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 분석학
KS KIM.
형인 놀부와 동생인 흥부가 집안이 가난하여 부잣집 데릴 사위로 들어 갔을 때만해도 형제 우애가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 흥부는 연로하신 친부모를 봉양하고자 귀향을 원했다. 형인 놀부는 가만히 있어도 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데 다시 고생하는 생활로 돌아가자니 반대하고 계속 데릴 사위 위치를 고수하기로 했다.
동생 흥부는 현 생활의 풍요가 친부모에 대한 마음의 짐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흥부는 데릴 사위의 풍요로운 위치에서도 자신의 마누라를 잘 이해시켜 가난한 친가로 향했다. 흥부 처의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궁핍하고 시부모님까지 모시는 상황을 모를리 없지만 남편의 뜻을 존중했다. 부부 사이에 배려와 대화가 통했던 것이다. 지금 세대에서는 삶은 호박에 이도 안들어갈 소리일 것이다.
형인 놀부는 데릴사위의 위치에서 지금의 풍요함을 마다하고 궁핍한 곳으로 가는 것 자체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가난을 모르고 살아온 부인이 더 적극적으로 반대했을 수도 있다. 그럼 우리 부모는 누가 모시며, 꼭 형이라고 친부모 모시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동생이 가겠다면 못이기는 척이라도 응원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남편인 놀부를 설득했을 것이다. 고단한 삶의 영위에서는 특히 동서간의 갈등은 있기가 십상이라는 것을 놀부 마누라는 간파했을까?
처가 살이는 옛말에 보리 서말만 있으면 피하라 하지 않았던가? 두 남정네에게 그만큼 힘든 것이 처가 살이 일 수도 있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한집에 데릴 사위로 갔으니, 장차 장인 장모님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해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친 형제 간에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왜 없었겠는가? 처가에서 눈치 밥을 안준다고 해도 동생 흥부는 마음의 짐으로 다가 왔을 것이기에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형인 놀부는 장인 장모님에게 부단히 노력하여 인정받은 위치를 고수해 가며 만족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잣집에서 밥만 먹고 지내기가 심심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어렵게 살면서 구박 받았던 것들에 대한 보상 심리가 커가면서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길가다가 똥 누는 놈을 주저앉히기도 한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 구강욕구 부족, 즉 수유 부족내지, 배변 훈련 과잉 주입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성인이 된후에도 그랬다면 처가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한 요구 불만의 표출인 것이다. 밤에 힘깨나 썻겠는가? 이 아픈 놈 뺨때리기를 하면서, 과거 자신이 맞았던 것에 대한 보상과 이제는 우월한 위치라 느끼고 싶어서 한 행동인 것이다. 초상난 집에 가서 춤추기는 누군가에게도 찾아 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을 저변에 숨기고자, 일어나는 행위로 자신의 허상을 춤을 통해 타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몸부림인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비난하여도 당사자인 놀부는 지금이 해소되면 다인 것이다. 놀부는 특히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타입으로 제비 다리를 분질러 놓고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행운의 씨를 갖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싫은 것은 똑 부러지게 싫다고 내벳는 배짱이 있는 것이다. 장마당에 가서 억매흥정으로 상인들을 골탕 먹이는 것도 흥정하는 기다림의 과정 자체를 싫어하는 조급증이 발동한 것이다.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신후 막대한 부를 물려준 부모 제삿상에 차례 음식 대신 음식 이름 써 놓은 종이 덜렁 올려놓고 절로 대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패륜아의 행동이지만, 자신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를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한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을 스스로 얻고자 일어나는 결과인 것이다. 시대가 변하여 오늘날에는 휴가지에서 액정화면 보면서 가족들이 제사를 올리는 뉴스를 접할 수 도 있다. 조상님들도 바야흐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의 제사상을 접하시느라 바쁘신 것이 현실이다.
