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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불교는 신선도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석가세존이 우리민족으로서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6년간 고행하고 성도한 후, 종지(宗旨)까지 받
고 인도로 건너 갔다면, 그리고 불교의 대승경이 우리민족의 경전이라면, 석가불교의 원류는 전적으
로 우리나라의 신선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선도와 석가불교에 있어서 그 기본사상이 서로 불
가분적 동일성을 지녀야 하고, 그밖에 고유명사․전문용어․종교의식 등이 서로 같거나 유사하게
마련이다.
1.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우선 기본사상의 동일성을 지적한다.
첫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일체개공(一切皆空) 사상이다.
일체개공의 공(空)은 무(無)인가 하면 허(虛)이고, 허인가 하면 기(氣)여서유(有)와 무(無)를 초
월하고, 일체의 차별상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불교의 기본경전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이 경전 내용 중에서 가
장 기본적인 내용이 색(色)이 곧 공(空)이고 공(空)이 곧 색(色)이며, 낳고 죽음도 없고, 더러움도 깨
끗함도 없으며, 늘지도 줄지도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불교는 일체개공 사상이다.
신선도 역시 일체개공 사상이다. 신선도의 발생학적 기본원리는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이
다. 여기에서 일(一)을 공간과 시간의 의미로 보면, 삼신일체는 천계․지계․인계도 연결된 하나의
공간이며, 과거․현재․미래도 연결된 하나의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즉 삼신일체는 일원사상(一圓思
想)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시적으로 보면 천계․지계․ 인계가 각각 다르고, 과거․현재․ 미래도
각각 달라 만유에 시작(처음)과 끝(마침)이 있어 인생에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우주에 성주괴공(成
住壞空)이 있어 제행(諸行)이 무상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 시작과 끝이 없으
므로 만유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새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깨끗한 것
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더하고 덜함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래서 신선도 역시 일체개공
사상인 것이다.
둘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3원론적 1원론으로서 조화사상이다.
신선도의 기본사상은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사상이며, 불교의 기본사상은 법신(法身)․보신
(輔身)․응신(應身)의 삼불일체(三佛一體)사상이다. 곧 3원론적 1원론인 것이다. 이를 풀어 말하면
하나의 체계가 조화를 이루려면 3단원으로 구성되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치
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으로 분립되어 독립적으로 업무를 집행하면서도 서로 유대를 이루듯,
정치․사회․교육 등 모든 사회현상이 3단원 1체제론에 의하여 구성되고 균형을 이룬다면(예컨대,
智仁勇 또는 知德體의 교육이 균형을 이룬다면) 모든 사회현상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
래서 삼원론적 일원론은 자타일여(自他一如)․물심불이(物心不二)․선악일체(善惡一體)․성속일체
(聖俗一體)․개전일체(個全一體) 등 조화사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래서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조
화사상이다.
셋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순환론(윤회사상)이다.
윤회사상 역시 불교의 기본사상으로서 사계의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신선도의 삼신일체 사상
도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 시작도 끝도 없다는 일원사상인데,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및 만왕만래(萬往萬來)가 일원사상을 의미한다. 일원사상은 곧 순환론으로
서 윤회사상인 것이다.
넷째, 신선도는 곧 신선사상인데 불교 역시 신선사상이다.
신선이란 불로장수(不老長壽)하고 신변자재(身變自在)하는 이인(異人)을 지칭한다. 그런데 불교의
비바시불은 8만4천세, 시기불은 7만세, 비사부불은 6만세를 살았다 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선
이라 하고, 아미타불은 무량수(無量壽)라는 뜻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라 하며, 불(佛)은
신선 가운데 최고라는 뜻으로 대선(大仙)을 지칭한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교화함에 있어 신변자
재하는데 33신(三十三身)이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
여 몸을 6도(六道)에 나타낸다고 한다. 이래서 불경에 신선이니 선인이니 하는 용어가 자주 등장
하고, 불교를 대선도(大仙道)라 칭한다.
다섯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생명평등사상이며 만물일체사상으로서 신선도는 접화군생(接化
群生)을, 불교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종지로 하여 신선도는 홍익인간 광명이세(弘益人間 光明理
世)를, 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지상목표로 한다.
