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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절대적으로 쉽다- 로마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께 Romans is Absolutely Easy - For those who find Romans difficult
샬롬! 올해도 마지막 날입니다. 2024년 마지막 날에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어제 무안에서 큰 비행기 사고가 있어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181명이 탑승했는데 승무원 남녀 2명만 생존하고 다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요 방송 3사가 거의 비슷하게 보도를 합니다. 국민은 이를 바탕으로 새가 비행기 엔진 속으로 들어가서 폭발이 일어나고 비상으로 착륙을 하는데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주요 방송사가 그렇게 보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나니 이제는 모든 국민이 구글 지도나 인터넷을 통해서 무안 공항 지도를 볼 수가 있기에 그리고 다른 각도로 분석을 할 수가 있기에 이들과 완전히 다른 의견을 일부의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제시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주요 방송 3사의 보도보다 이들이 분석한 자료가 더 정확하고 그리고 외국에서도 같은 의견입니다. 부디 사고의 원인이 올바로 밝혀지고 희생자들에게 위로와 보상과 그리고 생존자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비행기가 차량보다 높은 흙담에 부딪혀서 폭발한 후의 사진
활주로 끝부분에 있는 시설물(차량보다 높은 흙담과 구조물)과 그리고 무안 항공 외벽
이를 확대한 사진과 도로 옆에 있는 벽
모든 방송사가 담에 부딪혀서 폭발을 했다고 하고 개인 유튜브 소수가 이를 이렇게 바로잡아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두 사진은 제가 구글 어스에서 다운로드한 사진입니다. 저 시설물이 없었다면 벽을 뚫고 나가서 폭발도 없이 사람이 그렇게 다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왜 방송사는 이렇게 보도를 하는 것을 피하고 담에 부딪혀서 폭발을 했다고 보도를 했을까요? 전문가는 비록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가 폭발을 하고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어도 조종사는 너무나 훌륭하게 동체 착륙을 시도했고 위의 구조물이 없었다면 벽을 허물고 그다음에 별로 경사가 없고 나무도 없는 벌판을 타고 가다 비행기가 곧 정지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는 흙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를 했을까에 대해선 보도가 없습니다. 몰라서 그런지 일부러 숨기려고 하는지 이 구조물의 설치에 대한 내용이 사고의 초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사실을 밝히는 분이 없으면 수년을 새떼냐 혹은 비행기 결함이냐 혹은 조종사의 조종 미숙이냐를 놓고 다툴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즉 비행기가 충돌하고 폭발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활주로 끝부분에 있는 흰색으로 나타나는 흙벽과 콘크리트 구조물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성경의 연구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500년 동안 신학자들이 토론을 하고 주장을 했지만 아직도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로마서의 연구이며 이 연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입니다. 이 논쟁이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서 500년 동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게 이를 별 비판 없이 수용하고 로마서를 읽으니 로마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로마서를 보면 개신교의 주장에 따라서 로마서는 이신칭의에 대한 글이다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이해를 하고자 하니 너무나 어려웠고 모든 한국의 개신교 목사 신학자의 주장이 역시 이신칭의에 대한 개신교의 주장을 반영하기에 모든 사람이 로마서가 어렵게 느끼어진 것입니다. 절대로 로마서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령 성경을 백독하신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분께 로마서 4장 17-22절의 구절을 읽고 설명을 해 보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분께서 이미 100번을 읽으신 이 구절을 보시면서 놀라시면서 성경에 있기는 한데...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이는 이 주장과 아주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있기는 분명하게 있어 이를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신학적인 주장으로 즉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면 다른 것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 너무나 강하게 우리 모두의 머리에 세뇌가 되어 있어 이 구절을 그냥 읽으면서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제 자신도 수도 없이 그렇게 지나 친 사람입니다.
