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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벽이 너무 찰듯하여 늑장을 부리다
허겁지겁 뒷산이라도 쫒아가 일출을 봐야만
새해가 기쁠 듯 하여
허겁지겁 산엘 올랐습니다.
내가 아는 평화동을 휘감은 학산 봉우리는 크게
셋이 있지요.
작년 언제부터인가 돌탑이 멋지게 세워진 봉우리,
산불 감시용 가건물이 있는 봉우리,
그리고 가장 높은 학산 봉우리,
그런데 학산 정상 봉우리에 올라도 일출을 구경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였더니
저만치 봉우리가 하나 더 있는겝니다.
지난 해 봄인가 고덕산을 간다고 지나며 들렀던 봉우리,
그래서 이제부턴 내 아는 학산 봉우리는 넷이 되었습니다.
그 학산 봉우리에서 일출 사진을 담았습니다.
손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모자에 서리가 흠뻑 내려앉은 줄도 모르고,
태어나 처음 해를 보는 신기한 마음으로
더군다나 새롭게 내 손에 안겨진,
가마솥 안에서 막 꺼낸 듯 따뜻하고,
앙증맞고 고마운 디지털 카메라로
빨갛고 눈부신 일출을 담았습니다.
아직은 서툴러서 정신없이 셔터는 눌렀지만
그나마 건진 건
딱 두 장입니다.
내려오는 길
조그만 저수지 가에 있는 강아지풀도 담아왔습니다.
조그만 풀잎도 새해를 넘기면서까지 눈을 즐겁게 해주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새해 해돋이를 본 탓인지
한해 시작에 힘이 실립니다.
새 카메라에 담은 사진이어서 인지
힘들 때 쳐다보면 힘이 날 듯도 합니다.
이 사진을 보신 분들은
올 한해 더욱 힘차고 건강하시고,
세상 복 죄다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새봄 ]
푸르게 잎을 열라하여
여름 주었더니
열이 난다 가라하고
해 가기전 보시자 하여
울긋불긋 들렀더니
차라리 소복눈 좋다 가시라 하고
겹겹이 안고 배푸시라
겨울을 주었더니
오돌오돌 또 가라하네
새봄이 보고싶어
이젠
봄 달라 하려나.
[생명있는 것들의 아우성]
새 디지털 카메라가 내 품에 들어왔다.
기쁘고 행복하고 기특하다.
접사가 왜 이리 맘에 들게 잘 되는지
쉽게 지나쳐버리는 작은 세계만 담고 싶어진다.
나비의 더듬이며, 잠자리의 날개는 어떨까,
애기똥풀 줄기에 난 하얀 솜털은 또 어떨까...
벌써 숭숭 새싹이 오를 봄이 그리워진다.
작년 어느 마트 꽃가게에서 알팔파와 붉은클로버씨를 구했었다.
달포를 서랍안에서 잠자고 있었을까.
접시에 잘 길러 어린 순을 잘라먹으려는 속셈으로...
레스토랑에서나 구경하는 귀한 어린 순이라기...
생명있는 것치고 예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접시에 얇게 솜을 깔고, 깨알만한 씨를 뿌리고, 물을 호복하게 주었더니
하루만에 흰 줄기가 돋더니, 이틀 새 이만큼 자라서
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씨앗으로 정지된 시간이 물과 온도조건으로 다시 시작되는
생명있는 것의 아우성!
씨안에서 정지되어버린 시간....신비!!!!
씨봉투를 보니 알팔파는 노란 순으로 자라고,
붉은 색 클로버는 푸르게 자란다 하더니
정말 그렇다.
알팔파의 노란 싹은 힘이 없으나 굵을 듯 하고,
붉은 클로버는 푸르게 상큼하지만 여리여리 자랄 듯 하다.
예쁘게 소복히 자란 모습을 보고도 잘라(!) 먹을 수있을까.
생각이 달라질지는 두고봐야겠다.
-->알팔파
-->붉은 클로버
<2005.1.22>
[갈매기의 꿈 ]
가끔씩은 나도 거울을 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큰 꿈을 담고,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려,
설령 깨어난다 하더라도
다시 그 꿈을 보듬고 싶어
깃털도 가다듬고,
부리도 깨끗하게 씻어내고
손도 씻고, 발도 담그고
석양녘이면 더욱 맑아지는
깊디 깊은 나만의 거울에
가깝게 날아 다가가
찬찬히 아주 찬찬히 거울을 봅니다.