동생 흥부가 놀부 형과 함께 살던 집에서 쫒겨 날때도 한푼 돈도 건지지 못한 것은 흥부의 자업자득이라고 하였다. 처가 살이 하면서도 대책없이 자식만 12명 주루루 낳고, 걸핏하면 형 놀부한테 찾아와서 밥 동냥하니, 형의 체면이 자신의 마누라한테도 기를 제데로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마냥 순해 빠졌던 것이다. 오지랖 넓게 타인들이 어려움 처해 있는 것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돕는다고 할때, 형인 놀부는 너나 잘하세요 말했을 것이다. 형인 놀부 입장에서는 그런 동생때문에 쪽 팔리는 것이다. 동생이 형과 헤어지기전 과거라도 급제 했다면 형 체면도 서고, 장인 장모님한테도 의시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인 놀부가 동생을 그리 막대하니 천사 같던 놀부 마누라도 물들었을 것이다. 밥 동냥 온 동생 흥부의 뺨을 밥풀 묻은 주걱으로 의도적으로 쳤던 것이다. 동생 흥부 입장에서는 자식을 위해 그래도 밥풀 묻은 주걱이라도 구경했으면 족할 것이다. 과연 그날 밤 형인 놀부는 코를 골면서 잤을까? 놀부가 볼때 동생 흥부를 보면 “흥부가 기가 막혀” 노래가 절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놀부 마누라도 부잣집에서 자라서 세상물정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는 비행기 내에서 땅콩 접대 서비스가 마음에 안든다고 강제 회항 조치를 강행하는 아낙네가 있는 것이다. 그 집안의 부가 예의범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집안 어르신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이어져야 되는 것이다. 먹물을 먹었다고 다 선비가 아니듯이,
과한 욕심으로 쫄딱 망한 놀부는 오뚜기 같은 면이 있었다. 형 놀부의 처세술은 동생 흥부가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던 소식을 듣자 빛을 발하였다. 무척 배가 아팠다. 체면이고 무엇이고 다 버리고 한걸음에 흥부 집으로 달려간 것이다. 결국은 동생 흥부에게 납작 업드린 형국이 된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기까지 형 놀부의 가슴은 스스로를 쥐어짰을 것이다. 분하고 원통하다며 저놈이 그까짓 선행 좀 했다고 졸부가 되다니, 세상의 불공평함을 투덜뎃을 것이다. 놀부는 내가하면 로멘스고 격이 없이 그냥하는 장난이었던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었다. 놀부는 타인에게 골탕을 많이 먹일수록 행복하다 여겼다. 만족을 모르는 삶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나르시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놀부는 놀음에 빠진 적도 양귀비나 대마초를 피워 본적도 기생집을 쥐방울 드나들듯 하지도 않은 약간 부자의 농부 삶인 것이다. 요사이 말로 개구쟁이 기질이 특출나게 남다를 뿐이다. 시대의 왕따 원조일 것이다. 그는 99명으로부터 왕따를 당해도 살아남는 사막의 선인장 기질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놀부는 극악무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놀부의 일상은 밥 먹고 있는 개 밥그릇 차기는 양념이고, 비오는 날 장독 뚜껑 열어 놓기, 짐 실어 놓은 지게 다리 걷어차기, 우는 애기 뒤에 가서 더 꼬집기를 하는 정도였다. 정작 본인이 밥 먹을 때는 앞으로 반찬 모아놓고 큰 것을 먼저 차지할려고 침 발라놓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배고품을 격었기에 양보하면 굶는 것과 직결되는 삶인 것이다. 양보는 미덕이 아니라 미련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주는 떡도 못먹는 병신이라고 하거나, 달래나 보기나하지에 억메여 있는 것이다. 실연을 안당해본 사람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는 보인 것으로만 사람을 평가할려는 버릇이 있는 것이다. 나 살기도 바쁜데 오지랖 널게 행동해 봤자,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인 사회가 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옛말에 삼대가는 부자는 없다고 하였다. 그만큼 개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변화무상하므로 과한 욕심과 한방의 인생 역전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놀부의 인생사는 아름다운 사회의 일면인 것이다. 졸부가 된 흥부가 그래도 형을 챙기는 것을 볼때 혈육은 물보다 진하다하였다. 오늘날 한번의 낙인효과로 제기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을 듯한 살벌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 볼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군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죄인을 벌하라고하자 모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