이러니 로마서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함부로 이해해서도 아니 되는데 말입니다. 오직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이구절을 있는 그대로 알고 믿고 모든 로마서를 다 이해한 것으로 믿고 그냥 다른 구절은 대충 읽기에 이런 결과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은 저를 비롯해서 아직도 로마서가 쉬운 글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 로마서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저도 여러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를 함께 나눕니다. 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쉬운 로마서를 이해했으니 우쭐하거나 자랑할 이유는 1%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겸손한 마음으로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를 쉽게 이해하려면 우선 주요 교단 즉 방송으로 치면 방송 3사의 의견을 잠시 접어두고 지역 방송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겨우 이제 1인 방송이고 천주교와 개신교는 각각 약 30억의 신자를 두고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을 세 가지 버전으로 보겠습니다. 개신교의 개역개정 천주교의 공동 번역 그리고 미국의 NIV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이 구절이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게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고서 당시에 면죄부 등을 팔면서 구원에 있어 다른 주장을 펴던 천주교에 반기를 들고 오직 믿음이 구원을 얻는데 전부이고 다른 것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개신교의 주장이며 이에 반에서 믿음과 + 무언가 행위나 행동이 더 구원을 얻는데 요구가 된다는 주장이 천주교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되는 것은 즉 의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행위나 율법을 준수하는 행동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개신교의 주장입니다. 이 두 주장이 서로 팽팽하게 500년 동안 양보하지 않고 서로 옳다고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며 한국에서 천주교나 개신교안 성도들이 대부분이 친족인데 개신교인은 이 개신교의 주장을 강하게 믿고 절대로 천주교의 주장이 올바르지 않으며 심지의 전도의 대상으로도 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주장의 근거가 바로 위의 구절입니다. 의인이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천주교는 아니다 오직 믿음뿐만 아니라 무언가 사랑을 하는 행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분은 개신교인 일테니 위의 구절을 보면서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는 것이 다 되고 다른 요인은 필요가 없다고 믿고 외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마서 1장 17절을 이해하면 수백 년이 더 지나도 여전히 로마서는 어려울 뿐일 것입니다. 이 이해로 로마서 전체를 풀면 절대로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고 천주교의 주장으로 풀어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제 너무나 쉽고 정확한 로마서의 이해를 소개합니다. 중학교 영어 실력과 초등학교 국어 실력자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바로 이해가 되는 너무나 쉬운 방법이며 이 쉬운 방법으로 우리는 로마서 전체를 비로소 쉽게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영어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한국어 번역으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롬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7.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17. 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이제 초등학교 영어실력만 있으면 이 구절이 이해가 되고 그것이 쉬운 로마서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똑같은 의미의 서로 조금 다른 문장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를 세 부분으로 끊어보면 아래와 같이 나눌 수가 있습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The just /// shall live /// by faith. "BUT THE RIGHTEOUS [man] /// SHALL LIVE /// BY FAITH."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답이 절대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구절이 다 있습니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잘라 보겠습니다.
의인은 ///// 살 것이다 혹은 삶을 살 것이다. ///// 믿음을 가지고 이를 한국어 어순으로 쉽게 쓰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이다라고 번역이 될 것입니다. 혹은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혹은 삶을 살 것입니다.입니다. 다른 영어 번역도 주어가 조금 다르고 조동사를 will 혹은 shall로 사용한 것이 다르지만 별로 뜻에는 큰 차이가 없고 shall이 조금 더 의무에 충실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보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절대로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의인은 삶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의인이 되고자 하면 하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전 세계의 크리스천에게 다툴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을 하니 이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에서 벗어나면 비성경적이 되는 것입니다. 답이 성경에 그대로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삶의 내용이 어떡해야 되는지가 모든 로마서 설명입니다. 이를 그대로 찾아서 보면 됩니다.
우선 모두가 죄인이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 주셨으니 로마서 5장 8절에 있는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사랑의 확정입니다. 이를 그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순종하셔서 이 땅에 동정녀를 통해서 오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이는 죄의 삯이 피 흘림이고 사망이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이신 아들께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아들의 희생을 나의 죄 때문이다 라고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이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가 용서받게 되고 이런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는 유대인도 율법의 조문을 그대로 과거의 바울 사도가 하듯이 지키려고 말고 오직 예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사라는 것이고 이방인도 이제는 죄를 예수님을 믿음으로 용서를 받게 되었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이기면서 살아라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육신이 약하기에 할 수가 없는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을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취하라고 격려하는 말씀이 로마서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의인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자면 오직 믿음만 가지고는 한 명도 의롭게 되지 않고 오직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믿음을 갖고 사는 삶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먼저 아브라함의 삶을 4장에서 전체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약속을 믿을 때 분명하게 의롭다 하시는 내용이 1-16절까지 잘 나옵니다. 