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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재사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산아
♣ — 칼라파타르, 생애의 고지(高地)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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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HIMALAYA ; Sagramatha National Park
2017—[Khumbu Himal] EVEREST.B.C. TREKKING — (3)
▶ 3월 30일 (목요일) * [EBC 트레킹 제4일]
*<카투만두>→ <루클라>→<벵카르>*
* [기상악화로 하루를 기다린 끝에] — 쿰부히말의 관문 루클라에 들다 *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이른 아침, 카투만두 <삼사라호텔>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어제 이어, 오늘 다시 루클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카투만두공항으로 나갔다. 오전 9시 40분, 우리는 드디어 17인승 소형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오늘도 예정보다 두 시간을 더 기다린 끝이었다. 어제의 기상의 악화로 꼬박 하루, 사실 24시간 이상이 지체된 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맙게도 오늘은 ‘하늘이 길을 열어주었다!’ 히말라야의 시간은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自然)의 시간’이다. 조급한 문명의 시간을 내려놓으라는 명(命)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는 네팔이고 히말라야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네팔인의 낙천성을 생각했다.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며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얀 구름이 피어오른 창공(蒼空), 날씨는 화창했다. 정원 17명이 탑승한 작은 비행기이지만 순조롭게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흰 구름 위를 날아가는 작은 비행기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게 날아간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히말라야 첩첩 산중의 골짜기를 위를 날아가는데, 흰 구름이 스쳐가는 아득한 지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스쳐가는 구름 사이로 신록이 무르익어가는 고산의 산록과 그 산록에 띄엄띄엄 보이는 집들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멀리 북쪽으로 뭉실뭉실 솜털 같은 운평선 위로 장대한 히말라야 설산의 연봉이 눈부시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 내내 우리의 시야를 떠나지 않았다. 자세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네팔 국경의 가장 서쪽에 솟은 ‘다울라기리’ 봉에서부터 ‘안나푸르나’ 산군, ‘마나슬루’ 산군들이, 네팔의 동북부에 위치한 ‘에베레스트의 쿰부히말’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비행기의 창을 통하여 장대한 히말라야 설봉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이제 곧, 저 멀고 험한 산속의 길을 가야하는 몸이지만, 경쾌하게 창공을 날아가는 작은 비행기 속에서 설산 연봉이 가슴은 환하게 열어주고 있었다.
기내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 구름 위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의 장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쿰부히말의 고산마을
* [해발 2,840m 고지의 루클라 공항] — 텐징-힐러리공항(‘Tenzing-Hillary Airport Lukla)
오전 10시, ‘루클라(Lukla)’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은 약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루클라는 쿰부히말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마을이다. 오늘은 하늘이 파랗게 개고 화사한 햇살이 내리는 아주 화창한 날씨다. 드디어 하늘이 우리에게 히말라야 입성을 허락하신 것이다.
히말라야 쿰부히말(Khumbu Himal)은, 공식적으로 ‘사그라마타(Sagramatha) 국립공원'이다. 네팔의 동북부, 티벳과의 국경지역에 위치해 있다. 루클라(Lukla, 2,840m)는 그 쿰부히말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큰 마을이다. 이곳은 17인승 소형여객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이 있어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로체, 아마다블람, 담세르쿠, 눕체, 노부체, 임자체(아일랜드 피크) 등의 고봉설산이나 교쿄나 칼라파트르 등 <사그라마타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이다. 비행장이 개설되기 전에는 카투만두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들어오는 데, 꼬박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험난한 고산의 산록에 위치한 마을이다. 1953년 5월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나, 1977년 9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우리나라 고상돈을 비롯한 라인홀트 매스너,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등 전 세계의 모든 에베레스트 원정대와 수많은 산악인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에베레스트에 들어갔다.
1965년 에드먼드 힐러리에 의해, 이곳 루클라(Lukla)에 17인승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해발 2,850m, 두드코시 계곡 절벽 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아주 작은 산중 공항이다. 이곳은 주로 프로펠러 여객기나 경비행기가 내린다. 또한 이륙할 때 위험천만하다. 활주로의 끝이 바로 계곡으로 떨어지는 절벽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활공하지 못하면 비행기는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공항시설은 관제탑과 터미널만 있으며, 기상 악화로 항공기가 자주 결항된다.