가끔씩은 나도 기쁘게
거울을 봅니다.
<2005.1.24>
[눈꽃 핀 모악산]
이보게,
자네 나타나는 모양 볼 요량으로
달 보며 올랐으이.
으스름 새벽 산길
뚝뚝 가쁜 숨 흘리며
그렇게 올랐으이
가다가 달을 보고, 가다가 달을 보고
눈부신 자네를 닮은
잿빛이 푸르러지고
푸르른 눈 빛이 흰색으로 드러나길래
저아래 오던 길을 보았더니
멀리 동산이 발그레 오르더군
아차, 나보다 더 빨리 오를까
허겁지겁 올라가며 보니
가지 새로 쭈삣쭈삣 올라오더라
아차, 가지 없는 곳 찾아 자리잡고 따야하는데
솔가지 없는 곳을 찾았더니
이미 봉긋 올랐더라
아아아악-자네를 불렀다네,
메아리도 안주는 무심한 사람
하지만 반가웠으이
어제 간줄 알았더니
다시 오질 않았나, 이 사람.
[모악산의 봄]
저렇게 시린 속에서
어찌 잠잠히 봄을 맞을꼬
오늘이라서 더 시린 겨울
꽁꽁 울고 있을
네 모양이 서럽구나
돌 계단을 올랐으이
예 넘으면 봉우리인줄 내 다 알지만
헉헉 오르면 정말 꼭대기일까
눈부신
너를 부르면 쫓아올까 싶어
응달로 숨었다.
춥디 추운 응달, 그 봉우리 외진 산길.
그래도 봄은 온다.
겨울타고 미끌미끌-
내 넘어져보니 알겠다
아리고 아파도 봄은 온다.
<2005.2.1>
[ 2005년 1월 31일, 어설피 눈꽃핀 모악산을 오르다]
[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은 본디 가운데 산소원자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수소원자가
104.5 도의 각을 이루며 결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물은 물분자 자체의 공유결합 말고도
이웃 물분자간의 수소결합이라는 특유의 결합력이 있어
얼게 되면 뻥튀기라도 하듯 빈공간을 만들며 부풀어
육각형의 얼음 결정 구조를 만든다.
투명했던 물 빛이 그 사이사이에 공기가 채워져
흰색의 결정 구조인
눈과 얼음을 만든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나무의자여서
한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뾰족뾰족 눈결정으로
모악산 중턱 나무의자에서 얼어버렸다.
폴폴 내리다 의자에 잠깐 쉬려는데
동장군이라는 놈이
"얼음!"했나보다.
바위에도 눈이 붙었다.
비열이 작아
바위는 더욱 찬데 오죽 시렸을까
오돌오돌 잡혀 떠는 모습이라니
생각할수록 물은 참으로 신비롭다
부풀어 부피가 커졌으니 밀도가 작아져 가벼울 수밖에...
섭씨 4도 물이 가장 무거우니 아래로 가라앉고
섭씨 0도 물이 위로 떠서 얼게되면
또한 가벼워서 물에 동동 뜬다.
참으로 기가막힌 선물이 아닌가.
아담하고 깨끗한 저수지 물도 꽁꽁 떠서 얼었다.
지난 여름 후둑후둑 내리던 비를 잘도 기억하고
꽁꽁 꿈속으로
깊은 꿈속으로 가려한다.
<2005.2.3>
[붉은 토끼풀과 알팔파 ]
붉은 클로버와 알팔파씨를 같은 수반에 뿌렸다.
하루가 지나 꿈틀 알을 까고 나오는 듯 하더니
닷새만에 이렇게 자랐다.
금화채(金花菜)라 불리는 붉은클로버 이녀석도 귀화식물아닐까?
생장속도가 무척 빠르다.
서로 지기 싫은 걸까?
여하튼 서로 이기려는지
서로 돕는 건지
참 잘도 자란다.
[메아리 ]
마음이 가라하여
다 석양에 산을 올랐습니다.
초입 저수지, 잉어가 입질했는지 동글동글 얼어있고
수많은 발자국 도장 꽁꽁 언 산그늘
흰눈이 아직도 차갑습니다.
생각을 떨구었다 주웠다
찬찬히 오르는 산길,
지난 여름 태풍에 스러진 나무
밑둥 시려워 파랗게 떨고 있고
저만치 넘어진 키 큰 낙엽송
외나무 다리에 눈 걸린 듯 하얗습니다.
봉우리 까치가 깍깍 반기기에
헐레벌떡 올랐지만
하늘이 허허(虛虛)로워
메아리도 없습니다.
