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헛헛할 때 책을 읽는다 흩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듯 산만한 생각을 한 줄에 모으는 것은 공부다 제목을 따라 응시하고 몰입해 가는 일은 주제를 따라가는 명상의 길이기도 하다 그것이 먼 길이든 가까운 길이든 어느 지점에서 불쑥 말쑥한 손님 같은 기쁨과 만날 때 그것은 애무와도 같은 것이다
고통스럽게 몇 날 몇 밤을 달려 가 몇 줄의 감꽃목걸이 같은 시와 만날 때
*애무는 비로소 살이 된다
*애무는 몸을 살로 만든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옴
장갑을 흘리다
혹한의 긴 겨울이 있었다 손은 사람의 마지막 격전지, 손이 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온기를 느끼듯 그녀를 덥석 잡고 순수한 털실의 따뜻함을 장갑으로 꼈다 혹한은 춥지 않았고 얼음은 더 이상 얼지 않았다 연분홍 봄의 옆얼굴이 보였다 더 이상의 겨울은 없다고 생각 될 때 봄이 길었다
어느 날 두툼하고 예쁘지도 않은 그녀를 햇볕이 부서지는 찻집에서 흘렸다
수 십 번의 겨울이 오고 또 갔다 그녀를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 맛
백년이 넘었다는 유명한 우동 국물이 생명이다 펄펄 끓는 고개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