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갈주생중달(死諸葛走生仲達) 위 고사는 전략의 천재 제갈공명이 죽은 후에도 생전의 위세로 살아있는 사마중달의 군사를 쫓은 데서 유래했다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을 말고 열 번을 읽은 사람과는 거래를 말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를 3번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모르니 만나봐야 시간만 낭비라는 뜻이겠고, 열 번을 읽은 사람은 천하의 모사를 훤히 꽤뚫고 있으니 거래해서 절대 이문을 남기기 어렵다는 뜻쯤 된다 하겠다. 나도 인생을 논하고 싶어 서너 번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제갈공명이다. 촉에는 제갈공명이 있고, 위나라에는 대장군 사마중달이 있어 좀처럼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사마중달은 공명의 신출귀몰하는 전략이 두려웠고, 한편 촉나라는 보급로가 멀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야할 판인데 사마중달이 제갈공명에 계략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사마중달에게 여인의 목걸이와 옷 등을 보내 남자답게 싸우지 못하는 그를 야유했지만, 중달은 개의치 않고 지구전을 펼쳤다. 그런데 적진을 살피고 돌아온 정탐꾼이 「제갈공명께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십니다. 상벌을 몸소 처리하시고, 식사는 조금밖에 드시지 않습니다.」 라는 보고를 했다. 보고를 들은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의 건강이 나쁘다는 것을 간파하고 더욱 방어만 했다. 공명은 깊은 병에 걸려 있었고 죽음이 임박한 걸 안 공명은 자기가 수레에 앉아 지휘하는 모습을 꾸며놓은 뒤, 철수를 명령했다. 얼마 뒤 큰 별이 빨간 꼬리를 끌면서 제갈공명의 진중에 떨어졌는데, 얼마 있다 공명은 죽었다. 공명이 죽었다는 첩자의 보고를 들은 중달은 총공격을 개시해 촉나라 군사를 뒤쫓았다. 한참을 뒤쫓고 있는데, 갑자기 우렁찬 북소리와 촉의 깃발이 보이면서 공명이 탄 수레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중달은 공명이 죽었다는 말이 거짓이었고, 공명의 계략에 걸린 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 사건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내쫓았다(死諸葛走生仲達)」. 이 말을 들은 사마중달도 웃으면서 말했다. 「산 자의 책략은 알아도 죽은 자의 책략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상담하다 보면 死諸葛走生仲達이라는 고사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살아서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에 크게 영향을 받아 고통당하는 내담자를 참 많이 본다.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았아도 내면의 목소리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아니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다. 아니 예외가 없다. 다만 목소리의 종류와 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목소리를 내면의 명령권자, 시어머니, 잔소리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될 정도로 흉흉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던 1990년 대 어느 날 방송국 뉴스앵커 한경배의 9살 아들 상우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1억 원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피 말리는 협박전화가 시작된다. 아내 오지선의 신고로 부부에겐 전담형사가 붙고, 비밀수사본부가 차려져 과학수사까지 동원되지만, 지능적인 범인은 조롱하듯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치밀한 수법으로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유괴범의 유일한 단서는 협박전화 목소리. 교양 있는 말투, 그러나 감정이라곤 없는 듯 소름끼치게 냉정한 그놈 목소리뿐이다.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압구정동 이형호 유괴살해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 놈 목소리’의 줄거리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체를 숨긴 채 한경배 씨 부부를 마음껏 조종한다. 그 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부부는 그 놈 목소리에 철저하게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나는 이 영화 제목을 보는 순간 내 속에 있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생각했다. 내 속에 있는 목소리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라!” 였다. 물론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 중에 한 분이 아버지라는 것을 안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목소리가 있다. “모름지기 사람은 올곧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옳지 않게 행동을 하면 야단을 맞았다. 아버지는 다른 것을 용서해도 옳지 않은 것은 용서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던 먼저 아버지 말씀이 생각이 난다. 아버지 목소리가 생각이 나서 항상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보든지, 무슨 판단을 하든지 옳고 그른 것을 먼저 살핀다. 내일 모래면 오십인데 무엇을 보든지 아름답다, 멋있다, 돈이 된다, 경제적이다, 기타 등등 모든 판단에 앞서 옳고 그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속에 내면화된 아버지의 목소리가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썼던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글도 나의 내면에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의 영향으로 다른 것보다 옳고 그른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말았다. 교회에서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할 때에 한 청년이 유형 3번(소위 성공주의 자 형) 소유자인데 이명박 당선자를 너무 좋아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의 성공만 보이지 윤리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이전에 내가 썼던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진 칼럼에 대해서 공감을 못하신 분들은 저와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가진 분들일 것이다.
