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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북벽시대에 혜성과 같이 빛났다가 사라진 - 장 코스트 !
그는 젊은 꽃봉오리를 산에 바쳤다. 16세에 등산을 시작해서 22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7년간, 그가 지녔던 산에 대한 넋은 우리 산악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대자연의 맹위앞에 그는 '약한 갈대'에 불과했으나 '생각하는 갈대'는 "알피니스트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에게 감격을 안겨주고 있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의 알프스 등산사는 마터호른이 초등된 뒤의 이른바 '머메리즘' 개화기였고, '북벽시대'라는
날카로운 양상은 더욱 어려운 새 코스에서 영예를 구가했던 시대였다.
마터호른이 윔퍼에 의해 초등된 것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후 알프스 최후의 난봉이라고도 하던 라 메이주를 둘러싼
초등 기록은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 봉의 북벽을 도전한 알프스 북벽시대의 알피니스트들이 그 빛나는
영광을 장 코스트에게 돌리고 누구도 자기의 초등을 공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프스 북벽시대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빛을 내다 사라진 장 코스트. 그는 1904년에 프랑스의 리용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립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조수생활의 바쁜 틈에도 알프스 14좌의 초등반을 기록했다.
1923년부터 4년동안 이룩한 빛나는 영예였다.
1926년 7월 27일, 도피네 알프스의 맹주 라 메이주 북벽엔 익숙한 몸가짐의 두 산악인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산록마을 사람들은 서봉 정상에 있는 두 알피니스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인즉 프랑스 산악회의 발르스로테트 지부에 소속된, 장 코스트와 그의 자일 파트너인 샤르르 사바네였다.
그 2시간 후,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이 산을 광란 속으로 휘몰고..... 이후 힘찬 모습으로 하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꽃같이 젊은 나이에 산에서의 죽음이란 더없이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산에서 죽는다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라는 말은 결국 위로의 말에 지나지 않을까.
젊은 아들을 산에서 잃은 코스트 양친의 비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양친은 생전에 코스트가 간직하고 있던 '등산일기'와 그의 편지의 단편들을 모아 유고집을 출판했다.
<최초의 4년간의 산행> <최후의 산행> <젊은 알피니스트의 마음>
이 세권의 유고집을 읽으면 코스트가 산에 대해 얼마나 청순하고 정열을 다한 알피니스트였나를 알 수 있다.
아직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산을 시작해서 7년간, 그가 지녔던 산에 대한 정신은 그 유고집을 읽은 사람에게
대시 없는 감명을 준다.
아마 많은 산악인은 이 책에 적지 아니한 영향을 받았으리라고도 믿어진다.
필자도 원어가 아닌 일어역으로 된 이 책을 20대에 처음 읽었을 때, 잠들지 못했던 여러 날의 밤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때는 숲속에서, 또 어느 때는 산봉에서.... 그리고, 모닥불가에서 코스트가 남긴 <알피니스트의 마음>은 산행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공감은 명상의 산행을 거듭하게도 했다.
오늘날 산악운동 내지는 등산이 대중화되고 있으며, 놀이의 산행에서 차츰 참된 산행으로 옮겨지는 풍조조차 엿보인다.
우리 자신들의 산행일기 속에서도 코스트의 단어들과 비슷한 많은 문장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믿어진다.
수많은 산행들! 우리는 산행일기를 적어두면서, 산에서 느끼고 산에서 감격스럽던 비교할 수 없는 행복들을 회상하며
'산이 나의 전부'라고 까지 말하는 젊은 산악인들에게 이 역서를 아낌없이 보내고 싶다.
당연히 불어원전을 불문학자가 역출해야 되겠지만 불어에 어두운 필자는 감히 두 권의 일역문과 런던판 영문역을
가지고 만용을 부리고자 한다.
이 만용은 우리의 믿음직스러운 많은 젊은 산악인들에게 하루 속히 산으로 청순한 정을 북돋워주기 위한 뜻이 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장 코스트!]
그 젊은 꽃봉오리를 산에 바쳤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 그는 '약한 갈대'에 불과했다.
그 갈대는 부러졌으나 이 '생각하는 갈대'는 알피니스트의 마음으로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에게 감격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 산악회장은 추도문에서는, "그에게는 등산이 스포츠일 뿐 아니라 예술이었다.
그에게는 산에 넋이 있었고, 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 위대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다시 없는 아름다움일수도 있다....."고 쓰여 있다.
[장 코스트!]
그는 결코 무모한 산행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이었고, 치밀한 계획을 짜고 연구를 거듭한 뒤에 용감한 '어택'을 했을
뿐이었다.
마치 신앙에서 얻은 것 같은 청순함과 믿음성이 그와 더불어 있었고, 그의 맑게 빛나던 모습엔 언제나 위엄을 초월한
산의 평화가 있었다.
그의 유필에는 "산에서 죽는 것이 가장 보람이 있다."고까지 했으나 아마 본인이 살아서 이 책을 출판한다면 이런 말을
정정해서 썼으리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산에서의 죽음'이란 무모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젊은이들에게 지나친 정열만을 북돋워주는
한편, 오해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기초에서 짜여진 하나하나의 산행을 보람으로
삼았고, 산행에서 만용 아닌 진실한 모험 즉 비겁하지 않은 승산 있는 전력투구를 했음을 그의 단상속에서 역력히
엿볼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수록한 것은 <최초의 4년간의 산행>만을 뺀 2편을 4부로 구분해서 1부는 발췌하여 번역하였다.
훗날에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추록하기로 하고 코스트의 산에 대한 주옥 같은 마음이 우리 젊은 산악인들에게 다시
없는 공감을 줄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산악인, 쓰는 산악인, 연구하는 산악인, 그것은 산악인이란 등산행위만이 그 요건이 아닌 것을 아울러 힘주어
말하면서 역자의 머리말로 한다.
- 젊은 알피니스트의 마음 -
첫 산행부터 나는 훌륭한 등산만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산에 반한 것은 거리낌없는 자유와 웅대한 모습, 그리고 예상되는 아슬아슬한 산의 위험 같은 것들을 극복하면서
얻는 영예들어었다.
(지금은 그런 하찮은 자랑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고 고백하지만) 산이 그 아름다움만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이
그후의 일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단순한 산, 그것이 좋아 등산을 거듭하고 있다.
나는 산에 있으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환경속에 묻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에서 나는 언제나 생기있게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 도시의 풍습이나 오락들은 아무런 흥미도 없다.
나는 산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알피니스트가 되겠다는 큰 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다.
나는 산에 흠뻑 반했으니 산에만 만족할 뿐이다.
푸른 목장에서 한여름을 지내는 동안 거기에 사람들이 없더라도 나는 심심할 것이 없다.
그곳에는 언제나 산이 있기 때문에. 산 사진 수집이란 누구에게나 흥미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바위, 숲, 그리고 계곡들뿐인데......
한 여성을 사랑하듯 나는 산을 사랑한다. 때문에 휴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마치 지금 생활이 보람된 생활이 아니기라도 하듯이 산에 가는 보람찬 날만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흰 눈의 차고 맑은 대기를 마셔야만 하겠다.
그리고, 산정을 목표로 오르고 이겨야 한다.
좁은 내 방 속에서 나는 거창한 등산계획을 세우고 있다.
손도 댈 수 없는 미끈한 슬랩, 바위의 날카로운 산벽에 아이젠, 스키, 설피를 차례로 쓰는 공상의 원정을 꿈꾸는 거다.
알피니즘이 일상처럼 평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혼자 산에 올라간다는 것은 신중한 일이 아니라고 자네는 말하겠지.
나도 동감이야. 그러나 같이 갈 친구가 없다는 것이 등산을 단념해야 할 이유가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네.
나는 충분한 자신을 가질 땐 혼자라고 산에 가네. 이 자신을 갖지 못할 날이 오면 나는 산행을 그만 두기로 하지.
나의 최초의 등산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산행에서 몹시 깊은 보람을 느꼈다.
그것은 비록 손쉬운 승리였으나, 다른 많은 산행과 비교해 볼 때,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귀중한 보람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산행이었으니까.
나의 최초의 큰 정상. 참으로 보람된 날, 새 장난감을 받은 어린애모양 무작정 웃고 떠들었다.
나는 내 산행일기에 적어 넣었다.
"미칠 것만 같은 즐거움이었다."고, 두 시간쯤이 지나 가이드가 출발신호를 할 때 나는 소리를 질렀다.
'벌써 가야만 되나......' 시간은 꿈같이 흘렀다. 참으로 복된 날이었다!
그날 같이 등산한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굉장히 멋있는 날이었다고 말한다.
나의 운명이 어찌 되건 간에 앞으로 몇 번이건 그와 같이 멋있는 날을 또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란 대단히 즐거운 것
이라고 믿고 자기 숙명에 만족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스키 연습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것은 원정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단지 스키가 동계등반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나를 끌어올려 놓고 다른 친구들은 돌보면서 날보고는 움직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움직이면 안 된다니...... 그럴수가 있을까! 침니는 바로 위에서 끝이다.
몇 미터 위는 하늘과 끝모를 지평선이 있는 거다. 그래서 유혹은 너무나 강했다.
나는 살며시 혼자 오르고 있었다.
나는 새벽녘 산허리에서 해 돋는 신비로운 광경을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한시간, 나는 하늘과 구름이 한없이 색채를 달리해 가는 광경을 쫓고 있었다.....
황홀한 한 시간! 나는 감격에 흠뻑 젖고 말았다.
그 등산이 위험한 것이라고 단언하는 까닭에 내 마음은 오히려 빨리 그 산행을 해치우고 싶었다.
나는 곤란함을 사랑한다.
나의 의지는 어떠한 곤란에서도 뒤돌아서지 않는다.
나는 위험한 일에 부닥치고 그 위험을 극복했을 때 참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손쉽게 얻게 되는 것엔 관심이 없다.
갑자기 출발했을 때 나는 톱이었다.
그런데 나는 눈부시도록 흰 빙벽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순간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나는 극히 냉정했다. 나는 레더에 살며시 발을 놓듯이 딛고 빙벽에 매달려 천천히 자일을 사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한없이 즐거워 보였으나, 나는 죽음에 직면할 때 느끼는 그 엄숙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전 코스를 톱으로 올라온 나는 몇 시간 동안 미지의 산과 싸운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내 뒤를 쫓아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앞에서 쉴새없이 부닥치는 곤란을 피하며 공포를 극복하느라고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워 긴장했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멋진 성공에 도취하고 있었다.
내가 냉정하게 입을 열지 않았던 까닭은 성공의 참된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며, 무척 큰 일을 해냈다는 묵직한 기쁨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반중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어려움에 부닥쳐, 친구들이 주저하면서 되돌아서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울화통이
터진다.
