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오후 8시 33분.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삼켜진 그 순간, 서울 서대문구 한 골목 끝에서 남자 하나가 쓰러졌다.
목격자는 둘이었다. 첫 번째는 골목 입구에 세워진 CCTV. 두 번째는 인근 빌라 3층 창가에서 붉은 달을 바라보던, 이름 모를 행인.
그러나 CCTV는 이상하게도 그 6분 동안만 꺼져 있었다. 그리고 창가의 행인은 이틀 후, 사라졌다.
사건을 맡은 것은 전직 형사 출신의 사립탐정 강준호였다. 그는 이 사건을 처음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고.
서울 서대문구 / 사건 현장 / 흐린 오전
강준호는 골목 어귀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의 조수 김세아가 뒤에서 파일을 들고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피해자 신원은요?"
"오석진, 48세. 무역업 종사. 이혼 경력 있고, 최근 6개월간 잦은 해외 출장 기록 있습니다."
강준호는 골목 안쪽을 천천히 걸었다. 바닥에는 분필로 그어진 윤곽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땅을 들여다보았다. 발자국의 방향. 쓰러진 각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가 없었다.
"외상은?"
"부검 결과 심장마비. 그런데……" 세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혈중에서 소량의 미확인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국과수에서 정밀 분석 중이에요."
강준호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골목 위쪽, 3층 창문으로 향했다.
"창가의 목격자. 아직 못 찾았나?"
"네. 주민등록상 거주자는 이 달 초에 이사를 갔고, 그 이후 공실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무단으로 들어가 있었던 걸로 보여요."
강준호는 그 창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유리는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 서둘러 자리를 뜬 사람의 흔적처럼.
골목 인근 / 편의점, 철물점 / 오후
강준호는 골목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그의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편의점 주인 최씨는 60대 초반의 구부정한 남자였다. 강준호가 신분증을 내밀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날 밤 뭔가 이상한 거 보셨어요?"
"……달이 빨갰잖아요.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최씨가 뚱하게 대답했다.
"그것 말고요."
"까마귀 한 마리가 그 골목 위를 계속 맴돌았어요. 이상하게 생각했죠. 까마귀는 밤에 잘 안 날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달이 붉어서 그런지, 낮처럼 환했으니까."
강준호는 수첩에 받아 적었다. 까마귀. 그것은 단순한 목격담이었지만,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 * *
철물점 맞은편 골목 안쪽,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박씨 할머니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날 밤에 유모차 끌고 나온 아주머니가 있었어. 아기 둘이었는데. 하나는 아주 작았고, 하나는 다섯 살쯤 됐을까. 형아가 아기 손잡고 달 보고 있었어."
"몇 시쯤이었습니까?"
"8시 반은 넘었지. 달이 빨개지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 옆으로 양복 입은 남자가 지나갔어. 아주 급하게. 전화를 받으면서."
강준호의 눈이 좁아졌다.
"그 남자의 얼굴, 기억하십니까?"
"어두웠지. 근데 한 가지 기억나는 건……"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까치 한 마리가 그 남자 어깨 위를 지나쳤어. 딱 그 순간에. 희한했지."
까마귀와 까치. 강준호는 연필을 잠시 멈추었다. 이 두 단어가 우연히 같은 밤에 나타났다는 것이, 어딘가 불편하게 걸렸다.
오석진의 무역 사무실 / 을지로 / 다음 날 오전
오석진의 사무실은 을지로 한 빌딩 7층에 있었다. 비서는 없었다. 파트너라고 불리는 남자, 임태수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40대 중반. 마른 체형. 눈 주위에 피로가 짙었다. 그러나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수상했다.
"오 사장님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입니까?"
"사건 당일 오후 5시. 전화로 짧게 통화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업무 이야기입니다. 호르무즈 관련 해운 계약 건이었어요."
강준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세아가 살짝 그의 팔을 건드렸다. 호르무즈. 그 단어는 최근 뉴스에서 떠돌던 이름이었다. 미 해군의 보호 아래 움직이는 유조선들. 중동의 긴장.
"혹시 이란 쪽 거래처와 관계가 있었습니까?"
임태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눈꺼풀 아래에서 무언가가 지나갔다. 두려움인지, 계산인지.
"……그런 건 없었습니다."
강준호는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러나 사무실을 나서며 그는 세아에게 낮게 말했다.
"오석진의 최근 6개월 출장지. 전부 뽑아봐. 특히 중동 쪽."
이태원 / 한 바 / 저녁
강준호가 오래된 정보 브로커 노씨를 만난 것은 사건 발생 나흘째 밤이었다.
노씨는 이 바닥에서 20년을 버텼다. 정보를 팔고, 침묵을 팔고, 간혹 거짓말도 팔았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죽은 자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석진." 강준호가 말했다.
노씨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 이름은 비싼데."
"알고 있어."
