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3: 2 채찍 소리 - 나 3: 3 충돌하는 기병 (1)
2. 니느웨의 멸망 환상 ( 3: 2-3 )
2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본 단락은 군사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돌격하면서 내는 굉음,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모습을 연상시켜 곧바로 그로 인한 참혹한 광경을 숨가쁘게 연결시킨다.
이로써 2: 3-5의 전쟁 장면을 되풀이한다.
더욱이 '달리는 병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레카바 메라케다'는 '멤'과 '레쉬'로 시작되는 두운법을 사용하여 본문이 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한다.
나 3: 2 채찍 소리 -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
1]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전장으로 달려가는 전차의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전차병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를 연상하게 된다. )
나 3: 3 충돌하는 기병 -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
1]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최후의 심판을 눈앞에 둔 요한계시록 8장 1절에 나오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8 장부터는 7 나팔을 떼는 환난의 극심한 모습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7 나팔과 7 인과 7 대접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계시록에는 7인, 7나팔, 7대접의 3가지 재앙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환난을 말하는 내용들이다.
인이 무엇인가?
인은 '뗐다'고 표현했다.
환난의 시작을 의미한다. 환난의 전체적인 개요, 다시 말하면 큰 그림을 말한다.
그러면 나팔은 무엇인가? 나팔은 전쟁을 시행할 때 사용했다. 이것은 환난이 한참 진행 중인 모습, 즉 환난의 중심부를 의미한다.
대접은 쏟아버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마무리, 최종 심판을 의미한다.
계시록에 나오는 7인, 7나팔, 7대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것을 해석하는데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는 단순히 순서를 따른 연속적인 사건으로 보는 해석이 있고, 둘째는 병행적인 것이 있다.
어떻게 전재하느냐 하는 것이 계시록 해석의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
연속적 해석은 사건이 순서를 따라 일어난다고 본다.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신학자 헨드릭슨이 계시록의 해석에 영향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끼쳤다.
한국은 박윤선 박사가 헨드릭슨의 견해를 많이 인용하셨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헨드릭슨의 견해가 많이 알려져 있다.
헨드릭슨은 어떻게 보느냐? 바로 점진적이고 병행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저자도 점진적이고 병행적으로 본다. 점진적이라는 말은 한꺼번에 다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이 시간을 두고 차례대로 발생한다는 해석이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이 겹쳐 동시에 일어난다고 본다.
연속적이 아니고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면 헨드릭슨과 저의 모든 견해가 일치하는가? 그건 아니다.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는 점에서는 입장이 같으나 다르다. 차이점은 기간 문제다.
헨드릭슨은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고 본다면 저는 대 환난 기간 안에서 점진적이고 병행적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차이가 계시록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헨드릭슨은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자연히 초림 사건으로 많이 해석하게 된다.
예를 들면, 헨드릭슨은 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을 초림 시대의 복음 운동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장차 될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초림이 될 수 없다.
계시록에는 세 가지 재앙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입증한다.
인은 환난이 시작될 때 등장한다. 첫째 인은 흰말, 둘째 붉은 말, 셋째 검은 말, 넷째 청황색 말, 다섯째 인까지는 환난이 시작될 때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환난 후이다. 그래서 이것을 점진적이라고 한다. 단번에 다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팔 재앙도 첫째, 둘째, 셋째, 넷째까지는 환난이 시작될 때로 본다.
환난 중간에 다섯째 나팔, 황충 재앙과 여섯째 나팔, 유브라데 전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끝에서 일곱째 나팔을 분다. 이것이 점진적이다. 이렇듯 대 환난 안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병행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환난이 시작될 때 보면 인 다섯 개를 뗐고, 나팔을 네 개 불었다. 그러니까 겹친 것이다. 이것을 병행적이라고 말한다.
환난 후에도 인도 있고 나팔도 있고 대접도 있다. 이것도 동시에 발생하므로 병행적이다.
계시록은 1장부터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6장에서 시작이 됐다가, 6장 끝에 재림이 있다.
