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나도 흥분해 경질했다”…교육장관 ‘황제 라면’ 진실 [박근혜 회고록 12 - 세월호 (하)]
첫 방문 이후 유가족과 청와대 사이에는 거대한 불신의 벽이 만들어졌다.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지만 합동분향소 문은 닫혀 있었고, 헌화와 분향은 할 수 없었다. 유족들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분향소를 폐쇄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틈이 벌어진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해가 쌓였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때 정무수석이 현장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당시엔 나름대로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정무수석을 남겨서 좀 더 세밀하게 챙겼어야 하는데…’ 라는 회한이 남아 있다.
세월호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왼쪽부터 이주영 당시 새누리당 의원, 박 대통령,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중앙포토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족들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고 지속적으로 유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마음을 달래야 했는데, 그런 조치가 미흡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틈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대신 메웠고, 정부와는 점점 간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거대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이 순간을 몇 번이나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이때를 돌이켜볼 때 아쉬운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세월호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기로 한 특별조사위원회를 둘러싼 마찰이다. 당시 야당 일각과 유가족 측에서는 진상조사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이에 대해 2014년 9월 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임시기구에 모두 맡긴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원칙을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야당 일각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마치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몰아갔고, 정부와 유가족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이병기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 등 일부 청와대 인사가 특조위 추진 과정을 살피면서 설립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실장은 무죄가 확정됐고, 조 수석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나는 재판이 시작되고서야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특조위는 당시 여야 합의로 구성됐던 기구였고, 청와대가 이런 활동을 방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이들이 특조위를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