이상과 같이 신선도와 불교는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일치한다. 더욱이 고대 인도의 정통사상
과 불교사상을 비교하여 보면, 고대 인도의 정통사상은 다신론적 일신론(多神論的 一神論)으로서 창
조론(創造論)인데, 불교는 범신론적 무신론이며 윤회사상이다. 불교와 인도 사람들의 사유를 비교하
여 보아도 불교는 생명평등 내지 인간평등 사상인데, 인도 사람들은 바라문․찰제리․바이샤․수드
라의 불평등한 4성계급(四姓階級)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불교는 원래 대승적이어서 관대하면서도 강
경하고 온유하면서도 엄격하다. 그래서 정의에는 순응하고 불의에는 항거하는데, 인도 사람들은 대
체로 만사에 순응하고 무저항적이다. 또한 불교가 인도 사람들의 사유나 성격적 욕구에 바탕을 두
고 있다면, 어떤 위기에 부닥쳐 일시 쇠퇴하였다 하더라도 기회가 호전되면 다시 소생하여야 할 것
이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침입에 의하여 불교와 힌두교가 다 같이 박해를 받고 멸망하게 되었지만
힌두교는 다시 부활되어 현재에 인도 전체 인구의 태반(83%)을 신자로 하고 있는데, 불교는 인도
전역에서 거의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외국 사람들이 근래에 이르러 세운 사찰만이 몇 곳에
있을 뿐이다.
이를 보아도 불교는 원래 인도사상이 아니며, 석가세존의 독창도 아니라, 우리민족의 신선도에 바
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의 기독교가 유태교에 바탕을 두고, 소크라테스와 플
라톤의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밀교인 orpheus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는 것이다.
2. 고유명사와 전문용어가 동일하다
대승경이 인도에 전승된 이래 몇 번에 걸쳐 결집되면서 경전의 용어가 인도화되었다 하더라도 어
쩌면 산명(山名)과 지명(地名) 등 고유명사는 발음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착안에 따라
불경에서 우리의 고유명사와 전문용어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러나 필자의 고어지식(古語知識)의 부
족으로 한계가 있고, 참고문헌은 {화엄경} 일부와 우리말 사전임을 밝혀둔다.
첫째, {화엄경}에서 발견된 우리의 고유명사를 예시하면, 단군조선 시대부터 천신제를 지내던 강
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신라의 네 신선이 유오(遊娛)하던 강원도의 금강산, 인삼의 고장을 지칭하는
진단(震旦), 신라의 옛 이름인 시라(尸羅), 유리이사금 때에 지었다고 하는 도솔가의 도솔(兜率), 그
밖에 오대산(五臺山)․우두산(牛頭山)․가야(伽倻) 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본서의 소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할 경우, 우리나라의 지명이나 산명이 불교가 전래
된 이후 그 영향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니냐 하고 반문할 수 있다. 불교가 공식적으로 우리나
라에 전래되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인데, 위의 산명과 지명들은 그 이전부터 있었거
나, 아니면 자연적인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예컨대, 금강산은 개울에 사금
(沙金)이 흐르고 멀리서 보면 금빛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써 그 시원을 알 수 없고, 시라
(尸羅)는 B.C. 57년 신라 건국초의 옛 이름이며, 가야는 {신교총화(神敎總話)}에도 나오는 것을 보
면 승려들의 수도생활에서 유래된 이름으로써 김수로왕의 금관 가락국 건국 이전 즉 서기 42년 이
전부터 있던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이다. 마니산은 경기도 강화에 있는 산으로서 '마니'는 산의
돌이 탄탄하여 그 빛을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할마니․어마니․심마니․어인마니"의
마니로서 수호신 같은 의미를 지닌 우리민족의 고어이다. 진단은 한자로 震旦․震檀․震丹․振旦․
眞丹 등 여러가지로 표기되는데, 인삼의 고장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이칭이다.
이렇게 볼 때, 상기의 산명과 지명이 불교의 영향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볼 수 없다. 또한 산
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는 어느 책이나 경전을 보아도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기재하고 임의로 번
역하여 기재하지 아니한다. 더욱이 가야를 제외하면 그러한 산명이나 지명이 인도에 없으니 절대
불교의 영향이라 볼 수 없다.