소원 얹어보아도
차갑게 말이없는 돌탑,
산아래 오두막 흰 강아지 연신 컹컹대어 이상하였더니
아파트 숲 메아리랑 놀고있어 그 모습이 더 부럽습니다.
<2005.2.11>
[중인동 가는 길 ]
오래간만에 좌석버스를 탔습니다.
1350원!
상학가는 길,
몸을 맡겨 낯설었지만 편안하고 따뜻하였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악산 봉우리의 듬성듬성 하얀 눈들,
아차,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모악산 입구에 구이저수지 말고도 또 다른 작은 저수지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혼불 저수지가 이만했을까.
비단길이 아닌 계단길을 택했습니다.
땀방울 뚝뚝 떨구며 발가는 쪽으로 가겠거니....
계곡의 물소리,
뾰족뾰족 조각하며 얼음 녹는 소리,
벌써 갯버들이 비늘을 벗고 봄을 재촉합니다.
완만하게 올라 산 능선을 탈 수 있는 곳이 비단길이라면
퉁퉁부은 몸 이끌고 극기훈련 할 수 있는 곳이 계단길입니다.
헉헉 올라야지,
무거워진 종아리 쉴틈을 주면 봉우리가 멀것이므로...
수왕사 물 한잔 들이키고 또 오릅니다.
중인리 비단길 가는 길은 어두워서 정상가는 길로 가라합니다.
잔설이 반지르르 얼어있는데 얼음길 오르는 것은 자신이 있어
원숭이처럼 터억터억 밀어내며 나무가지랑 춤을 추듯 오릅니다.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칼바람이 제법입니다.
연리지 (連理枝)가 모악산 봉우리 근처에도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였으면 하나되려 하였을까.
나무 의자가 셋 있는 무제봉도 지나고,
왁왁소리 나지 않지만 햇살 받아 부신 눈길에,
똑같은 생각을 떨구웠다 주웠다가 혼자 묻고 답하며 어느새 오른 봉우리,
그 봉우리엔 아직도 눈이 더 많습니다.
마음이 흐린것인지, 하늘이 흐린 것인지
멀리 전주 시내도 흐리고, 구이 저수지도 흐리게만 보입니다.
얼마만에 넘어보는 걸까,
6-7년 전 교직자의 날, 중인초등학교에서 넘어온 것이 가장 최근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두텁게 얼어붙은 중인동 가는 하산길,
주저앉듯 미끌리듯 애먼 나무가지만 잡아채었습니다.
금산사 가는 길, 매봉 가는 길, 중인동 가는 길....
길이 아닌 곳이 더 편했습니다.
나무가지랑 춤추듯 푹푹 디디며 정신없이 내려오다 눈덮인 바위 사진에 담는 것도 잊었습니다.
길다란 능선, 다리가 쉬지 말라하기 뛰다 걷다가...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능선이 어느 논길에 닿아서 다 왔다 생각했더니
중인동 터미널까지도 한참.
갯버들 사진이 어설퍼 혹시나 물가를 쳐다보아도 씨앗떨어진 덩그런 갈대뿐.
혹시 둘 이었으면 따뜻한 두부에 찬 막걸리 쭈욱 들이키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고,
텅비어 미동조차 하지않는 시내버스 기다리려다, 차라리 걷지하며 걸어온 것이
중인초등학교 지나고, 전통문화고 지나고,
금산사 가는 삼거리 정류소에 앉아 십여분,
지나는 차 부러운 듯 바라보다, 먼 산 바라보다....
내 모양이 처량할 듯하여
저만치 오는 시내버스 행선지도 보지않고 얼른 주워탔는데
우리집과는 거리가 멀어 도중에 하차, 850원.
터덜터덜 그렇게 또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흐음, 최근들어 가장 많이 걸어본듯 합니다.
그 기운으로 깊은 잠을 자야겠습니다.
<2005.2.11>
[ 보이지 않는 세상 ]
꿈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좋아졌다.
낙엽에 가려지고 검어서
보이지 않았던 맥문동 열매가 그렇고,
학산 능선에서 가쁜 숨 모으려 짚으려던 소나무에
하마터면 죽을지도 몰랐던
숨죽여 겨울잠 자는 나방이 그러하며,
물길도 먼 능선,
어느 바람에 날려와 힘겹게 자라서
외롭게 힘없이 씨뿌리는 억새가 그러하다.