이 구절을 보고서 오직 믿음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여전히 의인 오직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17-마지막 절까지를 또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5년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순간적인 믿음이 이때는 아닙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 100세가 될 때까지 변치 않는 믿음과 굳건한 믿음을 보시고 비로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도 반드시 우리는 같이 기억을 해야 합니다. 이제 믿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구절 즉 faith from first to last(믿음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 이 이해가 됩니다. 로마서 4장 1-16절은 첫 믿음을 설명합니다. 오직 믿음 외에 별로 다른 요소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이 지났을 때 또 확인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100세 때쯤입니다. 이때에 만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도 잊고 믿음 생활을 엉망으로 하고 있다면 이를 보시고 절대로 너는 믿음으로 의롭게 살고 있구나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즉 우리는 첫 믿음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의 끝 믿음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됨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을 가지고 변치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아브라함과 같이 살아야 된다고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은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왔는데 하박국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으로 틀림없이 설명이 되어 있으니 우리가 믿음을 갖고 반드시 삶을 사는데 정의롭게 살아야 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은 이제 믿음의 삶이 성령을 받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는가를 설명합니다. 즉 성령을 받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도 역시 의인은 오직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인데 이 하루하루의 삶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성도는 성령을 받았기에 먼저 유대인 성도인 경우는 예전이 그들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고 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니 이제는 성령의 음성에 따라서 반응하고 육체나 세상의 유혹에서 이기면서 사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스라엘의 실패와 같이 약한 육신을 갖고 있기에 절대로 율법을 완성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어렵기에 성령께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로 오셔서 내주하시니 오직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면 성령께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율법의 완성도 이루어 주시고 그리고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는 믿음이 있으므로 율법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하루하루 사는가에 대해서 로마서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직 믿음하고 믿음이면 다 돼하고 그냥 어물쩡하게 넘어가고자 하면 절대로 로마서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식으로 믿음에 무언가 더 더해져야 한다고 해도 역시 이도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살아야 되고 이 하루하루 삶의 모습이 모든 다른 모든 로마서의 장들과 절들의 설명이다 하고 로마서를 보면 모든 로마서가 다 술술 풀립니다. 로마서 1-8장은 교리에 대한 설명이고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 동족에 대한 설명이고 그리고 유대인도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가 있으니 이방인이 유대인의 접붙임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원가지도 자르시는 하나님께서 접붙인 가지도 역시 잘라 버릴 수가 있으니 이방인 크리스천은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2-16장은 실천 부분인데 성도가 구체적으로 같은 형제를 어떻게 사랑하고 국가에서 생활을 어떻게 하고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도 성령의 인도로 받기만 하면 그냥 다 지키게 되는 내용입니다.
교리는 예수를 믿어서 성령을 받은 성도가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율법으로부터 모두가 자유하게 되었으니 이 자유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옛사람이 하던 육신의 일을 다시 하지 말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도 역시 믿는 사람의 삶의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즉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성도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람을 잊지 말고 또 예수를 믿어서 성령을 받았기에 이제는 육신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정말로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는 로마서 3장 21-26절의 말씀은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으로서 사역을 설명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의를 나타내신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정의의 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피를 흘리고 죽게 하는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대신에 피를 흘리고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결코 악을 그냥 방치하시지 않고 처벌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 즉 예수님을 믿은 사람을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우리 대신에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게 매달고 죽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전능하신 분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이를 모두 뒤집을 수 있지만 묵인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영광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약을 통해서 나타난 의는 율법을 통한 의의 심판 즉 우리가 죄인이 죽어야만 하는 율법적인 심판으로서의 의가 아니라 모세 오경의 율법서 즉 창세기에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과 같이 또 선지서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믿는 이를 의롭다 미리 증거를 하신 것과 같은 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니 이는 차별이 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의롭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에덴에서의 영생의 영광을 죄로 인해서 잃어버렸지만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서 값없이 다시 죄 사함을 받게 되어 이제는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번에 정의를 이런 방법으로 나타내신 것은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바로 벌하시지 않고 길이 참으시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죄와 죄로 인해서 발생하는 벌도 면하게 하시려 그렇게 하셨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죄를 예수님을 통해서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 것을 그대로 이해가 되시는 분은 로마서의 대부분을 이 짧은 설명으로 쉽게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제가 설명을 잘해서가 아니라 로마서가 이렇게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모르고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고 하고서 어떻게 성도가 살아야 하는 것을 많은 장을 할애해서 설명하는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하면 여기서 저기서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첫 단추인데 첫 단추가 천주교나 개신교가 잘못 끼워져서 로마서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설명으로 제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I ///// wil go ///// by car란 문장이 있다고 합시다. 