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는 그날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다. 좁다란 터널로 진입할 때의 고통과 공포가 극에 달할 무렵 미지의 공간으로 쑥 밀려나왔다. 그와 동시 기존에 몸담고 있던 밀실의 어둠은 사라졌다. 뒤이어 어떤 빛을 느끼며 너는 붉은 얼굴을 찡그리고 크게 울었다. 그게 환희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 그 둘 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아무튼 그날이 처음으로 빛을 봤던 날, 엄마의 자궁을 빠져나와 맞는 이 세상의 출발이었다.
갓 태어난 너는 앞짱구에 뒤짱구. 게다가 갓난 애 답지 않게 머리숱이 많고 구불거렸다. 여자 아이가 장군감의 외모를 타고났던 모양이다. 첫돌 때 너를 보신 큰아버지는 밉상이란 말 대신 이마와 뒤통수가 들어가고 볼 살이 줄어들면 예뻐질 애라고 하셨다는데, 참말이지 그 어른은 교육자답게 아이 기 살리는 덕담부터 해주셨던 것 같다. 그분의 예언(?)대로 너는 짱구 이마와 뒤통수가 적당히 사라지고 볼 살만 통통한 아이로 제법 곱상하게 성장해갔다.
유년 시절 너의 별명은 우는 아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평균 한 시간은 내리 울었다는 걸 보면 은근과 끈기의 고집 하나는 제대로 차고 나왔던가보다. 아무리 혼을 내도 그치질 않아 하루는 엄마가, 울면 뱃속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배 아파진다고 겁을 줬더니 너는 벌어진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는 음음음~ 하며 기어이 기본량을 다 채웠다지.
그래선가 어린 시절 네 사진엔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게 많더구나. 웃는 모습은 드물고 눈을 아래로 내려 깐 채 심통이 나 있는 표정들이다. 왜 그리 울었을까. 뭔가가 충족되지 않아 욕구불만을 눈물로 쏟았을 거란 유추만 가능할 뿐인데 그 아이가 어느덧 황혼이다. 어린 시절의 너는 애들이란 언제까지나 그 상태로 머무는 줄로 알았거늘.
누구나 그러하듯 너는 본능적 욕구와 후천적 원의를 안고 살아왔다. 세월의 켜를 쌓는 동안 다양한 바람들이 불어오고 사라졌지만 서른을 넘기며 네 의식을 지속적으로 관류한 것은 글을 쓰며 사는 것과 잘 죽는 거였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 너의 삼십대는 이웃과 함께 사는 봉사활동으로 나름 분망했었다.
잘 죽기 위해서였겠지만 너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어느 기관에 후원 회비를 보내주며 자원봉사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이만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 누구에겐가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 네가 지원한 건 노숙자들에게 점심 제공하는 노동 봉사였는데 나이가 많다고 서류에서 밀렸는지 연락이 없었다.
그 사건은 은근히 존심을 상하게 했기에 너는 그곳을 직접 찾아가려 하였다. 담당직원에게 네 모습을 본때 있게 보여주며 연식은 좀 됐어도 아직 얼마나 쓸 만하고 건강한지를 증명해 기어이 그 일을 해볼까도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며칠 후 너는 마음을 접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괜찮은 일꾼 하나 놓친 거야. 이래봬도 자원봉사에 대한 경력이라면 나정도의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걸. 이 몸은 그네들을 즐겁게 할 말주변도 엔간히 갖춘 어르신이라고.
몇 년 전부터 네가 지인들을 만나 자주 입에 올린 건 십여 년 후쯤에 떠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육신이 닳고 헤지도록 살다가 병원에서 눈감기보다는 동백처럼 낙화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어느 시점에선 저 세상의 장막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토로하였다. 만용과 치기를 부릴 나이도 아닌 네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에 상대방은 회의와 의혹이 넘실대는 표정을 지었다.
입찬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고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네가 십년 후를 운운하던 내밀한 속셈엔 앞으로의 시간을 아끼며 밀도 있게 살겠다는 함의가 포함되어 있었을 게다. 하기에 너는 앞으로의 십여 년은 네 삶에 궁극적 의미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이든 가지치기를 해나갔겠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십수년 전, 너는 인생 대단원의 롤 모델을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스콧 니어링으로 정해 놓고 그에게 과잉되게 매혹된 적이 있었다. 백세 생일을 한 달 앞둔 그는 고형음식을 끊고 과일 주스만을 마시다가 얼마 후부터는 물만을 마시며 최후를 향해 갔는데 그가 미리 준비했던 서른 가지 지침서를 보며 너는 거기에 네 의견을 메모해 두었다.
“나는 집에서 죽고 싶다.(동감!) 의사 없이 죽고 싶다.(동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서 죽고 싶다.(이건 실현 가능성이 적어 포기) 단식을 하다가 죽고 싶다.(동감!)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따라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나는 주사, 심장충격, 강제급식, 산소주입,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죽은 다음에 회한이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모두 동감!)”
1983년 8월 24일 아침, 그는 침상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평생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헬렌은 몸이 가도록 두어요. 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했고, 스콧은 좋아!, 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삶의 예술은 곧 죽음의 예술. 그 문제를 놓고 의견이 일치했던 그들을 부러워하며 너는 네 남편을 동조시키고자 하였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
생각해 보면 네 주변에도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리지 않고 자신이 갈 때를 정해 곡기를 줄이거나 끊어서 세상 떠난 분들이 있었다. 그네들도 너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너는 네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인생의 시발점에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었던 너. 언제고 막 내릴 땐 영원한 빛과 조우하기를, 그 때는 울지 않기를. 하지만 지금은 신록의 오월. 싱그러운 바람이 우주의 선물인 양 감미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