가까이 보니 큰 꿈 꾸고 있었던 것을
내 몰랐으니 나 또한 미물인 것을.
사랑을 가르쳐준 세상
서럽고 고마워서.
꿈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좋아졌다.
낙엽에 가려지고 검어서
보이지 않았던 맥문동 열매가 그렇고,
학산 능선에서 가쁜 숨 모으려 짚으려던 소나무에
하마터면 죽을지도 몰랐던
숨죽여 겨울잠 자는 나방이 그러하며,
물길도 먼 능선,
어느 바람에 날려와 힘겹게 자라서
외롭게 힘없이 씨뿌리는 억새가 그러하다.
가까이 보니 큰 꿈 꾸고 있었던 것을
내 몰랐으니 나 또한 미물인 것을.
사랑을 가르쳐준 세상
서럽고 고마워서.
꿈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좋아졌다.
낙엽에 가려지고 검어서
보이지 않았던 맥문동 열매가 그렇고,
학산 능선에서 가쁜 숨 모으려 짚으려던 소나무에
하마터면 죽을지도 몰랐던
숨죽여 겨울잠 자는 나방이 그러하며,
물길도 먼 능선,
어느 바람에 날려와 힘겹게 자라서
외롭게 힘없이 씨뿌리는 억새가 그러하다.
가까이 보니 큰 꿈 꾸고 있었던 것을
내 몰랐으니 나 또한 미물인 것을.
사랑을 가르쳐준 세상
서럽고 고마워서.
<2005.2.12>
[해넘이와 달넘이 ]
해가 넘어갈 즈음 산을 내려왔습니다.
설레이는 해돋이보다
편안한 해넘이가 더 포근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산 그늘에 어렴풋한 온갖 그림자들
다 편안히 쉬시라 다독이는 엄마손 닮질 않았습니까.
이런 밤은
달처럼 마음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럽고 부족하면 반쯤은 숨길 수도 있는 초승달이나,
설레이고 기쁘면 환하게 부푸는 보름달이나,
지치고 힘겨우면 밤새 숨어 우는 그믐달처럼.
마음이 죄다 보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2005.2.12>
[기도 ]
모든 것이
소망한대로 이루어지기를.
마음 속에 간직했던 모든 꿈들이
부서지지 않고
사랑스러우며
따뜻하게.
이른 새벽
흔적없이
놓고 왔던 애틋한 마음으로
쌓고 또 쌓여지기를.
훗날 당신의
푸른 이끼를 보러오겠습니다.
<2005.2.14>
[흰 초가집 ]
눈쌓인 초가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또 있을까
둥근 곡선을 그리는 지붕,
그 위에 둥글고 소담스레 쌓인 눈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흙으로 빚은 굴뚝에서
흰 연기까지 오른다면,
부엌에서 뭉게뭉게 새어나오는
가마솥 흰쌀밥 구수하게 익는 냄새까지 섞여진다면,
또 그 온기에 오들오들 밤새 떨던
초가 처마 긴 고드름 살며시 녹아 내린다면.
아, 그리운 초가
흰 초가집.
1년 뒤 보는 사진,
정말 내 살던 시골집
초가를 똑 닮았다.
눈쌓인 초가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또 있을까
둥근 곡선을 그리는 지붕,
그 위에 둥글고 소담스레 쌓인 눈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흙으로 빚은 굴뚝에서
흰 연기까지 오른다면,
부엌에서 뭉게뭉게 새어나오는
가마솥 흰쌀밥 구수하게 익는 냄새까지 섞여진다면,
또 그 온기에 오들오들 밤새 떨던
초가 처마 긴 고드름 살며시 녹아 내린다면.
아, 그리운 초가
흰 초가집.
1년 뒤 보는 사진,
정말 내 살던 시골집
초가를 똑 닮았다.
<2005.2.15>
[얼음 꽃 그리고 눈물 ]
덕유산 자락 손닿기 어려운 곳에
얼음꽃이 잔뜩 피었다.
빛을 받아 더욱 눈부신 발아래 얼음꽃,
후둑후둑 봄에 쫓기고 있다.
밤새 울었는지
나무가 눈물을 흘린다.
눈물, 눈물......
꽃눈일까, 잎눈일까.
[기다림, 그리고 시작 ]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몰래
어둡고 차갑고,
따뜻한 온기 한켠 없는 좁은 그 곳에서
봄 나고, 여름 나고, 가을 나고
그리고 눈도 없이 추웠던 지난 겨울.
