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시(Gypsy)
집시는 인도 북부 지역에서 기원한 코카서스 인종의 유랑 집단을 말한다.
현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마차를 타고 다니며 점쟁이 · 땜장이 · 조련사 · 가축 중개인 등의 일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오늘날에는 마차 대신에 자동차나 트럭으로 이동하며
중고 자동차 중개, 자동차 정비, 이동 서커스 단원 등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간다.
집시들은 한 지역의 민중 문화를 다른 지역으로 전파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그들 자신이 실제로 음악과 춤 등을 풍성하게 발전시키는 데 공헌해왔다.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피부색은 짙은 편이다.
집시어를 쓰며, 계속적으로 이주하여 인도를 떠나 11세기 페르시아, 14세기 초 유럽 남동부,
15세기 서유럽에 거주하였고 20세기 후반에는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퍼져나갔다.
방랑 중 거주민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왔으며 특히 아리아인 보존 정책을 폈던 나치가 약 40만 명의 집시를 학살했다.
전통적으로 집시들은 떠돌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중개인, 동물 조련사, 구내 매점원, 점쟁이 등의 직업에 종사한다.
나름의 전통적 규범을 형성하고 무리의 연장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해 왔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주지역의 통합, 경제적인 독립, 집시가 아닌 사람들과의 결혼 등으로 집시들의 전통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현재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피부색은 짙은 편이다.
대부분 인도 북부에서 사용하는 인도 유럽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순수한 집시는 스스로를 Rom('남자' 또는 '남편'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반면에
집시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gadje('시골뜨기', '촌놈', '미개인'이라는 경멸적인 뜻으로 쓰이는 배타적인 말)라고 부른다.
집시들의 방랑벽,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인구통계표가 없다는 점, 흔히 다른 유목민들과 함께 분류된다는 점 때문에
집시의 전체인구를 추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나 약 200만~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발적인 연구만으로는 집시의 실태에 관해 중요한 통계자료를 얻을 수 없으나,
현재 집시는 특히 중남부 유럽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시들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순수 이동생활을 계속하는 집시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집시들의 방랑생활은 그들만의 고립성에서 나왔다.
집시는 혈연 또는 종족 집단들끼리 계절의 변화에 따라 국경선을 넘어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한다.
집시들의 방랑 기질은 거듭되는 추방으로 더욱 심해졌다.
15세기에 서유럽으로 처음 이주한 후 80년 만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추방당하게 되었으나
그러한 계획적인 추방이나 해외로의 이송에도 불구하고 집시들은 쫓겨났던 나라에 다시 나타났다.
떠돌이들이 모두 속죄양이 되기 쉽듯이,
집시들의 경우에도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으레 많은 재난이 그들 탓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런 비난이 있은 후에는 공식적·법적인 박해가 뒤따랐다.
집시가 머물고 있는 나라의 당국과 집시들 간에는 반목이 계속되었다.
가끔 집시의 정착과 융화를 목표로 한 공식적인 포고령이 있은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잠시 머물 장소를 허락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아인을 보존하려 했던 나치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약 40만 명의 집시를 아주 조직적인 방법으로 학살했다.
프랑스 법은 집시들에게 텐트 장(場)을 허용하지 않고 경찰의 감독을 받도록 규정했지만,
사실상 집시들은 일반 시민들처럼 세금을 내고 징병되기도 했다.
스페인과 웨일스에서는 집시들이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지만 정착할 수 있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집시의 이주를 막기 위해 강제적인 정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행했었다.
전통적으로 집시들은 사회 주변에서 떠돌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해왔다.
남자들은 가축중개인·동물조련사·흥행사·땜장이(대장장이·수리공)·음악가였고,
여자들은 점쟁이·약장수·걸인 예능인 등이었다.
수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많은 농부들이 가축의 건강이나 사육에 대하여 집시 가축중개업자에게 조언을 구했으며,
부서진 주전자, 냄비, 금속 용기를 집시 땜징이에게 맡겨 수선시켰다.
집시들은 지금도 이동하면서 살지만, 현대 문명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트럭·트레일러를 이용하여 이동하며, 가축거래 대신 중고차와 중고 트레일러를 판매한다.
스테인리스강(鋼) 주전자나 냄비의 대량 생산으로 땜장이가 필요없어지면서
일부 도시지역에 사는 집시들은 자동차 기계공 또는 차체 수리공으로 일하게 되었고,
이동 서커스단이나 유원지에서 동물 조련사, 구내 매점원, 점쟁이 등으로 일한다.
원래 집시 가정은 부부, 미혼 자녀, 그리고 최소한 1명의 결혼한 아들과 그의 아내 및 자식들로 구성된다.
결혼한 젊은 집시 부부는 보통 남편의 부모와 함께 살면서 남편 쪽 가정의 생활방식을 배우게 된다.
장자가 분가할 때 둘째 아들이 결혼하여 신부를 데리고 와 가족의 구성원을 채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크게 쇠퇴했지만,
전통적으로 집시의 결혼은 가족이나 생활을 함께하는 무리의 연장자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다른 가족 또는 부족과의 정치적 관계와 친족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결혼할 때 신랑 부모가 신부 부모에게 신부값을 지불했다.