노씨는 주변을 한 번 훑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사람, 이란 측 브로커와 연결된 인물이야. 하메네이 측근 라인의 자금을 세탁하는 중간 고리였거든. 그런데 최근에 그쪽 조직이 흔들렸어."
"하메네이가 죽었으니까."
"맞아. 권력이 바뀌면 청산이 시작되지. 오석진은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았어. 그리고 누군가 그걸 알고 있었겠지."
강준호는 천천히 잔을 들었다. 이란. 하메네이의 죽음. 그리고 서울 골목에서 쓰러진 한 남자.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단서 #1] 오석진은 이란계 자금 세탁 브로커 라인과 연결되어 있었다.
[단서 #2] 하메네이 사망 이후, 해당 조직 내부에서 '청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단서 #3] 혈중 미확인 성분 — 국과수 분석 결과 대기 중.
강준호 사무실 / 새벽 2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었다는 뉴스 알림이 울린 것은 새벽 두 시였다.
강준호는 책상 위에 펼쳐진 오석진의 계좌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아가 뽑아온 자료는 두툼했다. 숫자들이 빼곡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환율이 급등하기 딱 사흘 전, 오석진의 계좌에서 거액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돈은 여러 계좌를 거쳐, 최종적으로 홍콩 소재의 페이퍼 컴퍼니로 흘러들어 갔다.
"환율 급등을 미리 알고 있었다?" 세아가 물었다.
"아니. 그보다 단순해." 강준호가 말했다.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오석진은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도망치지 못했다.
강준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창밖에는 서울의 밤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까마귀의 날개처럼.
[단서 #4] 사망 3일 전, 오석진의 계좌에서 수억 원이 홍콩 페이퍼 컴퍼니로 이체됨.
[단서 #5] 해당 거래는 환율 급등 직전에 이루어졌으며, 사전 정보 보유 가능성 있음.
서대문구 빌라 3층 / 현재
국과수 결과가 나왔다. 혈중 미확인 성분은 특수 심장 억제 약물의 흔적이었다. 자연사처럼 보이게 하는,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어려운 종류.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었다.
그리고 세아가 창가의 목격자를 찾아냈다.
이름, 나다. 이란 출신. 한국에 온 지 3년. 직업, 모델. 미스 이란 대회 출신.
그녀는 그날 밤 우연히 그 빌라의 빈 방에 숨어 있었다. 도망 중이었다. 누구로부터? 오석진과 같은 조직으로부터.
강준호가 그녀를 만난 것은 인천 어느 고시원의 작은 방이었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하메네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번째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침내 숨을 쉴 수 있다고. 그래서 그날 밤 달을 보러 나왔다가……"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남자가 골목에서 쓰러지는 걸 봤어요. 처음에는 그냥 쓰러진 줄 알았는데. 그 남자 옆에 누군가 있었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얼굴을 봤습니까?"
"……까치 깃털이 달린 열쇠고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흰색이었어요. 그게 달빛에 반짝였어요."
강준호의 눈이 빛났다. 까치.
[단서 #6] 목격자 나다 — 쓰러지는 오석진 옆에 '까치 깃털 열쇠고리'를 가진 인물을 목격.
[단서 #7] 사인은 자연사 위장 심장 억제 약물. 전문 지식 보유자의 범행.
강준호 사무실 / 모든 단서가 모인 밤
강준호는 책상 위에 단서들을 늘어놓았다.
까치 깃털 열쇠고리. 호르무즈. 홍콩 계좌. 하메네이의 죽음. 그리고 임태수.
임태수의 전 직업은 제약회사 연구원이었다. 특수 약물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 서랍에서, 세아가 발견한 것은 까치 깃털로 만든 장식품이었다. 열쇠고리 형태의.
그러나 동기는?
강준호는 오석진의 개인 기록을 다시 펼쳤다. 임태수의 전 부인. 이혼 사유. 오석진으로 인한 사업 파산. 재산 전부 탕진.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임태수.
아이 둘. 강준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골목에서 달을 바라보던 아기와 아기 형아의 얼굴이 스쳤다. 그 순수한 눈망울 뒤편 어딘가에, 이런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경찰서 취조실. 강준호는 임태수 맞은편에 앉았다.
"까치 열쇠고리는 아이들이 만들어준 거죠."
임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석진이 당신 인생을 망쳤다는 거, 나는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왜 그랬는지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어요." 강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다'라는 말로 세상을 끝낼 수는 없어요."
임태수의 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아이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그건 내 권한 밖입니다." 강준호가 조용히 말했다.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임태수는 구속되었고, 나다는 망명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홍콩 계좌의 자금은 국제 공조로 동결되었다.
강준호는 서대문구 골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았다. 분필 자국은 비에 씻겨 사라졌다.
골목 하늘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았다. 그리고 그 뒤를, 흰 날개의 까치 한 마리가 따랐다.
강준호는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두 새는 서로를 경계하지 않았다. 같은 바람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멈추었다. 그리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두 새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둠과 빛은 언제나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한다.
탐정의 일은 그 경계 위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