비행장은 단 하나의 활주로(滑走路)만 있는데, 그 길이가 200m로 아주 짧다. 특이하게도 평지가 아니라 약 15도 정도의 경사진 산록에 만들어져 짧은 활주로의 단점을 보완했다. 비행기가 내릴 때는 계곡 쪽의 낮은 곳에서부터 라운딩을 하여 경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멈추고, 이륙할 때에는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활주로에서 속도를 붙여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루클라 비행장 - (항공기 계류장)
[활주로] - 절벽으로 쏟아져 날아가기 직전의 소형비행기
[활주로] - 절벽 쪽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
루클라공항은 첩첩 산중의 작은 공항이지만,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공항이다. 공항의 이름을 ‘Tenzing-Hillary Airport Lukla’라고 명명하고 있다. 1953년 5월 23일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셀파 ‘텐징 노르게이’를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에베레스트 관문다운 명칭이다. 우리 이(李) 대장의 설명에 의하면 1965년 힐러리(재단)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힐러리는 자기의 이름보다 ‘텐징’의 이름을 앞세우는 미덕(美德)을 보였다. 세계 최고봉을 오른 사람, 그는 실제로 자신은 낮춘 것이다.
루클라공항 터미널
우리 대원들은 그 루클라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우리 대원들이 비행기에 내려 쿰부히말(Khumbu Himal)로 들어가는 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고 청정하여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화사한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거기에 하얀 구름, 그야말로 티없이 깨끗한 순백의 구름이 크게 띠를 이루어 푸른 하늘에 드리우고 있었다. 작은 비행장은 깊은 산중의 분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멀리 산곡의 하늘에 하늘을 찌르는 암봉설산에 가슴에 치고 들어왔다. 콩데(Kongde, 4,250m)라고 했다. 아, 쿰부히말 지역에 당도하여 루클라공항에 내려 첫 만난 설산고봉이다. 우리가 바로 앞으로 며칠을 가야 그 산록을 지나게 되는 산봉이다.
구름 위에 솟아있는 설산암봉, 콩데(Kongde, 4,250m)
그런데 공항터미널에는, 우리의 카고백을 지고 우리와 함께 할 현지인 가이드를 비롯한 6명의 네팔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려 맞아주었다. 우리는 이상배 대장의 안내에 따라, 루클라공항 바로 인근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롯지>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의 ‘관문’ 옆에 있는 규모가 큰 롯지이다. 네팔 특유의 산장식당에서 대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해 따끈한 밀티로 긴장을 풀었다. 식당의 온 벽면에는 에베레스트 사진과 역사적 산악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사진이 붙여놓았는데 그 중에서 역시 에베레스트 초등자 ‘생생한 힐러리’ 사진이 단연 압권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따끈한 네팔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 대장은, ‘트레킹을 마치고 나올 때, 이곳에서 1박을 하고 카투만두행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파라다이스 롯지(Lodge)의 현관
파라다이스 롯지와 레스토랑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8,8848m)오른 에드먼드 힐러리가 머물던 곳)
본격적인 트레킹에 돌입하기 직전
* [우리와 동행하게 될 네팔 친구들] — 가이드 빠샹, 그리고 5인의 친구
우리 대원들이 본격적인 트레킹의 행장을 차리고 밖으로 나오자, 롯지 앞에는 ‘네팔 친구들’이 그들이 지고 갈, 우리의 카고백을 나누어 꾸리고 있었다. 처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트레킹의 현지인 가이드는 가벼운 몸매에 눈빛이 명민하게 보이는 ‘파샹(Nawang Pasang Serpa, 45)’이고, 그 보조자는 ‘카일라’라고 부르는 ‘붓다바두(Buddha Bahadur Tamang, 38)’인데, 카일라는 필자가 ‘2013-안나푸르나 트레킹’, ‘2014-랑탕 트레킹’을 할 때 요리담당으로 동반했던 ‘착한 마일러, 강가바두’의 친동생이었다. 형에 비해 몸이 튼실하면서 역시 착해 보였다. (‘보고 싶은 마일러’는 지금 외국의 원정대에 소속되어 로부체 베이스캠프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카고백을 지고갈 친구[Porter]들은 ‘아르준(Arjun, 38)’, ‘디팍(Dipak, 42)’, ‘딕바두(Dik Bahadur, 43)’, ‘샤르바두(Shir Bahadur, 35) 등 네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각각 20kg짜리 2개는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단련된 일이라 하지만, 그 무거운 것을 지고 5,000고지를 치고 오르는 그들이다. 아, 아무리 생업이지만 자꾸 애툿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깊은 정감을 느낀다.