어린양의 진노가 재림이다. 7장도 인침은 시작이요, 셀 수없는 무리는 끝이다. 그러므로 혼란스럽다.
모든 성경은 순차적, 시간적 개념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의 활동을 순차적으로 기록했다. 마태복음도 예수님이 오신 족보부터 시간적 개념을 가지고 기록했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것과 개념이 다르다. 계시록은 시간적으로 서술했다가 중간쯤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이 나온다.
또 조금 뒤에 처음이 나오는 이렇게 순서가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일관되게 본다는 것이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되면 종말에 진행될 역사적인 사실(스토리)을 알 수 있게 된다.
* 계 8: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 -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요한계시록의 주요 구조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이며, 그 셋의 연관은 일곱째 인이 일곱 나팔로 이어지고 일곱째 나팔이 일곱 대접으로 이어진다.
일곱 인들 중 6장에 기록된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의 환상은 전쟁, 기근, 죽음, 순교, 큰 지진 등 대 환난 시대에 대한 묘사이다.
거기에는 땅 4분의 1이 죽임을 당한다는 언급이 있었다(6: 8).
이제 8장에 일곱째 인은 일곱 나팔의 환상을 보이며, 그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강화된 재앙을 보인다.
1-1) 일곱째 인 -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일곱째 인을 뗀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재앙을 동반한 여섯 가지 인(印)과는 달리(6장) 본문에 나타난 일곱째 인은 직접적인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동반하는 일곱 나팔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은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묘사된 것이다(Davis, Ladd, Mounce, Plummer, Hendriksen).
그 근거로 두 재앙이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환난을 견디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의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 계 8: 1-2 -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 계 11: 15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 두 재앙이 시간적으로 연속적인 사건일 뿐 별개의 것이다(Beckwith, Tenney, Blanchard).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일곱 나팔의 재앙들은 일곱 인의 재앙보다 심판의 정도가 더 격렬하고 광범위하며 두 재앙 사이에 순서와 내용상 차이점이 많으며 또한 여섯째 인의 재앙까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은 데 반해 일곱 나팔의 재앙은 인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계 7: 1-8 = 인 맞은 자
* 계 9: 4 -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이 일곱째 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곱 번째 인이 무엇인가? 이것이 나팔 재앙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일곱째 인이 있고, 일곱 나팔이 있으니까 나팔과 인은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일곱째 인은 나팔 재앙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여 말한다.
일곱째 인을 뗄 때에 첫째 나팔, 둘째 나팔, 셋째 나팔 이렇게 돼 있다. 그다음에 일곱째 나팔 때는 대접 재앙이 있다.
일곱째 나팔과 대접 재앙이 다른 것이 아니다.
7 인, 7 나팔, 7 대접은 창세 이래에 없는 무시무시한 환난이다.
이것은 역사 속에 나타날 환난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다면 실제로 겪게 될 환난이다.
1절에 '일곱 인을 떼실 때', 여기 '뗄 때'에 그 말은 '나팔을 불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나팔 재앙 직전의 모습이다.
나팔을 불기 전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창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말씀한 것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 본문을 읽어도 긴장하지 않음은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 것으로 가득 차버렸기 때문에 감동과 긴장의 말씀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일곱째 인을 뗀 결과,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나팔 재앙 전의 일시적인 고요, 폭풍전야로 보는 해석들이 대부분이다.
이 고요는 고요 속에 무서운 하나님의 재앙이 담겨져 있으므로 이것은 좋은 고요가 아니다.
대 환난 기간에 천지가 진동하고 갖가지 환난의 내용을 쏟아버릴 그런 적막함의 고요이다.
내일 대 전투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병사들은 오늘밤 고요하고 침착할 것이다.
내가 내일 살지 죽을지 모른다. 이 부분은 그런 분위기다.
이것을 스바냐 1장 7절이 잘 묘사하고 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를 구별하셨음이니라.'
여호와의 날이 무엇인가?
심판의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렇게 떠들고, 화려하고, 우상숭배하고 지껄였던 것들을 모두 잠잠하라는 것이다.
그런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