얼마나 시린 외로움을 삼켰을까,
외면하고 지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밉고 서러웠을까
숨죽이고 살았던 일 년,
그 기다림조차 있는 줄도 몰랐더니
그 메말랐던 흙 안에서
큭큭소리도 없이 용케도 기다려주었구나.
기쁘고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꽃을 보여주겠니,
애태워 기다림을 세려한다.
차라리 설레임일까.
[마흔 세 살의 새벽]
보름 달이 뜨고 또 사흘,
일그러진 달이 머리 위에 올라왔다.
구름에 다리 괴고 쉬는 달을 우러르다
술내나고 따뜻한 물로
으슥하게 감춰진 찬 콘크리트 벽에 그림을 그렸다.
의미도 없는
그저 중력으로 그려지는.
무거운 하늘,
무거운 새벽 달,
곤두박질 하는 마흔 세살의 새벽,
땅도 차고
달아래 총총한 별 빛조차 무겁다.
눈물나게 부서지는 달 빛,
손사래를 치며 멀어져 온 등 뒤로
담배 권하는 친구의 쇤 목소리가 정겨울 뿐.
<2005.2.27>
[내가 새라면 ]
내가 새라면,
혹시 새로 될 수 있다면,
해가 잠자러 가는 곳 쯤에 있는
저기 아득히도 먼,
보이지도 않을 듯 먼 먼 외딴 섬엘 가겠습니다.
훨훨 날개짓하고
지친듯이 날아 날아서
바닷바람 견디어 낸 넓고 따스한 그 갯바위에 다다르면
사람처럼 벌렁 누워
웃으며 날아오는 붉은 해를 안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치 사람이라도 된 것 처럼
날개를 다소곳이 뺨에 모으고 옆으로 누워
깊디 깊은 잠을 자겠습니다.
남당리 포구로 쏟아지는 석양의 난반사,
막바지 해풍 만큼이나
몸을 움츠리게 눈부시다.
갈매기들의 휴식,
물에 뜨고 바람에 뜨고, 또 날리우고
저들도 장난을 알까.
내가 구경하는 걸까,
그들이 날 내려다 보고 있는결까.
<2005.2.28>
[ 진눈개비 ]
진눈개비가,
깨알같은 진눈개비가
봄의 실루엣처럼
간지럽게 쌓였다
새 날 아침에.
그렇게 길었더니
아직 겨울이 속내인가.
몸이 파르르 떨려와
쉴 곳을 찾았더니
차라리 그 바람이 봄인 것을.
봄으로 내쳐져
빗줄기같은 진눈개비,
어두운 퇴근 길,
전조등에 뚝뚝 박힌다.
<2005.3.3>
[새벽 길 ]
아이를 찾다가,
정신을 차리다가,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다가,
북두성이 쏟는 국물에 데일까
혼자 피하다가.....
새벽 길,
약이 오르게 별이 총총한 새벽 길,
아무런 생각없이 달려왔더니
한산한 교차로,
아침이 더 가까운 이 새벽에
시내라고
아직도 술을 치는
강적들.....
<2005.3.4>
[ 해가 질 무렵]
가끔
해가 무척 커 보일 때가 있다.
뿌연 도시의 먼지위를 질주하며
더욱 붉어진 노을,
그 붉디 붉은 빛 줄기가
마지막 이글거림으로
전신주 사이를 휘청이며 달려온다.
지쳐서 눈부심도 사라진
해가 질 무렵,
마음도 붉어져 서산을 넘는다.
<2005.3.4>
[秒 ]
새 날부터 사흘
24시간 곱하기 60분, 1440분!
1440분 곱하기 60초, 86400초!
86,400초 곱하기 사흘, 259,200초!
259,200곱하기 300,000킬로미터,
77,760,000,000킬로미터!
다시 나누기 1억 5천만,
다시 나누기 40!
13!
떨고 있는 봄 빛으로 사흘 동안
겨우 명왕성을 여섯 번
다녀왔다.
하루살이가 이 나이쯤 살까,
인간이 느끼는 시간쯤이
제 나이일지도 모르지.
강원도 폭설,
반절만 퍼왔으면 좋겠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하얗게 눈부신
차라리, 그런 봄이었음 좋겠다.
<2005.3.5>
[눈 내리는 3월 ]
驚蟄에 눈이 와버렸습니다.
햇살을 보고 잠시 나갔다 왔더니
앞산으로 눈이 펑펑 떨어집니다.