이제 멋진 등반의 재미가 시작되는 판에 디ㅗ돌아서려 하다니...
더 올라갈 수 없는 어려운 암벽에 부닥쳐 되돌아온다.
산 밑에 돌아와서잘 했으면 능히 돌파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잘못 판단해서 공연히 되돌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분통이 터지고 만다. 그러면서 즉시 다시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힌다.
위험한 루트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나, 그 루트를 어떻게 하든 꼭 돌파해야
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거리낌없이 그 위험에 부닥쳐 본다.
최초의 몇 발은 대담한 등반을하기 쉬우나, 곧 냉정한 침착이 되살아 온다.
건널 수 없는 크레바스에 부닥치거나 짙은 안개나 기상 때문에 되돌아서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기술이 부족해서 후퇴한다는 것은 나에겐 대단한 치욕이다.
보람된 큰 등산,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은 등산이 조금도 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초심자를 산에 끌고 가는 것은 나에게는 언제나 큰 즐거움이 된다.
다행히 산정까지 올라갔을 때, 처음으로 맞는 광경에 그들은 감격이 넘친다.
그러면 내 스스로도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 속으로 이끌려 간다. 모두가 감격하고 있는 거다.
나도 그들의 감동 속에 휘말리고 즐거워하면서 기도 레이가 말한 것처럼 뇌까린다.
그래, 산을 모르던 사람을 끌고 와서, 그들과 이 환희를 서로 나누고 싶었던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문자 그대로 정상에 쓰러지듯이 올라서서 찾아 보았다.
사람의 발자취를 찾는 거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반인 것이다! 다시 없는 즐거움! 나는 초등반을 이룩한 거다.
알피니즘 초기의 용자들만의 것인 줄 알았던 이 뜻하지 않던 영예를 얻게 된 것다! 나도 초등반의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보람, "나다. 내가 초등반자다"라고!
인간의 발자취는 물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적막의 경지.
단애절벽 위에 솟은 정상! 영원히 잊지 못할 감격에 사로 잡혔던!
다 떨어진 바지, 먼지와 땀에 지저분해진 내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총을 쏜다. 그러나 그들이 이 떨어진 옷의
의미를 알까?
나는 모이즈 봉, 브랙, 샹베이롱 북벽을 초등한 것이다.
만일 메이주 북벽도 해낼 수 있다면, 나는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
비록 내가 산에서 죽었다손 치더라도 슬퍼하지 말아 주게. 오히려 "저 놈은 제 뜻대로 죽었으니까"라고 말해 주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산에서의 죽음이란 하나의 특권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선 '개죽음'은 아니다.
자연의 제 요인이 자기보다 강한 까닭에 싸움 속에서 쓰러졌다는 것은 훌륭한 것이 아닌가.
또한, 산에서의 죽음은 고통이 없을 것이니, 추위 때문에 동사할 때는 편안한 잠 속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죽는다니.
암벽에 떨어졌을 때는, 자기 보존의 본능은 극도로 긴장되어 그 쇼크는 격렬할 것이나, 뇌중추는 고통을 느낄 찰나도
없을 것이다.
또, 최후의 영하의 균열 속으로 빠지게 되더라도 무척 멋있는 운명일 게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숭고한 얼음성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던 날의 모습대로 영원히 남을 수 있을 터이니까!
강인하고 선량하며 행복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산밖에 없다.
산봉에 올라가는 일은 의지와 근육을 발육시킨다.
우리들 세상에서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속세의 일상사에서 멀리 떨어져 하찮은 것을 도외시 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이런 지저분한 것들을 잊게 해준다.
산은 대자연과 우리들을 교감시킴으로써 말할 수 없는 무한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정상 정복은, 하늘과 태양과 맑은 대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들을 대자연과 융합시키는 원시적
이며 신성한 매듭을 굳게 매어 주는 것이다.
(더럽혀진 문명이 매일 풀어지려는 매듭에서), 대자연에 가까이 함에 따라 산은 행복을 안겨준다.
이 행복이야 말로 시속을 따른 사람들이 아무리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곤란한 산을 말할 때, 부닥치지 않으면 안 될 위험한 산이라느니,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될 난관이라느니 할 것은 아니다.
자기 것으로 해야 되는 새로운 미라고 볼 것이다.
분명히 산은 무감각이며 상호 관계를 맺을 순 없다. 그러나 산에선 무한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최상의 기쁨이 아닐까?
- 알피니즘이란 무엇일까? -
알피니즘이란 한계에의 도전이고 미지의 영역을 추구하는 행위일지도 모근다.
때문에 합리적인 모험은 감연히 이를 극복하고,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을 안전하게 돌파할 수밖에 없다.
흔히 어떠한 조난에도 '무모한 등산' 운운하며 객관적인 논란을 한다.
실상 이 말이야말로 논자의 주관에 불과한 말이다.
그것은 알피니즘이란 어쩌면 '무모한 등산'을 예지한 합리적인 모험을 이 속에 넣어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난의 극한상태는 당사자의 극한상태에다 플러스 알파의 찰나적 조난상태에 있는 법이다.
더욱이 자연적 요인일 때는 이를 예측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이 알피니즘에선 이를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주저치 않고, 가능한 최후의 순간까지 위험을 능히 피할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행해지는수가 많다.
여기서 코스트는 초등의 영예를 말하고 산에서의 죽음을 말했다.
이 말은 어쩌면 다혈질의 청년들이 흔히 말 할 수 있는 정열적인 낱말에 불과할 것인지?
그러나 코스트는 다시 되풀이해서 자연적 요인중에서 극복할수 없는 난관에서 뒤돌아서는 것을 불명예로 삼진 않았다.
즉 후일의 새로운 계획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다만 부닥쳐보지도 않고 후퇴하는 것은 다시 없는 불명예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알피니즘 등산론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거나 행해 보지도 못한 분들의 점잖게 '무모한 등산'으로 처리
하려는 일부 인사들의 논평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무모한 등산'이란 말이 단계를 거치지 않은 '도약의 등산'이거나 비합리적일 때는 당연한 말이 되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스스로 확신 속에서 행하는 등산, 그것이 한계의 도전이라는 알피니즘 등산일 때에 합리적
모험은 이를 감행할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주저할 순 없는 것이니까?
산이 그 신비로운 베일을 벗고 우리를 가까이 반겨줄 때, 그녀는 우리 마음속에 사무치는 감동과 잊을 수 없는 회상들을
영원토록 안겨주는 것이다.
알프스! 알면 알수록 더욱, 당신은 충신할 벗들을 기쁨 속으로만 몰아 넣는다.
산으로의 애정을 잃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오더라도 결코 슬퍼해서는 안된다.
실상 등산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즐거운 해후를 주는 것은 등산뿐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금후에도 다시 만나지 못할지언정, 그러나, 곧 거리낌없는 친한 벗이 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산이다.
산행을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잘 추진시켜 운행되고 성공할 때엔, 내심에
한없는 기쁨과 꿈을 실현시킨 보람이 주는 만족감에, 비할 바 없는 행복으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전망 좋은 코스는 생각보다 고생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코스에서 전개되는 장려한 경치에 노고 따위는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가이드와 동행하는 것은, 승리에 대한 두려움, 자기들 역량으로만 이룩하는 자립, 무척 힘든 루트 탐구 등의 즐거움 같은
등산의 매력들은 아주 없어지는 것이 된다.
등산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나는 가이드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는 등산이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캔버스에 아주 독창적인 작품을 그리는 자만이 화가로서의 명예가 있듯이, 등반에선 참된 자기의 능력으로
이룩하는 자만이 알피니스트로서의 명예를 지닐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이라는 수는 암벽 등반에서 불충분한 것일까?
이 두명이 우수한 알피니스트인데도 불충분하다는 것일까?
기상?
이것을 예지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애매한 예보 따위로 우물거릴 필요는 없다. 기상이 결정적으로 악화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우선 출발해 봄직도 하다.....
너무나 벅찬 고생이 겹친 등반은 금방 우리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후일에 그 등반을 회상할 때, 참으로 이것이야말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된다.
온 힘을 다한 너무나도 어렵고 고생스런 등반을 마친 뒤엔, 이상하게 무거운 기분이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으며, 무엇을 바라거나 느끼고 싶지도 않아진다.
모든 것이 베일에 쌓인 채 보이지 않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길고 어려운 암벽 등반을 하고 있을 때는 체력을 온존시키기 모든 수단을 써야만 한다.
필요엇는 움직임은 삼가야 하고 휴식중엔 절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특히 행동중에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등반에선 필요없는 대화는 금물이다.
말을 함으로써 집중시켜야 할 정신력이나 극복력을 분산시키게 되니까?
보잘 것 없는 피난산장에 묵고, 어둠 속 계단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는 일들.....
이런 일도 알피니즘의 위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겨울산의 과학은 무척 복잡하기도 하지만 또한 흥미롭기도 하다.
겨울산의 파노라마야말로 각별한 것이며, 필설로는 다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것이다.
산이여! 그대는 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루트 타맥에서 쌍안경의 효용을 인정치 않는다.
우선 가서 루트에 부닥쳐볼 것이다.
멀리 떨어져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자일은 정신적인 보증이라고도 말하나, 그렇다면 어둠속에선 어떨까!
한밤중, 자일을 매고 가이드를 따라갈 때는 장소에 따라서는 조금도 위험을 느끼지 않고 올라가버린다.
즉,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낮이라면 자일을 매고 있더라도 조심스럽게 지나게 마련이다.
수없는 위험이 있는 산을 어택하기 위해 산장을 떠나려는 순간이야말로 언제나 느끼는 감동된 순간이다.
아무 말 없이 자일을 사리며 각자는 장비를 점검하나다.
세심한 이러한 준비는 무엇인지 모르는 엄숙한을 느끼게 한다.
안내인 없는 등반 파티는 각자가 정확히 자기 위치와 분수를 지켜야 된다.
누가 보더라도 산에 대해 가장 깊은 지식을 갖고 있고, 산에 대해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리더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원의 안전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요구 조건이다.
빙하에서는 대원의 능력 순서로 올라가야 되나, 암벽에서는 선두와 후미에 가장 우수한 대원이 있어야 된다.
가이드는 대원 사이에 서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이드 없는 등반에서는 멤버 하나하나가 단독으로 능히 암벽을 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성공키 어려운 것이다.
대원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꼭 성공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흐린 사람이 있다면, 때때로 등정 목적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수가 많다.
산에서는, 절대로 대원과 떨어져서는 안된다.
그 대원과 같이 올라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원이 그와 같이 되돌아와야만 한다.
북벽을 올라가려면 새벽에 시작해야만 된다. 이때는 눈이 얼어 있고 썩은 얼음이나 신설에 고통을 받지 않는 법이다.
