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
최근 찾은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에서 한 다세대 연립주택 외벽을 가득 메운 글귀다. 오래 전에 쓰였는지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거대한 글귀 아래로 1층 작은 슈퍼마켓에선 한 할머니가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한 7년 됐나? 동네 사람들 다 지쳐가."
20년 넘게 서부이촌동에서 살았다는 김모 할머니(71)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이야기에 지친 표정을 지었다. 화기애애하던 동네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얼굴을 마주하던 동네 주민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할머니는 "이젠 가게도 빈 곳이 많잖아. 옛날엔 대림아파트 앞에 얼마나 많았는데. 거기서 다들 얘기하고 놀고…."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지구 개발사업이 시작한지 사실상 무산된지 2개월여가 지났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 불렸던 이 사업은 갈등과 법정소송만을 남겼다. 지난 17일엔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사장직에서 사퇴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발사업 논란에 결국 피해주민인 서부이촌동 주민들만 분통을 토하고 있다.
정체된 거래, 공인중개사도 답답해
주민들의 고통은 2007년 서부이촌동 일대 12만㎡가 용산국제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에 편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특별계획구역에는 대림ㆍ북한강성원ㆍ동원ㆍ중산ㆍ시범 아파트 1600여 가구와 연립 및 단독주택 6000여 가구가 포함됐다.
여기에 서울시가 투기 바람을 막기 위해 이주대책 기준일인 2007년 8월 30일 이후 입주자는 분양권에 제한을 뒀다. 사실상 거래를 막은 셈이다.
서부이촌동 대림 아파트 앞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 박모씨는 "거래가 없어 계속 정체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채무불이행 사태까지 겹쳐 상황은 더 악화됐다.
그는 "대림아파트 59㎡형 전세가 1억6000만원대에 나왔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어 공실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대림아파트 옆에 있는 북한강 성원아파트의 59㎡ 전세도 한 달새 1000만원이 떨어진 2억~2억1000만원에 나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전세거래만 한달에 겨우 3~4건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매 거래도 가뭄이 들었다. 4월 들어 저가 매도세도 간혹 있지만 매도와 매수자간의 가격 차이가 커 계약성사가 안 되는 경우들도 있다. 6년 전 개발사업 발표와 함께 무섭게 시세가 오르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당시 대림아파트 84㎡ 매매가격은 12억을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서부이촌동 행운부동산 관계자는 "수요가 없어 경매로만 나온 매물들만 거래된다"고 말했다. 매매가 제한돼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은 경매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가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일대 상가 5곳 중 1곳이 빈 곳이었다. 5년 전 3.3㎡당 1억5000만원 이상 시세를 유지하던 일은 이젠 옛 일이 됐다. 슈퍼마켓·PC방·호프집 등은 간판만 걸린 채 굳게 문이 잠겨있었다. 특히 문이 잠긴 공인중개사무소들도 눈에 띄었다. 어느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간판만 걸린 채 안에서는 채소를 팔고 있었다.
서부이촌동 주민, 여전히 뜨거운 분노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분노는 여전했다. 더운 날씨에도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는 대책위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파트 여기저기에 걸린 '드림허브 관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도 걸려 있었다.
성원 아파트 입구에 마련된 서부이촌동 아파트 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는 김갑선 총무가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 총무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화가 용산사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서부이촌동아파트연합비상대책위원회는 용산개발사업 특별계획구역 5개 1600여 세대 주민들이 만든 단체다.
2007년 5개 아파트 주민의 79%가 용산사업개발을 반대했다. 그 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서울시에 개발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2008년 1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함께 사무실을 지키던 이영희 서부이촌동 아파트 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이사장은 "한 마디 상의 없이 강제로 개발에 편입시킨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개인 이익 챙기기에 바빠 죄 없는 주민들을 이리 힘들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서부이촌동에 뿌리를 내리고 산 주민들에게 용산개발사업은 아물기 힘든 큰 상처"라며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책임자들의 마음이 담긴 사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찾은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에서 한 다세대 연립주택 외벽을 가득 메운 글귀다. 오래 전에 쓰였는지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거대한 글귀 아래로 1층 작은 슈퍼마켓에선 한 할머니가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한 7년 됐나? 동네 사람들 다 지쳐가."