* [쿰부히말 트레킹의 관문 루클라] — ‘보름간의 고락을 함께 할 대원들
루클라(Lukla) 마을이 시작되는 곳, 마을의 관문(關門)에 들어섰다. 그 문(門)의 이름도 ‘Tenzing-Hillary Gate’라고 했다. 공항이나 마을의 입구에 세계 최초로 세계 최고봉에 오른 그들을 명명(命名)하여 잊지 않고 기념하는 것이다. 루클라는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마을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심거리 좌우에는 크고 작은 롯지와 식당, 등산용품점 등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현지 주민들과 외래의 등산객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 거리를 중심으로 좌우의 산록에 많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3~5충으로 된 건물들인데 모두 돌로 지은 석조건물들이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가는 거리에서 우리 대원들이 인증샷의 포즈를 취했다.
루클라를 관통하는 중심거리
이번 쿰부히말 트레킹 대원은,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을 중심으로 법무사무소 ‘작은 행복’의 기원섭 대표와 부인 이진애 여사, 독서클럽 ‘북투어’의 신은영 양, 거제의 장골(壯骨) 사업가 ‘감장재’ 사장, 서울 ‘새재사랑산악회’의 김준섭 부회장, 부산의 ‘여성산악인’ 김미순 여사 그리고 필자 ‘호산아’ 등이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실에 입산신고를 하고 하얀 스투파(Stupa, 티벳불교의 탑)가 서 있는 거리를 지나면서 아기를 안고 길목에 나 앉아 있는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테!” 방긋 웃음으로 응대하는 모습이 건강하고 평화스러워보였다. 네팔인 특유의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나마스테!”는 네팔 사람들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용하는 인사말로,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는 뜻이다.
* [루클라의 메모리얼 게이트] — 파샹 라무(‘Pasang Lhamu Serpa’)에 대하여
그런데, 루클라(Lukla) 시내를 벗어나는 지점에 또 하나의 문(門)이 있었다. 사각 콘크리트 기둥 위에 반원의 녹색의 구조물을 만들고 그 한 가운데 후덕하게 생긴 여인의 흉상(胸像)을 설치해 놓았다. 반원의 녹색 바탕에는 ‘NATIONAL LUMINARY PASANG LHAMU MEMORIAL GATE’라고 새겨놓았다. 네팔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빠샹 라무’를 기념하는 문(門)이었다. 에베레스트로 들어가는 곳에 이렇듯 그녀를 추앙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파상 라무(Pasang Lhamu Serpa) 메모리얼 게이트
셀파족 여성포터인 파상 라무(Pasang Lhamu Serpa)는 1993년 4월 22일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당시 그녀는 서른 두 살이었다. 그녀는 그 이전 세 번에 걸쳐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녀의 등정은 삼전일기(三顚一起)의 장거(壯擧)였다. 네팔 여성 최초로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는 그것만으로도 국민적 사건이었지만 사실 네팔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된 것은, 그녀의 인간적인 죽음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험난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서 잠시 감격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함께 오른 다른 남자 대원 셋과 함께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짙은 구름이 몰려오고 강풍이 몰아치는 악천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구름이 뒤덮인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이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려서 매우 지체 되었고 대원들은 지쳐 있었다.