산에서 '곤란'과 '위험'이란 두 형용어는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등반은 위험하지는 않으나 곤란할 때도 있고, 이와 반대로 곤란하지는 않으나 위험한 경우가 있다.
두 손, 두 발의 지점 모두가 침니 암벽에 불어 있을 때는 퍽이나 확실한 느낌을 준다.
더욱 이 몸이 활모양으로 쭉 펴져 있을 때는....
안자일렌 등반중에 선두의 대원이 슬립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 순간 이것을 막으려는 확보를 한다.
이때는 머리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반사적인 행동이 된다.
그러나, 이 위험이 지난 뒤, "어떻게 했지?" 하고 자문자답할 때도 있다.
홀드에서는 손이 미끄러지더라도 놀라서는 안된다.
아무튼 부등켜 잡고 몇 분 휴식한 뒤, 냉정을 되찾고는 이 일을 생각지 말고 다시 올라가야만 된다.
등산의 즐거움이란, 그 정상보다는 오히려 그 등반속에 있는 법이다.
비록 어떠한 노고가 있었더라도 산정의 캐른을 보게 되면 이따위 고생쯤은 순식간에 없어지는 법이다.
하강은 어떤 때라도 등반보다 델리킷한 것이다.
자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발디딤은 볼 수도 없고, 확인도 못 하고 디뎌야 되기 때문이다.
벌써 정상에 섰겠다.
열의도 감격도 사라지고 다만 빨리 내려가려는 생각뿐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하강할 땐 결코 미지의 코스를 택해서는 안 된다.
적설상태가 좋은 좁은 계곡을 내려오는 것은 아주 편하다.
피켈에 의지해서 글리세이드를 하면 되니까.
나는 가이드들이 성심껏 우리를 돌보아주는 것에 아주 감격했다.
나보다도 연상이고 오늘 아침에 비로서 알게 된 이들이 이렇게 상세한 것까지 보살펴주다니.
도시 사람들의 풍습과 비교해서 순박한 산 사람들을 나는 찬미한다.
담백하고 선량하며 그들을 이해해 주면 아주 구김없이 솔직하게 대해 주는 산사나이들을 나는 사랑한다.
무서워하고 피로해 있을 때의 관광등산자 심리상태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무서울 때는 지나치게 신중해 진다.
사기를 돋우기 위해 곧 길이 편해진다고 하면 떠들어 댄다.
피로해 있을 때가 가장 취급하기 어렵다.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이런 경치는 처음이라"느니, "이런 차고 맑은 물은 처음 본다"느니......
아무튼 이 외의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피로를 은폐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알피니스트와 하이커를 비교해 볼까?
그것은 높은 곳에 있는 산장에 비치된 일지와 호텔같이 호화로운 산장에 있는 일지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전자가 진실하고 적절하며 후등자를 위한 유익한 메모를 적는데 비하여 후자는 추상적인 감탄사와 낙서 따위를 적고
있으니까.
도시의 비 오는 일요일이란 참으로 쓸쓸한 날이다!
나는 필요없는 모험만을 위한 등산을 가장 싫어한다.
행복의 비결은, 스스로가 신념과 애정을 갖고 마음으로부터 의욕을 다하는 데 있다.
드 높은 넋은 위대하고 어렵지만 신성한 것, 즉 산정에 본능적으로 향하게 되는 천성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법이다.
사람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그 스스로 삶에 뜻이 있는 것이며 현실에 의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현실만의 인생이란 추한 것이 될 것이다.
자기를 인식하기 위해 다른 것과 비교해 보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과 비교해서 판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불가능하다고 결코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불가능이란 절대적인 것이며,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꿈을 갖는다는 것이 현명할까?
대개의 꿈은 깨지는 것인데!
하나의 계획을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면 그것이 실현될 때 실망이 쉽다.
너무 지나치게 기대한 일이란 이미 기쁨을 주지 않기 쉽다. 사람은 보람없이 오래만 살 것은 아니다.
삼라만상의 최후에는, 언제나 무엇인지 모르는 무한의 비수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알프스는 이른바 북벽시대, 즉 알프스 '철의 시대'를 맞는다.
1910년에 하켄이 개발되고 빙벽 클라이머는 적극적으로 이 하켄을 사용하였으며, 그 당시에는 슈펴 알피니즘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하켄, 카라비너를 구사하던 철의 시대엔 알피니즘에 또 새로운 풍조가 생겼다.
즉, 가이드 레스등반과 단독등반이다.
원래 가이드 레스와 단독등반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된다.
가이드 레스는 한 등반 파티가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고 등반하는 것이며, 단독등반은 복수의 대원이 아닌 단 혼자서 등반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통점은 가이드를 동반치 않는 것이며, 다만 등반자가 2명 이상이냐 또는 1명이냐로 구분되는 것이다.
알프스의 선구자 영국인들은 그들 본토에선 암벽등반 연습은 할 수 있었으나 빙벽의 본격적인 등반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 알프스의 빙설산을 찾아들었다.
즉, 가이드를 동반해서 그들은 알프스의 선구적 초등자가 되었고, 알프스 초등반의 황금시대의 주역들이 되었다.
여기에 본토의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반가들은 이른바 아카데믹 알피니즘, 즉 산에 대한 학술조사 따위가 아니고
등반 방식의 아카데미즘을 주장하면서 가이드 레스 풍조를 일으켰다.
다시 말해서 이국인인 영국인이 스위스 지방의 가이드를 고용하는 귀족적 입장에 대한, 스스로의 능력으로 올라가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즉, 기술의 아카데믹 알피니즘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생명을 건 스포츠 알피니즘에 정신적 자주가 필요했다.
즉 등산사조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긴, 마이엘, 기드 라며, 마도슈카 등의 사색적인 등산사조다.
이를 뒷받침해서 이룩한 가이드 레스 등반은 새로운 알피니즘으로 개화했고, 이것은 대륙계라고 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산악인이 주창하는 바가 되었다. 지그몬디가 대표적 존재라고 하면 그 계보는 슈미트 형제에서 해크 마이어, 하러
그리고 헤르만 불로 계승되고 있다.
여기 독, 오계의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중후감이 있다면 프랑스의 코스트는 담백하고 청순함이 있었다.
물론 스물세 살의 약관으로 산에서 죽은 코스트가 프랑스의 산악사조를 대효할 순 없으나 가이드 레스 등반이 갖는
아카에미즘이란 떠들썩하고 저돌적이 아닌 과학적이고 신중하며 오히려 장엄미조차 엿 볼수 있는 등산의 아카에미즘인
것이다.
- 산에 대한 단상 -
자네는 지금 산길을 오르고, 오늘 저녁에는 산장에 도착하겠지. 자네와 같이 가고 싶었는데.
나는 곧잘 B씨와 알프스의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태양을 이야기한다.
이건 내가 마음속 깊이 알프스 간들을 그리워하고 열렬히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척 감탄했다.
머메리의 <알프스와 코커서스 등반기>인데, 특히 마지막 장 <등산의 애환>을 꼭 읽어보게.
그럼 자네도 나와 같이 무서운 위험을 무릅쓰고 아크로바틱한 등반에 열중하게 될 것일세.
나는 이 책을 읽고 대담한 산행계획을 짤 판이네. 우리 둘이서 샹베이룽 빙벽을 해보도록 하세.
이 등반을 가이드 없이 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다시 없는 즐거움을 얻게 되겠지.
폰 상크드 봉이든, 모이즈 봉이든, 아무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우리 둘이서 해치우자.
그래 그것이 초등반이 될 것이네.
나는 등산사상 가장 훌륭한 알피니스트였던 머메리의 생애에 절찬을 바친다.
일부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공포를 주는 그 호담한 등산기에 모든 사람은 경탄하겠지.
조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산에 대한 태도에 나는 무척 감격하고 말았네. 나도 그와 같이 되고 싶네.
인간의 가치를 형성하는 냉정과 자신을 수직의 암벽에 부딪치는 싸움에서 이를 완전히 내 승리로 하기 위해선 단독으로
가이드 없이 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산에서 죽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모하고 경솔한 미경험자가 산에서 죽은 것과 달리, 히말라야라는 대자연의 여러 요소가 그보다 강했기
때문에 쓰러진 것뿐이다.
그의 죽음은 숭고한 것임에 틀림없다. 자네가 알려둔 기사를흥미 깊게 읽었네...
그것은 가이드에 대한 칭찬뿐인데, 실은 가장 가치 있는 등산이란 가이드 없이 초등반하는 등산이 아닐지.
나는 날이 갈수록 산에 열광적으로 되어간다.
만일 내가 알피니즘을 열애하듯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나의 공부도 문제 없겠는데! 왜 안 되나?
오늘까지 나는 여러 산에서 성공하질 않았나! "왜 안 되나?" 이것이 나의 명언이니까.
오늘 아침, 부친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이런 말씀이 있었네.
"C부인을 만났는데 너의 등산계획이 무척 위험한것이라고 말하더라.
지나치면 안 된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것임을 잊지 말라"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서했네.
"세상 사람들이 분수에 맞아야 된다고들 합니다만, 저는 그와 같은 평범 속에서 어물쩡거리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누구나가 다 분수에 맞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인간은 무엇 하나도 훌륭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없이 부닥쳐 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뜻대로 되리라곤 생각지 않습니다마는, 아무튼 우선 부닥쳐 보렵니다.
저는 그 장애가 저의 실력으론 어찌할 수 없다는 확증을 얻을 때까지 해볼 참입니다.
저는 대담하게 아주 어려운 암벽에 도전해 보고, 기도 레이가 말하는 그 아크로바틱한 등반!
그 초등반이란 미친 사람들의 짓이라고 하셨으나, 저는 이 초등반을 위해 완전한 양식과 연구 그리고,
어떠한 시련이라도 능히 뚫고 나갈수 있는 '미친 사람들의 짓'을 하렵니다."라고.
부탁이니, 자네도 한번 기도 레이의 <알피니즘 아크로바틱>을 사서 읽어 보게.
큰 등산을 하기 위해 정신적인 보탬이 되는 유익한 산책이니, 머메리의 <알프스의 코커서스 등반기>가 알피니즘의
숭배자가 되기 위한 교본이라면, 기도 레이의 것은 그 옥편이라고 할 수 있으니.
페르브 봉 다음엔 뷔소 봉!
나는 무척 행복했네! 그야말로 휴가중 가장 보람 있던 일주일간의 산행이었으니까.
나는 압자일렌으로 하강중이었다.
그런데 루트 중간쯤에서 자일이 끝나고 말았다.
자일을 당겨보았으나 빠지질 않는다.
세게 당겨보기도 하고, 살짝 당겨도 보고 또한 자일을 흔들어보기도 했다.
