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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한 부분이었던 역사를 가진 면적이 한국의 78%정도인 체코는 유럽의 중앙 내륙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로 인천공항에서 12시간을 타고가면 도착할 수 있는 체코는 191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연합하여 공화국으로 73년간 이어오다가 1993년부터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슬로바키아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50%정도이고 인구는 약560만명이다.) 원래 이 나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보헤미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할 계획이었으나, 1918년 군주제를 폐하고 제국 국호도 폐함으로써 공화국이 되었다. 그래서 체코슬로바키아는 혼합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산업화된 오스트리아에 속했던 체코 지역(보헤미아, 모라비아,슐레지엔은 농업 중심의 후진적인 헝가리에 속했던 슬로바키아 지역과 대조된다. 게다가 이 나라는 게르만족이 매우 강력한 소수민족을 구성하고 있었다. 체코의 중산계급이 주도하는 토마시가리크 마사리크와 에드바르트 베네시가 이끄는) 정부의 중앙집권 정책은 슬로바키아인과 특히 "노스트리피카티온"(사회안정을 위한 체코슬로바키아 계획)으로 피해를 입은 게르만족의 저항을 야기했다.
세계 제2차대전이 일어나기 몇년 전인 1939년에는 나치독일에 불법 점령 당했다. 1941년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바 있어서 연합국이라 봐야 한다. 제2차 대전 중에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자 런던에 망명했던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이 귀국하여 신정부를 조직하였다. 1946년의 총선거에서는 공산당이 제1당이 되어 당수 클레멘트코트발트(1946년에 수상, 1948년부터 1953년까지는 대통령)가 연립내각을 조직하였지만, 1948년 2월의 무혈 쿠데타를 통하여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다.
1960년에는 신헌법이 채택되어 현 국명으로 개칭하였다. 1968년 집권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당제1서기)를 비롯한 개혁파들은 먼저 민주화를 시도했으나 이같은 움직임을 자본주의 부활이라고 경계해오던 소련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5개국 군대가 무력으로 그 해 8월 21일 밤 체코를 강제로 점령하고,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강제로 막음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이로 인해 전 세계의 비난이 가중되기도 하였다.(프라하의 봄) 1969년 1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연방제가 수립되었다.
1989년 당시 슬로바키아에게 평화로운 완전 자치를 주었고, 1993년에 평화롭게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연합국일 때 인구가 1560만 명이었는데 현 체코의 인구가 1070만 명이라면 슬로바키아의 인구는 약 500만명 정도로 분리가 됐던 아니던 프라하가 있는 체코라는 명칭이 대표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으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서 유서 깊은 중세 건축물들이 있는 중부 유럽의 중심지다. 프라하의 상징인 카렐교는 프라하 성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갈 때 건너야 하는 다리로서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카렐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 지르는 길이 약 500m의 석조다리인데 카렐4세(1355~1378재위)때 건설되었으며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체코는 카렐 4세시대가 황금기였다. 카렐교를 건너 구시가 광장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펼쳐지는 거리예술가들의 공연을 볼 수 있어 여행의 낭만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 이곳이 유럽이지 하고 감격하게 된다. 프라하 구시청사는 14세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별자리를 보고 중요시기를 판단 낮에도 별자리 위치를 파악 12개의 별자리에 따른 시기별 농사법을 표시한다. 구시가의 명물 천문시계는 1410년부터 현재까지 작동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시계다. 관광객 샬린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굉장한 모습을 보게 됐다고 좋아한다. 높이가 약70m인 구시청사 탑엔 또 다른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고 하여 따라갔다. 프라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말에 어둑어둑한 곳으로 들어가자 전망대로 오를 수 있었다. 세 가지의 탑이 있는데 시청탑은 시민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멜시장으로 간다. 평일은 주로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고 주말은 마리오네트와 글라스 등의 공예품을 판다. 하멜시장은 1232년에 세워진 굉장히 유래가 깊은 시장이며 시대의 흐름과 함께 파는 품목이 계속 바뀌어 가고 있단다. 산업혁명시대에는 석탄을 파는 시장이었고 그 후에 과일과 채소를 파는 시장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프라하가 관광도시이다 보니 많은 기념품도 함께 팔고 있다. 바로 먹을 수 있는 수돗가도 완비되어 있으니 구매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다. 낭만의 도시를 달리며 감상하기 적합한 느린 속도의 클래식 카도 이색적인 풍경이다.