둘째, 신선도에 한웅천황 이전 7세한인이 있었는데, 불교에도 석가불 이전 7불이 있었으며, 7세한
인 가운데 한분의 명호가 석제임한인(釋提壬桓因)인데, 불교에서 33천의 주신을 석제한인(釋提桓
因)이라 한다. {삼국유사} 황룡사장육편을 보면 우리나라에 가섭불(迦葉佛)이 있었는데, 불교에도
가섭불이 있다.
셋째, 신선도의 본당 명칭이 대웅전인데, 불교의 본당 명칭도 대웅전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1부에
서 상설하였다.
넷째, 신선도는 단군조선에 와서 특히 발전되었으므로 단(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불교에
서 신도를 단도(檀徒)라, 신도의 집을 단가(檀家)라, 시주(施主)를 단월(檀越) 또는 단나(檀那)라, 가
장 큰 목향을 전단(?檀)이라 한다. 전단과 백단(白檀)으로 만든 불상을 단상(檀像)이라, 석가세존이
입산수도한 산을 단특산(檀特山)이라 한다. 이와 같이 불교용어에 단(檀)자를 많이 쓰고 있다.
다섯째, 신선도에 '三'수가 가장 기본수여서 '三'으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신일체(三神
一體)․삼극일체(三極一體)․회삼귀일(會三歸一)․집일함삼(執一含三)․삼일신고(三一神誥)․삼륜(三
倫)․삼강(三綱)․삼진(三眞)․삼문(三門)․삼관(三關)․삼방(三房) 등이 있다. 불교에도 삼불일체(三
佛一體)․삼승즉일승(三乘卽一乘)․회삼귀일(會三歸一)․집일함삼(執一含三)․삼계일체(三界一體)․
삼각(三覺)․삼관(三觀)․삼론(三論)․삼보(三寶)․삼장(三藏)․삼혼(三魂) 등 많다. 이외에도 유사한
전문용어가 많으나 번잡하므로 생략한다.
여섯째, 불교에서 출가교도를 승(僧)이라 하는데, 신선도에서도 출가교도를 화랑(花郞) 또는 조의
(?衣)라 하는 외에 승(僧)이라 한다.
일곱째, 대체로 고유명사와 전문용어의 발음을 보면, 우리의 발음이 지나족의 발음보다 원어(범
어)에 더 가깝다. 예컨대,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예로 들면, 범어로 "샥까무니(Sakga-Muni)", 지나어
로 "씨지아모우니(Shigia-Mouni)", 우리말로는 "석가모니"이다. 불타(佛陀)는 범어로 "붇다(Budda)",
지나어로 "호뚜오(Fotuo)", 우리말로는 "불타"이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의 발음이 원어(범어)에 더
가깝고, 지나족의 발음은 원어(범어)와 거리가 멀다.
그 이유를 지나족의 발음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 때문이라 할지 모르나, 한자의 발음기호(반절음;
反切音)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고유명사와 전문용어의 발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
지 아니한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발음이 지나족의 발음보다 원어에 더 가깝다는 것은 대승경이 중
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우리나라로 직접 전래되었거나, 아니면 우리나
라에서 인도로 직접 전승됐음을 의미한다.
3. 의식이 동일하다
신선도와 불교는 숭배의 대상이나 의식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이하에서 그 동일성과 유사성을 지
적한다.
첫째,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우주의 진여이법(眞如理法)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이를 설명하면 신선도는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은 하날님․한알님의 전성음이며, 한알님의 '한'은 무한대의 우주를 의미하고 '알'은 알맹이의
'알'로서 한알님은 우주의 생명 에너지 곧 영기에 대한 경칭이다. 즉 하나님은 우주운행의 근본원인
인 진여이법에 대한 경칭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1부에서 상설하였다. 불교에서는 법신불․보신불․
응신불의 삼불일체(三佛一體)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이 역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에 해
당하는 대우주의 진여이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응신불에 석가불을 대응시키고 있으나,
응신불 역시 원래는 진여이법의 한 쓰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선도와 불교는 다 같이 인간
을 숭배의 대상으로 아니하고, 우주운행의 근본원인 즉 진여이법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둘째, {고려도경} 석씨(釋氏) 편을 보면 신선도에서 화상(和尙)이 삭발했는데, 불교에서도 승려
들이 삭발한다.
셋째, 신선도의 의식이 제사인데, 불교에서도 제사를 모신다.
넷째, 우리민족이 흰 옷을 좋아하는데, 인도인들도 흰 옷을 좋아하고 관세음보살을 백의대사(白衣
大師)라 한다.