취한 듯 바라보는 눈 내리는 3월,
화단 전나무도 하얗고,
운동장도 하얗고,
뒷뜰도 하얗고,
낮은 뒷산도 하얗습니다.
이런, 마음의 봄만큼이나 봄이
저만큼 멀리 또 달아났습니다.
폴폴 내리는 눈에 산도 슴었습니다.
작은 호숫가에도 대낮에 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잠시 차창을 열고 홀로 바라보는
눈 내리는 3월,
소리없이 받아내는 수심(水心)인 듯,
저 그림 그대로 내 마음을 흉내냅니다.
하얗고 뿌연
겨울 아지랭이 그려내는 물결,
겨울이
달아날 곳 조차 모르고 고요합니다.
<2005.3.6>
[옛 생각 ]
문득 나 다니던 국민학교엘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넓고 높았던 교문은 방문만하고,
경사진 교문앞 콘크리트도 그대로,
화단도 그대로,
어머니회에서 기증했던 벤치도 그대로
플라타너스도 그대로
사이좋은 어린이 그 동상 그대로입니다.
헌데, 1층이던 본관이 2층으로 높아져 있고,
친구 아버님 꿋꿋하게 지키시던
살구나무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도 거스르고
30년전 그 모습이 참 많이도 남았습니다.
문득 나 다니던 국민학교엘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넓고 높았던 교문은 방문만하고,
경사진 교문앞 콘크리트도 그대로,
화단도 그대로,
어머니회에서 기증했던 벤치도 그대로
플라타너스도 그대로
사이좋은 어린이 그 동상 그대로입니다.
헌데, 1층이던 본관이 2층으로 높아져 있고,
친구 아버님 꿋꿋하게 지키시던
살구나무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도 거스르고
30년전 그 모습이 참 많이도 남았습니다.
<2005.3.6>
[봄이 오는 산행 길 ]
학산 하산길,
돌 탑위 이끼가 초록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름모를 나무의 잎눈도 봄을 훔쳐본다.
방죽 옆을 지나는 밭둑길에
어느새 오른 연한 쑥잎도 하늘색을 닮아간다.
공원 화단에 제법 키가 큰 산수유는,
작년 가을 붉어진 열매를
겨울 바람에 떨게하더니
이젠 나몰라라 노란 새꽃망울을 틔우려
한껏 부풀어 있다.
<2005.3.6>
[빛과 가로등 ]
꿈을 새겼습니다.
색도 없고, 미동도 없이
차갑게 조각(彫刻)된 빛과 가로등,
그 안에서 새 소리가 납니다.
눈부신 저 가로등안에
빛을 먹고 사는
따뜻한 새 소리가 납니다.
달도 없는 그믐 밤이라
차라리 따스한
빛과
가로등.
[봄이 오는 소리 ]
기어이 봄이 옵니다.
아직은 겨울이어서
애써 기다리지 않았어도
계곡을 흐르는 단 맛 나는 봄 물 타고
춤추듯 봄이 옵니다.
그늘진 응달 얼음이 제 몸 부서져라 잡아도,
3월 주먹만한 함박눈으로 깜짝 놀래주어도,
미끌리듯, 썰매를 타듯, 비아냥 거리듯
그렇게 낼름거리며
바위이끼를 타고
봄은 빨리도 다가 옵니다.
양지바른 모악산 아래 계곡 옆으로
글쎄 갯버들이
어느새 한창이란 말입니다.
기어이 봄이 옵니다.
아직은 겨울이어서
애써 기다리지 않았어도
계곡을 흐르는 단 맛 나는 봄 물 타고
춤추듯 봄이 옵니다.
그늘진 응달 얼음이 제 몸 부서져라 잡아도,
3월 주먹만한 함박눈으로 깜짝 놀래주어도,
미끌리듯, 썰매를 타듯, 비아냥 거리듯
그렇게 낼름거리며
바위이끼를 타고
봄은 빨리도 다가 옵니다.
양지바른 모악산 아래 계곡 옆으로
글쎄 갯버들이
어느새 한창이란 말입니다.
<2005년 3월 8일>
[봄이 왔으니 ]
봄의 향기에는 연한 풀 냄새가 베어있습니다.
만덕산 마른 솔잎 밀어내는 제비꽃 냄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에 실려온 봄의 소리는 어떻구요.
자꾸만 흐르는 눈물 훔치는 소리입니다.
모래 알까지 다 보여주며 얼음 밑으로 녹아흐르는 잔잔한 모악산 계곡 물소리를
너무 오래 들어 그리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서러움인지,
눈물 맛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었으므로
기쁨이라 믿고 싶을 뿐이지요.