그때까지 라무(Lhamu)에게는 사실 별다른 몸의 이상이 없었지만, 동료인 남자 대원 ‘소남 츠링’은 산을 오를 때부터 극심한 고산증세를 보이면서 기침에 피까지 토하는 등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하산 도중 ‘츠링’은 격심한 고통에 빠져들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5회나 등정한 경력이 있는 네팔의 베테랑 산악인이었다. 그는 같은 셀파족이면서 그 이전에도 라무와 함께 산행을 한 절친한 동료였다. 하산하는 도중 츠링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라무는 결단을 내렸다. 다른 대원인 펨바 등을 먼저 내려 보내서 산소를 가져오게 하고, 츠링을 보호하며 남봉 부근에서 ‘비박’을 시도했다. 사실 라무는 그 이전에도 같은 곳에서 츠링과 같이 비박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 밤을 무사히 지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악천후를 헤치고 올라온 ‘펨바’는 그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뒤 18일 동안의 수색 끝에 겨우 남봉의 바위틈에서 꽁꽁 얼어있는 파상 라무의 시신만을 발견했다. 이 사건은 네팔인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큰 화제가 되었다. 만인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에베레스트 등정(登頂)은 거의 외국인들이나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시대에, 그 험난한 정상을 네팔 자국 여성이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으므로 네팔 여성들에게 있어 라무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빠샹 라무는 국민적 슬픔이 되었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되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세 차례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조직하고, 산을 오르기 위해 후원금까지 모으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녀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감당해낸 의지의 여성대장이었다. 당시 극소수의 여성들이 원정대와 트레킹 관련 직종에 뛰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은 주로 포터를 맡은 아버지나 오빠를 돕는 정도의 일만 해 왔는데, 라무는 직접 에베레스트 등정에까지 나선 것이다. 게다가 하산 중 동료를 구하려다 함께 사망한 그녀의 희생은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파상 라무의 그 희생을 기려 네팔 국왕은 네팔 여성 최초로 그녀에게 ‘네팔 타라’라는 별의 칭호를 수여하였고, 수도 카트만두에는 네팔 국기를 들고 있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 외에 도로 등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기념관도 건립되었다. 특히 초오유 능선에 솟은 해발 7,315m의 자삼바히말은 그녀의 이름인 ‘파상 라무’봉으로 새로 고쳐 불렀다.
2017년 3월 30일 오후 12시 45분, 우리는 파상 라무를 기념하는 문(門)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갔다. 루크라 마을을 벗어나 에베레스트, 즉 ‘사그라마타’ 국립공원의 쿰부히말의 트레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쿰부히말 트레킹은 루클라에서 시작하여 ‘두드코시(Dudh Koshi)’ 계곡(Nadi)의 산록의 길을 따라, 수많은 산중 마을과 롯지를 거치면서 고도를 높여 올라가는 여정이다. 네팔어에서 ‘코시(Koshi)’는 ‘강(江)’을 말하고 ‘콜라(Khola)’는 ‘작은 계곡물’을 말한다.
* [봄이 무르익는 네팔의 길목] — ‘두드코시’ 대협곡을 따라 올라가는
화창한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운 날씨였다. 해발 2,880m 산록의 길목에는 산목련이 이미 피어서지고 한두 송이만 남아서 빈 가지를 밝히고 있었다. 간간히 진홍색의 랄리구라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랄라구라스’는 네팔을 상징하는 국화(國花)이다. '두드코시' 계곡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이 신록의 길은 그 동안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아주 넓었다. 루클라를 지나면서 길은 서서히 고도(高度)을 낮추어가는 길이다. 넙적넙적한 돌판을 깔아놓은 길은 팍팍하고 건조했다. 맞은편에서 무거운 짐을 실은 한 무리의 ‘좁교’ 행렬 올라오고 있었다. ‘좁교’는 ‘야크’와 ‘일반 소’의 교배종인데 3,000m 이하의 산길에서 많이 보인다. 야크보다 다리가 길고 배의 털이 많지 않다. ‘야크’는 3,000고지 이상의 카라반에서 짐을 실어 나른다.
