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엄일섭(嚴日燮)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4. 튀밥 사업과 영적 역사
1 1965년 3월 1일, 나는 부안 지역장으로 부임하여 새로운 개척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흩어진 식구를 다시 모아 총회를 갖고 4곳에 개척을 시작했으며, 지역본부에서는 튀밥 기계를 두 대 인수하여 봄과 여름 사업활동을 전개했다.
2 한 대는 조그만 리어카에 고두만 식구가, 또 한 대는 서남식 식구(현 430가정)가 지게에 지고 새벽에 사업을 떠났다가 저녁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두 팀이 돌아왔다. 이웃사람들 때문에 늦게 돌아오곤 하였던 것이다.
3 그 후 밤늦게까지 기계를 점검하고 고쳐야만 했던 것이다. 한 번은 서남식 식구가 돌아와 울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기계가 고장 난 기계라서 숙달된 사람이 늘 갖고 다녔는데 그가 그 기계를 잘 다룰 줄 몰랐던 것이다.
4 6월이라 보리쌀과 쌀만을 주로 튀울 때인데 옥수수가 나와서 얼마나 불을 때야 할지 몰라서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너무 지나서인지 뚜껑을 여는데 옥수수는 안 나오고 새까만 재만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배사죄하고 대금으로 받았던 보리로 변상을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5 나는 매일 이들이 무사히 사업을 하도록 기도를 드렸으며 황혼이 질 때는 이들을 마중 나가곤 했다. 부안군 백산면에서는 면 회의실을 빌려서 부흥회를 가졌는데 매일 평균 70여 명씩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으며 5명의 새식구가 7일 금식을 하는 역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6 그 후 튀밥 기계 한 대와 식구 한 분을 지구 본부 사업 대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걸어서 지교회 순회와 가정 방문을 열심히 하였는데 주산면 개척 교회(양남임•현 430가정)에서의 이야기이다.
7 순회 강의를 마치고 식구들을 집으로 보낸 후 밤늦게 1시경에야 잠자리에 누웠는데 모기떼의 극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이 활짝 열리며 단발한 여인이 들어섰다.
8 몸을 일으켜 누구냐고 하는 순간 온몸을 짓누르며 주위는 캄캄해지는데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입 밖에 말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사탄이로구나.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마음과 더불어 아버님을 부르며 동산의 노래를 부르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호롱 불을 밝히고 주위를 살펴보니 문도 닫혀 있었으며 조용할 뿐이었다.
9 나는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렸지만 도저히 더 누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원리 책을 내놓고 읽어도 보았지만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나는 밖으로 나가 앞마당 멍석 위에서 밤을 지냈다.
10 새벽에 주인아주머니를 만나서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머리를 떨구더니 하는 말이 자기의 딸이 처녀로서 그 방에서 죽었었다고 했다. 그다음 교회장도 거의 같은 영적 체험을 했다고 보고해 왔었다. 그 후 후임 오명환 교회장(현 430가정)을 배치하여 교회 건축을 위하여 벽돌과 기타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끝내 건축을 못하고 말았다.
11 그리고 동진면에 강 집사(현 권사)님의 어린 딸이 가끔 영적으로 질식하는 일이 생겨 자주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면 고통에서 벗어나곤 하였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가까이해주심에 대하여 항상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교역 생활상태는 일정치가 않아서 어려움은 대단했다.
12 며칠 동안 미숫가루로 연명하기가 일쑤였고 모든 항아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너희들만 배가 고픈 것이 아니란다. 내 속도 비어 있단다. 그러나 배는 고프지만 우리는 서로 아버지 집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큰 인연이냐. 우리 같이 기뻐하며 살자꾸나. 타이르듯 중얼거리며 지난날도 있었다. 교역 총무로는 김경옥(현 430가정) 씨가 수고했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