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봄날을 노래한, 428명의 시민대합창단
2012년. 나는 충남 아산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날을 맞이하고 즐겼다. <제51회 아산 성웅이순신 축제> 예술 감독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 나름의 축제에 임하는 가치와 철학을 정했다. <축제의 주인은 아산 시민입니다!>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행사를 마무리 짓는 전 과정을 관통하는 나의 슬로건이었다. 즉 축제가 지역 높으신 분의 정치적 성과와 치적이 중심이 되는 행사, 지역정서를 볼모로 한 지역 관계자들의 담합에 만족하는 행사, 공무원들의 관성에 휘둘리는 행사가 아닌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고 즐기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축제를 통해 희망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산시민의 자부심을 넘치게 하고 이순신정신을 공유하는 것이리라 믿었다.
이런 발상 속에 나온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428 시민대합창>이다.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다. 축제는 4월 27일부터 29일 까지 열린다. 첫날 27일 저녁 개막식에서 축제 개막을 30만 아산시민을 대표하는 428명의 시민합창단을 조직해서 무대에 올려 진정한 개막을 축하하는 시민참여형 공연을 하고 싶었다. 올해를 시작으로 성공하면 매년 428합창은 하나의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되어 축제의 상징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이순신 축제 때 독자적으로 이순신장군의 정신을 기리는 <428 이순신 시민 합창제>를 전국 공모 경연형식의 합창제로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
428명의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설레었다. 또한 결과가 아닌 합창단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감동들. 이 감동들이 퍼지면서 축제는 자연스레 홍보가 되고 시민들이 축제의 주인으로 자리하게 된다. 즉 합창의 참여하는 428명은 단순한 출연자가 아닌 한 달 이상을 준비하는 428명의 축제 홍보대사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축제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가장 크겠지만 기존 공무원과 축제 관계자 지역 관계자들은 일단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가 있었다. 내 앞에서는 <감독님,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멋진 공연이 될 겁니다!> 하면서 뒤에서는 <428명을 어떻게 모아, 안 모이면 어쪄려구>, <428명을 무대에 어떻게 올려, 올라가는데만 한 세월이다>, <지가 아산 정서를 뭘 안다구>... 온갖 마타도어가 난무했지만 묵묵히 참고 차근차근 추진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다기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신청을 하였다. 4월 27일이 결혼기념일이라 가족이 모두 참가한 신청자, 자기 생일이 이순신장군과 똑같은 4월 28일이라 부모님을 졸라 온가족이 참가한 초등학교 2학년 안서진 어린이 가족(안서진 어린이 동생 안서연 양은 생후 26개월로 최연소 참가자의 영광을 누렸다), 아산에서 새 삶을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가족들, 어린 시절 포기한 성악의 꿈을 위해 신청한 사람... 사람이 사람을 감동시켰다. 마지막 428명 합창단원의 마감은 복기왕 아산시장의 몫이 되었다.
모집을 완료한 시민합창단원들은 인터넷을 통해 악보와 음원을 다운받고 각자 노래 파트 연습을 진행했다. 그리고 아산시청 시민 홀에서 네 번에 걸쳐 즐겁게 연습을 하였다. 연습을 하는 모습 그 자체가 감동이고 행복이었다. 메이킹 필름을 준비하기위해 합창단원의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았는데 모두가 해맑은 모습이었다. 참가소감 등의 인터뷰를 요청해도 어느 누구도 쑥스러움 없이 가슴 뿌듯한 행복 메시지를 전한다. 아산시장도 2번에 걸쳐 합창단원들과 연습 전 과정을 참여했다. 그 역시 428 시민합창단원의 구성원인 시민 한 사람일 뿐이다. 각종 언론의 관심도 커져갔다. 축제에서 가장 취재하고 싶은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드디어 4월 27일 <428 시민 대합창단>이 무대에 오른다. 사회자의 소개로 합창단원이 무대에 오를 때 대형 화면으로 합창단원들의 참여와 연습 과정 등이 담긴 메이킹 영상이 잔잔하게 상영된다. 리허설을 할 때 일부 사람들이 <저건 돈 받고 동원된 거 아냐?> 수군거린 사람들이 있었는데 영상을 모면서 무색했을 것이다.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전파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퍼지면서 아산의 봄날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합창단은 12분간의 대 도전을 했다. 쉬지 않고 메들리로 이어진 합창 공연의 선곡은 <내나라 내겨레, 이순신장군의 노래, 고향의 봄, 옹달샘, 올챙이송, 꾸니꾸라, 아산찬가, 거위의 꿈, 경복궁타령, 아리랑>이다. 합창단원들은 한 곡 한 곡 정성을 다해 노래했고 행사장에 모인 만여 명의 관객들은 숨을 죽여 가며 황홀한 하모니에 귀를 열고 가슴을 열었다. 참가자들의 열정이 없이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무대다. 그 감동이 객석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428 시민 합창단의 위대한 도전은 성공했다. 합창단원 저마다 뿌듯한 행복을 느꼈고, 그것은 그 자체가 희망이 되어 축제를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봄날의 기억을 선사했다.
<428 시민대합창>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제안하고 내가 무대에 올린 <428 시민대합창>이지만 궁금하다. 내년 축제에서도 428합창단이 무대에 오를지, 오른다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지역 신문(온양신문)에 난 기사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 428 시민대합창단
제51회 아산성웅이순신축제를 정리하자면 ‘감동으로 시작해 즐거움으로 마무리된 우리의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축제를 감동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428 시민대합창단의 공연일 것이다. ‘아산 시민이 만들고 대한민국이 함께 즐긴다!’는 목표 아래 야심차게 구성된 428 시민 대합창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축제를 함께 만들고 내가 만들겠다는 아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 <428 시민대합창> 무대와 합창단 전경
이는 ‘어떻게 축제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며 이후 축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뜻 깊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실제로 428 시민대합창단에 참여한 일반 시민 단원들은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참여했으며 4월 26일에 진행된 KBS 생방송과 27일에 진행된 개막공연을 위해 근무일정을 조정하고 월차나 반차를 내고 참여하는 등의 열의를 보였다.
▶ 공연 전 신영일 아나운서와 인터뷰. 앞 줄 왼쪽부터 428번째 신청자 복기왕 아산시장, 첫 번째 신청자 서예경 중2 여학 생, 신영일 아나운서
즉, 그들은 축제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그림이 아니라 축제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그러한 시민들의 참여는 보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었지만 참가한 합창단원 스스로에게도 감동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각종 언론에서 가장 많이 취재하고 싶어 했던 콘텐츠가 바로 428 시민대합창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428 시민대합창단을 단순한 동원 이벤트로만 본다면 제1기 428 시민대합창단으로 인해 발생한 감동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428 시민대합창단이 아산 시민의 자부심이 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과 그 감동의 원인과 실체를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