좁교의 운송 행렬 / 3,000고지 이상에는 야크(Yak)가 운송 수단이다
* [에베레스트로 들어가는 메인로드] — 차우리카르카, 탈샤로아, 체프룽
우리가 나아가는 길의 왼쪽은 두드코시(Dudh Koshi)로 이어지는 산록의 평원, 숲과 밭과 어우러진 마을 풍경이 평화스럽다. 도상(圖上)에 표기한 차우리카르카(Chaurikarka) 마을이다. 이곳도 봄 가뭄이 심한지 계단식 밭은 맨땅 그대로 있고 길은 팍팍하여 먼지가 일었다. 길가의 메마른 산록에 곱고 순결한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대지가 목이 말라도 봄은 그렇게 화사한 봄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네팔에서 느끼는 ‘고향의 봄’이다. 평탄한 듯 내려가는 산길, 길가의 거목이 지키고 있는 지점에서 급경사의 계단으로 떨어져 내린다. 2,680m의 ‘탈샤로아(Thalsharoa)’를 지나 현수교를 건너니 두어 채의 롯지가 있는 ‘체프룽’(Cheplung, 2,660m)을 지난다. 평탄한 흙길이 이어진다.
에베리스트로 가는 길 -[두드코시 계곡을 따라가는 쿰부히말의 메인로드]
* [쿰부히말의 세르파족의 신앙] — 독실한 신앙, 티벳불교의 타르초와 붕다르
인적이 없는 외딴 집에도 오색의 ‘타르초(Tarcho)’가 펄럭이고 있고, 높다란 산록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어놓은 오색의 ‘룽다르(Lungdar)’가 바람결에 날개를 펴고 펄럭인다. 쿰부히말의 집집마다 세워놓은 이 ‘타르초’는 약 30m 높이의 깃대에 티벳불교의 경전을 적은 넣은 오색 깃발을 달아 세운 것으로, 지상의 사람들이 하늘을 향하여 올리는 생명적 기원(祈願)을 담고 있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육자진언(六字眞言)은 늘 입안에 살아있는 기도문이다. 타르초(Tarcho) 오색 깃발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위의 청색은 ‘하늘’을 상징하고 그 다음의 흰색은 ‘하얀 구름’, 그리고 붉은 색은 ‘태양의 빛과 불’을 상징하고 그 다음의 초록색은 ‘초목과 물’을, 제일 아래의 노란 색은 ‘대지’를 상징한다. 하늘과 구름은 신의 영역이고 불과 물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근본이고 제일 아래의 대지는 만물이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터전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과 물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지극히 소박한 신앙적 기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룽다르(Lungdar)는 보통 타르초 깃대나 스투파의 꼭대기와 주변의 높은 곳을 연결한 끈에 가지런히 매 단 오색의 깃발인에, 역시 경전(經典)을 적어 넣은 것으로 신성한 영역을 표시한다. 모두 티벳불교의 신품(神品)이다.
타르초(Tarcho)
창공에 펄럭이는 룽다르(Lungdar)
* [타도코시가온의 휴식] — ‘쿠숨캉카루’ 설산거봉을 바라보며’
투명하게 맑은 날, 산중에 쏟아져 내리는 원색의 햇살이 따갑다. 챙이 큰 모자를 썼지만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몸은 달아오르는데 땀이 맺히지는 않는다. 건조한 바람결은 서늘하여 오히려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대원들의 간격이 조금씩 멀어진 상태에서 걷고 있었다. 여기저기 산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이제 두드코시 계곡의 물이 아주 가까워졌다. 물 흐르는 소리가 산록을 타고 올라왔다. 깊은 계곡의 마을로 내려가서 완강하게 시설된 철다리를 건넜다. 해발 2,550m ‘타도코시 가온(Thado Koshigaon)’의 롯지 마을에 이르렀다. 오른쪽의 거대한 산곡에서 흘러내리는 ‘타도코시 콜라’를 건너는 쇠다리를 중심으로, 높은 언덕의 길목 좌우에 여러 채의 롯지와 식당이 있는 곳이다. 동쪽의 계곡 위로 고개를 돌리면, 하늘을 찌르는 ‘쿠숨캉카루’(Kusum Khankangru, 6,367m)의 거대한 설봉이 바로 올려다 보인다.
