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學書前에 알아둘 점 書法(서법)은 선생에 의해서 배울 수도 있으나 그 精神(정신)과 興味(흥미)는 자기 스스로가 가져야 한다. 書를 法에 맞게 잘 쓰겠다는 참다운 精神이 없고 또한 흥미를 갖지 않으면 오랫동안 참고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글씨가 아무리 신묘함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참다운 글씨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한점 한 획이라도 필법을 쓰지 않는 곳은 없으니 筆端(필단:붓 끝)에 全身精力(전신정력)을 모아 쓰는 것은 비유하면 춤 잘 추는 무당이 장대 끝에 神을 모으고, 창 잘 쓰는 武士의 힘이 창 끝에 이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一點一劃(일점일획) 이라도 法에 어긋남이 있으면 完全(완전)한 書를 이룰 수 없으므로 그 根源(근원)과 變化(변화)를 硏究하여야 書의 眞理(진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柳公權(유공권)이 말하기를「用筆在心하니 心正則筆正(용필재심하니 심정즉필정)이라」하였으니 書는 곧 心畵(심화)요 心鏡(심경)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사람을 선발하는데 身言書判(신언서판)을 取(취)한 것은 書로써 그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程明道(정명도)가 말하기를 [내가 글자 모양을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기 위하여 글씨를 쓸 때 조심한다] 하였으니 글씨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을 安定(안정)하고 바른 정신을 가져야 좋은 글씨가 될 것이며, 이것이 習慣(습관)이 되면 자연히 올바른 사람이 된다하여 孔子(공자)는 六藝(육예:禮樂射御書數[예악사어서수])의 하나로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書를 배움에 正法(정법)을 따라 배우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하며,그 法을 모르고 글자의 모양만 닮으려고 만 한다면 헛된 먹 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正法을 통하여 한 서체를 본 받을 때에는 반드시 精一(정일)을 기하여 붓을 아무리 던져도 똑같지 않음이 없는 후에야 비로소 스스로 一家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7. 書法 書藝(서예)의 書法(서법)은 한 시대 한 개인의 특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설 속의 蒼署(창힐)이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漢文字(한문자)를 만든 이후 書藝는 약 五千年 동안 東洋人의 生活과 文字의 변화와 함께 자연적으로 숭고한 정신성과 審美性(심미성)을 가진 동양의 學藝(학예)로서 그 시대, 시운을 말해주면서 발전을 계속하여 현재에까지 이른 것이다. 黃庭堅(황정견)은 [가장 꺼리는 것은 꾸미려(裝綴:장철)함이니 곧 글씨를 이루지 못한다]하였고, 또한 [古帖(고첩)을 臨(임)하지 아니하면 古人(고인)의 一定(일정)한 法을 알지 못할 것이고 ,古帖(고첩)을 널리 臨(임)하지 않는다면 古人(고인)의 一定(일정)한 法이 없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말의 뜻은 각각의 고첩을 임할 때에는 일정한 법이 있음을 알 때까지 노력해야 하고, 이것을 토대로 공부하면 자연히 일정한 법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
출처: 古方의 溫故知新 원문보기 글쓴이: 고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