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으로는 용활동, 서로는 내이동, 북으로는 교동, 남으로는 삼문동에 접한 구역이다.북동 쪽에 아북산을 배산으로 하고 동남 쪽에 아동산, 무봉산을 안산으로 한 밀양시의 중심 지역으로 그 연혁은 1895년 5월 26일(고종32년)부로 부내면의 동문내리, 서문내리, 남문내리로 호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부리와 남부리, 동부리, 노상리, 노하리, 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일리(면소재지)라 호칭하였다가 밀양읍으로 승격(부령 제103호)되었다.
해방 후 지명 변경으로 내일동으로 호칭하다가 1988년 6월 22일 부로 군조례 제1047호(1988.6.20공포)로 내일리로 바꾸었고, 1989년 1월1일부 법률 제4050호(1988.12.31공포)로 밀양읍이 밀양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내일동으로 다시 호칭이 변경되었다. 1919년 말 현재 5개통 68개반으로 행정 구역이 구성되어 있는 총면적 0.69㎢(답 0.02, 전 0.12, 임야 0.15, 대지 0.22, 기타 0.18)의 지역이다.
내일동의 지명의 변경 과정은 동문내리, 서문내리, 남문내리가 내일리로, 내일리가 다시 내일동으로 변경되어 왔다. 밀양지(密陽誌)에 "성내 고유 동서남북 중오부 금내일동(城內古有東西南北中五部今內一洞)"이라 기록되어 있다. 곧 성내(密州誌에 '內一洞卽城內')에는 오부가 있는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가 오부이고, 오늘의 내일동이라는 것이다.
그 오부가 뒤에 삼리로 줄어, 동문내리, 서문내리, 남문내리가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속칭 동문안, 서문안, 남문안이라 부르고 있다. 내일동이라는 명칭은 부내면에서 첫째가는 동리라는 뜻과 가장 중심 지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 뱃다리껄(남문껄)
밀양교가 생기기 전에 삼문동에서 내일동, 즉 성내로 들어오려면 응천강(凝川江)을 건너와야 하는데, 조선조말 신작로가 생기면서 이곳에 뱃다리(浮橋)가 생기게 되어 모든 행인이 이 뱃다리를 이용해서 성내(내일동)를 왕래하게 되었다. 이 뱃다리 부근의 마을이 곧 뱃다리껄이다. 지금의 한빛은행과 남정빌딩 앞 사거리와 구 시외버스 주차장 일대가 뱃다리껄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옛날에 이 사거리 지점에 남문이 있었다고 해서 남문껄이라고도 한다.
뱃다리란 배를 여러 개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이명으로 '부교(浮橋)'라는 이름도 있다.
(사진 추가 예정)
寫眞으로 본 近代 韓國(上)(1986.10.10초판 발행. 1987.3.10중판 발행. 사진 원판 제작:일본도서간회. 삼광인쇄소)
■ 신당말리
'말리'는 '만댕이'에서 온 말이다. 즉 산의 정상부를 사투리로 '산만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당말리'는 곧 신당을 모신 윗쪽 높은 곳이라는 뜻이 되므로 신당 윗쪽에 있는 마을로 해석이 되며, 지금의 내일동 오통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당은 성황사(城隍祠) 즉 도대장군박욱(都大將軍朴郁)과 광리군 손경훈(廣理君 孫競訓)을 모시던 곳이다.
■ 동문껄
속칭 '동문거리' 또는 '동문안'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성의 동문이 있었던 관계로 동문걸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내일동 오통 지역 일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곳에는 동문고개가 있는데 아북산(衙北山)과 아동산(衙東山) 사이의 고개로서 밀양읍성의 동문이 있었던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을 통해서 북쪽으로는 경북 청도를 잇고,동쪽으로는 용활동을 지나 단장면과 산내면을 거쳐 경주와 울산, 언양, 양산 등지로 통했다.
■ 서문껄
속칭 '서문거리' 또는 '서문안'이라고도 한다. 내일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성의 서문이 있었던 관계로 서문걸이고 했는데 지금의 밀양장로교회와 동흥예식장 부근의 지역 일원이 '서문껄'에 해당된다.
■ 북문껄
속칭 '북문거리' 또는 '북문안'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북성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50 m 올라 가면 천일 정비 공장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 향청껄
옛날에 향청(鄕廳)이 있었던 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향청이란 고려말에 생긴 수령의 자문기관, 즉 부사를 보좌하고 풍속을 바로 잡고 향리를 규찰하며 정령을 민간에 전달하고 민정을 대표하는 지방자치 기관으로 일명 향사당(鄕射堂) 또는 장헌당(掌憲堂)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탕진된 것을 1613년 (광해 5년)에 오간을 다시 세웠다. 처음에는 서문 밖에 있었던 것을 남문안 아사 서남 쪽에 옮겨 세웠다. 지금의 상설 시장의 남쪽 곡물 시장이 바로 향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 일원이 곧 향청껄이다.<윤상선씨 말>
■ 못둑껄
밀양지에 성내에 '사정이지(四井二池)'를 축조했다고 했는데 지금 그 지점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 이지 중 한 개가 현 북성껄의 사거리 지점에서 남으로 약 30m 지점의 영제병원 뒷편이라고 한다.옛날에는 이 못뚝을 지나 신당말리로 가는 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못둑껄은 북성껄 사거리 남쪽 일부 지역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지 중 한 개는 북성껄 사거리에서 동쪽 시청으로 가다가 좌편'밀양택시' 뒷편 동북 쪽에 있었다는 말<김일현씨 말>과 시청 서편 20m 지점에서 도로 북쪽에 있었다는 말이 있으나 고증할 길이 없다.<손관식씨 말>
■ 아북산(衙北山)
관아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 시청 뒷편에 위치한 내일동의 배산으로 이곳에는 밀양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산의 정상에는 밀양 시민의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체력 단련에 없어서는 안 될 장소가 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밀성재(密城齋 : 都大將 朴郁 致祭所, 1978년 건립)와 밀양 민속예술 보존협회(중요무형문화제 제68호)가 있는 그야말로 밀양시의 중심 지역이다.