프라하성은 9세기말부터 건설된 성당, 왕궁, 수도원, 정원 등을 포함하는 성채단지로 1918년부터 대통령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성은 다른 중세 성과는 다르게 성 안에 들어오면 또 하나의 도시가 펼쳐져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많은 귀족들이 이곳으로 이사 와서 자신들의 집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뒤에 보이는 건물(합스부르크 왕가의)처럼 마리아 테레지아 통치자가 남편을 잃은 귀족부인들이 모여 같이 살 수 있는 시설을 짓기도 했어요, 그래서 프라하성은 단순한 성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성채위에 여러 사람이 수 백 년에 걸쳐서 산 흔적이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아요 한다.
성비투스 대성당은 성당, 궁전, 장원 등이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의 성채단지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까지 갖추었고 성당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그라스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이 성당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려 22만 6천여 개의 유리조각으로 장식된 신비로운 분위기의 성비투스 대성당은 넓은 창에 화려한 스테인드 그라스를 사용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기술이 탁월한 예술로 작품성을 더해주고 있다. 고딕양식의 대표적 특징인 스테인드 그라스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만들어낸 체코의 화가이자 예술가는 성키릴과 성메토디우스, 알폰스무하 이다. 유럽에 관광 오면 왜 사람들은 성당만 계속 살피는가? 조각들의 모양이 다르고 성당 안에는 그 지역의 모든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체코의 전통 음식으로 유명한 대표메뉴로 ‘꼴레뉴’가 있다는데요? 식당 종업원 스테판에게 묻는다. 돼지고기의 일부로 만든 요리인데, 보통 앞다리 뒷다리 다리부위를 이용해요. 꼴레뇨(체코의 전통음식)의 요리법은 톱밥을 태우고 오븐에 함께 넣어 훈제로 한다. 조승연 작가님 맛이 어떤지 맛 표현 좀 부탁할까요? 한다. 칭기스칸이 중앙아시아를 다 평정했을 때 체코에도 이 같은 음식이 있다는 거예요 라고 답한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품은 영원히 잠들지 않은 도시 프라하를 떠나 플젠으로 간다.
플젠은 체코 서부에 위치하며 1842년 세계 최초로 ‘라거’ 맥주가 만들어진 도시다. 원래 플젠에는 집집마다 맥주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지역에서 200여명의 맥주 양조업자들이 모여서 같이 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플젠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보여준다. 세계 맥주의 역사를 바꾼 ‘라거’의 탄생지 플젠은 1839년부터 대형 오크통에 맥주를 넣어 시원한 지하에 눕혀 놓고 상온(15~24°C) 발효 숙성시킨다. 맥주를 오래 눕혀 놔서 나온 맛이다. 그래서 ‘라거’라고 하는 것이고 오늘날까지 우리가 플젠을 라거의 탄생지라고 하여 관광도 하는 거죠.
지하 저장고로 따라 들어가 본다. 양쪽에 누어있는 대형오크통들 가리키며 여기가 맥주천국입니다. 오크통에서 바로 딸아 마시는 황금빛 맥주를 잔속의 태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잔속의 맥주가 마치 태양처럼 빛나기 때문이란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당을 가득 채운다. 맥주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 한다. 플젠의 소규모 양조장 맥주가 총집합하고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베르키 씨의 말 ‘잔속의 태양이라 부르는 맥주축제에 오신 걸 환영해요’. 콘테스트에 참가하실 분 있나요? 앞으로 나오세요. 방법은 두 가지 첫째는 큰 머그컵에 가득 찬 맥주를 빨리 마시기, 두 번째는 맥주가 가득 찬 맥주잔을 들고 팔을 펴서 누가 오래 버티는가? 다.