다시 자일에 강한 충격을 주기도 했으나 모두 쓸데없는 노릇이었다.
할수 없이 나는 외쳤다.
바위에 그대로 걸려 있기를 원한다면 뜻대로 하라고.
나는 자일 없이 하산하고 말았다.
고락을 같이하던 나의 자일이여!
그대는 이곳에 길이 남게 되겠지.
태양 빛을 밝게 받는 하늘 아래서...
그대의 이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최후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그전같이 심심치는 않네.
참을성도 생겼으나 바람직스러운 것도 아니네.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준, 조제 산촌에서 지낸 보람 가득찬 나날들.
그 산행의 매일은 나의 참된 생활인 듯하니.
내 고향 산들은 여름보다 겨울 산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네.
백설은 산봉을 더욱 둥장하게 만들어주지.
그런데 빙하가 없는 것이 좀 섭섭하지만, 그대신 엄청난 적설이 모든 것을 덮어준다네.
자네처럼 나도 나의 양친이 퍽 먼 듯한 간격을 느끼게 되네.
우리가 너무 양친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양친도 이젠 나와 같이 있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나도 어쩐지 서먹서먹한 것 같으니.....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자. 등반에 있어서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 정상만 생각해야 되네.
단 하나의 루트, 직등 루트만을 생각해 보세.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일지도 모르네.
아무튼 그런 생각도 복잡해지네. 목표인 정상에 설 수만 있다면 될 것이 아닌가?
정상에 서게 되는 것, 비록 서자마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상으로!
나는 이런 세상에 산다는 놀라움을 항상 지니고 있다.....
나는 두렵게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산에 열중한다네.
나는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얻기 위해 산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네.
그래서 산행의 힘겨운 행동을 거듭하면서 행복과 망각을 찾으려고 하지.
자네는 나와 겨우 두 번 산에 같이 갔었지.
그 한번은 가이드와 같이 등산을 했고, 또 한번은 위험이 전혀 없는 등산이었지 않나.
그러니까 자네는 산악인으로서의 나를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할 것일세.
그러나 암벽의 어려운 곳에서 나는 자일도 없이 톱으로 올라가는 것을 서슴지 않는 괴짜라는 것을 N군이 자네에게
애기해 줄 것일세.
죽음 따위를 두려우허자 않으나 저돌이 아닌, 우선 목표를 결정하고 부딪칠 때는 비겁하지 않은 산에서의 내 태도
말일세.
그러나, 말일 내가 산에서 불행한 일을 맞게 된다면, 지금 내가 자네에게 하던 말을 큰 소리로 내 친구들에게 알려주기
바라네.
나는 산이 꼭 위험하고 험악스러운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네.
나는 산을 배반할 순 없다네.
알프스는 인간이 쓸데 없이 싸움을 걸지 않는 한 곡 그렇게 살인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네.
금요일에 프랑스 산악회실에서 마터호른에 관한 아주 좋은 강연회가 있었네.
슬라이드도 멋있었네.
C씨가 강연을 했는데, 열렬한 산악인인 60세의 이 노인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격을 불러 일으켰다네.
자기보다도 몸차림이 좋고 세련되며 교양이 있는 '도시인'과 상대하게 되는 농폰 사람들은 만일 그 도시인이 우얼한
체한다면 싫어하겠지.
이에 반해 자기의 학식을 자랑치 않고 상대에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만 하면서 검소한 몸차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호감을 갖고 더욱 가깝게 대해 주겠지.
이런 일을 알고 나서 나는 산에 갈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습관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네.
언제나 그들과 같은 몸가짐을 취하고 그들과 같은 것을 먹고 조금도 우얼한 말을 하지 않고 사귀면 그들은 산 이름이나
그 지방에 따른 기상을 친절히 알려주곤 하지.
대화의 참뜻이란 실은 상대에게 자기의 교양이라든가 재능을 은근히 나타내려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D씨와 멋있는 스키 등산을 했다네.
낮까지는 흐려고, 오후 4시까지 눈보라였는데, 그 다음부터는 날이 맑게 개었지.
흐린 날이 개일 때, 산 위에서는 더욱 각별한 멋이 있지.
부르즈가 에베레스트 등반을 방기한 것은 영국인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언젠가는 정상에
서게 되겠지.
초등정의 영예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적임자인 말로리는 어떠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한, 금년엔 꼭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네.
또 하나의 등산을 꼭 해내고 돌아가겠네. 아마 나는 깜둥이 같이 탄 얼굴을 하고 돌아가게 되겠지.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애국자일지 모르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보물을 가진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산과
군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번에 에크랑 봉을 가이드 없이 등반할 참이네. 같이 갈 수 있길 바라네.
날만 좋다면 꼭 성공할 것일세. 이 산은 뷔소 북벽과 같은 조건의 산이니 틀림없이 멋있는 등산이 될 것일세.
자네도 준비하고 약속시간에 늦지 않길 바라네.
이번 등산에서 우리는 승자일까? 패자일까?
그렇지 않으면 납작하게?
되겠지. 승자가 되지 못한다면 패자가 되느니보단.....
그러나 걱정 말게. 나는 자신이 있으니..
온종일 내 방에서 기도 레이의 <마터호른>을 읽었지.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참으로 새로운 느김을 주더군.
나는 이 책의 문장은 꼭 외워도 좋을 것이라고 믿네.
에규 침봉은 남능의 조난이 잦은 루트네. 그러니까 우린 이번에 이 남능을 해치워보지 않겠나.
지금 에르프로아드 산장에 있다네.
한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해볼 참임. 아무튼 이번에는 꼭.....
현역으로 활약중인 등산가 가운데 제일인자인 말로리가 죽고 말았으니.
에베레스트 8,400m 부근에서 행방불명이라네.
나는 가슴이 뻐개지는 듯한 느낌이네.
말로리야 말로 누구보다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는 적임자였는데, 나는 외신을 듣고 깊은 감동에 사로 잡혔다네.
그래, 나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싶다네.
비록 이 산의 영웅이 잠들어 있는 옆이 내 영원한 잠자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오늘, 하워드 바리 대령의 <에베레스트 정복을 향해서>라는 책을 샀네. 참으로 훌륭한 책이네.
나도 어느 날엔 내 손으로 <에베레스트 등반기>를 쓰고 싶다네.
절망의 절벽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지.
거짓이 없던 진실만의 순간을.
자네도 짐작하듯이 이 빙벽은 길고 무척 어려운 것이네.
그러나 C군이 같이 못 간다 하더라도 나는 혼자라도 에크랑의 빙벽을 어택할 작정이네.
그것이 어떤 위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각오한 바 있으니, 그렇다고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문제시하지도
않아.
만일 내가 실패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모르겠지.
겨우 에크랑의 고개 정도를 남었을 것이라고만 다들 생각할 터이니.
또한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몇 사람 정도의 극소수만이 알아줄 것이니까.
그러나 나로서는 참으로 등산이 무엇인가를 아는 이 극소수의 사람들로 만족하지.
끝으로... 만일의 결과가 되더라도.....
나에게는 보람찬 최후가 되겠지.
가이드 없이 페르베 능을 어택해 보자는 자네의 열의에 찬사를 보내지.
근사한 꿈이야.
언제나 나는 같이 갈 수 있다네.
그러나 가이드 없이 등산하는 것은 우리 지역의 처녀봉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선 교통도 가깝고 실패하더라도 몇 번이고 거듭해서 어택할 수 있으니 말이네.
위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조난의 경우라도 쓸데없이 남에게 큰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까.
자네는 내가 산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잘 알 것이라고 믿네.
나는 머메리나 기도 레이 같은 우수한 등산가가 되고 싶다네.
나에게 알피니스트로서의 빛나는 생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네.
나는 이 생애에 나의 일생을 걸어야만 하겠네.
어느 때 가선 알프스를 끝내고 다른 등산가처럼 더욱 높고 어려운 산이 있는 곳을 찾아가자는 것이네.
그랑 크로지스의 정상에서 나는 반 시간 동안이나 고민을 해야 했다네.
그랑 크로지스로 가려면 정상에서 아래의 암구가 악벽으로 깎아질러 있는 곳까지 가는 40m의 절벽이 낙석투성이고,
손도 댈수 없이 부스러지는 어찌할 수도 없는 두통거리였네.
사실 나는, 나의 운명의 주사위를 던지고 말았지.
"하느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네.
그런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하산할 수 있었으니.....
정상에서 우리들은 두 사람의 초보자가 입회 세례를 받는 식에 참석했다.
그들은 케른 아래에 무릎을 꿇고 산악인의 맹서를 외고 있었다.
P군은, 그답지 않게 점잔을 빼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지.
다음에 B군은 마치 자기가 사제나 된 듯이 근엄한 얼굴로 식사를 읽고 샴페인 마개를 열어서....
그리고 그 샴페인을 두 사람의 머리에 부었는데...
그러자, 그 악당들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듯이 마셨네.
글세 그 엄숙한 의식은 어느새 잊었는지, 머리에서 떨어지는 샴페인 방울을 받으려고 컵을 받쳐드는 악당으로 돌변
했으니.
내가 요전에 말한것을 잊지 말아주게.
베이루트 같은 거리를 누비고 다니지 말고 등산이나 하게.
자네를 위해서는 보람된 일이 될 것이며, 우리 산악회 지부를 위해선 새로운 기록도 되지 않겠나?
그날 산에서 내려와서 자네와 헤어진 뒤 나는 호텔에서 그만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네. 땀에 절인 듯한 셔츠, 넝마가
다 된 바지, 거기에 다 닳아서 떨어질 듯이 된 등산화를 신고 점잖게 호텔 식당에 들어간 고락서니를 상상해 보게.
실은 상의는 어디서 잃어버렸고, 입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네.
나는 엄숙히 가장 비싼 정식을 시켜 먹었지.
그리고 그 꼴에 세련된 말과 몸가짐을 했더니 식당에 있던 손님들이 기겁알 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차차
호의를 보여 주더군.
나는 인간은 그 복장이나 외견만으로 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 셈이네.
등산하고 내려와서 무척 피로할 것이라고? 무슨 소리야. 오히려 컨디션이 더욱 좋아진다네.
실상 나는 산에서 내려오자 그날 저녁, 테니스를 두 게임이나 쳤다네.
그런데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었더니 오히려 피로한 듯 느껴지더군.
그날 나는 조난 직전이었네.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지. 그러나 나는 놀랄 만큼 냉정해졌지.
이번에 조난은 나에게 오히려 큰 보람을 안겨주었지.
다행히 큰 사건이 되질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조난에서의 냉정한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었으니.
위험할수록 냉정해져야 된다는 것은 도리어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을 갖게 해준다네.
다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이에 적합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향상된 것이 아니겠나?