호수를 비껴가는 한적한 출근길에도 갯버들이 숨죽여 다툽니다.
네 봄, 내 봄
아! 생각해보니
버들피리 만들던 손에서 맡았던 그 풀 냄새가 베어있습니다.
새싹이 다투어 오르던 그 봄,
작은 개울가에서 봄비 맞으며 꺾어왔던 그 가지,
그 가지 만지던 그 향기 말이지요.
그 향기이면
얼었던 눈물도 마르겠지요.
지루하던 아픔까지도 봄눈 녹듯 녹을겝니다.
봄이 왔으니 반드시 그리 될겝니다.
<2005.3.11>
[눈 내리는 봄 ]]
안개 뿌연 아침
비가 오고, 눈도 옵니다.
봄이라는 것인지
겨울이라는 것인지
누구 말맞다나
웃기는 봄입니다
웃기는 겨울입니다.
겨울이,
봄이
앞뒤 가리지 못하는건가요
참말로
하늘도 헛갈리나 봅니다.
웃으며 단꿈 꾸는 애기같은 겨울을
흔들어 깨우기가
하늘도 심란했나 보지요.
[거울 위를 나는 새 ]
소리도 없이
한 무리의 새가 날아갑니다.
구름 듬성한 눈부신 봄 하늘,
그 하늘 그려진 옥빛 거울 위로
훠얼 훠얼 잘도 미끄러져 갑니다.
그 자리,
하얗게 떨구고 간 모래알같은 포말들,
긴 사연이 분명한데
얄궂은 봄 바람에 흔들려서
차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날아가 버린
일렁이는 옥빛 거울 위로
빈 하늘만 너울너울,
차라리 깊은 물 속 뒤져보라 합니다.
[ 무제 ]
내, 눈물 다 닳도록 서럽게
약 좀 오르는 일이 생겼으면 싶다.
벽이 으깨지도록 머리를 쪼아대고,
온몸에 부르르 경련이 나도록
약 좀 오르는 일이 생겼으면 싶다,
같잖은 이 나이에
하늘도 높고
물마저 깊다.
하늘하늘 높고, 푸르게 깊어서
차마 닿기 힘들다 핑계대는 이 꼴답지 않은 마흔에
속이 뒤집히도록 약 좀 오를 일이 생겼으면 싶다.
흔들흔들 그렇게라도 해야
이놈의 세상이,
손으로 하늘 가리고 겨우 흐느적대는
땅밟기조차 버거운 이 세상이,
겨우 바로 보일 판이다
< 2005.3.15>
[ 무제(2) ]
봄이 참 늦습니다.
이맘쯤이면
북극성 바라며 목련꽃 봉오리 수줍게 문열고
어느 산 그늘 생강꽃 노랗게 피어서
정신없이 갈 것이지만,
춘 삼월이 부끄럽게
작년 가을부터 작정하고 준비했던 꽃 눈들
앙다물고 이 봄만 탓합니다.
아직도 생강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안개 자욱한 아침,
좋은 아침이라 주문을 외우면
씻은 듯 걷힐 것같아 입안에 맴맴,
낮달같이 중천에 걸린 눈치없는 하얀 해란 놈이
숨박꼭질하며 길잡이합니다.
그래도 어제 내린 비는 봄 비였나 봅니다.
화단 회양목 아래 몰래 올라온 토끼풀이
아침 이슬을 머금고
어서 저 좀 봐달라합니다.
봉숭아 물들인 어린아이 새끼손톱만큼이나
앙증맞은 입으로
쪼록쪼록 봄물을 들이킵니다.
참 많이도 마음을 아껴가고 있습니다.
이제
산 길에,
그 길가 나무에,
그 산 아래 물가에
색을 칠해야겠습니다.
조심조심 봄냄새 맡고 산을 꿈꾸시라
고운 흙으로만 들꽃길, 오솔길도 칠해야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귀한 물감을 구하러 가렵니다.
<2005.3.16>
[ 산 그림자]
해가 산을 넘고서야
네 모습을 볼 수 있구나
무심히 남기고 간
흔적이나 떠갈까
차라리 네 뒤 숨은
빨간 해를 데려갈까
<2005.3.17>
[ 눈먼 하루살이와 투명인간 ]
나는야
눈 먼 하루살이
얼마나 긴 하루인가,
또 얼마나 먼 황혼을 삼키다
까무러쳐야 하는가
매일 죽고
또 매일 산다.
