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내 이야기 – 정체를 밝히다 (1)
지난 해 겨울, 첫 만남을 가졌던 이 녀석과의 두 번째 겨울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테라스 한 켠에 마련된 야용이 전용식당이 이젠 제법 크게 그리고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모두 아내의 작품이다. 아이들에 관한 한 남편들의 발언권이 늘 맥을 못 추듯, 이 녀석에 대해서도 난 별 힘이 없다. 더욱이 이 녀석은 아내가 식사를 담아 줄 땐 손길을 허용하지만 내가 그럴 경우엔 줄행랑을 쳐버린다. 암컷이라 남자들을 경계하는 것인가? 씁쓸한 나의 독백이 시작된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니 엄마가 산 음식은 모두 아빠 돈이야. 이 몹쓸 가시나“
고양이들이 다니는 길은 루트가 매우 흡사하다. 더욱이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구역 내에 들어 오면 감시를 하며 다닌다. 낮에는 다른 고양이들이 우리 집 창가에 서성인다. 아내는 우리 야옹이의 전용식당에 다른 녀석들이 몸을 비비며 구역표시를 할까 경계를 서곤 했다. 그리고 이 수색고양이들이 모두 귀대한 일몰시간이 넘어서야 뒤 집 담을 넘어 등장하는 이 녀석의 정체는 늘 궁금함 그 자체였다.
그 동안의 수 차례 반복했던 잠복과 미행을 통해 이 아이가 활동하는 지역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구글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영역을 확정하고, 예상 후보지에 큰 아들 녀석이 고안한 전단지 (Do
You Know Me? : Wer Kennt Mich?)를 여기저기 붙이고, 아내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애타게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 날 때 마다 발 품을 팔았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인근 동물병원을 찾아 가 사진을 보여줘도 아는 의사는 없었다. 혹시나 목에 정보가 입력된 칩이 내장돼 있을지 몰라 스캐너도 구입했다. 하지만 도통 이 아이에 관한 것은 알아 낼 수 없었다. 그 때 겪었던 경험과 감동은 ‘③ 독일이야기‘에서 다시 거론토록 하겠다.
우리 가족은 2014년 6월 말이면 독일에서 철수 하게 된다. 내겐 아들이 둘이 있는데,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둘째는 대학 입학을 위해 떠나야 하고, 미국에 있던 첫 째는 여름부터 1년 여를 한국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아내가 더 이상 독일에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욱이 부임기간이 오래 된 나로서는 언제든지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던 참이다.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회사사택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아이를 혼자 놓고 홀연히 떠난다는 것이 우리 가족에겐 슬픔이었다. 비록 이름과 집도 모르고, 아직까지 마음을 제대로 열지 않은 새침때기 고양일지라도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과 훈훈한 온정을 불어 넣어 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만약 주인을 찾게 되면 한국으로 데려 가게 끔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할까 생각도 해 보고, 밥을 줄 때 낚아 체 강제로 데리고 가는 방안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고양이는 집에 있건, 밖에 나가건 자신의 구역을 표시하는 습성이 있다. 만약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밖에 나가게 되면 외부 생활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길을 헤매게 되고 결국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케이지에 넣어 외출해야 한다. 반대로 길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게 되면 밖으로 나가려는 습성이 생긴다. 새로운 외부환경이 그 전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경우 이 고양이 또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다.
독일에선 고양이를 반 야생으로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집 안에서 주로 생활하지만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고양이 전용 문을 설치해 주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러한 문이 없을 경우엔 우는 소리를 통해 주인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조른다. 대체로 고양이가 강아지에 비해 키우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데 행동교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하지만 고양이는 훈련소에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고양이를 위한 훈련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으로 고양이를 데려가 키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란 것을 알았다. 아울러 자연환경이 더 없이 훌륭한 이 곳을 포기시킨 다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한국으로 데리고 가는 계획은 접기로 했다. 그러나 꼭 사는 곳을 찾아 내고야 말겠다.
전단지 효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감동한 이웃들이 보내 온 격려 전화와 메일은 큰 힘이 되었다. “저희 집에 1년 반 동안 찾아와 가족이 된 사랑스런 이 고양이에게 이별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6월 이면 고국으로 돌아 가야 하기 때문에 주인을 꼭 찾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던 겨울도 종착역을 향하고 있었다. 봄 기운이 완연했고, 봄이면 시작되는 발정소리가 새벽에 들리기도 했다. 우리 내외는 혹시 선물로 이 녀석이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 새끼나 한 마리 데려 오렴“ 즐거운 상상과 함께 사방으로 수소문은 계속 됐다.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결국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다. 전단지 내용을 중심으로 광고게재를 했고, 이 내용은 지역사회에 퍼져 나갔다. 여러 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를 받을 땐 표현하기 묘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만약 다른 고양이에 관한 것으로 확인되면 실망이 커지기도 했다. 제보와 상관 없는 격려 전화도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큰 기대를 했던 신문광고도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리게 된다 <계속>
첨부 : 전단지 내용
final_cat flyer04.pdf
첫댓글 재미있는 드라마 같으네요. 다음 글이 빨리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영화화 하시면 어떨까요?
지금은 8월인데 독일에서 철수하시고 한국에 돌아오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