위의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1형식의 문장입니다. 주어는 I 와 The righteous이고 조동사 will과 본동사 go와 live도 같습니다. 그리고 수단의 전치사 by도 같고 faith와 car도 명사로 같습니다. 이를 개신교와 같이 이해하고 설명하면 나는 차만 있으면 다 된다로 해석해야 하고 천주교식으로 해석을 하면 오직 차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행동이나 행위가 있어야 되는 거야로 번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차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차와 무슨 행위가 있어야 되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나는 차를 타고 갈 거야입니다. 즉 나는 오직 차만 있으면 다 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순간에 있어 나는 차를 타고 갈 사람이란 뜻입니다. 차를 가지고 세차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차를 가지고 과시를 하는 것도 아닌 차를 타고서 간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번역이 된 영어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의 올바른 의미는 오직 믿음이 절대로 아니고 오직 믿음과 무슨 행위가 포함되는 개념도 아닌 오직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의인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믿고서 하루하루 살기를 바라십니다. 어떻게 사는지를 로마서의 모든 부분에서 설명합니다. 1-8절에서 교리로 설명하시고 9-11장에서 이스라엘을 교훈하시며 설명하시고 12-16장에서 구체적으로 성도가 세상에서 살면서 혹은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혹은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이렇게 삶에 대해서 온 로마서가 쉬지 않고 설명을 하는데 오직 믿음으로 다 되고 율법도 아니고 행위도 아니다로 이해를 하고자 하니 로마서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교리의 껍질을 깨고 나오셔서 이렇게 쉽고 편한 로마서의 진리를 마음껏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저는 김정관 목사로 이렇게 로마서를 온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수님 약 700분을 온 세상에서 선정해서 이런 내용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모든 육신의 유혹을 이기면서 받으므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울 의무만 있는 것입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주셨으며 성령도 역시 주십니다. 기꺼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른 채 지은 죄에 대해서 진실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세례도 없이 로마서를 강의할 수도 있습니다. 죄의 용서가 없고 성령의 인도가 없는 삶입니다. 그런데 어찌 로마서를 이해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가짜도 많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도 많습니다. 저도 역시 온전치 않고 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를 해야 되는 불완전한 인간이며 평범한 인간이며 큰 죄인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저의 모든 로마서의 이해의 과정이 조금도 가감 없이 그대로 오천만의 로마서에 연도별로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이해를 하는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니 예전의 저의 이해가 별로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대로 둡니다. 우리는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고 믿고 올바로 그때부터 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 살면서 고치지 않는 사람보다 죄를 깨닫고 속히 회개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잘못 알고 잘못 갈 수가 있고 또 그랬던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잘못 행하던 사람입니다. 모든 분보다 나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용하심은 모든 성도를 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려 함이라 믿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부디 회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시고 성령님의 인도로 모든 율법을 완성하고 또한 율법을 굳게 세워서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귀하고 귀한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도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으로 비천한 자가 로마서의 진리를 이해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성도 한 명 한 명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서 잘못 알고 살고 있는 길에서 속히 떠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이제 미국이 2025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2024년 12월 31일 8시 30분 정도입니다.
여러 번 대형사고가 있었고 그럴 때 마다 차분하게 사고 당하신 분을 위로하고 사고 원인을 규명한 것보다 수 년이 지나도록 어떤 문제를 정치적으로 서로 다투는 것을 저를 비롯해서 온 국민이 보았기에 이 번에 또 어떻게 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몇 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앞서서 함께 우는 것이 맞습니다. 그냥 같이 울어야 합니다. 애도 기간을 7일을 정한 것은 너무나 잘한 일입니다. 북한군이 수천명이 전쟁에서 죽는 것도 비록 북한이 적국이지만 우리의 동포가 죽는 것입니다. 함께 같이 울며 같이 이 큰 아픔을 나누며 그리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해를 잘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한 해 오천만의 로마서를 방문하신 온 세상 100개국이 넘는 곳에 사시는 수만 명의 모든 분께 주님의 위로와 평강히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노벨상의 수상도 우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이런 국가적인 재난에 서로 같이 슬퍼하며 같이 우는 것이 한 민족의 동포로서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이 너무나 커서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속히 우리 모두가 이런 감정을 극복하고 같이 울며 큰 재난을 당한 우리의 국민을 위로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같이 울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당하신 모든 분께 새 힘과 용기를 주시고 모든 일이 올바로 잘 밝혀지게 도와 주시길 기도합니다. 부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갈등과 미움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살리려고 애를 쓰는 2025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고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상대방이 미워도 서로 이기려고만 해서는 아니되고 아니되고 용서하고 서로 조금이라도 양보도 해 보려고 애를 쓰는 정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나 모든 분이 하나님께 원수였던 사람이며 이런 우리를 사랑으로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시며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를 본받고 이 땅에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용서 받은 모든 예수를 믿는 죄인들의 태도입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해에는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모두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괴산에서 김 정관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