다섯째, 음력 4월 8일은 우리민족의 국속인데, 불교에서도 이날에 대대적인 행사를 한다. 이에 대
해서도 제1부에서 상설하였다.
4. 신선도의 천산과 불교의 수미산이 동일하다
신선도가 우리나라 백두산에서 한웅천황과 단군왕검에 의하여 설해지고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그 최초 발상지는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중앙 아시
아의 원주민인 칼마크(Kalmuck) 사람들의 천산에 대한 전설과 불교의 수미산에 대한 전설을 비교
하여 보면 그 내용이나 특수성에 있어서 너무나 일치한다. 여기에서 불교는 신선도의 지류임을 분
명히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선 불가에서 말하는 수미산에 대한 {국어대사전}의 기록을 보면 다음
과 같다.
수미산(범,Sumeru)(불교); 불교의 세계설에서 세계의 한가운데 높이 솟아있다고 하는 산, 꼭대기에는 제
석천(帝釋天)이 살고 있고, 중턱에는 사천왕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 높이는 물 위로 8만 유순(由旬;1유
순은 400리)이고, 물속으로도 8만 유순이며, 가로의 길이도 그와 같다고 함. 금․은․유리․파리의 4보(四
寶)로 이루어져 북쪽은 황금, 동쪽은 백은, 남쪽은 유리, 서쪽은 파리인데, 해와 달이 그 주위를 회전하여
보광을 반영시켜 사방의 허공을 물들이고 있다함. 수미산 둘레에는 7금산(七金山)이 이것을 둘러싸고, 수
미산과 7금산 사이에 7해(七海)가 있으며, 마지막 금산 밖에는 함해(鹹海)가 둘러있고, 함해 건너에 철위산
(鐵圍山)이 둘러 있어 수미세계의 외곽을 이룬다고 함. 함해 속에 4대주(四大州)가 있는데 4대주 남쪽이
인도대륙에 해당된다고 함.
다음은 신선도의 태초 발상지인 천산(天山)에 대한 기록이다.
{한단고기}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기록하기를 "한인(桓因)이 천산(天山)에 살면서 득도하
여 장생(長生)․치신(治身)․무병(無病)하였다"하고, 중앙아시아 칼막크인들의 전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중앙에 있는 큰 산의 높이는 그 아래에 있는 바다에서 8만리그(league)이고, 산의 뿌리는 물
속에 그 만큼 들어가 있는데, 큰 거북의 등위에 금으로 된 띠 위에 있다. 천산 주위에는 일곱겹의 둥근 산
맥이 있고, 산맥과 산맥 사이도 역시 바다이다. 천산에 가까운 것일수록 더 높은 이 산맥들의 높이는 제1
산맥이 4만리, 제2가 2만리, 제3이 1만리, 제4가 5천리, 제5가 2천 5백리, 제6이 1천 2백 5십리, 제7이 6백
25리, 산의 높이와 한가지로 산맥 사이의 거리도 일정하고, 산이 높을 수록 서로의 거리는 멀다. 각 산맥
사이의 물은 담수이지만 마지막 산맥은 둘레가 3백 6십만 7백 5십리인 소금물로 된 대양에 싸여 있고, 이
바다는 또 철(鐵)의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그 높이는 3백 12리 반이고, 제7 산맥으로부터의 거리는 32만
2천리이며, 세상의 끝이 되어 있다. 중앙의 천산은 꼭대기가 조금 끊어진 금자탑 모양으로 생기고, 밑 둘
레는 3천리, 꼭대기 둘레는 3리 반이다. 산의 남면은 청(靑), 서면은 적(赤), 북면은 금(金), 동면은 은(銀)
의 광채를 발산한다. 이러한 광채는 이 산을 덮은 금은주옥(金銀珠玉)의 광채이며, 각기 방향의 방위색이
되어 있다. 각 방위에는 소금물 바다 위에 하나씩의 땅이 있다.
여기에서 수미산과 천산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 중앙 아시아 칼마크인의 전설에 천산이 물(淡水) 밑으로 8만 리그(league) 뻗어있고, 물 위로
8만 리그 솟아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세계설에 나오는 수미산 역시 물(바다) 밑으로 8만 유순
뻗어있고, 물 위로 8만 유순 솟아있다고 했다. 곧 두개의 산의 높이가 물의 밑과 위로 8만 유순(리
그)이라 함이 동일하다.
