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아 국론이 양분되어 집회가 시끄러운 날 그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매몰되기 마련일 것 같아서 거리를 두고 지켜볼 요량으로 山, 관악산을 오르기로 했다. 정대장을 만나서 과천청사역을 나울 때 관악산조감도가 있어서 정대장과 함께 들여다보면서 오를 길을 탐색했다.
11번 출구로 나가니 벌써 장촌이 우릴 기다리고있었다. 셋이서 과천소방서를 지나고 구세군학교정문으로 들어가서는 뒷문으로 나왔는데 이 길이 연주암으로 오르는 첩경이란다. 보통 과천향교를 거쳐서 계곡으로 올라챘는데 이참에는 케이불카능선을 타보기로 했다. 오를수록 시야는 트였으나 구름먼지가 가득해서 기대했던 볼거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끔 머리위로 캐이불 돌아가는 소리만 웽윙거렸다. 정대장이 케이불카히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도중에 바위가 널직한 곳에서 부부로 보이는 젊은 한쌍을 만났는데 함께 산행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고 격려해주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또 얼마쯤 더 오르자 또 더 너른 바위에서는 동호인끼리 왔는지 무엇을 먹어가면서 오빠, 동생 부르는 모습이 수상스러웠다. 셋이서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라고 서로에게 물었다. 한참을 올랐을때케이불카송전탑이 있는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시 더 힘들게 올랐을 때 두꺼비바위를 만나서 보기에 후담한 두꺼비상을 풀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이어서 올라채니 산등성이에 삼거리(문원폭포, 연주대, 과천청사)에 온도계가 있어서 들여다보니 영상5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종주를 제대로 하려하면 KBS송신탑을 거쳐가야 했지만 우리는 쉽게 가려고 연주암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런데 이쪽이라고 쉽지는 않았다. 묵혀진 길인데다 음지라서 잔설과 얼음이 여전해서 미끄럽고 위험했다. 간신히 걷고걸어서 천수관음전에 당도했는데 해받이 좋은 곳에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쉬고 있었다.
질척거리는 길을 따라 연주암으로 갔더니만 여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이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간식꺼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혼잡스런 곳을 피해서 통일기원전을 지나서 영산전으로 올라챘다. 장촌이 합장기도를 올릴 때 사진을 찍어주었더니 '錢이 깊숙히 있어서' 시주를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오른쪽으로는 12지간 영물들이 조각상으로 세워져있었는데 우리 쥐띠생3명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다'는 쥐상을 안고서 인증샷을 남겼다.
이어서 뒤편 언덕으로 오르니 12지신탑(삼층석탑)이 있었고 조망하기 좋은 그 언덕, 윤장대에서 바라보니 멀리 기암괴석 위에 사뿐이 자리한 연주대가 제대로 보였고 둥그런 기상관측소와 KBS송신탑이 훤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가끼이로는 연주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마치 선계로 오르려는 인간들 같았다. 그 때 마침 템불스테이를 왔다는 부부에게 부탁하여 셋이서 인증샷을 남겼다. 그분들은 '아주 좋았다'고 하면서 한번쯤 권유하는 것 같았다.
관악산 정상으로 가는 소로길은 눈얼음이 녹아서 길이 몹시 질척거렸다. 오가는 이들이 웅덩이를 피해서 간신히 지나가고 있었다. 정대장이 스틱으로 쓱쓱 긁어서 물길을 내니까 고인물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 때 젊은남녀가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이곳에 이르렀을 때 여자는 흰색운동화를 까치발로 물웅덩이를 간신히 지나고 남자는 벌써 상의팔목을 걷어서 팔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벌써 팔뚝을 드러내셨군요?'했더니 동행하는 여자가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계단길을 한참을 올라서 깎아지른 절벽 위에 붉은 단청을 두른 연주대가 잘 보이는 최적의 전망대이자 포토죤에 올랐다. 젊은 아가씨들이 단체로 왔는지 인생샷을 찍으면서 왁자지껄했다. 그 때 혼자서 온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인 60대 남자가 누군가에게 사진찍기를 부탁할 것처럼 보여서 장촌이 먼저 제안하여 그 분 인생샷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다음 무리들이 올라왔을 때 어떤 아가씨에게 부탁하여 셋이서 인생샷을 찍어받자마자 다음 선수들의 입장을 위하여 스스로 질서있게 퇴장했다.
이어서 정상으로 가는 수십계단을 오르니 젊은이들이 관악산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줄을 비껴서 공터를 지나 표지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이런 모습을 본 어떤 50남자가 우리더러 자기도 우리처럼 사진찍기를 원해서 찍어주었더니 매우 좋아했다. 우리는 비탈진 암반을 타고 기어이 정상으로 올랐다. 측각기가준점이 있는 맨정상에서 고향에서 올라온 곡차와 간식을 먹었다.
우리가 사당역쪽으로 내려가려고 채비를 하는 순간 그쪽에서 대형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더니 좋아라했다. 내려가는길은 여태껏 올라왔던 길보다 만만치 않았다. 출발해서 잠깐 내려가자 사람들이 밀려서 내려갈 수가 없게되자 정대장이 나서서 일방통행통제를 해서 숨통이 트였다. 돌산을 내렸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는데 이전에도 몇번 왔던 길이여서 눈에는 설지 않았지만 다리는 많이 힘들었다.
한참을 오니 헐기장 멀리 국기봉이 보였으나 배는 고파오고 힘들어서 이심전심으로 패싱했다. 힘들어서 뒤쳐져갈 때 중학생 두 명을 만났다.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보호자 없이 둘이서 왔단다. 이들을 격려하면서 '浩然之氣'를 기르는데는 등산이 최고라고 들려주었더니 처음 듣는 말인지 생소해했다. 나는 그들에게 '바쁘면 먼저 가라'고 했더니 그들은 한달음 달려서 우리친구들 곁을 벌써 지나가고 있었다.
마당바위 끄트머리서 잠깐 숨을 돌렸다가 또 걷고 걸어서 관음봉에 와서는 제법 오래 쉬었다. 이어진 철제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리자 우리가 늘 찍었던 태극기는 바람이 없어서 축쳐처서 말려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패싱하려했더니 '위험하니 접근금지한다'는 경고가 써있었다. 비탈진 길을 다시 얼마쯤 왔을 때 삼거리에서 사당역 가는 길로 우회전해서 내려갔다. 이제는 길이 좋아져서 환담을 나눌 수 있었다. 장촌 하는 말이 '앞에는 달마대사 뒤에는 백발거사'라고 해서 내가 가운데는 '대책없는 선달'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사당초등학교를 거쳐서 전주식당으로 들어갔다. 수더분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목마른 김에 맥주2병에 소주 1병을 말아서 찌게김치가 나오기도 전에 들이켰다. 본식사를 할 때는 다시 막걸리를 반주로 삼았다. 이어서 스스럼없는 평가회를 가졌다. 선달이 오늘 관악산종주는 5시간30분이 걸렸고 23,000보 가량이 되었고 '난이도로 치면 청계산이 3이라면 관악산은 4에 해당한 것 같았고 많이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두 친구가 나에게 '선달이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근래 등산을 잘 안해서인가 싶다'고 말해주길래 내가 '나는 원래 하체가 약하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앞으로는 너무 힘들고 위험한 코스는 피하자'고 약속했다. 밖으로 나오니 뜻깊은 3.1절에 비가 짓굿게 내리고 있었다ㆍ
첫댓글 힘들고 위험한 코스를 안피할 것 같은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