락은 그 날 같은 하루
일어나 밥 먹고 자다 깨다
창밖은 사철 바빴다
꽃이 피고 또 지고
골은 속은 지푸라기 하나 잡아두지 못해
허영의 흔적
위태한 거울처럼 걸려 있다
오래된 당초무늬 벽지
그 속의 목근처럼
- 양점숙 「벽」 전문-
* 밑줄 필자 첨가
4) 잎사귀들은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져 내렸다
참거나 참지 못하거나 떨어져 내렸다
- 이정환 「십일월」 전문
표기를 시조처럼 3장 구분하였다고 해서 시조 아닌 것이 시조로 둔갑되지는 않는다. 1), 2)의 밑줄 그은 부분들은 시조답게 보이기 위하여 3장 구분을 억지로 해놓은 경우다. ‘詩일까’란 서술어는 위로 붙어야 하고(그렇게 되면 종장이 4음보가 되지 못한다) ‘어머니는’이란 주어는 아래로 붙어야 한다.(그렇게 되면 초장이 4음보가 되지 못한다) 시조는 통사구조를 아무렇게나 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시가 아니다. 시조에 있어서의 장(章)은 형태상으로 월의 꼴을 갖추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의미상으로 월의 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3)은 시조의 음보개념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시조답지 않는 작품이 시조집에 실린 경우다. 이 작품을 두고 누가 시조답다고 하겠는가. 4)는 어떤가. 시조는 대체로 초장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중장에서 이를 보완 보충하고 종장에서 시의를 마무리 짓는 시다. 음보만 맞춘다고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시적 논의를 마감해야 하는 게 종장인데 종장 구실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시조가 자유시와 다른 점(장점이라 해야 하나) 중 하나는 시의를 함축하는 데 있다. 시조는 말을 남용할 겨를이 없는 시다.
1), 2), 3), 4)의 경우처럼 시조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이니 이게 작은 일이라 할 수 없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시조를 잘 못 쓰는 시인들만 탓할 일이 못 된다. 무엇이 잘 못 쓰인 시조인가를 가르쳐주는 이론가가 없었고, 있다 해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왔다는 점이 더 큰 이유라 생각 들기 때문이다.
*월간문학(2016.12)에 실린 걸 다시 옮겼습니다.
첫댓글 연산시인님 다시 상기하면서 새로운 채칙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꽃에 물을 주듯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