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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우리 집에는 다듬잇돌이 하나 있다. 방망이도 두어 개 그 옆에 놓여 있다. 아내는 이따금 이 다듬잇돌에다 그 방망이로 북어를 두들긴다. 이렇게 두들겨서 찢어 놓은 북어 조각은 술안주로도 좋고, 국을 끓여도 맛이 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도 다듬잇돌이 있었다. 돼지 머리를 삶으면 삼베 보자기에 싸서 그 다듬잇돌로 눌러 놓았었다. 그러면 고기가 고들고들 맛이 있었다. 그 돼지 머리 고기를 썰어 담은 쟁반 옆에는 언제나 새우젓 종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러나 다듬잇돌이나 그 방망이의 본래의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다듬이질을 하는데 소용되는 것이요, 북어를 두들기거나 돼지 머리를 누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요 얼마 전에 이사를 한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다듬잇돌을 들어다 실으면서 잠시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 다듬이질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풀 먹인 흰 빨래가 꼽꼽해지면, 다듬잇돌에 맞게 네모로 접어 놓고 방망이질을 했다. 빨래가 너무 마르면 입으로 물을 뿜어서 다시 꼽꼽하게 한 뒤에 다듬이질을 했다. 나는 이따금 바가지로 찬물 심부름도 했다.
다듬이질은 혼자서도 하고 둘이 마주앉아 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소리는 좀 둔탁한 느낌이었지만, 맞다듬이질을 할 때의 그 소리는 경쾌하고도 청랑한 것이었다. 휘영청 달이 밝은 가을밤에 혼자 뒷간에 앉아 있자면, 마을은 온통 그 경쾌하고 청랑한 다듬이 소리투성이었다. 소년은 그 다듬이 소리에 취했다가 달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랫배에다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뒷간을 나와 보면, 환히 불 밝은 아랫 방문에 맞다듬이질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때 ㉢사립문 뒤에 세워 놓은 수숫대의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듬이질을 하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감 껍질 말린 것을 내다 놓고 주근주근 먹었다.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으로 밤참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 소년은 배 아픈 핑계로 홍시나 곶감을 졸랐었다. 홍시나 곶감을 먹으면 설사도 그친다고 했다.
다듬잇돌은 여름에도 차가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나는 그 서늘한 다듬잇돌을 베고 누운 일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이걸 보시고는 깜짝 놀라 나를 일으켜 앉히셨다.
“다듬잇돌을 베고 누우면 입이 돌아간다. 알았니?”
그 후 나는 한 번도 그걸 벤 일이 없다. 찬 것을 베고 누우면 안면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말은 내 가 다 커서 들은 것이다. 다듬잇돌을 보면, 그때 어머니가 놀라시던 그 모습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다듬잇방망이를 보아도, 또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산골로 피란을 갔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호열자가 돌아서 온 동네에 울음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때 세 살이던 내 아우도 그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안고 하루 스물네 시간씩 한 주일을 견디셨다. 온 몸에 마마 같은 것이 마치 팥을 삶아 뿌린 듯이 돋아서 방바닥에 누일 수가 없었다. 얼굴도 눈코를 분간 할 수가 없고, 입안도 다 터져서 쌀 한 톨 넣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국수를 만들었다. 우선 밀가루를 개고, ㉤그것을 다듬잇방망이로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어다가 끓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한 가닥씩 아우의 입에 넣어 주셨다. 자다가 문득 깨서 일어나 보면, 어머니는 그 애를 안고 말없이 들여다보고 계셨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 가장 간절한 기원이 담긴 그런 눈이었다. 아, 우리 어머니의 그 애절한 기구(祈求)가 하늘에 사무쳤음인가, 내 아우는 마침내 살아났다.
그 애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날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그 눈을 생각했다. 그 애의 콧잔등에는 지금도 마마 자국이 몇 개 흩어져 있다. 하지만 그 애는 그 자국에 어린 슬픈 사연을 모를 것이다. 아니,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인들 무엇을 안다 하랴.
이제 다듬잇돌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지금은 물에 빨아서 다리지도 않고 입는 옷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내 아내는 그것으로 북어나 두들길 뿐이다.
01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단정적 어조로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② 현재형 문장을 통해 글쓴이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③ 시간 순서에 따른 경험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④ 다양한 일화를 통해 중심 소재가 글쓴이에게 지닌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⑤ 중심 소재를 의인화하여 글쓴이와 사물의 교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02 [보기]를 바탕으로 ㉠~㉤을 감상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다듬이’라는 우리 고유의 일상적 생활 도구를 소재로 하여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에게 ‘다듬이’는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등 전통문화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① ㉠:‘다듬이’는 글쓴이에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소재이기도 한 것 같아.
② ㉡:전통적 생활 도구로서 ‘다듬이’의 기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야.