■ 衙東山(아동산)
관아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는 영남루(보물147호)를 비롯하여 천진궁(지방문화재 117호), 아랑각(문화재 자료 26호), 무봉사(석조여래좌상.보물4 93호 보존), 사명당 임유정 성사 동상(1975년 건립), 밀성대군단(밀성박씨 시조), 밀양읍성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밀양문화의 산실인 밀양문화원 등이 산록에 산재되어 있어 밀양을 찾는 관광객이 꼭 찾아 보는 밀양의 명소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본명이 무봉산으로 여기 지은 절 이름이 무봉사라 칭하였다.)
■ 물문고개
영남루에서 아랑각으로 넘나드는 길인데, 영남루 뒷편 민가에서 남천강 물을 길러다 먹던 물길이었으리라 추정된다.옛날 읍성이 있었을 때는 야문(夜門) - 일명 암문(暗門) - 이 있어서 드나들기에 아주 편리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인수씨 말>
■ 응천강(凝川江)
을자강(乙字江) 또는 남천강(南川江)이라는 이명이 있다. 재약산의 단장천, 운문산의 산내천, 비슬산의 북천이 그 원류가 되어 밀양시의 중심부를 을(乙)자형으로 휘감아 돌아 흘러 삼랑진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을자강은 강물의 흐름이 을자형으로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며, 남천강은 읍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장군정(將軍井)
속칭 '공시샘'이라고도 한다. 아사 동쪽에 물이 솟아 오르고 아주 맑으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며 깊이가 3-4장(丈)이나 되어 속전(俗傳)에 장군정이라 한다 하였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지금 시청 앞뜰 회나무가 있는 곳에서 동문 고개로 가는 길목 지점, 뚜껑만 덮어 놓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샘이 하나가 있다. 바로 이 샘이 소위 장군정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이 샘을 팔 때 개가 짖는 소리, 즉 '공공'하는 소리가 났다 하여 '공시 샘'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고 한다.
밀주지에 성내 사정이지를 축조했다고 했는데 그 위치가 불명하나 장군정이 그 중 하나이고, '부처샘'이라 하여 지금 동문고개로 가는 길목인 손씨의 큰집에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 묻혀 있다고 하며, '북문안샘'이라는 이름으로 시청에서 서쪽으로 북성사거리로 가는 중간 지점의 좌측에서 영제의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묻혀 있다고 하며, 또 한 개는 시청 바로 뒷편 서북쪽의 삼거리 지점에 묻혀 있다고 한다. <김일현씨 말> 그러나 명확하게 고증할 수 없다.
■ 사거리
상설시장에서 서쪽으로 약 50m지점에 동서남북 십(十)자로 된 네 갈레의 길이 나오는데 이것이 사거리다.
옛날 읍성이 있을 때에는 이곳에 야문(夜門)이 있었다고 하며, 성내의 죽은 시람의 시체나 상여는 이 야을문 통해서만 성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윤상선씨 말>. '사거리'라는 명칭은 네 갈래의 길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 북성(北城) 사거리
지금의 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지점에 동서남북 십(十)로 된 네 갈래의 길이다. 시외버스 주차장이 영남병원 앞으로 옮겨짐에 따라 교통량이 날로 늘어 도로 확장 계획에 의하여 동남북은 이차선 그대로 있고 서편만 사차선으로 확장되어 번잡한 거리로 변하였다. 밀양 시내에서 시외버스주차장 부근과 북성사거리가 차량의 통행량이 가장 많고 번잡한 거리가 되어 있다.
■ 꼬부랑바위
아랑각 위쪽에 있는 바위로 그 바위가 구부러져 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옛 기록에 '무봉대(舞鳳臺)'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 바위가 바로 무봉대로 추정된다<임인수씨 말>
■ 귀신바위
영남루 대밭 밑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는 잦은 익사 사고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물귀신이 있다고 하는 바위다.
■ 사당바위
아랑각 북쪽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는 칠성바위라고 해서 여러 곳의 바위에 여러 가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던 풍속이 있었는데, 아마 이 바위도 그런 의미에서 사당(祠堂)바위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추정된다.
■ 두꺼비바위
속칭 '두껍바우'라고도 하는데 아랑각 동쪽에 있는 바위로 마치 그 형상이 두꺼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국화바위
밀양문화원에서 아랑각 쪽으로 가는 대밭 밑의 바위로 여기에 있는 여러 작은 바위들은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는 바위인데 비가 온 뒤면 바위들이 비에 깨끗이 씻겨 그 국화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서 보기에 너무나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천진궁과 영남루 사이의 뜰에도 국화 무늬가 있는 돌뜰로 되어 있어 소위 국화정(菊花庭)이라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비 갠 후면 그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서 보기에 너무나 아름답다.
이상 각종 지명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한 가지 첨언한다면 앞에서도 거명한 바 있지만 한국 삼대 名樓인 영남루와 그 주변의 천진궁, 무봉사, 아랑각 등 각종 문화재와 밀양문화의 요람처인 밀양문화원, 그리고 농협중앙회 밀양군지부, 국민은행 밀양지점, 한빛은행 밀양지점, 경낭남은행 밀양지점 등 각종 은행과 밀양 성설 시장이 이곳 내일동 안에 집결되어 있고 옛날 읍성이 있었을 때 그 성내가 바로 이곳 내일동이었으니 그야말로 옛 밀양시의 중심지요 또한 밀양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