쿰부히말의 중심을 흘러내리는 두드코시(Dudh Koshi) 계곡
봄이 오는 길목
우리가 걷는 루클라에서 팍팅-몬조를 지나, 보테코시와 임자콜라가 만나는 ‘라르자 도반’까지의 길은 두드코시의 계곡길이요, 그 오른쪽의 산지는 높고 거대하게 솟은 루클라 부근의 칼로히말의 공라(Gonglha, 5,813m)가 이곳의 쿠숨캉카루(Kusum Khankangru, 6,367m) 연봉을 지나 키야샤르히말의 강테까(Kangtega, 6,885m)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로, 거대한 공룡 히말의 위용을 뿜어 올리며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장대하고 아득한 산맥이다.
오후 1시 20분, 타도코시 콜라(Thadokoshi Khola)의 철다리를 건너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가서 ‘타도코시가온’ 롯지(2,580m)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과 계곡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곳이었다. 우리 대원들은 도착하는 대로 야외탁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롯지의 주변에는 연분홍의 산도화가 피어 화사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루클라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 모든 대원들이 처음 한 자리에서 모여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시원한 코카콜라 한 잔이 더운 가슴을 쓸어내린다. 짜릿하고 통괘한 이 맛을 무엇에 비할까? 목마른 고행 중에 맛보는 진하고 짜릿한 행복감이었다. 아직 3,000m를 넘지 않은 지역이므로 고소의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의 상태도 모두 양호한 것 같았다.
* [누르닝-추타와를 지나며] — 소녀의 미소(微笑)와 육자진언(六字眞言) “옴마니반메훔”
오후 2시 40분,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길은 비교적 평탄하면서 완만한 내려가고 있었다. 길의 왼쪽은 계곡의 떨어지는 절벽이다. 그러나 길은 완만했다. 계곡 건너편 고즈넉한 숲속의 산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을 걷다가 집 앞에 나와 있는 어린 아이의 눈빛을 만나고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네팔 아가씨의 미소도 만났다. “나마스테!” 모두 착하고 순진한 표정이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제법 많은 집들이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누르닝(Nurning, 2,492m)이었다. 길가의 집들은 대부분 식당과 상점이 있는 롯지들이 즐비했지만 조금 지나니 돌담 안에서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집들도 눈에 띄었다. 어느 작은 돌담집에는 마당 한켠에 매어진 송아지 두 마리가 지나는 길손을 무연히 바라보기도 했다. 돌이 많은 지역이라 집이고 밭이고 모두 돌담을 쌓아서 조성하였다.
히말라야 소녀의 미소 ; 고단한 트레커의 피로를 씻어주다!
누르닝 마을의 한 집한 풍경
마을을 벗어나는 오르막 돌계단 길을 따라 추타와(Chhutawa, 2,591m)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길 한 복판에 ‘마니 월’, ‘마니 스토운’, 대형 ‘마니 휠’ 그리고 ‘하얀 수투파’ 등을 조성해 놓았다. ‘마니 월(mani wall)’은 티벳불교의 경전을 새긴 돌판을 길 한 가운데 쌓아 담장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요, ‘마니 스토운(mani stone)’은 거대한 자연석 바위에, 검은 색을 칠하고 하얀 색 페인트로 불교의 경전을 가득 적어 놓은 것이요. ‘마니 휠(mani wheel)’은 아주 커다랗게 만든 종인데 그 아랫부분의 손잡이를 돌리면 경전을 암송하는 것이요, ‘스투파(stupa)’는 조형적으로 만든 티벳불교의 탑(塔)을 말한다. 대부분이 길 한 가운데 있으므로 오가는 사람은 모두 왼쪽으로 가면서 오른손으로 ‘마니 휠’을 돌리거나 ‘마니 월’을 어루만지면서 ‘옴마니 반메 훔’을 암송하는 것이다. '곰파(Gompa)'는 티벳불교의 사원을 뜻한다.
타르초(Tarcho)와 마니월(Mani wall), 마니스토운(Mani stone), 스투파(Stupa, 하얀 불탑)
‘옴 마니 반메 훔’은 고대인도 말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불교의 <천수경(千壽慶)>에 나온다는 소위 육자진언(六字眞言)이다. 한자로 ‘唵麽抳鉢銘吽’라고 쓰고, 영어로는 ‘Om mani padme hum’이라고 표기한다. 옴(Om)은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소리’를 의미하고, 마니(mani)는 보석으로 ‘깨끗한 지혜’를 상징하고, 반메(padme)는 연꽃으로서 ‘무량한 자비’를 상징하고, 훔(Hum)은 우주의 개별적 존재 속에 담겨 있는 찬다운 소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육자진언은 '온 우주에 충만한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되소서.' 하는 간절한 기원을 담고 있다.
