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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복 씨는, 역사와산 모임에서 산을 갑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늘 이렇게 글을 한 편 써 와서 읽습니다. ⓒ |
지난해 초에도 한 달에 한두 번쯤 책방에 사복 경찰들이 드나들었다. 근데 지난 가을엔 갑자기 사복 경찰들이 하루에 두세 번씩 며칠 동안 오더니 어느 날은 내 뒤를 몰래 따라붙어서 내 집까지 왔다. 그날 난 책방 일을 마치고 나서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느낌이 안 좋아 옆을 보니 내 옆 칸으로 낯익은 사람이 탔다. 누굴까 잠시 생각하다 놀랐다. 책방에 자주 드나들던 사복 경찰이었다. 난 소름이 돋았다. 물론 우연히 나랑 같이 탈 수도 있지만 요즘 부쩍 사복 경찰들이 책방에 드나들어 한층 몸이 움츠러들었다. 난 옆 칸으로 옮겼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올 때도 평소와 다른 길로 왔다. 근데 내가 사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또 수상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그자는 사라졌다.
두려웠다. 난 1997년 봄에 국가보안법 위반 이적표현물판매죄로 한 달을 감옥에 있다 나왔다.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한 달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책방 손실이 아주 컸다. 아내는 아기를 가진 몸으로 서울구치소로 날마다 면회를 왔고 책방 문은 낮 서너 시쯤 열어 대여섯 시에 닫았다. 그때 700만 원쯤 빚을 졌다.
다시 감옥에 끌려가고 싶지 않아서 사복 경찰이 집까지 따라온 다음 날 책방에 있는 책 가운데 사회주의 생각이 담긴 책들을 상자에 담아 치웠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슨 책을 팔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회주의 책을 읽으면 모두 사회주의자가 되나? 성균관대학교에선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선언》을 읽으라고 숙제로 내 주기도 한다. 그럼 그 책을 읽은 학생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이명박이 사는 청와대로 쳐들어갈까?
난 사복 경찰들이 책방을 들쑤시며 나를 감옥에 가두려는 것에 가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중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내가 감옥에 끌려갔던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압수한 도서와 정기 간행물 목록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검찰청 직원이 내게 전화를 했다. 13년 치를 다 알아보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했다. 이적표현물판매죄로 잡혀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내 사건 때 압수한 도서 및 정기 간행물 목록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일주일 뒤쯤 내게 서류 봉투가 왔다.
난 그때서야 1997년에 내가 꾸리던 책방과 내 방에서 압수한 책들을 다시 꼼꼼히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시집도 있었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이 쓴 시집이다. 난 혹시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이 있는가 싶어 그 책을 낸 문학과지성사 출판영업부장에게 물어보았다. 그 사람 말로는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란 이름을 가진 책은 그 책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도 내 책방을 뒤진 사복 경찰들은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를 “서울에 사는 ‘평양’ 공주”로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적 표현물 목록에는 내가 다달이 돈을 내는 인권 단체 소식지도 들어 있고, 내가 달마다 가는 산 모임인 ‘역사와산’ 소식지도 있었다. 그리고 시내 대형 서점에서도 버젓이 팔리고 있는 월간 <말>도 있고, 지금은 그린비 출판사에서 새 판을 낸 《페다고지》도 있다. 박노해가 쓰고 창비에서 펴낸 시집 《참된 시작》도 있었다. 사회과학도라면 꼭 읽어야 하는, 루카치가 쓰고 거름 출판사에서 낸 《역사와 계급의식》도 있었다. 이런 책들은 시내 큰 책방에서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
아무튼 공안 기관의 눈으로는 대형 서점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책을 팔면 합법이고 내가 꾸리는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에서 그런 책을 팔면 언제든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된다.
1997년 봄에 나를 잡아갔던 남영동 대공분실 공안 경찰이 그랬다. 왜 돈을 벌지도 못하는 책방을 하고 있냐고. 나중에 감옥을 나가면 책방을 그만두고 술집이나 하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 갓 서른이 넘어 보이는 젊은 사복 경찰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고정 간첩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아냐고. 고정 간첩이 4만 명이 넘는데 웬 통일을 말하느냐고, 통일이 되면 그 많은 빨갱이들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이고 그네들을 잡을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고 했다. 지금도 처자식 얼굴도 못 보고 밤샘하기 일쑤인데 그 많은 빨갱이들을 잡아들일 생각만 하면 나처럼 통일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했다. 어찌 이게 제정신인가. 어떻게 교육을 받았기에 이 나라 공안 경찰이 이 정도 수준인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말들을 내 앞에서 쌍소리를 섞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내뱉었다.
난 다신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청에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내가 받은 자료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책과 자료집들이 불온 서적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난 경찰청 증거물과에 전화를 했다. 내게서 빼앗아간 책들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반환 청구’를 하겠다고. 근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들었다. 내 책방과 내 집에서 빼앗아 간 책들을 모두 폐기 처분했다는 것이다.
난 그때 한 달을 감옥에서 살다가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기소 유예라면 재판을 받지도 않고 풀려난 것이다.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내 책들을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박라연이 쓴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와 후원회 소식지, ‘역사와산’ 소식지는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 마음대로 그 책들을 불구덩이에 넣어 태워 버리는가.
난 또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이적표현물판매죄로 잡혀갈 수 있다. 아직도 내 책방에는 박노해가 쓴 《참된 시작》이 그대로 있고 프레이리가 쓴 《페다고지》도 있다. 그리고 내가 다달이 가는 ‘역사와산’ 자료집과 생태, 평화, 인권, 나눔 단체 소식지도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놓여 있다.
나한테 압수해 간 책을 당장 돌려주고, 이제 내가 무슨 책을 팔더라도 제발 상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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