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남인도 문화
바다로 유럽·동남아 중개… '카스트' 구속도 약했죠
입력 : 2024.02.21 03:30 조선일보
남인도 문화
▲ 사진1 - 인도 남동쪽 타밀나두주(州)에 위치한 '브리하디스바라 사원'. 남인도의 다수 민족인 드라비다족의 사원 양식인 '드라비다 건축'의 대표적인 건물로, 피라미드꼴로 여러 층을 겹쳐 짓는 등 특징이 나타나요. /위키피디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대 남인도 미술을 다루는 특별 전시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가 열리고 있어요. 앞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렸던 특별전을 한국에서 재편해 지난해 12월부터 개최하는 것입니다. 인도, 영국, 독일, 미국 등 4국에 흩어져 있던 소장품이 한데 모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인도에서 해외로 반출되어 온 문화재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남인도 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는 것도 처음이어서 남인도 미술을 접할 흔치 않은 기회랍니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 열립니다.
인도는 보통 데칸고원을 기준으로 북인도 지역과 남인도 지역으로 나눠요.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남인도의 역사와 문화는 북인도만큼 잘 알려지지 않고 전시 기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생소할 수 있는데요, 남인도는 독특한 발전 과정을 거친 문화를 지녔답니다. 남인도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데칸고원 남북으로 문화가 나뉘어
우선 남인도는 북인도와는 민족과 언어가 달라요. 북인도는 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인도아리아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해요. 이는 아리아인의 언어인데요, 아리아인이 기원전 15세기쯤 중앙아시아에서 북인도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쓰던 말이 북인도 지역에 널리 퍼진 거죠. 남인도에서는 타밀어라는 언어를 사용해 왔어요. 남인도의 토착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비다 민족의 말입니다. 드라비다족은 기원전 10세기쯤 남인도에서 청동기 문화를 이끌었고, 기원전 3세기쯤에는 철기와 농경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남인도 지역의 문명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후에는 두 지역 사이를 가르던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안드라족의 사타바하나 왕조가 번영합니다. 사타바하나 왕조는 남인도와 북인도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어요. 북인도의 다양한 문화를 남인도에 전파했고, 인도 북쪽에서 침입하는 이민족에게서 남인도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했어요. 이 왕조는 로마와의 해상무역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인도 전역에 화폐를 널리 유통시키기도 했습니다.
사타바하나 왕조 남쪽으로는 드라비다족이 세운 세 왕조가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며 남인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촐라·체라·판디아 왕조입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이 왕조들이 이끌던 남인도의 고대 시대를 상감 시대(Sangam Age)라고 부르는데요, 판디아 왕조를 중심으로 발달한 타밀 문학의 한 갈래인 '상감 문학'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에요.
유럽·동남아 잇는 해상무역 중심지
그중 남인도 동쪽에 있던 촐라 왕조는 강력한 해군력과 건축술이 돋보였습니다. 전성기 때는 미얀마, 수마트라섬의 일부를 점령하기도 했어요. 인도 동쪽 바다인 벵골만 건너편에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한 것이죠. 또 피라미드 탑이 특징인 드라비다 양식의 건축술로 많은 사원을 지었어요. 대(大)촐라 사원의 브리하디스바라 사원<사진1>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반면 서쪽 바다에 접해 있던 체라 왕조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향신료·상아·목재·진주 등을 중동과 남부 유럽으로 수출해 번영했어요. 판디아 왕조는 세 왕조 중 가장 세력이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역시 진주 무역으로 번성해 수도인 마두라이를 중심으로 문학을 발전시켰어요. 이처럼 남인도는 바다로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국제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어요. 3세기 말 석회암으로 만든 석상<사진2>에서 그 점을 볼 수 있어요. 나무와 대지를 지키는 불교 정령인 '약샤'가 연꽃 모양의 모자에서 동전을 쏟아내는 모습인데요, 무역으로 큰돈을 벌던 상인들이 남인도 불교를 후원하면서 부의 축적을 기원하는 이런 유물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여요. 그러면서 남인도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북인도는 페르시아, 그리스, 이슬람 등 북쪽 이민족의 침략을 자주 받았지만, 남인도는 오랫동안 자체적인 정치 구조와 왕국을 유지했기 때문이죠.
기원전 1세기엔 여성이 제국 통치
상감 시대를 이루는 세 왕조는 12~14세기까지 남인도에 존속하며 남인도 문화의 큰 축을 이루었답니다. 남인도 문화는 토지와 동식물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 발달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에서 전래된 힌두교, 자이나교, 초기 불교와 영향을 주고받았죠. 힌두교의 시바, 비슈누와 같은 신들과 신화 이야기를 묘사한 조각과 벽화를 많이 남겼어요.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도 남인도에서는 구속력이 비교적 약했어요. 노예제가 있었지만, 상공업이 발달해 좀 더 자유롭게 다른 신분과의 결혼이 가능했죠. 여성의 지위도 북인도보다 높았답니다. 남인도의 여성은 사회생활이나 종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사티(인도에서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함께 태워 죽이던 풍습)도 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타바하나 왕조 때에는 여성이 행정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기원전 1세기 사타바하나 왕조의 나야니카 여왕은 제국의 통치자이자 군사 지휘관으로 활약했어요.
또 남인도는 고대부터 교육을 매우 중시했으며, 다양한 학문 분야가 발전했습니다. 특히, 천문학·수학·의학·철학이 발달했지요. 14~16세기 번영한 케랄라 학파는 인도 수학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어떤 값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무한급수'의 개념을 상당히 발전시켜 서양 수학에 앞서 있었습니다. 의학에서도 우주와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치료하는 전통 의학 '아유르베다'로 유명하죠. 남인도의 학자들은 인도의 지식과 학문에 크게 기여했답니다.
▲ 사진2 - 타밀나두주 북쪽에 접한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 발견된 3세기 말 석상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 부의 축적을 기원하던 남인도 상인이 제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돼요. /위키피디아
▲ 사진3 - 1세기 조각품에서 인도 중부에 위치했던 나라 사타바하나의 왕(가운데)이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어요. 이 나라는 인도가 남북으로 서로 교류하며 발전하도록 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 사진4 - 1945년 인도 서부에서 발견된 1세기 유물에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인 안드로메다(왼쪽)와 페르세우스가 새겨져 있어요. 남인도와 남유럽이 오래전부터 교류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죠. /국립중앙박물관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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