집집마다 세워놓은 타르초(Tarcho)와 룽다르, 그리고 마을의 길 한 가운데 설치해 놓은 ‘마니 월’ 등 가는 곳마다 갖가지 불교 경전의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모든 곳이 그들의 기도처이니 히말라야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이 느껴진다.
추타와(Chhutawa) 고갯마루를 넘어서니, 길은 아래로 쏟아지고 저만큼 계곡물이 가까이 내려간다. 팍팍하고 건조한 길 주변의 산야, 길목의 나무들은 아직 앙상한 겨울나무인데, 물가의 돌담 안의 밭에는 파릇파릇 밀이 자라고 산기슭에는 연분홍 산도화가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우리나라의 이른 봄의 풍경 그대로이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장관을 이룬다. 산록을 경사면에 울창한 히말라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숲이 싱그러운 장관이다. 군데군데 한 그루씩 서 있는 장대한 전나무가 길목을 지키는가 하면 산록을 빽빽하게 채운 히말라야 삼림(森林)은 가히 그 생명의 뿌리가 튼실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 [팍딩에서 만나는 풍경] — 설산 거봉 ‘콩데’와 두드코시 계곡 풍경
오후 3시 25분, 팍딩(Phakding, 2,625m) 마을의 영역에 들어섰다. ‘쿰부히말’의 계곡 길에 위치한 아주 큰 마을이다. 크고 반듯한 롯지 건물들이 즐비하고 깨끗하게 조성된 마음의 풍경, 새로 지은 산뜻한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커다란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루클라에서 8km, 가트(타도코시가온의 마을)에서 2km 올라온 지점이다. 그리고 오늘밤 우리가 유숙할 예정인 몬조(Monzo)까지는 아직 5km를 더 가야 한다. 소요 시간은 3시간으로 표시되어 있다. 갈 길이 아득한 여정이다. 팍딩(Phakding)은 서북쪽으로 설봉 콩데(Kongde, 6,168m) 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는 첫 전망처이며, 콩데 베이스 캠프(4,910m)로 들어가는 길목의 마을이다.
마냥 즐거운 히말라야 아이들
그런데 그 팍딩의 길 가에 몇 사람이 모여 있어서 가 보았더니, 중년의 남자가 야크 고기를 팔고 있었다. 나무 도마 위에 썰고 있는 붉은 생고기가 아주 먹음직했다. 고기를 좋아한다는 김장재 사장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값이 아주 싸다며 야크고기 한 덩이를 샀다. 저녁에 롯지에서 구워먹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길을 지나오다 보니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소년들이 해맑게 웃으며 바라다본다. 카메라를 갖다 대었더니 재미있게 반응한다.
마을의 고갯마루를 지나니 두드코시 강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강물위에 긴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다. 다리 건너에는 새로 지은 롯지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본 마을의 위쪽에 위치한, 강 건너 산록에 위치한 팍딩의 새로운 롯지 마을이다. 우리들은 룽다르가 펄럭이는 현수교를 건넜다. 새롭게 조성한 마을인지 구획이 아주 반듯하고 마당이 넓은 각 롯지의 규모도 크고 산뜻했다. 주변의 산록의 히말라야 소나무 숲과 어울려 아주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어느 한 롯지의 마당에는 많은 외국인 트레커들이 머물며 환담하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도 마을의 벗어나 한적한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가의 숲 속에는 소위 ‘좁교’라고 하는 교배종 소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한가운 강변 풍경이다.
