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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연무사회복지관 이현우 선생님께서
'100편 읽기' 원고를 읽으며 보내준 이메일입니다.
허락을 얻고 소개합니다.
이런저런 고민들로 밤잠을 설치다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곡선의 시선> ''동윤이'와 '민경이' 사례를 읽었습니다.
동윤와 민경이 사례를 읽으면서 속 마음을 놓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일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회사업가일까 그저 착한 사회사업가인지, 열심히 하는 사회사업가인지,
재미있는 사회사업가인지 아니면 동윤이와 민경이에게 필요했던 ‘좋은 어른’, ‘단 한 사람 어른’처럼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을 열고 모든 걸 터놓을 수 있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한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저는 ‘좋은 어른’, ‘단 한 사람 어른’과 같은 사회사업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동료들과 서로 퇴사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모두 업무적으로 힘든 일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 우리가 힘들어하고 퇴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건
사무실에서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저 역시 그들에게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장 잘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동료들에게 조차
저는 그런 단 한 사람의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음에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동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는데
과연 수많은 당사자들에게 저는 어땠을지 생각해 보면 후회가 많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후회와 반성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이 '100편 사례 읽기'를 시작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좋은 어른’, ‘단 한 사람 어른’과 같은 존재가 된 사례, 되지 못한 성찰의 사례, 되고 싶고 되고자 노력하는
100편의 사례를 본 후 저는 지금보다 성장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틱한 성장이 아니더라도 남이 보기에 더딘 성장이었더라도 분명 성장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당장 할 수 있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부터 그런 존재가 되어보자고,
그렇게 서서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시작해 보자고 다짐했으며
이는 이미 더딘 성장이 시작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경이 사례를 읽으면서 첫 장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내용이 있었습니다.
민경이의 일로 학교사회복지사와 대화를 나눈 담임선생님이 민경이를 복지실로 부르기 위해 나눈 대화였습니다.
“그냥 복지실에 심부름을 보낼까요?”,“음··· 민경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고 복지실로 부를지 고민하며 민경이를 속여서 부르려까지 생각했지만,
학교사회복지사는 민경이가 원하지 않는데 갑자기 만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자 제가 입사하고 처음 진행한 아동 소모임이었던 ‘호기심 학교’가 생각났습니다.
‘호기심 학교’는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직접 고민하여 마을 선생님을 선정하고,
선생님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는 활동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이들이 가진 “개미는 선생님도 잡아먹을까?”에 대한 호기심 해결을 위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복지관 근처에 있던 희귀애완반려동물샵(타란튤라, 도마뱀 등의 절지류, 파충류, 곤충을 분양하는 가게)을 방문하여
선생님을 섭외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이때 저는 먼저 가게에 찾아가 섭외가 가능한지 여부와 일정조율을 진행한 후 사장님께는
“아이들이 방문하거나 전화를 통해서 가게를 섭외할 텐데
제가 온건 모른 척해주시고 아이들의 섭외에 응해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지역과 공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만약 갑작스레 찾아가고 섭외를 진행하려 한다면
가게의 영업이 방해되거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만약 섭외에 실패한다면 아이들이 시작부터 위축되어 포기하려 하지는 않을까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희 부서장이었던 김은진 팀장님께 섭외 사실과 사장님께 부탁드린 것을 보고 드렸습니다.
팀장님께서는 이를 듣고 무언가 시름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들이 섭외하러 가는 날 팀장님께서 저를 따로 불려주셨습니다.
팀장님께서는 아이들이 사실을 모른 채 섭외를 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결국 속이게 되는 것이며 아이들을 주체로서 대하는 것인지에 대해 우려와 의문이 든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혹시, 너희를 위한 일인데 속여도 괜찮겠니?” 이 물음부터가 참 바보 같은 물음입니다.
제가 그런 참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때때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에, 상대에게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기에 적당히 상황을 돌려서 유도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때면 되짚어 봅니다.
‘나는 이 사실을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는가.’ “이게 당신을 위한 일이라서요. 혹시 어영부영 본인은 잘 모르게끔 처리해도 될까요?”
이 물음을 듣게 될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내가 “상대를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망각하고 일 처리에 급급한 셀러리맨이 되어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김은진 팀장님의 조언을 받아서 호기심 학교 아이들에게도 사실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개미가 선생님도 잡아먹을지 궁금해서 찾아가기로 했던 가게 있잖아.