집시들은 문화적·언어적으로
① 칼데라시(발칸 지역과 중부 유럽에서 온 대장장이들로 가장 수가 많음),
② 히타노(프랑스어로는 Gitans라고 하며,
대부분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프랑스 남부에 살고 흥행에 뛰어남),
③ 마누시(프랑스어로는 Manouches, Sinti라고 하며,
대부분 프랑스·알자스·독일에 살면서 떠돌이 흥행사나 서커스 단원으로 일함) 등 3개의 주요집단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또다시 직업적 특성이나 원래 거주했던 지역에 따라 2개 이상의 하부집단으로 나누어진다.
국제 집시 회의가 뮌헨·모스크바·부쿠레슈티·소피아(1906)와 폴란드의 루브네(1936)에서 각각 열리기는 했지만,
모든 집시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권위체는 그것이 의회의 형태이든 '왕'이든 기록상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집시 왕에 관한 전설은 집시들이 낭만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집시들간에 정치적인 권위를 가진 인물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집시에 관한 글을 쓴 작가들은 '부족'이라는 말을 매우 모호하게 사용했다.
과거에 지역 주민들과 교제하면서 '공작'이나 '백작' 같은 귀족 행세를 하던 집시들은
10여 가구 또는 몇 백 가구의 무리를 이끄는 수령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령은 영향력있는 가족들 중에서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무리를 이끌며, 그 지위는 세습되지 않는다.
수령이 갖는 권력이나 권위는 집단의 크기·전통, 다른 집단들과의 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령이 집단 전체의 재무를 관리하며, 이주에 관한 결정을 하고, 지방 시 당국에 대해 집단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또한 집단 내의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인 푸리 다이(phuri dai)와 원로회의를 통해 집단을 이끌어갔다.
푸리 다이는 특히 여자와 아이 문제에 관해 큰 영향력을 가졌는데,
이는 여자들도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시의 제도 가운데 크리스(kris)가 가장 강력한 사회 통제력을 가졌는데,
이는 집단의 의식과 재판소 구성은 물론 재판의 기준들과 관습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집시들의 가장 근본적인 규약은 정치적인 단위조직 내에서의 충성·결속력·상호성이라는 포괄적인 개념들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규약을 위반하거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크리스 재판의 가장 엄중한 제재는 무리로부터 추방시키는 것이었다.
때에 따라서 일부 집단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한다든가 천한 일을 시키는 등의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추방되었다가 무리의 연장자들의 합의에 의해 다시 복귀되었을 때는 화해의 잔치가 벌어졌다.
한 집단은 모계 또는 부계 친족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인 비트사(vitsa)로 구성되는데, 많을 때는 200명 정도가 된다.
대규모의 비트사는 우두머리와 협의체를 갖추고 있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그 비트사의 구성원이 된다.
집단에 대한 충성이나 경제적인 협조는 비트사 단위에서가 아니라 각 가족 단위에서 요구되나
집시어에는 가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 없다.
경제적 협력을 위해 남자는 가까운 일가 친척들에 의해 만들어진 행동의 규정에 따르는데,
이때 이들 일가 친척은 그와 분쟁관계에 있지 않아야 한다.
집시는 민속 신앙이나 관습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들이 정착한 지역(예를 들면 루마니아)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민족적' 풍습·춤 등을 실제적으로 보존시켜왔다.
또 집시들은 관습과 사상을 전달하고 음악과 춤을 풍성하게 발전시켰으며,
기본적인 수공기술을 발전시켰으나 문학에는 공헌하지 못했다.
플라멩코가 악보에 기록된 음악이 아니듯, 집시어도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문맹 때문만이 아니라 배타적인 문화의 내면세계를 밖으로 내보이기를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집시들은 차츰 그들 문화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싸워야 했다.
이제는 적대적인 사회에서 가하던 박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도시문화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들의 생활방식이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과거에는 집시 음악 속에 전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가족과 집단에 대한 충심 같은 주제가
전통적인 생활 양식의 보수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나,
이제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일부 젊은이들이 외부 세계에서 주는 물질적인 대가에 이끌려
바로 그들이 노래하고 있는 집시 문화의 총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거주지역의 통합, 경제적인 독립, 집시가 아닌 사람들과의 결혼 등으로 집시들의 법이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집시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문화의 특성을 선별하여 그것을 자체의 문화에 유익하도록 변형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 관습에 구애되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방랑생활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보헤미안(Bohemian)’이 있다.
본 뜻
보헤미아(Bohemia)는 본래 체코의 서부 지방을 일컫는 지명으로서,
보헤미안의 말뜻 그대로 보자면 보헤미아 지방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2/4박자의 경쾌한 춤을 즐겼는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집시들을 보헤미아 지방 출신으로 알았던 프랑스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인 호칭이다.
그러나 정작 보헤미아 사람들은 집시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사회의 관습이나 규율 등을 무시하고 방랑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예술가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