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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과 2016년 1월 사이 한 달 간 31세기 현대 정신 미술관 초청으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체류하는 동안 만난 여러 태국 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부족한 정부 지원과 미흡한 전시 공간이라는 힘든 여건 속에서 전략적으로 모였다기보다는, 태국 전통의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작가 공동체들은 삶과 밀착된 예술적 시도들을 전개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본인을 초대한 카민 러차이프라서트(Kamin Lertchaiprasert)는 작가, 큐레이터, 교육자, 수행자로서, 태국 치앙마이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작가로서, 그의 프로젝트는 불교와 현대 미술이 융합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는 치앙마이에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와 함께 더 랜드(The Land)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하고, 31세기 현대 정신 미술관(The 3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spirit)의 디렉터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카민 러차이프라서트는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지향한다. 불교에 입각한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매일 수행하는 명상 과정 속에 자아를 깨닫고 이를 예술의 형태로 기록한다. 드로잉, 페인팅, 조각, 설치, 퍼포먼스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자아와 자연의 원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이런 유형적인 예술 작품 창작 이외에도 삶에서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대해 함께 배우고 나누는 워크숍, 큐레이팅,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나눔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고무시키고 그 안에서 현대의 정신을 찾고 있다.
정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카민 러차이프라서트의 프로젝트 중에는 31세기 현대 정신 미술관(The 3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spirit)이 있다. 물질적 공간 없이 워크숍, 웹사이트 등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지난 5년간 이동 가능한 컨테이너의 형식으로 구체화되어 그의 작업실 옆 공간에 설치되었다. 2008년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워크숍과 전시를 계기로 시작된 31세기 미술관 프로젝트는 미술관의 미래와 대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31 숫자 형태를 그리는 7개의 컨테이너 속에는 그가 수집한 예술 작품들, 워크숍 공간, 명상 공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동이 가능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최소화시키는 컨테이너 형식을 통해 서구 문화권에서 차용된 기존 미술관의 틀에서 벗어나 대안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술관의 형태를 제시하고자 한다. 워크숍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매일 매일 미술관의 일상을 기록하고 방문객과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예술과 관객, 제공자와 수용자, 삶과 예술로 분리되는 기존 미술관의 방식을 탈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예술 형식을 통해 마치 명상 수행법처럼 각자의 정신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카민 러차이프라세트는 ‘정신’은 현대 사회에서 꽤 이질적이고 불편한 단어로 인식되지만 정신은 결국 생각, 의견, 이해심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정신은 몸에 담겨 있으므로 미술관 역시 정신을 담고 있는 하나의 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의 몸이 정신을 담는 미술관인 것이다. 따라서 31세기 현대 정신 미술관에서 삶에 대해 명상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우리와 그들, 창조자와 창작물 사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1990년대 말에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ravanija)와 함께 치앙마이 근교에서 시작한 더 랜드(The Land) 프로젝트 또한 이러한 철학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땅을 개간하고 얻은 농작물로 밥을 지어먹으며 집을 짓고 사는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는 더 랜드는 예술과 삶이 일치되는 철학을 반영한다.
더 랜드는 태국의 작가들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을 꿈꿨다.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작업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더 랜드는 앞서 언급한 두 작가가 설립한 대안적인 학교라고도 볼 수 있다. 약 20여 년이 지난 이후 지금까지, 더 랜드는 실험적인 예술과 건축 창작의 플랫폼으로서 국내 작가는 물론 국제적인 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창작하였다. 또한, 공동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후대 작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더 랜드의 미래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1990년대에 프랑스 비평가이자 기획자인 니콜라 부리오(Nicholas Bourriaud)가 정리한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범주에 합류되어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관계 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소개되는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더 랜드 프로젝트의 초기 의도인 위파사나(명상 수행법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활동과 마음 씀에 대해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의 실천에서 예술 행위로 확장해 서구 포스트 모던 예술로 개념화하였다. 이로써 더 랜드 프로젝트는 다다이즘, 플럭서스의 계보를 잇는 관계미학의 주요 작품으로 소개된다.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미술 전시장에 삶의 행위들을 가져와 예술의 형태로 제시하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안에서 팟타이를 요리하여 함께 나눠 먹는 등 일상의 행위를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한다. 또한, 오프닝에서 이러한 해프닝 후에 생긴 흔적을 남겨 전시장에 전시하는 형식은 관객이 예술 작품에 참여하고 완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형식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삶의 행위를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품들 또한 그의 불교적인 생각-덧없음(impermanence)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삶은 시간의 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행위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나눔을 통한 공동체 형성, 미술 작품과 일상의 흐트러진 경계를 논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특정적인 인물들만이 참여한다든지,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의 윤리성이 모호하고 궁극적으로 소통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교를 현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개념화시킨 이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이질적인 형태를 띠나, 모국의 정체성과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작업을 전개하는 방법론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도 치앙마이에 거처를 나란히 두고 있지만 각각 자신만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더 랜드 프로젝트의 공동설립자로서 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끌어내었고 치앙마이에서 활동하는 후배작가들에게 지원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더 랜드 프로젝트는 아무에게도 소유권이 없는 재단으로 변환되고, 두 작가는 이제 젊은 태국 작가들에게 운영권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기성세대의 작가이자 국제적으로 성공한 작가이기에 지금 현재 태국의 젊은 작가들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해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적인 교류를 이뤄놓은 것도 그들 개인 작품의 인지도와 설득력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위태로운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도움 없이 자립하여 더 랜드 프로젝트를 운영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또한, 더 랜드의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정부의 지원이나 외부의 도움 거의 없이 작가들의 자체 기획과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20년이 지나면서, 작가들이 함께 모여 살며 작업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인 초기 의도는 여러 착오를 겪으며 퇴색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은 여전히 위파사나와 관계미학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곧 벼농사를 준비하는 더 랜드 작가들은 본인들의 전통 농경 문화를 실제로 체험하고 지역 사회에 합류하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다.