게스트하우스(롯지) 마을, 현수교 건너에 위치한 팍딩의 윗마을 풍경
* [장대한 히말라야 전나무] — 잠푸레를 지나 구멜라와 톡톡 마을
오후 4시 10분, 다시 산행을 계속해 나갔다. 이제 다리를 건넜으니, 이제 우리는 두드코시 계곡을 오른 쪽에 끼고 걷게 된다. 모든 대원들이 차이를 두지 않고 시야권에서 잘 걷고 있었다. 히말라야 전나무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산굽이를 돌아 얼마를 가자 강가의 숲 속에 제법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잠푸테(Zam Fute, 2,730m)였다. 길을 돌아드니 아래로 떨어진 골짜기가 나타나고 그 계곡의 주변에 깨끗한 롯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왼쪽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낙부와콜라(Nagbuwa Khola)’이고 롯지의 마을은 구멜라(Gumelha)이다. 낙부와콜라의 다리를 건너 산록의 계단을 치고 오른다.
두드코시(Dudh Koshi) 계곡의 풍경
잠푸레 롯지
계단을 올라가는 길목의 집 앞 수돗가에서 어린 소녀 하나가 많은 빨래더미를 앞에 놓고 혼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말없이 일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참 의젓해 보였다. 지금 저 나이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구멜라 마을을 지나고 나니 산길이 험하다. 가파른 내리막길과 바위를 타고 오르는 산길이 이어지는 험로(險路)이다. 일군의 야크의 행렬이 무거운 짐을 싣고 그 가파른 바윗길을 치고 오른다. 그들의 발길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날도 많이 어두워졌다. 절벽 아래의 길을 지나고 고갯마루를 치고 올랐다. 저 아래 깊은 계곡에서는 허연 물거품을 일으키며 뿌연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오후 4시 40분, 가파른 산록에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로 들어섰다. 톡톡(Toktok, 2,760m)이라는 마을인데 음료와 기념품 등을 가게들이었다. 아주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다.
빨래하는어린이
오래된 마을 톡톡을 지나며
저 멀리 보인는 마을이 벵카르
* [오늘의 기숙지 벵카르 타쉬 게스트하우스] — 삐걱거리는 건물, 물사정이 안 좋은
톡톡(Toktok)을 지나고 나서도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절벽 아래 깊은 계곡의 다리를 건너고 난 후, 가파르게 올라가는 돌계단이 지친 다리를 더욱 무겁게 했다. 매우 힘든 코스를 지났다. 그 이후에는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산록의 길이 이어졌다. 멀리 산 아래 파란 지붕을 한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한 그루의 산벚꽃 화사하게 핀 ‘벵카르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면서 길은 다시 계곡에 떨어져 내려갔다. 깊은 골짜기의 다리를 건너 다시 가파른 계단을 치고 올랐다. 거기에도 롯지가 있고 다시 길은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갔다. 바로 벵카르(Bengkar, 2,630m)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거대한 자연석에 검게 칠한 바탕에 하얀 색으로 불교경전을 잔뜩 적어놓은 ‘마니 스토운’이 있다. 그 옆에 의자가 있어 앞서온 대원들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벵카르 마을 초입의 외딴 롯지, 산벚꽃이 화사하다
벵카르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마니스토운
오후 5시가 넘어가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선두에서 가고 있는 현지인 가이드 ‘파샹’이 이(李) 대장의 지시를 받아, ‘이곳 벵카르(Bengkar)에서 숙소를 잡아서 유숙한다’고 했다. 구름이 몰려오는 등 불순해진 일기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후미에 오는 대원이 많이 떨어져 있고, 트레킹 첫날 지친 상태에서 예정된 몬조(Monzo)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앞당겨 숙소를 잡은 것이다. 우리가 찾아든 곳은 ‘타쉬(Thashi) 게스트하우스’였다. 롯지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트레킹 첫날의 일정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오늘의 숙소, 타쉬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다
롯지에는 무뚝뚝하고 건장한 주인여자가 혼자서 우리를 맞았다. 롯지에는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은 들지 않았다. 조용하기는 했으나 지은 지 오래된 듯 롯지의 목조건물은 낡아서 삐걱대고, 무엇보다 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화장실에서나 세면대에 찔찔찔 나오는 물줄기가 아주 빈약했다. 물이 잘 나오지 않으므로 양치질을 하거나 얼굴을 한번 씻는 데도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3,000고지를 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아직 고소증은 오지 않았으나 밤이 되니 목조로 된 방 안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온몸을 스산하게 했다. 오직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며 히말라야의 첫 밤을 보냈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