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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읽는 오후”
‘An Afternoon Reading Sijo” (26)
여름의 상형문자
이상목
한 자락 여백 없는 여름이 타고 있고
수 만년 화엄 속에 달궈진 빙벽들의
둔탁한 엇박자 소리 산에서 밀려난다
오래된 벽화 한 폭 봉인을 푸는 건가
세상에 경고하는 자연의 오만인가?
말없이 하강하는 것들 빙하기를 지난다
정중동 오목하게 비워낸 은유 앞에
갈 길을 서두르던 통곡의 아픈 존재
보이는 모든 것 들은 돌아앉아 산이 된다.
Hieroglyphs of Summer
by Lee Sang-mok
A summer burns on,
without a single stroke of blankness;
From ice cliffs tempered
within tens of thousands of years of cosmic splendor,
the dull, offbeat echoes
come rolling down from the mountains.
Is it the unsealing
of an ancient mural long concealed?
Or nature's arrogance,
warning the world of what is to come?
Things descend in silence,
passing through another ice age.
Before the metaphor,
hollowed deep in stillness within motion,
the grieving beings,
hurrying toward their destined roads,
turn away at last—
and all that can be seen becomes a mountain
《여름의 상형문자》 감상
이상목의 「여름의 상형문자」는 단순히 계절을 노래하는 시조가 아니라, 빙하와 산, 시간과 존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제목의 '상형문자'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거대한 기호이자 경고처럼 읽힌다.
첫 수에서 "한 자락 여백 없는 여름"은 숨 돌릴 틈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시대를 상징한다. 특히 "수 만년 화엄 속에 달궈진 빙벽들"이라는 표현은 빙하의 붕괴를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우주의 장엄한 질서 속 사건으로 끌어올린다. "둔탁한 엇박자 소리"는 자연의 균형이 흔들리는 불길한 징후처럼 들린다.
둘째 수는 더욱 철학적이다. 녹아 내리는 빙벽을 "오래된 벽화"의 봉인이 풀리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 문명에 대한 자연의 경고로 볼 것인가를 묻는다. 그러나 시는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말없이 하강하는 것들"이라는 구절로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거대한 진실임을 보여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종장에서 시는 존재론적 성찰로 나아간다. "정중동 오목하게 비워낸 은유"는 자연의 깊은 침묵과 포용력을 드러낸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인간 존재는 결국 통곡과 상실을 경험한 뒤에 야 멈춰 선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보이는 모든 것들은 돌아앉아 산이 된다"는 압권이다. 산은 흔들림 없는 침묵, 성찰, 본질의 상징이다. 결국 인간과 사물은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존재의 원형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 시는 빙하가 녹아 내리는 풍경을 통해 기후위기의 현실을 환기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자연과 인간, 시간과 존재의 근원적 관계를 탐색하는 장엄한 서정시조라 할 수 있다. 읽고 나면 마치 깊은 산중에 홀로 서서 오래된 자연의 문자를 더듬어 읽는 듯한 여운이 남는다.
독자 여러분! 6월도 중순인데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비가 잦은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시원한 냉커피 한잔 올립니다.
첫댓글 좋은 시 배독합니다.~^^
고마워요 정 시인님! 언제나 해피바이러스 충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