체스케슈비차르스코 국립공원은 체코 북서부에 위치한 광활한 국립공원으로 울창한 산림과 독특하고 거대한 바위아치가 유명하다. 체스케슈비차르스코 국립공원은 체코어로 ‘보헤미아스위스국립공원’이란 뜻이다. 이곳의 지형이 스위스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보헤미아국립공원’이라 부른다고 해요 라고 관광객 포코르나 씨의 말이다. 저 위쪽에 체코에서는 보기힘든 멋진 바위가 있어요, 프라비츠카 브라나라고 높이가 약16m 가로가 최대8m의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 바위 아치 '프라비츠카대문' (우리나라 해남 대흥사 북암에 가면 비슷한 하늘문 유사한 바위가 있는데) 구멍바위다.
이곳에는 1800년대 말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명인사들이 바캉스를 즐기던 카페(일명 매의둥지)가 있어요. 여기서 시원한것 한 잔 마시고 갈게요. 절벽에 푹빠진 곳에 나무가 쫙 내려다 보이는 풍경화를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원래 산이 그렇게 생겼네요, 역시 예술작품도 자연을 모방한다는 말이 실감나요 에드먼드협곡으로 갑니다. 이 협곡도 체스케슈비차르스코 국립공원내에 있는데 신비로운 바위와 원시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트 가이드 케이마르씨의 협곡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 장가게 관광때 보았던 협곡이 연상되는곳이었다. 보트를 타고 가는데 협곡의 길이가 약 960m정도이고 배를 타는 시간은 20분정도 걸린다.
보트를 타고 협곡을 지나는데 왼쪽에 보드니첵 카메니첵이 수중 의자에 앉아 있다. 대형 목각 작품으로 자신의 신발을 고치며 담뱃대를 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보드니첵 카메니첵은 에드먼드협곡의 요정이라고 말한다. 코끼리얼굴처럼 보이는 바위는 빔보라 하고 그 옆으로 쏟아지는 폭포는 완전 자동인데 원격조정으로 물이 의도적으로 쏟아진다한다. 동화속 풍경같은 아기자기한 매력의 체스키크룸로프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붉은색도시 이 다리는 크룸로프 성으로 가는 입구인데요 예전 음악시간에 배웠던 곡 하나가 생각나네요,
작곡가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이라는 곡인데요, 2곡1악장 제목은 높은 성이고 2악장의 제목이 블타바 라는 강의 이름인데 지금 제 아래 흐르는 회색물결의 강이 바로 체코에서는 가장 긴 블타바 강이에요, 이곳이 체코의 정신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서 그 곡을 짓지 않았나할 정도로 정말 보헤미아의 모습 하면 상상되는 바로 그 모습이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네요.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베드르지흐 스메타나 고풍스런 건물사이로 블타바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그 물결 따라 예술가들은 영감을 얻고 새로순 문화를 꽃피웁니다.
유럽의 도시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요, 도시공인이 모여 만든 도시, 대성당 주변에 조성된 도시, 귀족집단의 성을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 이곳처럼 귀족집안의 성이 중심이되어 만들어진 도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 가문이 종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도시를 돌아다녀보면 이곳을 지배하던 귀족의 역사가 곳곳에 새겨져 있어요.
체스키크룸로프성은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체스키크룸로프의 대표적 명소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 지어진 건축물이며 문위로 보면 2개의 문장이 있어요, 처음 이 성을 지었던 로젠베르크 가문의 문장이 있고 그 옆에는 나중에 성을 구매한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문장있어요. 이렇게 성이 바뀔때마다 위에 문장이 하나씩 더해지는거죠, 시대를 이어 다양한 양식이 더해지며 규모가 커지는 성, 성의 규모는 가문의 위세를 확인하게 됩니다.