내 눈 앞에서 한 사람이 행동중에 슬립하더라도 절벽위에서 내가 이를 확보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어느 날 나는, 어떤 위험도 생각지 않고 등반하다가 예상 외로 어려움을 손쉽게 극복해서 정상에 섰다네.
그것도 직등으로, 참으로 이때의 즐거움이란.....
여행이야말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도보여행에선 더욱 그렇다.
이번에 나느 ㄴ이런 경험을 맛보았다네.
어느 주막에서 나는 길가는 나그네와 만나 어울려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보았지.
소박한 얘기, 때로는 허세가 좀 있으나 그런대로 순진한 얘기......
아무튼 보잘것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흥미있는 일들을 견문한 셈이지.
사람들 얘기와 내가 보고 느낀 경험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 속 어딘가에는 허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네.
대개의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우열한 것인가를 자네는 생각한 적이 있나?
자네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 예를 찾게.
그는 인생을 살면서 장래를 보증하기 위해 그 값진 청춘을 취미도 모르고, 일만 하고 살았지.
장년이 된 어린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싸움만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지.
그는 무엇을 했나, 무엇을 했느냐 말이네! 아무것도 안 했지! 그 아무것도, 미구에 노년이 오지.
노후의 정년이라는 것이 오지.
그것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 말라는 휴식일까?
그러나 그것은 그의 힘이 차차로 쇠약해져 가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잔혹한 저녁, 인생황혼을 말하는 것이네.
그리고 밤이 오겠지.
즉 죽음이라는 밤이 닥쳐오는 마지막 노을이 아니겠나. 그
는 이것이 최후라는 일각으로 땅거미 속으로 스며드는 밤속 길을 가야 되는 자기를 발견하겠지.
그가 죽으면 누구도 그의 얘기는 하질 않을 것이네.
그는 무엇을 했나?
아무 일도.... 아무것도..정치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내가 이것 때문에 자네와 금이 간다면 이야말로 무척 서운하고 섭섭한
일이네.
민중을 개혁하고 싶다는 자네의 열의엔 공감하면서 같이 참여치 못하는 나는 그 뜻에는 존경을 아끼지 않네.
그러나 자네와 같은 견해 속에 내가 뛰어들고 내가 그대로 변할 수는 없다네.
나는 이따위 악과 위선이 가득찬 사회에는 아무 흥미도 없다네.
의사이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나는 인류를 위해 다른 할일이 있다네.
그라나 안심하게.
이처럼 서로 다른 면이 있지만 결국에 가서 자네는 사회적 결함을 나는 육체상의 결함을 고칠 수 있다면 우린 서로
행복한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아무튼 자네는 지금 두 개의 생각중에 어떤 길을 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군.
산을 그만둘까, 그리고 사회의 다른 일을 할까 하고. 산을 그만둔다고?
내 말 좀 들어보게나.
언제까지나 젊고 보람되고 건강하기 위해 정신을 쉬고 몸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인생에 있어서는 체력의 단련과
스포츠를 해야만 되네. 문화인에게 있어 산만큼 흥미진진하고 건전한 스포츠가 또 어디에 있겠나?
예술, 과학, 스포츠의 삼자를 총합한 등산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즐겨야 할 소중한 것이네.
자네가 일에 바빠서 분망속에 있더라도 매년 2주간의 휴가쯤은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이런 휴가를 갖는다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고 또 자네를 위한 것이기도 하네.
외국에 여행한다는 것도 좋지만 자네에겐 그 여행이 연구의 프로그램이 되기 쉽지 완전한 휴가는 아니네.
때문에 뒤꽁무니를 나도 쫒아가고 싶지만 그만두겠네.
그러니까 매년 2주간은 그 모든 것을 서로 잊고 산에 바치도록 하세. 나와 같이 말일세.
나는 자네와 뜻이 다르니까 다른 친구를 구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다른 친구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우선 첫째로 그 많은 조건이 같으려면 같은 성격, 같은 역량, 휴가의 일치 그 위에 경제력이 같아야 하니.
또 하나 우리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위해서는 등산에 대해 밀접한 연관을 서로 갖고 있어야 되지 않겠나.
이런 까닭에 나는 자네에게 다음과 같이 제의하는 바이네.
(1) 몽블랑과 같은 고전적 산행.
이 계획에 따라서는 최고봉에 올라갔다는 행복을 나눌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알피니스트로서의 자격면장이 될 수 있는
라 메이주의 곤란을 극복해 보세.
이 산들은 우리가 꼭 이룩해야만 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지금껏 우리들의 산행이 있었고, 이것들은 결국 이 두산을 등반
하기 위한 시험격이 되는 셈이 아니겠나.
(2) 다른 큰 산의 초등반.
지금까지의 등산 이력에서 이런 각별한 산행을 성공시킴으로써 스스로 알피니스트로서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네.
이와 같은 산행은 절대로 자네와 같이 해야만 되네.
보통 산행이라면 꼭 같이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니, 그런 기회가 있다면 혼자라도 해보게.
아무튼 목표를 위해 우선 목표는 이런 시험에 합격해야 되네. 어떻게 합격할지는 모르지만.
P군은 드문 클라이머네.
그에게는 놀랐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암벽에선 내가 월등히 안정돼 있지.
그의 밸런스느 어딘지 좀 불안하더군.
그러나 나는 이런 점에 소용 없는 우월을 느끼고 있으나, 그는 나보다 스피드가 빠르고 대담한 점이 있다네.
우리가 어떤 산악단체에 입회할 경우, 그것이 프랑스 산악회일지라도, 어떤 이득의 목적으로 입회한다면 나중에 크게
기대에 어긋나서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되네.
이득 따위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프랑스 산악회라면 대중들에게 많이 계몽되야 하고, 알릴 필요가 있는
지방을 위해서는 입회하는 것이 좋겠지.
내가 열련한 프랑스 산악회원인 까닭은 나의 지방을 위해서고, 후일 이 지방을 인식시키며 잘 알리기 위해서일세.
그래서 후일, 우리 지방 산악지대에 산장이 서고 등산가들이 자주 찾아 준다면 이것으로 우리 지방은 큰 이득을 보지
않겠나?
그것은 또한 작으나마 내가 공헌한 사업이 대성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듯이, 나는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수 있으니...
1주일 전부터 도제 산록에 있다네.
이번 일요일엔 돌아갈 참이네.
산에는 세 번 올라갔지.
이 조제 가까이에 있는 테트 드 큐그레에 등산하고 다음엔 프레머 산을 스키로 올라가려 했는데, 눈보라 때문에 도중에
하산했지.
손발이 잘 맞는 파티가 없어서 걱정이었네.
능력이 같은 파티를 짜고 갔다면, 문제없이 해치웠겠는데. 덕분에 이번 휴가는 엉망이 됐다네.
카프통은 3년을 계속해서 에규 다르브 등반에 실패했다. 알피니스트들은 끈질긴 집념을 갖고 있는데, 이야말로 참으로
초인적인 것이 아니겠나?
천만의 말씀! 나는 유물론자는 아닐세! 나는 신과 영원의 삶을 믿고 있다네.
필요할 때는 나는 어디서든지, 누구 앞에서라도 확실히 나의 믿음을 분명히 밝힐 수 있고 선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네. 사실, '만물을 사랑하자' 말한 것은 신이 아니었나.
인간들은 이런 훌륭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네.
산에 바친 2,3일간이란 나의 인생에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날이었다.
심신이 모두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나는 두 친구과 만나자마자 마음에 드는 가이드와 등산을 하였으니까.
충실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로서는 내가 죽은 뒤까지도 남는, 뜻있고 보람찬 행위가 후세까지 이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그 자체는 가치가 없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인생을 무엇에 바쳤느냐에 따라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위대한 이상, 위대한 동기만이 존속하며 이를 위해 바쳐진 인간의 업적은 영속되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하나의 이상에 몸을 바치고 온 생애를 다했을 때 비로소 하나의 보람과 가치 있는 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그 이상의 위대함에 따라 그는 더욱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다.
신중한 등산을 하라는 주의 깊은 말을 고맙게 생각하네.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은 자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안심하게.
나의 외곬된 고집도 때로 자기 보존이라는 본능으로 나를 지켜주기도 하니까.
이 본능이 실은 대단히 강하다네.
때때로 내가 이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우에도 결국은 나의 의지에는 지고 말더군.
시로르 산장에 가서 우리 셋이 수일간을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셋은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마음 깊이 애착을 주는 벗들이니까.
오년전, 최초의 산행 이래로 절친한 벗이 되었고, 그후에도 나를 묵게 해준 그 양치는 산장에서 오붓한 촛불 밑에 밤을
새워가며 즐거운 산 얘기를 하던 일들이 보는 듯이 그립군.
햇빛에 그을린 우리들의 얼굴을 비춰주던 불가에 둘러앉은 네명이 보이는 것 같네.
그리고 다음날의 산행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던 말소리도 들리며, 그리고 또.....
아름다운 꿈이여.
그 꿈이 다시 현실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네. 다행히 2일 후에는 아무튼 휴가를 얻고 산에 갈 셈이지.
이렇게 슬플 때, 나의 오랜 벗인 산은 나를 위로해 줄 것이네.
등산의 격렬한 육체노동은 마음의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키며, 내 생각을 바로잡게 할 수 있을뿐 아니라 쓸데없는 것들을
잊게 해 줄 것이네.
자네는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내 계획이 아무리 대담한 것일지라도 나는 산에서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신중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걸세.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면 오히려 나는 너무 지나치게 신중했다고 생각되네.
금년의 악천후는? 이곳 산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네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은 없다네.
오히려 자네가 여기로 와서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이곳 산을 보아주기 바라네.
틀림없이 자네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릴 것으로 믿네. 그럼 오래지 않아 만나기를.
나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이곳 산을 자네에게 보여줄 날을 즐거이 기다리고 있겠네.
밤의 정적에 싸인 때, 꿈결 같은 환상속에 올라간 그날의 등산을 생각해 보게.
내가 잘 아는 그 암능 옆을 돌자.
장엄한 아침 햇살이 우리가 사랑하던 네 개의 봉을 비취주었지.
그 네 봉이야말로 많은 다른 어떤 봉보다도 가장 우리에게 친근한 우리의 봉이었지.
어느 날, 이들 봉들은 우리의 이름과 회상들을 새겨줄 것이네. 미구에, 우리는 같이 곧잘 오르던 봉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일세.
그럼 우리는 더욱 어려운 암벽을 택하겠지.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보람있던 최후를 가진 마이엔도르프 형제 이름과 같이 루트에 새겨질 것이네.
이번 휴가엔 나는 다른 어떤 산보다도 라 메이주, 에규 북벽, 브랙 북벽에 어택할 셈이다.