태국에서 작가의 위치는 그 여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위태롭다. 특히 태국 군주국은 국민의 정치적 행동을 극도로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가 예술의 역할을 맡고, 예술이 종교의 형식을 띠게 되는 태국의 특유한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정치적인 공동체를 자유롭게 이루지 못하므로, 종교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는 그들의 방식은 현재 정치적 상황의 대안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불교가 현재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논쟁을 둔화시키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종교의 위선적인 담론이 기형적인 민주주의의 상황을 유발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이러한 예로, 치앙마이에서 200km 정도 떨어져 태국 최북단에 위치한 치앙라이에 자리 잡은 태국 불교 미술과 전통 예술의 형식을 들 수 있겠다. 치앙라이는 국제적으로 개방된 방콕과 치앙마이보다 더 전통적인 예술의 형식이 두드러진다. 불교 미술 작가 찰럼차이 코시파팟(Chalermchai Kositpipat)이 지은 백색 사원(Wat Rong Khun)과 최근에 죽은 타완 두샤니(Thawan Duchanee)가 지은 흑색 사원(Baan Dam)은 예술과 불교가 융합된 장소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들은 본인의 예술관이 투영된 불교 사원을 사비로 지어 지역 사회에 환원하였고 이 장소들은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이 작가들은 종교적 리더이자 지역 사회의 선지자처럼 추앙받고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스스로 명상하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예술의 창작 원리와 닮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자가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고 실천한다는 행위 또한 예술가가 창작물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과 비교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가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대중의 정신적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태국의 토착 문화에 기반을 두고 뿌리내린 방식을 통해, 종교 미술은 지역 사회에 융합되어 태국인들의 삶과 밀착된 예술의 형식을 발전시켰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에서 여러 공동체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 활동들은 미술관, 갤러리 등의 전시 공간 부족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정치적 상황, 토착 문화, 종교와 예술이 융합되어 얻어진 결과들이다. 삶과 예술이 일치되는 이러한 문화는 1990년대 서구 현대미술의 이론을 통하여 개념화되었다. 비주류의 아시아 문화가 주류인 서구 현대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젊은 세대의 태국 작가들은 더 이상 이러한 문화 형식 속에서만 작업할 수 없다. 아시아성을 부각하고 공동체적인 역할을 중시하는 환경은 다변화된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마냥 평화롭게 유지되기 어렵다. 더 랜드 또한 이상적인 꿈을 꾸었으나 초기의 의도처럼 자급자족하는 예술인 공동체는 이루지 못했다. 농경사회가 중시되는 태국이지만, 인터넷의 발전과 첨단 기술력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작가들이 논밭으로 귀향하는 행위는 과거로 되돌아가는 노스탈지아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일상의 행위를 예술로 전환함에 따라, 실제적인 유형의 미술작품 수는 줄어들어드는 현상도 생겨났다. 또한 비영리 공간은 결국 작가 개개인의 노력과 사비로만 유지되고 예술 시장과 지역사회의 경제와는 동떨어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태국의 젊은 작가들은 계속하여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사운드 아티스트인 아르논 엔가요(Arnont Ngayo)는 타차탐 실수판(Thatchatham Silsupan)과 함께 치앙마이 콜렉티브(Chiang Mai Collective: CMC)를 설립하였다. 사운드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이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함께 퍼포먼스, 전시, 교육, 커뮤니티 아트 등의 여러 창작 활동을 기획하고 미술 기관과 협력하는 방식을 취한다. 아르논 엔가요 역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현재 정치적 상황에서의 대안은 작가들이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관객 참여 형식의 창작물을 선보여 또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90년, 2000년대에 카민 러차이프라세트와 리크릿 티라바니자 두 명으로 대표되는 작가들이 스스로 더 랜드와 31세기 현대 정신 미술관과 같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선배 작가들과 후배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였다. 이는 이후 새로운 전시 공간들과 레지던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였다. 치앙마이 콜렉티브 이 외에도, 젊은 작가들의 아트 상품을 판매하고 전시하는 시스케이프 갤러리(SeeScape gallery)를 비롯하여, 라일라 갤러리(Lyla Gallery), 니나 콘텀포러리 아트 스페이스(Ne-Na art space)와 컴픙 아티스트 레지던시(ComPeung artist residency)등의 기관들이 현재 치앙마이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전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태국의 역사와 맥락에서 바라본 공동체는 한국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전통과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이들 현대 미술 작가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소규모이지만 서로 간에 깊은 연대의식과 상호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본인은 한국 작가로서 여러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논할 수 있다면,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문화 전문가로서 성과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이전에 작가 스스로가 일상에서 본인의 생각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함께 교류하고 연대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봐야 될 것이다.
〈참고 문헌〉
The land foundation: Toward a Buddhistic Utopia by Vipash Purichanont
An intersection of Buddha and Duchamp by Gridthiya Gaweewong
The Land by Karen Demavivas
Feeling Contemporary: the politics of Aesthetics in Rirkrit Tiravanija’s art
[기사입력 : 201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