사실 선생님이 먼저 가서 말씀드렸는데 감사하게도 허락해 주셨어.
그래도 가기 전에 지금 찾아가도 괜찮을지, 찾아가면 어떤 질문을 드릴지 너희가 직접 대본을 만들고 먼저 전화로 여쭤보자.”
아이들의 주체성도, 가게의 입장도, 실패를 겪은 후의 우려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찾아보면 방법은 있었습니다.
당장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슈퍼비전을 구하는 것도 방법을 알아보는 길이었을 텐데,
그저 편한 길로 가고자 사실을 숨긴 채 상황을 유도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 후로도 그런 기로에 설 때면 생각합니다.
‘나는 이 사실을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는가.’
민경이 사례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와닿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힘’ 학교사회복지사도, 아동보호기관의 담당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순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였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까지 있지만, 그 말을 얼마나 쉽게 잊고 사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담을 할 때면 가계도와 생태도를 그리며 가족들과의 관계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뿐이었습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당사자가 표현하는 욕구에 해당하는 다른 자원들이 짜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어린이재단, 저 부분은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그리고 요 부분은 복지관 후원품’ 연락이 되는 가족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은 그저 물질적인 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는 ‘가족’, ‘이웃’, ‘친구’보다 앞서서 다양한 기관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해져 버린 업무는 한결 수월해지는 듯 보입니다.
어쩌면 “업무가 손에 익었다.”는 말이 사회사업에서는 “내가 더 이상의 고민을 멈추어 버렸다.”는
나의 성장에 대한 사형선고가 아니었을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기관을 통한 연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넘겨서 다른 기관의 연계가 종결된 후에도 같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들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면. 떠올려야 할 자원의 순서가 분명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쉬운 길이 있다면 나의 고민이 멈춰 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보는 사고를 길러야겠습니다.
*****
민경이 사례에서 ‘가족의 힘’을 읽은 뒤 문득 저의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어르신들과 만날 때면 “이렇게 걱정해 주고, 전화해주고전화해 주고, 친자식보다 낫다.”, “친아들보다 낫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정작 우리 부모님께는 안부전화는 커녕 문자조차도 잘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부모님도 어디선가는 다른 누군가를 친자식보다 낫다고, 친아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모두가 남에게 자식보다 나은 사람이기보다 애초에 본인 부모의 자녀로, 본인 자녀의 부모로 충실했다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따로 살고 계신 어머님께 몇 달 만일지도 모르겠는 출근길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미룬다면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야?”
“그냥 엄마 출근 잘하고 계신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
“에엥? 진짜로 왜”
“정말로 비도 오고 해서 우산은 챙기셨는지, 기온 떨어졌는데 겉옷은 입으셨나, 출근 잘하고 계신가?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무슨 일인데? 어디 아퍼?”
“아뇨. 정말 안부전화 드렸다니까요?”
“혹시 울고 있어?(어머니 반응이 재미있어서 ”끅끅“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말해봐.”
“정말로 출근 잘하시고 계신지, 오늘도 잘 보내시라고 전화드렸어요.”
이 전화가 어머님께는 특별한 선물이 되셨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걱정만 안겨드린 걸까요.
어느 쪽이든 그만큼 연락드리지 못한 저의 반성이 필요하겠습니다.
어머님은 걱정이 더 크셨던 건지 출근 후 카톡을 주셨습니다.
다행히 설명을 드리고 난 후 어머님께 특별한 선물로 변한 듯합니다..
100편 사례 읽기라는 좋은 기회로 저희 어머님께 특별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근 후에는 “기적을 꿈꾸는 보람과 엄마” 사례를 읽었습니다.
대화도 없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보람이가 “힘들지?” 한마디에 고개를 들고 마음을 열어서
대화를 시작하는 보람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앞선 사례 들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학교사회복지사의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동윤이가 파출소에서 선생님의 번호를 말했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던 내용, 지각과 결석이 잦았던 민경이가 방과 후 만남 약속에는
꾸준히 등장하던 내용 모두 학교사회복지사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연락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물론 진심으로 다가갔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은 어른’, ‘단 한 사람 어른’으로 느끼고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계속해서 찾아오고,
연락을 했다는 자체가 나에게 힘드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표현법이 있기에 우리가 이것을 전부 정리하고 매뉴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힘들지?”, “힘드니?”와 같은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이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생겨서 질문을 남깁니다.
