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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본체 앞에서의 절대적 엎드림: 테스 독세스 (τῆς δόξης, 영광의 주)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이 세속화된 교회를 향해 벼락같이 호통칩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그냥 부르지 않고 '영광(독사)의 주'라고 부릅니다.
성전 예배에 금가락지를 낀 부자가 들어올 때 아부하고, 남루한 빈민이 들어올 때 발등상 아래에 꿇어앉히는 짓이 왜 그토록 구역질 나는 악입니까? 온 우주의 가장 눈부시고 압도적인 '영광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소유한 자들이, 한낱 썩어질 세상의 찌꺼기(돈과 권력)를 보고 벌벌 떨며 차별(Prosōpolēmpsiais: 사람의 얼굴과 껍데기로 판단함)하는 것은, 십자가의 가치를 배설물로 취급하는 악독한 신성모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역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너희가 짓밟은 그 가난한 자가 누구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를 묻혀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상속자)로 벼락같이 선택하신 가장 존귀한 십자가 군사가 아니더냐! 부자들은 오히려 너희를 법정으로 끌고 가며 주님의 그 아름다운 이름을 모독하고 있지 않느냐!
II. 최고의 법과 긍휼의 승리 (2:8-13)
(약 2:8, 10, 13)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유리창의 법칙: 게고넨 판톤 에노코스 (γέγονεν πάντων ἔνοχος,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실수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조약돌이 아니라, 전체가 통짜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유리창'입니다!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웃(가난한 자)을 사랑하라는 왕의 법(Nomon basilikon)을 어기고 차별의 돌맹이를 던진다면! 그 거룩한 율법의 유리창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며, 그는 율법 전체를 박살 낸 '에노코스(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아 마땅한 절대적 죄인)'가 되는 것입니다!
긍휼의 압도적 승전보: 카타카우카타이 엘레오스 크리세오스 (κατακαυχᾶται ἔλεος κρίσεως,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자비한 지옥의 심판만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형제의 비참함을 끌어안고 내 것을 나누는 '긍휼(Eleos)'의 십자가를 진 자는 어찌 됩니까?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그 긍휼의 피가 율법의 정죄를 완전히 짓밟아버리고 가장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승리의 나팔 소리를 터뜨리며 '카타카우카타이(적의 목을 베고 우주를 향해 기뻐 날뛰며 승리를 포효하다)' 할 것입니다!
III.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신학적 지진: 죽은 믿음의 실체! (2:14-19)
아더 핑크(A.W. Pink)가 지적 동의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거짓 신자들의 영혼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2장의 심장부입니다!
(약 2:14, 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거짓 믿음의 참혹한 민낯: 네크라 에스틴 (νεκρά ἐστιν, 죽은 것이라)
헐벗고 굶주린 형제를 보며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입술로만 번지르르하게 떠들고 주머니를 열지 않는 그 알량한 신앙!
야고보는 그 위선자들을 향해 침을 뱉으며 포효합니다! "행함이 없는 그 껍데기 믿음은 연약한 것이 아니라, 영적 심장이 완전히 멎어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네크라 에스틴(시체, 생명이 단 1%도 없는 절대적 죽음)'이니라!" 시체가 어떻게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겠습니까!
귀신들의 신학적 정통성: 카이 프릿수신 (καὶ φρίσσουσιν,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가 입술로만 믿는 자들을 향해 던지는 가장 끔찍하고도 모욕적인 비유가 폭발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지식으로 믿느냐? 잘하는도다! 그러나 똑똑히 들어라! 지옥의 귀신들(Daimonia)도 너보다 신학적으로 훨씬 더 정확하게 하나님을 믿는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 머리털이 쭈뼛 서도록 미친 듯이 전율하며 '프릿수신(부들부들 떨며 공포에 질려 발작하다)' 한다! 그런데 귀신도 떠는 그 진리 앞에서, 삶의 변화도 하나 없는 네가 어떻게 구원받았다고 까불며 안심하고 있느냐!"
IV. 아브라함과 라합: 삶으로 증명된 칭의(Justification)의 폭발 (2:20-26)
이 부분은 바울의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와 모순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이 구원의 '뿌리(Root)'를 말했다면, 야고보는 구원의 '열매(Fruit)'를 우주 앞에 입증하는 것입니다!
(약 2:21-22, 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믿음과 행함의 우주적 융합: 쉬네르게이 (συνήργει, 함께 일하고)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머리로만 창조주를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100세에 얻은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 한마디에 주저 없이 모리아 산의 제단 위에 묶어 칼로 찌르려 했습니다!
'쉬네르게이(Synergei)'! 참된 믿음은 머릿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십자가라는 용광로 속에서 폭발적으로 융합하여 미친 듯이 함께 역사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내면의 핵폭탄이, 행함이라는 버섯구름으로 세상 앞에 벼락같이 그 위용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증명된 의로움: 에디카이오데 (ἐδικαιώθη, 의롭다 하심을 받고)
야고보가 말하는 '에디카이오데'는 행위로 구원을 '얻어낸다(Earn)'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내면에 심겨진 십자가의 피와 참된 믿음이, 행함이라는 피 묻은 순종을 통하여 온 우주와 심판대 앞에 1000%짜리 진짜임이 '명백하게 증명되고 확증되었다(Vindicated)'는 웅장한 선언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본질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기생 라합조차도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주는 처절한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습니다. 호흡이 없는 몸이 송장이듯,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십자가의 순종이라는 '호흡(행함)'이 없는 믿음은 지옥 불쏘시개에 불과한 가짜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