20년 넘게 서부이촌동에서 살았다는 김모 할머니(71)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이야기에 지친 표정을 지었다. 화기애애하던 동네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얼굴을 마주하던 동네 주민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할머니는 "이젠 가게도 빈 곳이 많잖아. 옛날엔 대림아파트 앞에 얼마나 많았는데. 거기서 다들 얘기하고 놀고…." 할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지구 개발사업이 시작한지 사실상 무산된지 2개월여가 지났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 불렸던 이 사업은 갈등과 법정소송만을 남겼다. 지난 17일엔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사장직에서 사퇴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발사업 논란에 결국 피해주민인 서부이촌동 주민들만 분통을 토하고 있다.
정체된 거래, 공인중개사도 답답해
주민들의 고통은 2007년 서부이촌동 일대 12만㎡가 용산국제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에 편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특별계획구역에는 대림ㆍ북한강성원ㆍ동원ㆍ중산ㆍ시범 아파트 1600여 가구와 연립 및 단독주택 6000여 가구가 포함됐다.
여기에 서울시가 투기 바람을 막기 위해 이주대책 기준일인 2007년 8월 30일 이후 입주자는 분양권에 제한을 뒀다. 사실상 거래를 막은 셈이다.
서부이촌동 대림 아파트 앞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 박모씨는 "거래가 없어 계속 정체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채무불이행 사태까지 겹쳐 상황은 더 악화됐다.
그는 "대림아파트 59㎡형 전세가 1억6000만원대에 나왔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어 공실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라고 했다. 대림아파트 옆에 있는 북한강 성원아파트의 59㎡ 전세도 한 달새 1000만원이 떨어진 2억~2억1000만원에 나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전세거래만 한달에 겨우 3~4건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매 거래도 가뭄이 들었다. 4월 들어 저가 매도세도 간혹 있지만 매도와 매수자간의 가격 차이가 커 계약성사가 안 되는 경우들도 있다. 6년 전 개발사업 발표와 함께 무섭게 시세가 오르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당시 대림아파트 84㎡ 매매가격은 12억을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 서부이촌동의 한 다세대 연립주택. '서민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라는 글귀에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선 용산개발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글귀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서부이촌동 행운부동산 관계자는 "수요가 없어 경매로만 나온 매물들만 거래된다"고 말했다. 매매가 제한돼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은 경매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가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일대 상가 5곳 중 1곳이 빈 곳이었다. 5년 전 3.3㎡당 1억5000만원 이상 시세를 유지하던 일은 이젠 옛 일이 됐다. 슈퍼마켓·PC방·호프집 등은 간판만 걸린 채 굳게 문이 잠겨있었다. 특히 문이 잠긴 공인중개사무소들도 눈에 띄었다. 어느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간판만 걸린 채 안에서는 채소를 팔고 있었다.
서부이촌동 주민, 여전히 뜨거운 분노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분노는 여전했다. 더운 날씨에도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는 대책위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파트 여기저기에 걸린 '드림허브 관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도 걸려 있었다.
성원 아파트 입구에 마련된 서부이촌동 아파트 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는 김갑선 총무가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 총무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화가 용산사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서부이촌동아파트연합비상대책위원회는 용산개발사업 특별계획구역 5개 1600여 세대 주민들이 만든 단체다.
2007년 5개 아파트 주민의 79%가 용산사업개발을 반대했다. 그 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서울시에 개발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이에 주민들은 2008년 1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함께 사무실을 지키던 이영희 서부이촌동 아파트 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이사장은 "한 마디 상의 없이 강제로 개발에 편입시킨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개인 이익 챙기기에 바빠 죄 없는 주민들을 이리 힘들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서부이촌동에 뿌리를 내리고 산 주민들에게 용산개발사업은 아물기 힘든 큰 상처"라며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책임자들의 마음이 담긴 사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