나와 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성격을 가진 분들에게는 세상에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너무 예리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어려서부터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즉 생존 본능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었기에 거의 본능적 감각으로 옳고 그름을 잡아낸다. 에덴 동산이 아닌 세상에 진정으로 옳은 것이 있겠는가? 흠과 티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귀신(?) 같이 옳고 그른 것을 잡아내는 눈과 느낌을 가졌으니 참 살아가기 꽤나 괴로운 성격이다. 예언자들 성격이 여기에 해당된다. 보통 사람들이 못 보는 잘못, 속임수, 모함, 어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옳음을 보는 눈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선물이라 감사할 일인데 사노라면 참 버거운 성격이다. 환경에 의해서 정의에 대해서 남보다 예민하게 발달한 결과라 하겠다. 스스로에게도 참 엄격한 성격이다. 한번 정해진 규칙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지킨다. 감시자가 내면에 있기 때문에 옴짝 달짝을 못한다. 물론 자신은 그 사살을 모르고 자신이 도덕 군자라서 그런다고 믿으며 잘못 하는 사람을 찾아내서 엄격하게 지적하려는 충동을 억압하며 살아야 하는 성격이다. 힘든 성격이지만 지구의 정의를 지켜내는 독수리 오형제, 아니 조류오남매 성격이라 하겠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소리를 통해서 명령을 받고 행동을 한다. 꼭 소리가 아니라도 표정이나, 행동도 우리에게 명령을 하곤 한다. 잔소리 수준의 부모님 말씀, 재미없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앵무새 같은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 그리고 꼬임 수준인 형, 동생, 친구들의 말을 듣고 행동하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 혹은 명령 들 중에 우리 내면에 남아서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명령을 하는 목소리가 있다. 대부분은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잔소리, 꾸중, 칭찬, 격려, 등등이다. 그 목소리들은 수년전, 수십 년 전에 사라진 목소리들이다. 이미 우리에게 명령을 했던 분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우리 마음에 남아서 우리 행동을 지배한다.
자라면서 긍정적이고 격려의 목소리를 들은 분도 있고,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도대체 너라는 애는 이해를 못 하겠어.’ 등등 힘들게 하는 목소리를 듣고 자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목소리들은 흘러가지 않고 내면에 남아 있다가 명령을 한다.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내게 잘 할 것으로 기대한다.’와 같이 격려하는 목소리를 듣고 자랐다면 그 목소리가 지금도 우리 내면에 남아서 속삭인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래서 고난과 어려움이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반대로 부정적인 목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지금도 그 목소리가 남아서 우리를 질책한다. “너는 실패할 거야, 너는 하는 일 마다 안 될 거야, 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거야! ‘
이와 같이 우리는 객관적으로 어떤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처지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 아니다. 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그 목소리’의 명령을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습을 숨기고 있어서 정체를 잘 모른다. 물론 그 목소리를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그 목소리의 조정을 받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른다. 이 글을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자기 속에 있는 목소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상담을 해보면 그 목소리, 그 놈 목소리에 의해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조종을 받고 있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런 이론에 근거한 성격 테스트가 에니어그램이다. 테스트를 해보면 정말 예리하게 성격을 분석해낸다. 그 목소리를 찾아내서 그 목소리로 부터 해방 시켜는 것이 상담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은 처음부터 듣지 말하야 할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즉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대적해도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탄의 목소리를 들었고, 아담의 후손들을 오늘도 모습을 숨긴 채 명령하는 그 목소리의 조종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도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그 명령을 따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산다. 이 명박 장로도 그 목소리에 따랐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모르게 말이다. "성공이 제일이여!" 그 말에 속하 부처 앞에 아내를 보내놓고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른다. 아니 무감각하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데 성공이 더 크게 보였다. 하나님 말씀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보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이 따랐듯이 말이다.
여기에 우리가 사랑이신 주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는 용기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절망케 하는 ‘그 놈 목소리’를 우리 속에서 쫓아내고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신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참으로 도와주리라.” 그럴 때 우리를 지배하던 그 놈 목소리에서 벗어나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살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의 음석을 들을 때에 내가 해야 하는 긍정적 이유를 찾고 행복한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상담과 훈련을 통해서 매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는 그 목소리를 거부하고 ‘지금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결정하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 성경에서 항상 옳고 그름만 따진 사람들이 바리새인데, 상담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내가 바리새인 목사가 되는 것은 받아놓은 밥상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순간적으로 내 눈에 옳고 그름이 보이고, 옳고 그름을 순간적으로 느끼는데 일단 접고 ‘그럼 지금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Go in peace!" 2008년 그 놈 목소리가 아니라 온 인류가 주님의 격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올해는 너는 꼭 승리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사마중달의 말이 참 기가 막히다. "산 자의 책략은 알아도 죽은 자의 책략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아닌데 그 목소리가 숨어서 명령을 하니 어찌 그 책략을 당할 수 있으랴! 그러나 처음이요, 나중이신 예수님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아시고 자유케 하신다. 내면에 숨어 있는 그 목소리, 그 놈 목소리, 그 분 목소리를 알고 싶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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