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월드컵의 과학
황희찬의 속옷, 심박수 등 400개 정보… 바로 코치진에 전달
입력 : 2022.12.13 03:30 조선일보
월드컵의 과학
▲ /그래픽=유재일
지난 3일 열린 한국과 포르투갈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경기. 포르투갈과 1대1로 맞서고 있던 후반 46분 황희찬 선수의 역전 골이 터졌습니다. 황희찬 선수는 세리머니를 하며 카메라 앞에서 유니폼 상의를 벗었는데요. 순간 황희찬 선수가 입고 있던 검은 속옷에 시선이 쏠렸습니다. 월드컵에는 경기 전략을 짜거나 정확한 판정 등을 위한 여러 첨단 과학기술이 적용돼 있는데요. 황희찬 선수가 입은 검은 속옷도 이와 관련이 있답니다. 속옷의 역할과 함께 월드컵과 관련된 과학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황희찬 선수 검은 속옷의 정체
이 속옷의 등 쪽에 달린 주머니에는 선수들의 운동 정보를 측정하는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장치를 '전자 성능 추적 시스템(EPTS)'이라고 불러요. 위치 추적 장치(GPS)가 달린 EPTS는 선수의 심박수 같은 신체 정보, 이동 경로와 뛴 거리, 평균 속도와 최고 속도 등을 기록합니다. 선수 한 명당 약 400가지 자료를 수집하는데, 이 자료가 코치진에게 전달되는 데는 30초밖에 안 걸립니다.
코치진은 장치가 보낸 자료를 보며 선수의 운동 방향을 지시합니다. 축구 선수는 한 경기에 많게는 10㎞ 넘는 거리를 뛰는데요. 예컨대 어떤 선수가 9㎞ 정도 뛴 뒤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코치진이 알고 있다면, 실제 시합에서 해당 선수가 9㎞를 뛴 후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식입니다.
이 장치를 도입하기 전에는 경기나 훈련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한 뒤 분석원이 선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자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실시간 자료를 활용해 전술을 짜기 어려웠지요. 하지만 EPTS를 도입한 뒤 선수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쉬워져 경기 중간에도 적극적으로 전술을 바꿀 수 있게 됐다고 해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축구 대표팀은 당시 EPTS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신체 부위 29곳 1초에 50번씩 추적
이번 카타르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3위 아르헨티나가 51위 사우디아라비아에 1대2로 패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인정된 골을 제외하고도 전반전에 세 골이나 넣었는데요. 모두 오프사이드로 판정돼 무효가 됐습니다. 과거 축구 경기에서 오프사이드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짧은 순간 공이 먼저 출발했는지, 최전방 공격수가 먼저 출발했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이런 논란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처음 VAR(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며 조금 사그라들었어요. 하지만 오프사이드 반칙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일어나기에 카메라 왜곡이 있거나 다른 선수에게 가려 안 보인다면 비디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AI) 심판 보조 기술인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이 도입됐는데요. 경기장 천장에 특수 카메라 12개를 설치한 뒤 이 카메라가 각 선수의 신체 부위 29곳을 1초에 50번씩 추적하며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해요.
각 카메라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모션 캡처 방식으로 추적해요. 모션 캡처는 관절이나 신체 말단을 중심으로 신체를 선으로 연결해 대상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손가락 끝과 손목, 팔꿈치와 어깨 등을 연결해 팔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거지요. 이렇게 움직임을 추적하는 동시에 관측하는 지점이 축구장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좌표로 판단합니다. 축구장을 작은 격자로 쪼개고 왼쪽에서 n번째, 아래에서 m번째 위치에 해당 선수의 팔꿈치가 있다는 식으로요.
실시간으로 좌표 값을 추적하기 때문에 심판 몰래 수비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가 재빨리 나와도 움직임이 기록됩니다. 카메라 영상에 의존할 필요 없이 좌표 값을 비교하면 오프사이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AI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오프사이드 상황 여부를 판단한 뒤 결과를 전달합니다. SAOT 도입 후 경기장에 있는 심판들이 판정을 내리고 공격 팀이나 수비 팀의 요구로 비디오 영상을 확인하고 다시 판정을 결정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이 최대 70초 정도나 줄었다고 해요.
심판 판정 돕는 숨은 1등 공신
지난달 29일 있었던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는 '골 주인' 논란이 있었습니다. 후반 9분 포르투갈 선수인 브루누 페르난드스가 찬 공이 우루과이 골문 안으로 들어갔는데요.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공을 향해 헤딩을 하듯 뛰어올랐고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자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호날두 선수는 자신의 머리에 맞고 공이 들어갔다며 자신의 골이라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월드컵 공인구(공식적으로 사용이 인정된 공)를 제작하는 아디다스는 "공에 어떤 충격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데요.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인 알 리흘라(Al Rihla)는 심판 판정을 돕는 1등 공신입니다. 알 리흘라 안에는 무게 14g의 관성 측정 센서(IMU)가 설치돼 있어요. 이 센서가 실시간 공의 위치와 방향, 충격 여부 등을 컴퓨터로 전송합니다. 만약 페르난드스 선수가 찬 공이 호날두 선수의 머리에 맞았다면 당시 경기 데이터에 충격이 기록됐을 겁니다. 하지만 자료에는 어떤 충격도 기록되지 않았지요. 이번 월드컵 4강전부터는 알 힐름(Al Hilm)이 알 리흘라 대신 사용되는데, 공의 색만 다르답니다.
IMU는 공의 움직임을 1초에 500번씩 추적해요. 이 때문에 공이 골라인을 넘어갔는지 아닌지 ㎜ 단위로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SAOT와 결합하면 매우 정확한 판정을 내릴 수 있지요. IMU 센서는 충전식이며, 완전히 충전하면 6시간 동안 작동한답니다.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오가희 어린이조선일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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