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11-02 11:25:10
11월의 호국인물 라희봉 경찰경감
(1928. 1. 25 ~ 1952. 11. 15)
전쟁기념관은 11월의 호국인물로 라희봉 경찰 경감을 선정하였다.
고(故) 라희봉 경찰 경감은 1928년 1월 25일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7월 10일 전북 경찰에 순경으로 임용되었고, 1951년 1월 순창경찰서 쌍치 지서장으로 부임하였다.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과 지방 잔류 공비들은 덕유산, 지리산 등지에 은거하여 후방지역을 위협, 교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였고, 라희봉 경위가 소속된 전북 경찰도 합동작전에 참여하였다.
쌍치 지서장으로 부임한 후, 같은 해 7월 10일에는 의용경찰대원 45명을 지휘하여 100여 명의 공비들이 은거중인 순창군 쌍치면 국사봉 일대에 대한 토벌작전을 실시, 공비 9명을 사살하였다. 10월 2일에는 의용경찰대원 40명을 인솔, 구림면 금창골에서 매복 작전을 실시하여 공비 2명을 사살하고 소총 3정을 노획하는 등 공비토벌에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1월 20일 쌍치면 용전마을 뒷산 오두봉고지에 공비가 침투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의용경찰대 병력 300여 명을 직접 지휘하여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항미연대’와 ‘외팔이부대’등 약 700여 명의 공비들과 마주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 적이 투척한 수류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사흘 만에 전사하였다. 이 전투에서 라희봉 경감과 의용경찰대원 7명이 전사하였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려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전북 순창군 쌍치면 주민들은 그의 애석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쌍치면 오두봉을 ‘라희봉고지’라 부르고 있으며, 라희봉 경감과 함께 전사한 7용사의 묘를 양신리 삼양마을 뒷산에 안치하고 ‘7용사의 묘’라고 부르고 있다. 2001년에는 고인의 모교인 진안 부귀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교에 동상을 건립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