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후의 삶과 문인들]
1981년 7월 31일, 정치군인의 전힝으로 군복을 벗고 전업작가의 새 길을 걷기 시작하자 당시 원로 작가 구상 선생 서정주 선생을 비롯 선배 문인들로부터 빈번한 초청을 받았다. 이미 현역 군인시절 몇 권이 베스트셀러를 낸 탓인지 문단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었다. 문인의 모임은 소주잔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두주불사'의 술꾼이었기 때문에 자주 술자리에 어울렸다. 술자리의 화두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은 "고향에 가지말라"였다.
아무리 서울에서 명성이 있는 작가라도 고향에 가면 냉대한다는 것이었다. 제딴에는 서울에서 날렸으니 고향에 내려가면 모두 부러워하고 반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모른 척 한다고 했다. 원로 작가 모두 한결 같이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었다.
그 말을 되뇌이며 나는 귀향하면서 마음을 정했다. 첫째, 고향의 문인들과 될 수 있는대로 어울리지 말고 창작에만 전념한다. 둘째, 만일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릴 경우에는 겸손하겠다, 는 두 가지 행동 지침이였다. 그 탓으로 대전의 문인들에게 일체 전화도 걸지 않고 10개월 동안 단 한 사람의 문인하고도 만남이 없었다. 나는 타이핑하고 아내는 그림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계룡산 수통골에 가서 걷기 탐방을 했다.
다음 해 봄 어느날 아내가 컴퓨터를 검색 하면서 나를 불렀다. 아내는 화면을 가리키며 "아, 대전에 문학관이 생겼어요" 하면서 화면을 가리켰다. 말끔하게 단장한 건물이 보였고 내부 여러 곳도 화면에 나타났다. 보고 난 다음 우리는 미리 알리지 않고 관객으로 관람하러 가기로 했다. 대전문학관은 유성구에서는 좀 먼곳의 동구에 있었다. 대전으로 이사해 아파트 사고 남은 돈으로 구입한 산타패 SUV를 타고갔다. 문학관 주차장에 세워놓고 문학관 안으로 들어섰다. 아내와 나를 본 정장의 중년이 나타나 뜻밖에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도 정중히 인사하면서 그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 문학관 내부를 관람했다. 정중하고도 친절하게 안내한 중년은 바로 대전문학관 박헌오 초대 관장이었다. 그가 어찌나 친절하고 지성껏 안내하는지 서울의 원로 문인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그 말이 순간 사라져버리고 전혀 다른 인상으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바로 그가 귀향한지 10개월만에 만난 대전의 첫 문인이었다. 그후 박헌오 관장은 나를 대전 원로 문인과 똑같이 대우하면서 대전문학관 아카이빙 자료집에 게재하는 한편 30분 분량의 동영상 '문학의 향기' 박경석 시인 편 제작과 월간 대전 예술 인터뷰 기사 게재 등으로 대전 예술계에 널리 소개했다. 고마운 일이다.
지난 시절과 달리 지방의 문인들이 중앙에 종속되지 않고 나름대로 자체적으로 단체를 운영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대전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들이 대전의 문학단체처럼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방 문학의 전파력은 중앙문학을 압도할 수 없어도 중앙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성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예로 지방 문인이 중앙의 문학 단체의 책임자로 진출하는 경우가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지방세 자체가 속속 중앙으로 진출하는 현상이 실현되고 있다.
대전 문인인 김용재 교수갸 중앙의 현대시인협회 이사장으로 진출했는가하면 더 한층 한국문단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경우는 문단 지방세의 발전을 증거한 놀라운 변화라 할 수 있다.
김용재 이사장과 나는 이미 40년 전부터 현대시인협회에서 함께 했고 대전고교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노년인 나에게 현대시인협회와 국제PEN한국본부에서 중요 작품 발표의 기회를 주어 기조연설과 PEN문학지에 중요 군사 에세이를 특집 게재, 나의 창작 욕구에 불을 댕기게 했다. 고마운 일이다.
2022년 현재, 대전의 원로 시인 최원규 교수, 집필 과정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문학평론가 송하섭 교수를 비롯해 김영훈, 박진용, 김명순, 빈명숙, 최송석, 신협 김영록 등 쟁쟁한 작가들이 귀향인인 나에게 협조와 격려의 정을 보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여하간 대전의 문인들이 서울 못지 않는 창작 활동에 감명을 받았다. 대전의 문인은 전통적인 충청인 성품답게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한편, 대전의 문인은 아니지만 내가 10년 동안 대전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남궁연옥 시인과 김태희 시인에게도 감사의 정을 남긴다.
대전에서의 10년 여 삶은 어느 곳에서 보다 행복했다. '천국에서의 삶'으로 비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