③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내는 소리와 ‘컹컹개 짖는 소리’는 ‘다듬이’의 청랑한 소리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어.
④ ㉣:‘다듬잇돌’에 대한 촉각을 구체화하여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군.
⑤ ㉤:‘다듬잇방망이’와 얽힌 어린 시절의 사연을 회상함으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고 있어.
03 윗글과 [보기]는 모두 전통문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차이를 비교하여 감상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純朴)하도다.
- 김상옥,「백자부」
① 윗글에서는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상상을, [보기]에서는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② 윗글에서는 대상을 활용하는 방법을, [보기]에서는 대상의 다양한 쓰임새에 대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③ 윗글에서는 전통적 가치를 계승해야 하는 필요성을, [보기]에서는 전통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④ 윗글은 대상에 대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보기]에서는 대상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⑤ 윗글에서는 대상의 가치가 사라진 것에 대한 글쓴이의 아쉬움을, [보기]에서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예찬을 드러내고 있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정진권,「다듬이」
01 ④ 02 ④ 03 ⑤
해제 ㅣ「다듬이」는 정진권의 첫 수필집인『한국인의 향수(鄕愁)』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수필은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다듬이’를 소재로 삼아, 그것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여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다. 다듬잇돌과 다듬잇방망이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어머니의 세심 한 사랑을 떠올리고 있으며, 다듬잇돌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이 글에서 추상어, 개념어보다는 구체어, 고유어를 많이 써서 함축적 의미를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제 ㅣ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아쉬움
구성 ㅣ
1~2문단: 우리 집 다듬이의 용도
3~7문단: 어린 시절 다듬이에 얽힌 추억
8문단: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에 대한 회상
9문단: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아쉬움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④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다듬이’를 소재로 삼아, 전통 문화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는 다듬이에 대한 어린 시절의 장면과, 어머니의 말씀, 동생을 간호하던 어머니의 사랑 등을 회상하며, 다듬이에 대해 그리움과 아쉬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단정적 어조로 보기도 어려우며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드러내는 글도 아니다.
② 현재형의 문장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다듬이에 대한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③ 글의 시작과 끝 부분에 현재형 시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글쓴이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⑤ 다듬이를 의인화하여 글쓴이와 사물이 서로 교감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02 구절의 의미 파악 ④
㉣은 ‘다듬잇돌’의 차가운 기억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와 걱정이 담긴 추억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지,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다듬이’를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으므로 ‘글쓴이에 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소재’로 볼 수 있다.
② 앞부분에서도 ‘다듬잇돌이나 그 방망이의 본래의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다듬이질을 하는 데 소용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에서 다듬이의 전통적 도구로서의 기능을 알 수 있다.
③ 가을밤의 배경과 아울러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 내는 소리 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다듬이’의 청랑한 소리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⑤ 동생의 병구완에 쓰였던 ‘다듬잇방망이’를 회상함으로써 어머니의 사랑으로 연결하고 있다.
03 작품 간의 공통점, 차이점 파악 ⑤
전통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를 표현한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상호 텍스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 문제이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보기]는 ‘백자’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대상의 고결하고 순박한 아름다움을 시각적 이미지와 세세한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두 작품을 비교하여 감상했을 때, 이 글에서는 마지막 부분의 ‘이제 다듬잇돌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 내 아내는 그것으로 북어나 두들길 뿐이다.’를 통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본래의 용도와 가치를 잃어버린 다듬잇돌에 대한 글쓴이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으며, [보기]에서는 십장생의 소재(소나무, 백학, 바위, 불로초, 채운, 시냇물, 사슴)를 통해 백자에 정신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고결함과 순박함에 대해 예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보기]는 1연, 3연에서 백자에 그려진 십장생의 모습을 화자가 생동감 있게 상상하는 장면으로 구성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글쓴이가 상상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이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합하고 [보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② 이 글에서 글쓴이는 ‘다듬이질’, ‘북어를 두들기거나 돼지 머리를 누르는’, ‘국수를 미는 일’ 등으로 대상을 사용한 일들 을 제시하고 있지만 활용 방법을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보기]에서는 2연에서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 꽃 아래 빚은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를 통해 백자의 용도를 추측할 뿐 대상의 다양한 쓰임새에 대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③ 이 글에서 ‘다듬이’를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전통적 가치’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④ 이 글에서는 다듬이질의 청각적 이미지와 다듬잇돌의 촉각 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형상화하고 있으나 공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기]에서는 백자의 세세한 외양 묘사와 ‘하얀 살결’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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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이 작품은 백자가 지닌 순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예찬적 어조로 노래한 총 4연의 현대 시조이다. 현재 시제와 영탄적 표현, 역설적 표현 등을 사용하여 생동감 있게 백자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제 ▶ 백자의 아름다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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