? 칼마크인의 전설에 천산의 남면은 청(靑), 서면은 적(赤), 북면은 금(金), 동면은 은(銀)의 광채
를 발산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사보(四寶)로 이루어져 남면은 유리, 서면은 파리,
북면은 황금, 동면은 백은으로 이루어져 해와 달이 그 주의를 회전하면 보광을 발산한다고 했다. 곧
두개의 산이 모두 동서남북에서 금은주옥의 보광을 발산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주위를 7개의 산맥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그 주위를 7
개의 금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즉 7개의 산이라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주위를 둘러싼 7개의 산맥 사이에 7개의 바다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그 주위를 둘러싼 7개의 금산 사이에 7개의 바다가 있다고 했다. 곧 7개의 바다로 싸여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을 둘러싼 마지막 산맥 밖을 소금물 대양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
역시 마지막 금산 밖을 짠물바다가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천산과 수미산의 외곽이 모
두 소금물바다 곧 짠물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을 둘러싼 소금물 바다 밖을 철위산(鐵圍山)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
산 역시 짠물바다 밖을 철위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곧 천산과 수미산을 모두 철위산이 둘러싸
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 천산의 4방에는 소금물 바다 위에 하나씩의 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교의 수미산을 둘러
싼 짠물바다 위에도 4대주가 있다고 했다. 곧 두개의 산의 주위에 4대주(四大州)가 있다는 점이 동
일하다.
이상과 같이 천산과 수미산은 서로 동일하다. 이는 곧 천산이 수미산이고 수미산이 천산임을 의
미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신선도와 불교의 발상지가 동일함을 의미한다. 이것만을
보아도 불교는 신선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상해에서 간
행된 {산해경} 해내경 원본에도 여러 전거를 들면서 조선을 천독(天毒) 즉 천축(天竺)이라 하고, 불
도(佛道)가 그 나라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 론
이상 논한 본편의 소론을 요약 정리하면
1) 석가세존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고행성도한 단군족으로서 근본적으로 한국 사
람이다. 다시 말하면 석가세존은 인도 사람이 아니다.
2) 석가세존이 고행성도한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으로서 인도의 부다가야는 석가세존의 고행
성도지가 아니다.
3) 석가세존이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은 인도 중부의 사르나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이
다.
4) 대승경의 출처는 바다로서 우리나라 고조선이다.
5) 대승경의 범서는 인도의 문자도 언어도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글자와 언어이다.
6) 남인도에 우리나라의 고대 한글과 언어가 있다.
7) 신선도와 불교의 기본사상이 전적으로 일치되고, 의식도 유사하다. 그밖에 대승경에 있는 산명
과 지명이 인도에 없고, 우리나라에는 있다.
8) 불교의 수미산과 신선도의 천산이 동일하다.
이상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면 석가불교의 원류는 전적으로 상고시대 우리민족의 배달사상인 신선
도라 할 수 있다. 이를 대소승불교로 나누어 말하면, 소승불교는 신선도를 바탕으로 성립된 신선도
의 지류라 할 수 있고, 대승불교는 전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선도와 동일한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대승불교는 비록 외래종교라 하더라도 역수입된 고유종교라 할 수 있고,
불교인들은 실재에 있어서 외래종교 신자가 아니라 고유종교 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이란 백지에 글을 쓴 격이니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신심(信心)이 두터우면 두터울
수록 제 신앙만을 고집하고, 조국도 민족도 부모형제도 신앙 다음으로 친다. 냉정히 자신의 신심을
반성하여 보자. 석가모니는 따지고 보면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른 나라 사람
곧 인도 사람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인 석가모니를 절의 가장 중앙 대웅전에 안치하
여 조석으로 공양하면서도, 제 민족의 국조이시고 대성인이신 한인․한웅․한검을 모시고 있는 절
도 얼마 없거니와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대웅전 밖 어느 한쪽 모퉁이에 방치하고 있다. 이는 주인
을 내쫓고 손님을 안방에 안치한 격이며, 선배를 무시하고 후배를 높이는 격이 아닌가? 제 조상을
옆에 두고 남의 조상에게 의지하는 격이며, 제 부모를 박절하고 남의 부모에게 매달리는 격이 아닌
가? 그것이 과연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애국적인 행동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한국 사
람이 한국 땅에서 한국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살면서 외국을 동경하고 외국종교를 믿고 외국 사람
을 신봉하는 것이 과연 이치에 합당한 일인가? 그것이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요는 석가세존
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석가세존이 단군족의 후예라는 사실과 불교가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제 민족의 국조이시고 성인이신 한인․한웅․한검을 대웅전에 석
가세존과 함께 모시고 섬기라는 것이다.