보람이의 어머니는 “차라리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직접적 언급까지 하시면서 자녀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보람이도 그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그린 행복한 미래에는 자녀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분명 어머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님은 왜 그렇게까지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계셨던 걸까요?
사례에는 나오지 않았기에 궁금해졌습니다.
교환일기에서 처럼 서로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오해들로 인해 자신이 무시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옷을 화려하게 입으셨던 걸까요?
다행스럽게 사례에서는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됐지만,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런 부정적 시각을 가졌었고 직·간접적 표현으로 이어졌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어머님께서 또 다른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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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쩌면 “업무가 손에 익었다.”는 말이 사회사업에서는 “내가 더 이상의 고민을 멈추어 버렸다.”는 나의 성장에 대한 사형선고가 아니었을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혹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현우 선생님 글이 참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긴 글로 감상 남겨주시고 공유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이때 저는 먼저 가게에 찾아가 섭외가 가능한지 여부와 일정조율을 진행한 후 사장님께는
“아이들이 방문하거나 전화를 통해서 가게를 섭외할 텐데
제가 온건 모른 척해주시고 아이들의 섭외에 응해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지역과 공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만약 갑작스레 찾아가고 섭외를 진행하려 한다면
가게의 영업이 방해되거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만약 섭외에 실패한다면 아이들이 시작부터 위축되어 포기하려 하지는 않을까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럴때가 많은것 같아요. 그냥 갈까 싶다가도 당사자 분들이 위축되실까봐 걱정이 더 먼저 앞서서요. 약간 어색하지만(모르는 척 연기하는거니까) 심지어 저는 이렇게 하는게 잘 하는 건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 글 덕분에 성찰해보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이현우선생님이 '호기심학교'를 맡았던게 1년차였을 때였지요. 선배로서 분명 사업진행과정을 보며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열정,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참 귀하고 대단했어요.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나는 1년차때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훌륭히 잘하고 있다고 믿었고요.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생각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지난 실천을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왜 그랬을까 후회하기도 해요. 결국 이런 배움과 성찰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정말 놀랍고 눈물나게 감사해요. 1년차때보다 지금 성장해있듯이 5년, 10년 뒤에는 얼마나 더 멋진 사회복지사가 되어있을지 기대합니다.
이현우 선생님은 저보다 후배지만, 여러 고민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동료예요. 선생님에게도 제가 그런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선생님을 응원하는 좋은 동료들도 있다는거 기억해줘요^^
주책 맞게도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울었네요.
선생님의 글이 현장을 살아가는 저에게도 울림이 되어, 눈물을 흘리게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사회사업을 응원합니다!!
동료로 현장에 있어주셔서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자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는 ‘가족’, ‘이웃’, ‘친구’보다 앞서서 다양한 기관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해져 버린 업무는 한결 수월해지는 듯 보입니다.
어쩌면 “업무가 손에 익었다.”는 말이 사회사업에서는 “내가 더 이상의 고민을 멈추어 버렸다.”는
나의 성장에 대한 사형선고가 아니었을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생각하지만 외면했던 생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현장에서의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 해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가 현장에서 좋은 동료가 되어 서로 응원하고 함께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게 당신을 위한 일이라서요. 혹시 어영부영 본인은 잘 모르게끔 처리해도 될까요?”
이 물음을 듣게 될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내가 “상대를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망각하고 일 처리에 급급한 셀러리맨이 되어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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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쓴 사회사업 시나리오에 아이들이 따라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당사자의 일에 교만해질 때마다 이현우 선생님의 질문을 떠올려야겠습니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작은 일도 성찰하고, 행동하는 이현우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오늘은 어머니한테 전화드려봐야겠어요:-)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야가 좁아지거나 기본 가치를 잊은체 업무의 성과와 효율을 따져 좀더 편한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곤 합니다. 좁은 시야를 다시 환기시켜 줄 수 있는 직장동료와 선배들이 있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 까지 잘 도달해 낼 수 있을것입니다.
'상대를 주체로 보아야 한다' 사례관리자로서 잊지 않고 지켜야 할 신념같은 문장이었습니다.
글 잘읽었고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