다른 계획, 오르네이, 메이주르 산괴, 웨르 산괴에 대한 연구는 필요한 자료들을 보낼 터이니 자네가 알아서 하게.
만일 자네가 성공한다면 자네에게 이 등산을 권하고 후원한 나로선 무척 기쁜 일이며, 자네의 성공을 나 자신의 성공
으로 생각할 수 있다네.
그러나 다른 누가 해버린다면 나로선 분통이 터질 일이지.
그야말로 밀렵당한 꼴이 되며 자기 것을 도둑맞은 기분이 될 것이니.
오오! 나의 친구여!
그렇게 타락할 수 있나?
N은 나와 브랙 북벽에 안 가겠다는 것이네.
그가 포기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서운한 일이네.
의지가 굳은 산사나이로 믿었는데! 자네도 안 갈텐가?
그렇지는 않겠지! 부탁이니 꼭 와주게.
P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사실은 자네만을 믿고 있다네.
내 주위에 브랙 북벽에 어택할 수 있는 용기있는 친구는 자네뿐일세.
나와 같이 꼭 가세.
다른 누가 우리의 산을 가로채러 왔는지도 모르는데, 집안에 박혀 있을 수만은 없질 않나?
더욱이 자네가 꼭 오도록 하기 위해 모두 얘기하네만.
만일 우리가 이번 초등에 성공한다면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또한 우리가 꿈꾸어 오던 그 정상을 이번에야말로 자신 갖고 아무 거리낌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세.
나는 N이 같이 갈 것을 포기한 데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네. 글세 그렇게 나약할 줄은 미처 몰랐네.
유베이 산군에 하루치기 등산을 하자니 될 말인가?
나는 그런 등산은 질색이네. 초심자가 가자면 하는수 없지만 나는 빙벽의 멋이, 초등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네.
하이킹 등산이라면 처음 몇 년간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나?
산은 곧 개일 것이네. 우리 고장의 산에 아직 할 일이 무척 많이 있다네.
그런데 그대로 답보상태니, 기가 찰 일이네. 이러다간 누가 와서 우리의 것을 가로채 갈 것 같은 기분이 드네.
A,B백작 다음으로, P씨의 축사를 받고 무척 기뻤다네.
2개월전 브랙 북벽을 성공하고 하산할 때는, 이렇게 이 산행이 귀중한 성공인 줄을 몰랐다네.
그러나 지금 나의 이 산행이 훌륭한 보람이 되었네.
일반 코스에서 라 메이주를 오른 것보다, 새로운 코스로 브랙 북벽을 성공한 것이 더욱 보람이 있었다네.
그렇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축사의 일부는 C군이 받아야 할 것이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덕분이었으니까.
이젠 내 산친구 중에 훌륭한 엑스퍼트가 있다는 것이 되네.
2주일만 더 그와 같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더욱 이상적인 초등을 할 수 있었겠는데, 그러나, 곧 다시 같이 만나서 산에 갈 수 있다니 기다리기로 했네.
지난주 금요일, 나는 프랑스 산악회에서 그레노블 행의 산행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네.
우리들은 벌써 네 명이 모였고 무척 고생해서 다섯명째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네.
그런데 당일, 역에 모인 것은 글세 15명이 되었네.
이것을 보면 아무튼 단체산행이란 결국 가는 날 보아야 인원이 결정되는 것인가 보네.
<브랙 북서벽 초등> 에 관한 나의 산행기를 교정 보았다네. 교정해서 P씨에게 돌려 주었지.
이것으로 나의 초등의 산에 대한 책이 출판되는 셈이네.
이것이 내 알피니즘 논문이 되는 셈이지만, 나는 무척 기쁘다네.
그런데 각면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좀 수줍었지만.
나는 아주 멋있는 등산을 하고 싶어서 같이 찾았으나, 뜻 맞는 친구를 찾기는 무척 어렵더군.
자네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나?
정신 똑바로 차리게. 자신감을 잃었다는 것은 의지조차 잃었다는 것이 되네.
기운을 내게. 그 아름다운 즐거움, 굳센 산 생활과 싸움의 아름다운 날들이 산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대자연과의 멋있는 투쟁은 인생과 나날의 보잘것없는 싸움에서 우리에게 편안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게.
훌륭한 컴퍼스는 고밥게 받았네.
미답 산지를 찾아가고 지도를 조사할 때 아주 소중한 것이며, 안개가 낀 겨울산에선 꼭 필요한 장비이네. 정말 고맙게 쓰겠네.
아냐! 나는 명예를 바라고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니네. 등산이 참으로 즐거워서 할 뿐이네.
이것은 나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포츠며, 또한 가장 성미에 맞기 때문에 등산을 계속하는 것일세.
모든 점에서 산 연구란, 그 세부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가장 보람있고 무엇보다 흥미를 느끼는 것이니까.
또한 난 내 고장을 사랑하기 때문에 산행을 즐기고 있다네.
만일 브랙 북서벽을 초등한 나의 등산기록을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와는 관계없이 내 고장의 산을
내가 처음으로 올라갔다는 데에 다시 없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고 마음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느끼던 암벽, 일곱 살 때에 등반해 보고자 결심한 이 환상
적인 암벽을 나의 것이었고 또한 실상 이것을 내가 초등함으로써 나의 산으로 할 수 있었다는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기쁨이 아니겠나?
참으로 멋있는 겨울이었다.
이번 겨울엔 마음껏 스키 등산을 할 수 있었으니, 자네는 스키 등산과 겨울의 알프스를 알지 못하겠지! 자네가 겨울
등산을 안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일세.
겨울 등산을 하면 우리의 알프스에 무진장의 보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네.
혼자서 조제 산군으로 떠나려던 참에 자네의 전보를 받고 뛸 듯이 기뻤다네.
잘 됐네! 샹베이롱 산장의 건축 허가가 나왔다는 것이 사실인가?
에산도 통과됐다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척 기쁘네.
브랙 산록에, 우리가 올라간 루트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곳에 산장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이 산장 덕분에 산악인들은 여러 코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네.
이번 허가 교섭을 위해 자네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는가를 잘 알고 있다네.
사실, 자네 아니고는 이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일세. 마음으로부터 자네에게 축하하네!
나는 안내자 없이 등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클럽인 프랑스 아카데미 산악회의 회보 구독을 예약했다네.
가이드 레스 등산에 대찬성인 나는 이 새 산악회에 입횧는 것만은 찬성하지 않네.
프랑스 산악회가 있는데 별도의 산악회를 창립해서 대립관계가 되는 프랑스 아카데미 산악회는, 뜻있는 가이드들이
배척하게 될 것이네.
무엇보다도 등산을 목표로 하는 클럽이, 분열되기 쉬운 산악회를 또 새로 만들 필요가 무엇이겠나.
보다는 우리는 수련과 기술을 쌓아서 프랑스 산악회에 있는 G.H.M의 회원이 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네.
N으로부터 자세한 편지를 받았다.
그가 한 <포포가데페르트 등산기>는 마치 그림 보듯이 아름다운 보고였다.
그의 등산대는 다른 등산대를 만나게 되어 결국 30명이나 되는 외국 사람들이 모인 꼴이 되었으니, 프랑스는 그 덕분에 최초로 등정하게 되었다. 나의 용감한 친구들이 마음만 먹게 되면 이 정도니까.
이 산행이 또한 그네들에게 굉장한 기쁨을 준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있는 친구니까 꼭 다른 등산도 하겠지. 그리고 알피니즘에선 이러한 자신을 갖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의 편지가 나로 하여금 한없는 즐거움을 주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변함없이 열렬한 알피니스트임을 알게 될 때, 나는 아주 믿음직스러운 즐거움을 갖게 된다네.
나는 그에게 곧 답장을 보냈고 마음으로부터 죽하해 주었지. 그래야 되지 않겠나?
브랙 봉 등반에 관한 나의 메모를 보내겠네. 나의 이 회상을 잘 읽어주게.
우리의 이번 산행은 결국 실패했지만 대신 아주 즐거운 여행을 한 셈이니 그 점에 대해 기쁠 뿐이네.
우리 산악회지부 회보에 성공한 기록이 발표되지 못하는 것은 섭섭하지만, 허나 금년에는 샹베이롱 삱아에 낙성과
내 친구가 이룩한 포포가데페르트 그 초등기가 실릴 것이니 회보가 무척 기다려지네.
그렇다. 에규 드 디아브르의 최후의 봉이 함락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손실이 될까?
4,064m봉 등반이 7분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잘 생각해 보면, 이 봉은 그리 어렵지 않은 산이라는 것을 나와 같이 공감할
것일세.
더욱이 이 군봉의 주요한 봉들은 전부 등정되었으니.
나는 <봐로 안내서>와 <가이야르 안내서>를 잘 조사해 보고, 이 지방에 아직도 등정되지 않은 봉이 있나 알아보겠네.
내가 아는 한 아르크 남부 알프스에서는 남은 처녀봉은 하나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나 15분 정도로 능히 올라갈
수 있는 보잘것없는 봉우리보다는 직벽으로 올라가야 되는 새로운 코스가 있을 것일세.
말하자면 메이주 북벽이라든가 에규 다르브 북벽 같은 것, 더욱이 샤모니에서는 G.H.M 회원들을 모조리 패퇴시킨 그
그랑드 조라스 북벽이 엄연히 남아 있다네.
V가 날보고 이번 가을 프랑스 산악회의 G.H.M에 입회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해 왔으나, 나는 분명히 거절
했다네.
만일 금년에 보람있는 훌륭한 산행을 할 수 있게 되면 자네와 같이 지원하겠지만 보람있는 초등반도 못 한 처지에,
더욱이 입회를 둘러싸고 왈가왈부를 당하느니보다 입회 인정을 저절로 받을수 있는 초등반을 하고 볼 일이 아니겠나.
나는 <라 몽타뉴>의 별책을 받았네.
내가 쓴 기록은 처녀작인 셈인데, 마치 어린애처럼 기뻣다네. 이것은 조금도 거짓없는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고,
나의 오래 된 꿈이 이룩된 셈이 되네. 그러나 이것이 최후가 되지 않아야지!
아무튼 용서해 주게.
자네가 돌아간 뒤의 일들을 듣는 것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사건이 많았던 내 이야기를 자네에게 하는 것도
늦었고......
아침 3시. 어떤 친절한 사람이 나를 깨워주었으나 -
이 일에 대해서는 감사해야 되지만, 그러나 너무 이르지 않았나?
자명종이 울릴 때까지 기다려 주면 어떻담 - 그것도 결국 실패지.
왜냐하면 깨워주었는데도 잠꼬대만 하고 그대로 잠들었더니 글세, 그놈의 자명종은 영영 울리질 않았단 말일세.
4시에 놀라서 일어났다네.
