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조혜련 이야기
이인규/소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 관한 편견과 선입견은 무서운 거다.
그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 기간 TV에서 비친 그녀의 모습은 직업이니 웃기긴 하나, 다소 기괴하면서도 상남자 같은 이미지였다. 특히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인상적인 연기는 이른바 J.R.R. 톨킨의 소설 호빗,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자, 의도치 않게 주인공을 도와준 악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인 ‘골룸’을 패러디할 때 보여 준 그녀의 기이한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한 차례 이혼한 돌싱으로 지내다가 재혼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내 처지에선 그녀를 이상한 배역을 맡아 인기를 유지하고,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두 번이나 결혼한, 그저 그런 여성 개그맨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눈앞에서 직접 그녀를 만난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전 그녀가 내가 다니는 시골 교회에 이른바, 간증하러 온 것이었다. 물론 지난봄부터 교회 측에서 꾸준한 홍보를 지속하였으니 이미 예정된 일이었으나, 나는 그녀의 파급력을 솔직히 믿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간증, 이를테면 직업이 개그맨이니 간증 중간, 중간에 성도들이 좋아할 만한 유모를 섞어 입에 발린 말들을 늘어놓는 정도로 인식하였다. 귀촌 전 도시의 교회에 다닐 때도 이런 부류의 시시한 간증 집회를 여러 차례 봐왔기에 시큰둥하였다는 말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개그맨으로서가 아닌, 여느 시시한 목사, 전도사, 부흥사가 아닌, 살아있는 그분의 말씀을 온몸으로 증거하는 탁월한 설교자로서 거듭난 거였다. 순식간에 현장은 흥분과 충격의 도가니 상태로 빠졌고 나 역시 점점 그녀의 증언에 말려들어 갔다. 그렇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그녀의 말을 일부 옮기겠다.
그녀는 경남 고성에서 1남 6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여느 시골 마을처럼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길 고대하였으나, 줄줄이 딸만 생산하였다. 그러다 다섯 번째 그녀를 임신한 어머니는 태몽에 호랑이가 뱃속으로 들어왔으므로 당연히 아들인 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딸인 그녀가 태어나자, 어머니와 가족은 실망한 나머지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정신질환에 가까운 심리적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대학에 합격하였는데, 그때 어머니는 격려는커녕, “가시나가 무슨 대학에 가느냐!” 하고 엄청 혼을 내며 빗자루로 때렸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연예계로 진출했다. 먹고 살기 위해, 오롯이 자기 힘으로 유명해지기 위해 남들이 꺼리는 배역도 서슴지 않고 노력하여 나름대로 성공도 했다. 그사이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불화로 첫 남편과 이혼한 후 그녀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 틈을 타서 개그계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성미 씨의 전도가 있었는데, 단칼에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녀와 그녀의 친정 식구는 이미 일본불교인 ‘남묘호렌게쿄’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중국 진출 차 그곳에 머물던 그녀는 같은 처지(한 번 갔다 온 사람)의 남편을 만났는데, 그가 공교롭게도 기독교인이었다. 남편의 끈질긴 권유로 딱 한 번 현지 교회에 간 그녀는 그때 그분의 섭리에 걸린 것이다.
이후 그녀는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학대학에 진학,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처음에 예수쟁이 남편을 데리고 고향 고성에 갔을 때만 해도 문도 안 열어주던 어머니는 78세에 그동안 믿던 남묘호렌게쿄를 버리고 그분을 영접하였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에게 매일 성경 다섯 장을 읽기를 권유하였고 현재 83세인 어머니는 성경을 65회 완독한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합병증으로 배에 찬 고무호스를 빼내었고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그녀의 형제자매 중 첫째 언니만 빼고 나머지 역시 기독교에 귀의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요즈음도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교회나 집회에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불교 신자였지만, 친구들과 유년주일학교에 잠시 다녔고 청년기에 동네 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교였다. 이후 신앙은 나와 상관없던 일로 치부하던 나는 공교롭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근 십여 년을 교회에 가자는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나는 직장 스트레스를 핑계로 술과 담배에 탐닉하며 마음대로 살았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제멋대로 살던 나는 어느 날, 삶이 너무도 피폐해짐을 느끼고 조혜련 집사처럼 자진하여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리곤 귀촌 전까지 도시의 교회에서 찬양팀의 리더로,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 철야 등 참석하면서 집사로 나름대로 꽤 활동한 이력(물론 술, 담배는 여전히 못 끊었다)이 있다. 아내는 지금도 그때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앙의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던 나는 귀촌 후 아내의 눈치로 시골 교회에 가끔 출석할 뿐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날 그녀의 절절한 간증으로 나는 변화하고 싶었다. 아니, 변하고 싶다. 이왕 믿는 거, 제대로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녀의 절절한 외침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시골살이 13년 차, 오늘도 나는 일과 시작 전에 성경부터 펼친 후 그녀가 말한 하루 다섯 장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게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자신 못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