플라슈티 다리는 체스키크롬로프 성 내의 건축물을 연결하기위해 만들어진 3층 규모의 아치모양 다리로 시야가 탁 트인 다리로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되어 있습니다. 드마쉬 라는 관광객이 자기는 이곳을 몇번 방문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 하며 가끔씩 들르기도 한다고 하며 체스키크룸로프가 로젠베르크라는 중세 강순의 요새였잖아요 그래서 이곳에는 로젠베르크 식탁이라고 중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 있어요 라고 알려준다.
그 음식점에 들어가니 벌써 중세 기사들이 모여 식사하던 장소처럼 웅장한 분위가 느껴지도록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옛날 로젠베르크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고 살았는지 한번 체험해보겠습니다. 성 내부를 장식하던 그림을 짜놓은 직물로 중세분위기 가득한 식당, 귀족과 평민은 태생이 다르다. 평민은 초식동물, 고기를 많이 먹을수록 남자답다, 흐르는 시간에도 변치않은 위대한 유산 체코입니다.
프라하 다음으로 중세 건물이 많은 지역, 모라비아의 진주로 불리는 울로모우치에 도착했어요,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울로모우치를 대표하는 성 삼위일체 석주(石柱)예요, 체코라는 나라는 대부분 개신교를 믿는데 올로모우치는 천주교대주교 성전이 있는 도시였어요.그렇기때문에 여기에 천주교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성상들과 상징들을 합쳐서 마치 이곳은 내 도시다 라고 도장을 찍은듯 딱 세워놓은 거라고 보면 되는 거예요. 18세기 바로크양식으로 완공하는데만 38년이 걸린 성삼위일체 석주는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올로모우치 시청사의 천문시계도 프라하의 천문시계만큼 유명한 시계이며 이는 봉건시대의 상징이다. 사제나 왕관을 쓴 왕의 모습 대신 노동자의 모습을 그려넣었으며 2차세계대전 당시 손상 되었다가 1955년 사회주시절 재 탄생되었다.
따뜻한 기온과 석회질 토양덕분에 향이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고 모라비아 지방도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만들었다고 해요. 마루쿠스아우렐리우스라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이 지역에 쳐들어왔는데 하루에 1리터씩 마시는 와인을 전부 이탈리아에서 가져올 수 없어서 아예 이곳에 주둔하는군일들의 와인은 이곳에서 만들자고 해서 이 지역은 각자 작은 와인 양조장 하니씩 가지고 있는 것이 일종의다. 1800여년전부터 대대로 포도주를 빚어온 모라비아지방의 미쿨로프의 와인은 포도수확기간(1936.7.1부터)이면 지방곳곳에서 열리는 와인축제 입니다. 당신은 한국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멋지게 살도록 합시다. 와인만 있는게 아니라 축제도 열립니다.
모라비아의 민속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축제장으로 가기전에 현지인의 배려로 현지복장을 얻어 입은 조승연작가 왈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저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동네 사람이라고 같이 놀자고 하니까 벌써 동화된 느낌이 듭니다.라고 좋아한다. 와인축제의 백미 거리행렬퍼레이드는 정말 놀라울만큼 아주 분위기가 좋았다고말했다. 축제의 히든카드 모라비아의 한정판 특별 와인이 있다. 와인 다섯잔을 한꺼번에 마신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니까 현지 관광객 토마쉬는 부르착을 마시러 여기서 약 100km떨어진 보헤미아 지방에서 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부르착을 만드는 포도는 여기서만 나기때문이라고,.