기차는 4시 20분에 출발인데, 생각해 보게.
허둥지둥 옷을 걸치고 최단거리로 철로를 따라 쏜살같이 뛰어가서 겨우 뒤꽁무니 차에 매달렸으니, 물론 차표도 있을
리가 없지!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네만, 그리고 나서가 더 야단이었네. 글세, 무슨 기차가 그 꼴인지.
연거푸 갈아 타야만 되느데 아무튼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네.
무척 피곤했지만 만족스럽다고 아니 할 수 없지.....
집에 와서 양말을 벗어보곤 발톱이 하나 상한 것을 알았다네.
추위때문이었는지, 구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샹제르베에서 파이에까지의 무거웠던 짐이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네.
지독히 무거웠으니. 몽블랑에서 받은 유일한 피해일세.
그러나 우리의 그 즐거웠던 산행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모름지기 나는 마음으로부터 자네에게 감사해야 될 판인데. 덕분에 훌륭한 등산을 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등산은 꼭 내가 한 중요한 산행기록 중에 넣을 만한 것이 되었다네.
무거운 짐을 지고 등산하는 버릇을 길러야겠고, 피난 비박도 좀 익숙해져야겠네.
이러한 등산을 해봄으로써 더욱 등산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며, 눈보라 따위도 부딪쳐보아야겠는데....
눈보라 치는 산행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에규 북벽은 빨리 해치워야 되네.
이번 7월 초에는 꼭 함락시킬 것이네. 내가 말이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군가가 해버리겠지.
P가 오늘 저녁에 도착한다.
내가 이번 주에 에규 북벽을 등반할 셈인 것을 알고, 그도 같이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작년에 같이 어택했었지. 그는 초등반의 매력을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오는 것이지.
나는 그의 산에 대한 정열을 마으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하고 있지. 그는 나와 같이 가기로 결심한 것이니.
에규 드 샹베이룽 북벽 초등반을 다음날 결행하기 위해, 우선 화요일밤 티롤에 비박하러 갔다.
그러나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무인산장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은 눈보라 덕분에 오늘 새벽 물주머니가 돼서
돌아왔다.
토요일에 다시 하지. 토요일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게.
이번 어택은 곤란의 극치가 될지도 모르겠네. 얼음의 꿀르와르 속에 빠져 있을지도.....
그 티롤의 양치던 사람들! 그들은 우리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왜 무엇하러 여기에 오느냐"고, "우리는 다른 곳에 못 가는 것이 안타까운데"라고 그들이 알피니즘의 큰 즐거움을
알 턱이 없으니까.
에규 북벽 드디어 성공!
첫 번에는 2,500m 지점의 비박지에서 진눈깨비 때문에 실패했지만 토요일 저녁 다시 올라가 비박하고, 일요일에는
오전 2시에 비박지를 출발, 새벽 4시에는 어택을 개시, 8시에는 능선을 올라, 10시엔 정상에 섰다.
멋있는 산행이었다. 브랙 드 샹베이롱 때보다 고난은 많았지만 위험은 훨씬 적었다.
대원을 확보할 수 잇는 지점이 쉬었고, 나도 최상의 컨디션이었으니까.
언제나 선두에서 올라갔으며 자신감이 저절로 나더군. 나는 나에게 만족하고 있다네.
준비완료, 내일 출발일세. 이제 새로운 2주간의 용감한 등반이 시작되는 것일세.
나는 감격과 희망에 가득차 있다네. 그 기다리던 이번 산행을.
나는 내가 한 산행에 아주 흡족한 즐거움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를 감행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자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네를 힘차게 껴안아주고 싶은 심정이라네.
- 최후의 산행 -
라 메이주 산행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올해엔 이 산을 목표로 해야겠는데.
올해 실패하면 우리의 계획은 결국 1년 늦어지는 셈이 된다. 끊임없이 전진해야겠다.
금년엔 거인의 발걸음으로 전진하고 싶어. 자네에게 꼭 같이 가세라고 말 하기 전에 꼭 와주겠지.
처음으로 라 메이주 가까이에 갔다.
라 메이주 봉을 보기 위해 옆봉을 올라갔으나, 안개가 끼어서 자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렴풋이 루트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라 메이주가 수줍어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욱 더 이 매혹적인 산에 마음이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토요일에 출발할 참이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에크랑 라 메이주를 등반할 참이네.
다음 편지에는 성공 여부를 할려주겠네. 그러나, 실패할 바에야 비극을 맞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
올해의 산행은 라 메이주를 뺀다면 훌륭한 것이었다고 믿어지네.
그러나 올해의 라 메이주는 지독히 조건이 나빠서 내년을 기다려야만 되겠네.
확실히 저에겐 라 메이주엔 운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금년도 또 악천후 때문에 라 메이주를 단념해야 될 형편입니다.
저의 등산 목표가 멀어지는 듯도 합니다.
참으로 비통한 등산이었습니다.
브랙 드 샹베이롱 북벽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아주 보잘것없는 등산이 될 뻔했답니다.
결국 누가 벌써 올라간 일반 루트로 라 메이주를 올라가느니보다, 새 루트로 샹베이롱을 초등하는 편이 훨씬 보람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변함없이 라 메이주로 머리속이 가득차 있다네.
그래서 75m짜리 자일을 새로 사왔지, 라 그라베 마을이 주주 호텔에서 마주 보이는 북벽 이외의 다른 코스는 생각조차
한일이 없다네.
꼭 북벽이라야만 되겠네.
라 메이주 북벽만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네.
2년전 앙리 드 세고느가 쓴 등산기 덕분에, 좀 대담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믿어지게
되었네. 그래서 북벽만이 나의 목표일세.
그 누구도 올라간 적이 없는 북벽을 등반하기 위해 많은 문헌을 조사해야 되고 이 북벽에 시등해 본 사람들의 기록을
면밀히 연구해서 우선 코스의 개념을 확실히 머릿속에 익혀 두어야 할 일이 아주 중요하다네.
우선 일반 코스로 올라가서 라 메이주 정상에서 망원경으로 자세히 조사해 둘 것과 새로 산 75m 짜리 자일을 타고
북벽을 하강하면서 효과적으로 조사해 볼 참이네. 틀림없이 생각지도 않던 어려운 지점을 알아내게 될 것일세.
라 메이주 북벽은 그 어려움에 있어서 적어도 브랙 봉 북벽의 5-6배나 될 것이 뻔한 일일세.
불가능이란 쉽게 말할 순 없네.
불가능이란 절대적인 것이며 이 세상에 절대적이란 있을 수 없지 않나!
그러나 라 메이주 북벽은 알프스에서도 등반 불가능이라고 판정되는 암벽중의 하나네.
그동안 무척 면밀히 조사도 해보고 직접 내 눈으로 관찰도 해보았다네.
아무튼 라 메이주 빙하로 떨어지는 그랑 피크 능을 정찰하면 등반 가능한 루트가 발견될 것으로 아네.
또한 결행의 시기는?
북벽을 등반하려면 무엇보다 아주 이른 새벽에 시작해야 되네.
이때는 눈이 얼어 있고, 신설이나 얼음이 녹기 시작해서 떨어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자네가 일 때문에 좀 늦어진다니 늦어도 칠월 말에는 결행할 참이네.
자, 우선 우리의 계획은 이렇게 결정하세. 라베라르드에서 프르몽트와르에 올라간다.
여기서 라 메이주에 올라가기 시작한다.
우선 고적 루트로 올라가서 종주하고 일단 하산해서 레클르 산장에서 푹 쉬고 새벽에 북벽으로 향하기로, 어떤가?
내가 당신하고 산에 간다면 나는 당신을 안전하게 등산하게끔 할 수는 있습니다.
산에서는 자기 위치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의 실족은 손쉽게 확보해서 올릴 수 있답니다.
그러나 나보다 위에 올라가다가 떨어지게 되면 올라간 거리의 2배나 되는 길이의 자일을 내려야 되니, 무엇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확보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산과 인생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를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같이 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같이 가는 이상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일지 말아야 되며
기술적인 확보 이외에는 어떤 도움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벽행에서 장비를 다시 서로 확인해 보세. 75m 자일은 충분할 것으로 믿네만 다음은 식량인데 3Kg이나 되네.
밤참용으로 수프를 여분으로 가지고 가세. 쓸데없이 커피를 마시느니보다 이것이 영양상 좋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다른 좋은 것이 있으면 너무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으로 준비해 보게.
장비중에 약품, 지도, 컴퍼스, 안내서, 양초, 고형 알코올은 미리 싸두고, 식량은 소시지 500g, 고기 통조림 4개,
치즈 500g, 비스킷 250g, 수프 가루 4포, 수프용 국수 2포, 홍차 상자, 이것으로 북벽용 2명 2일분이 될까?
학교에서의 공부와 병원에서의 임상실습 때문에 휴가를 얻기가 무척 어렵게 되었습니다만.....
물론 7월엔 휴가를 받을 셈입니다. 그러나 23일부터 30일까지 사바네 군과 아주 멋진 큰 산행을 하기로 약속했답니다.
준비 완료, 내일 출발하네. 용장한 2주일이 시작될 걸세.
안심하세요. 저는 희망에 가득차 있답니다. 날씨도 좋고 안정될 듯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만사가 순조롭습니다. 저에겐 아주 큰 행운이 있을 것입니다.
라 메이주 북벽으로 출발. 장 코스트, 샤르르 사바네. 프랑스 산악회원.
라 메이주 북벽으로, 가이드 없음.
프랑스 산악회 발르스로테트 지부, 장 코스트, 샤르르 사바네 서명 그리곤 이것이 최후였다!
그가 쓴 최후의 글씨도 이것이 마지막 이었다!
그 많은 아름다운 문장을 쓴 미려한 모습의 젊은 산악인의 손은 암벽의 홀드를 잡는 데 열중하였는데....
그 손에선 이제 또 다른 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암벽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우수했고, 용감했으며, 아울러 우아했을까?
그러넫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장 코스트와 샤르르 사바네가 프롱몽트와르 산장을 뒤로 했을 새벽엔 하늘은 맑게 개이고 있었다.
바람도 없었다.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라 메이주는 빛나는 별빛아래 그 실루엣이 뚜렷했으며 그들의 힘찬 발자국이 있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정상에 서고 슈바르 루즈 배후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는 낮이 좀 지나서였을 것이다.
오후 1시,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검은 구름이 닥쳐오면서 번개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빗속에 우박이 내렸다.
그리고, 폭설이 되고, 시간으로 따지면 들은 분명히 카스테르느 암벽의 가장 어려운 곳에 있었고, 이곳에서 폭풍우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무슨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글속에선 이 불행을 예기한 듯한 구절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그증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죽을까? 이런 모습일까?"