투명인간 무등타고
오늘도 어제처럼
나는야 일터에 간다.
태어나자 봄이 왔고 또 비가 왔으니
죽을 즈음 비가 갤까
이 생엔
빗물에 날개 젖어 태어났으니
평생
무등만 타야겠다.
<2005.3.17>
[흙길 ]
흙길이 좋다.
한적한 시골 길이면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
어릴 적 내 동네 앞길도 이런 길이었다.
침탈 부역으로 만든 신작로가 아니였어도
그보다 때깔좋은 길은 어디에도 있었다.
꼭꼭 다져지고 싸리비로 단장해서 황톳빛 철철 넘치는 마을 길.
봄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조막만하고, 공기돌 만한 돌 틈으로
아지랭이 솜털처럼 내뿜던 달구지 길,
소나무 향 물씬 풍기고 솔바람이 귀밑 간지르던 오솔길.
그 어느 것 하나 비단 풀, 냉이 꽃, 씀바귀, 꽃다지, 괭이밥,
그 어릴 적엔 이름도 몰랐던 봄 풀들이
발길을 잡지 않았던 길은 없었다.
행여 걷는 발길에 돌이라도 톡 채이면 발로 저만치 차보기도 하고,
몇 녀석 골라 구슬치기하는 재미도 솔솔했다.
6학년 겨울, 자전거를 처음 배웠었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10킬로나 되는 등교길 매일 다니려면 당연히 배웠어야 했다.
불안불안 흔들흔들 처음으로 누군가의 도움없이 두 바퀴로 달렸을 때
그 기쁨과 황홀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길을 따라 마을 앞을 몇 개를 지났을까,
저만치 걸어서 앞서가는 어른 한 분을 그 넓은 길에서 추월할 수도 없고,
브레이크를 잡을 줄도 몰라 그대로 "받아"버렸다.
넘어진 후에야 "따릉따릉" 벨을 울렸더니
어처구니 없는 듯 웃어주던 얼굴도 기억나지 않던 촌부.
가끔씩 커다란 중장비가 지나가며 도로를 닦는다고
온통 자갈길로 만들어 놓기라도 하는 때면
쫓아가 물어내라고 울부짖고도 싶었지만,
봄비라도 며칠 오고 또 다져지면 울퉁불퉁 물 고이는 옛모습을 찾아가니
언제라도 정겹고 사랑스러웠던 그런 길,
30년 전 기억속의 시골길이다.
가끔씩 시골 길을 걷고 싶다.
푸른하늘이 보듬고 있는 저 언덕을 넘어
잔잔한 외할머니 웃음으로 애썼다 손잡아 줄
도닥거림이
미치도록 그리워질 때는 더욱 그렇다.
길옆엔 가끔씩 까치가 놀라 달아나고,
햇살 밝은 그 자리에 숭숭 봄풀이 돋아나니
또 어찌 따뜻하지 않을까.
이 길 초입엔 주황색 하늘나리가 있고
이 길 끝엔 연노랑 생강나무도 있다.
어느 내리막쯤엔 보라색 제비꽃도 두텁게 쌓인 솔잎을 거뜬히 밀고 고개를 내민다.
먼 기억으로 떠나려는 푸릇한 봄냄새를 여기에서나 찾을까
숲을 지나는 시골길을
아직은 맨 살 가지 다 드러나 조금은 부끄러운 그 산길을,
두리번두리번 덜컹덜컹 내려간다.
<2005.3.20>
[ 긴 여행, 그 시작 ]
바위에 몸붙이고
그나마 제 모습 보이며
겨우내
한껏 꿈꾸던 고드름도
떠나야 할 이유를 아느니.
눈물이 아니다.
길고 긴 여행길,
그 시작일 뿐이다.
그 끝엔 네 뒤를 쫓아가는
질긴 만남이 있으리니.
<2005.3.20>
[기찻길 ]
고향 뒷산 너머가 아니어도
기차 발자국 소리를
가깝게 들을 수 있으니
자꾸 여기에 섭니다.
가을색으로 분칠한
셀 수 없는 차돌 그리고 枕木,
어느 산 바위,
어느 집 밤나무,
어느 산 소나무였을꼬,
단내나게 기름칠한 연륜,
그 枕木을 감싸는 긴 동행,
끊어질줄 모르는 인연.
그래서인지
높은 하늘에서 보면,
가끔씩은 쉬어가라
둥그렇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