크로메르지시 정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정원이며 유럽 정원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균형과 질서의 르네상스양식, 화려하고 정교한 바로크양식이 섞여 있으며 여기에 있는 정원은 아주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정원에 프랑스식을 살짝 가미한 것입니다. 근대 이탈리아식 정원 같은 경우에는 아래서 보다 위에서 보는것이 훨씬더 예뻐요,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높게 만든 산책로 벨베데레, 밀회의 공간 연인들의 미로, 사람키보다 높은 미로형태의 나무들 연인들의 미로속 숨은 이야기 레드니체성,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 근처에 있는 귀족 가문의 리히텐슈타인, 이 가문이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성, 그때의 귀족들이 우리가 잘 나가던시대 기사들이 말을 타고 뛰어다니던 새로운 고딕 네오고딕양식, 이곳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방문객들을 위해 사용했던 곳으로 1945년까지 실제 사용한 접견실 포함 약 400여개의 방이 있다.
(스로바키아보충)
오라바성(중세시대로시간여행)
오라바성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13세기에 지어졌어요, 다른성들은 대부분 밑에서부터. 위로 지어지는데 오라바성은 꼭대기에서 시작해 아래로 지어 내려갔어요.13세기 절벽위에 지어진 요새 ,이방은 오라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인데요,여기 벽 장식은 모두 17세기에 그려졌어요. 다양한 양식이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 이 의자도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중세에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녔기때문에 이런. 모양이예요,의자에 앉는 방법이 좀 특이하네요, 중세 사람들은 술을 자주 마셨는데요.술어 취해도 이 의자에서는 떨어지지 않았어요,그리고 의자에 앉은채 곧바로. 침대에 들얻ㅏ. 두었죠(음악연주) 멋진 연주로 한층 신나는 여행(바이얼린)너무 환상적입니다.
이분들은 자원봉사로 관광객들을 위해 시간 날때마다. 이곳에 와서 연주를 해주고. 있어요, 슬로바키아의 최고의 박물관이 된 '오라바성' 오라바성에 드라큘라 영화촬영. 캐릭터들이 여기다 있네, 실재로 최초의 드라큘라 영화를 이 성에서 촬영했다고함,
노스페라투(드라큘라영화)로 유명해진 오라바성 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풍경, 이성 아래로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사이의 중요한 거점이었기때문에 이성이 매우 중요했어요, 중세시대의 정취가 가득한 오라바성에서 드라큘라도 만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도 느껴보기(여행자 고희전) 저는지금 폴란드 남부 지방과 슬로바키아 북부. 산악지역에 있는. '고랄마을'을. 찾아가고 있는데요..고랄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산속에서 어떻게 사는지? 고랄족을 찾아 출발, 강따라 산속으로, 왼쪽이 슬로바키아고. 오른쪽이 폴란드예요(주민의설명), 정신이 쏙 빠지는 환영 인사, 야노(고랄족男)적어도 1주일은 엉덩이가 아플건데 고랄인으로 임명된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예요, 강건너 숲속 지나 고랄마을 도착하면. 고랄인이 되어 흥겹게 춤춰보기 ,아코디언 연주하며. 춤추기,산골의 시간을 간직한 고랄족,
할머니가 반가운 인사 제형 안드레아예요, 저는 안드레이예요(형제소개) 하루가 지나면 더 맛있게 발효되는데 상점에서 사먹는것과는 완전 다른맛이예요, 어! 자연 그대로의 맛 마리아(고랄족할망) 우리는 돼지도 4마리나 키우고 달걀도 있고 고기도. 있어요, 그렇지, 맛이 좋지, 발효된 요구르트 같습니다. 여기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힘들게 일하는걸 싫어하죠, 저밭이 나이든 사람들이나 이렇게 일하죠(마리아할망) 몇년전만. 해도 여기에 소가 150마리였는데 지금은 7마리. 푼이예요, 산속에 이렇게 오랫동안 사시는게 외롭기도 하실테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실텐데 제가 한번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진한포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