이 글은 1914년 2월 라 메이주에서 조난사한 도란과 페이에르트 조난 보고서 1절에 있는 글인데, 코스트가 읽으면서
붉은 연필로 줄을 그은 자리였다.
이들의 조난 보고서를 쓴 구조대의 에밀 구프리의 글에서 일시와 이름을 코스트 조난기로 바꾸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된다. (주 : 보고기는 1914년 2월 오후의 다른 조난기를 이렇게 바꿔 보는 것이다.)
1926년 7월 27일 오후, 예기치 않는 폭풍우 속에서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쳤다.
춥고 위험한 암벽 중에서 그들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맑기만 하였으리라.
그러나 그후, 운명의 여신은 그들을 무참히도 깊은 골짜기로 떨어뜨렸다.
바람은 노호하여 그들을 덮치고 그들을 얼게 만들며 돌은 날려서 바위는 울부짖었다.
1926년 8월 9일, 가이드 기지밀 가스파르를 리더로 하는 18명의 구조 수색대가 카스테르노 암벽직하 빙하에서 모습
조차 알아보기 어렵게 분해된 모습의 장 코스트와 샤르르 사바네의 유해를 발견한 것이다.
그들의 유해는 지금 고향 땅에 옮겨져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무섭기도 하며 동시에 아름답기도 한 자연에 열중한 그의 혼은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던 산의 어느 기슭에
있는 것이 아닐지?
그들의 회상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사랑한 산들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그들의 넋은 산에서 즐거운 듯이 뛰고 있을 것이며,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 마음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혼은, 그들이 그처럼 사랑하던 산에서 영원히 나래 펴고 날고 있는 것이다.
- 프랑스 산악회 -
프랑스 산악회 발르스로테트 지부는 금년에 아주 슬픈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가장 활동적인 현역 멤버였던 장 코스트와 샤르르 사바네를 잃은 것입니다.
애석하기 한이 없는 이 두 산친구는 나와 어려서부터 생활을 같이 해온 죽마지우였는데, 그들은 지난 7우러 26일,
라 메이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라 메이주를 등정하고 그랑 피크를 하강하던 중, 그들은 카스테르노 암벽에서 갑자기
몰아치는 무서운 폭풍설을 만나 이 맹위 앞에서 그들의 용감한 행동도 허사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노력한 알피니스트였던 그들은 그 산행을 아주 신중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최후의 산행이 되고 만 라 메이주 등반을 장 코스트는 각별하게 세심히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등산 실천에 있어서도 그들은 훌륭하였으며, 오랜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 코스트는 완벽하리만큼 훈련이 되어 있었고, 또한 좋은 컨디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계곡을 끼고 솟은 모든 산정은 그의 방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일반 루트에서 올라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연구와 시등을 거듭한 결과, 수많은 초등반에 성공한 것입니다.
특히, 그는 브랙과 에규 드 샹베이롱 북벽을 초등반했을 뿐 아니라, 테트 드 모이스 북벽을 프랑스 산악인으로서 최초로
등반한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알프스 유베이 지방에 남아 있던 이들 3개의 북벽 초등은, 그가 오랫동안 동경하고 있었던만큼 그에게는 다른 것과 비할
바 없는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난 7월 11일, 그와 더불어 에규의 북벽을 같이 올라가는 기쁨을 가졌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 명랑하고 침착한 등반을 하는 것을 이전에 나는 미처 보질 못했습니다.
기쁨에 넘쳐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의 모습은 그가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만큼 행복스러운 모습을 짓는 것도 예전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산정에서, 그가 1925년에 샤르르 사바네와 같이 이룩한 그 아찔하게 솟은 절벽인 브랙 북벽을 나에게 설명해 주던
모습은 기쁨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초등이 아무리 어렵고 보람찬 것이었다 하여도 코스트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 못 되었습니다.
가장 우수한 알피니스트였던 그는 보다 높은 곳, 보다 어려운 곳을 찾아 그의 마음을 사로잡던 새로운 고령 정상에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뷔소 북벽을 오르고 알르브 남봉을 등정하는가 하면 페르베 산군을 오르며 에크랑을 종주한 그는, 누르기 어려운 정열을 불태우던 라 메이주로 달려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꿈이 실현되기 전에는 눈감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생애의 최후의 몇 시간은 그 라 메이주를 발아래로 한 기쁨 속에 채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망의 초등정을 마치고 미구에 곧 항구로 귀착할 무렵, 왜 그 눈보라는 그를 우리로부터 빼앗아간 것입니까?
우리 지부에는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큰 손실을 가져 온 것입니다.
장 코스트! 그의 눈부신 활동은 우리들 지부를 중흥시켰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들 지부의 곷이었고 넋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알피니즘의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심정을 친구들에게 서슴치 않고 이야기하며 같이 느끼자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는 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친구에게 말하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등산은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예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산에는 넋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무한의 넋이 있다고.
그는 산은 가장 고귀한 것, 우대한 것이며, 그리고 다시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몸, 온 마음을 산에 바쳐왔던 것입니다.
그는 산에 용감한 도전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산을 정복하는, 아니 산의 가장 높은 곳을 등정하는 영광을 또 누릴 수도 있었으나 산은 그 숨겨온 무서운 심술을
그에게 부렸던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던 산, 대자연의 맹위의 희생이 된 장 코스트의 죽음이야말로 그지없이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그 죽음은 지옥의 포화를 향해 독격하다가 쓰러진 병사의 죽음만큼이나 고귀한 것입니다.
- 친 구 가 -
본인은 리옹 병원 조교 및 조교 출신자회의 이름으로,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으로부터, 은사 여러분의 존경과 친구들의 우정으로부터 무자비하게 앗아간 우리의 동료 장 코스트에게 최후의 이별을 바치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슬프게 하는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내린 이 재액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만 아연실색 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참 마음으로 존경해 왔습니다.
우리들은그의 산에 대한 신념과 정열에 대해 찬미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어떠한 장애도 그의 정열을 식힐 수 없었고, 어떠한 반대도 그의 신념을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존경을 받는 의학일가의 후계자로서도 그는 준비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 의학의 가정에 태어나 차갑게 보이는 내성적인 외모에 그의 지성과 용기를 숨겨, 코스트는 질서정연하고 규모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자연스럽게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는 작년의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조교로 임명되어 가장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며, 앞날에는 빛나는 미래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병원이라는 환경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자기의 계획을 털어놓고 말해 준 곳도 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갖고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에 전념하기 위해 우리들로부터 떨어져 나간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우리는 그가 돌연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때때로 과감하게도전하고, 그렇게 사랑하던 산이 이번엔 그에게 복수를 해왔던 것입니다....
이 너무나 일찍이 세워지게 된 그의 묘 앞에서서, 홀로 우리들로부터 멀리 아주 떨어져간 코스트, 가족들의 따뜻한 마지막 애정도 받지 못하고 친구들의 충정도 모르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죽은 것을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의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며 그의 최후의 무서운 고뇌를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일찍 아들을 잃게 된 양친께 우리들은 다만 애도의 말씀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애도의 뜻이 양친의 비탄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님, 당신의 슬픔은 곧 우리의 슬픔입니다. 생전에 그를 안 모든 친구들은 당신과 더불어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친애하던 고인에 대한 추도는 우리들 마음속에 경건하게 간직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코스트! 고이 잠들어 주오. 자네 가족들의 성스러운 애정 속에, 그리고 자네 친구들의 슬픈 경의 속에, 또한 산친구들의 감개 깊은 회상 속에서.
- 조 사 -
여러분, 본인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극적인 상황아래 7월 27일, 산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젊은 동지 장 코스트를 추모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와 더불어 뜻을 함께 했고, 존경해 마지않는 회장인 닥터 코스트와 그 부인에게 우리들이 위로를 해야 할 슬픈 선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 앞에 그 큰 불행이 돌발한 이래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든 비통스런 감동을, 본인은 프랑스 산악회 발르스로네트 지부 부회장 이름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인은 누구보다 비통하실 양친에게 마음으로부터 우선 용서를 빌고 싶을 뿐입니다.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침묵이야말로, 침묵만이 두 분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그러나, 지부회원 여러분은 다 같이 우리들이 존경하는 분에게 최후의 경의조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 오늘, 이 슬픈 마음을 표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앞에 모신 이 자리에는 우리의 겯을 영원히 떠난 우리 친구의 그 짧고 빛나는 산역조차 회상할 수가 없어집니다.
그는 우리들 지부의 넋이었고, 거울이었습니다.
프랑스 산악회 본부에서도 벌써 그 빛나는 업적을 인정받던 그는, 미구에 본무대, 제 1선에서 활약할 것을 약속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굳은 신념과 기술, 그리고 젊은이다운 과감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습니다.
산은 과감하고 신념 굳은 사나이에게 미소를 던져 주었고, 그런 사나이이게 정복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잘 알려진 일반 코스는 돌아보지 않고, 초등의 빛나는 영광을 처녀 코스에서 찾았으며, 또한 이것을 실행하였습니다.
그 다망한 연구생활 사이에, 그에게 허락되는 짧은 틈이면 그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산행을 위해 준비하는데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는 반성없이 저돌적인 비약으로 산벽을 어택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성적으로 힘차게 준비하였고, 성실하게 거듭 연구한 뒤에 실행에 옮기곤 한 것입니다
때로는 다른 의견을 말한 사람도, 나중에는 오히려 그에게 찬동하고 감탄할 정도의 아주 신뢰 깊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과감한 등반에서 돌아온 장 코스트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로부터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빛나는 듯이 만족스런 그의 모습은 신아의 깊이에서 오는 법열의 후광 같은 것까지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 빛나는 듯하면서도 맑고 청순한 위엄이 있었던 것은, 그의 자연의 고난을 극복한 성자 같은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감동되어 쳐다보는 느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는 감격한 모습으로 꿈속에 있는 것처럼 그의 산행을 우리에게 말해 주었고, 그의 미소가 듣고 있던 우리를 지상으로 돌아오게 할 때 우리가 지금껏 누구와 이야기를 했었나 하고 자문하는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소년이었습니까?
어른이었습니까?
여러분, 그는 순교자였던 것입니다.
아, 가슴속에서 그에게 눈물을 뿌립시다.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에게 맞게, 그답게 보냅시다.
훌륭히 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하듯이.....
이상의 드높은 불꽃을 끄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자니 쓰라린 고통과 희생이 있겠습니다마는.....
장 코스트여!
프랑스 산악회 발르스로네트 지부 이름으로, 존경을 다하며 자랑스럽게, 마치 영웅 앞에 경의를 표하듯이 본인은 군에게 경례를 올리는 바입니다.
첫댓글 시간을 내어 꼭! 읽어 보겠읍니다
기네요 보통 정성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