깊이 자성하고 신심이 원시반본(原始返本)될 때, 비로소 외래종교 신자라는 허탈감에서 해방되어
참다운 신앙을 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참다운 신앙을 할 때, 자신과 가정에 기쁨과 행복이 오
고, 견성성불할 수 있으며, 국가적으로는 1천 2백만 애국동포를 얻는 것이 된다. 또한 그리 될 때,
불교계도 자연적으로 의식개혁을 하게 되어 부처님의 자비가 내리고 7천만이 하나가 될 수 있고,
아울러 국토통일만이 아니라 사상통일까지 이루게 되어 민족의 전도가 밝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교계의 각성과 공식적인 수용을 촉구한다.
제3편 유교의 기원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서 론
우리민족은 고려말엽 주자학을 수입한 이래 지나족의 사상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그러한지 수백
년이 되었다. 주자학은 지나의 송나라와 명나라에 걸쳐 정이천(程伊川)․정명도(程明道)․주희(朱熹)
에 의하여 성립된 학문으로 지금 생각하여 보면 지나족 중심의 배타적 독선적 이데올로기이다. 그
러한 학문을 근세조선 500년은 국시로 하여 정치․종교․교육의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의 대학인
성균관이나, 지금의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향교에 나가면 한국 사람으로서 지나족인 공자․안자․증
자․자사․맹자 등 5성(聖)과 공자의 제자 10철(哲) 및 72제자(弟子) 그리고 송나라의 6현(賢)에게
절을 하여야 했고, 지나의 역사인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지나의
종교서적이며 사상서인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
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워야 하였다. 사회적으로 관혼상제도 지나의 풍속을 따
라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조상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은 평양 구
월산의 한쪽 구석에 방치하여 한 왕조에 한번 정도 돌아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일체 가르치지 않았으며, 국가고시인 과거시험 과목에도 없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민족은 지
나의 삼대(夏․殷․周) 역사는 이를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한(고조선의 마한․진한․변한) 역사
는 전혀 모른다.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전혀
모른다. 또한 지나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줄줄 외우면서도 제 민족의 배달성전(삼화경)은 있는 줄
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치도 않는다. 그러한 것이 근세조선의 사회적 풍토였다.
좀 가혹한 표현을 쓰면 근세조선 500년은 지나의 사상적 식민지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
한 사회적 풍토가 오늘날은 다만 미국 중심의 서구로 바뀌었을 뿐 근세조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치적 사회적 풍토가 그러하므로 일반 서민이나 피교육자
들은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으니 바르게 알 수도 없는 문제가 아
닌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여 보고,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여 보라. 그러면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우리민족의 지손(支孫)이요,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도 신선도의 한 가닥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한자(漢字)도 우리민족
에 의해서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주역(周易)}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음양오행사상(陰陽
五行思想)을 비롯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가 우리민족에게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인(仁)사상은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이요, 오상오륜(五常五倫)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덕목이었다. 곧 유교의 원류가 우
리나라의 신선도로서 유교 자체가 곧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었다. 지나족의 이상세계이며 지나문화
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崑崙山)도 우리나라의 백두산이었다. 이러한 학설은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을 대강 밖에 모르는 골수 일부 유학자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 하여 무시할지 모
르나,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대다수 유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의 문제들을 하나씩 밝혀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이는 초보적인 연구로서 완성
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비판을 기다린다.
Ⅰ. 유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1.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곤륜산(崑崙山)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곤륜산은 어떤 山인가?
지나인들은 곤륜산을 지나문화의 발상지,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 지상선경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도 곤륜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위치가 신비속에 가려져 있다. 마치 불교에서 설산과 바다
가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 있었듯이 곤륜산도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산
을 지금부터 가려내 보기로 한다. 우선 곤륜산에 대한 기록들을 소개한다. {학원세계대백과사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곤륜산(崑崙山) ; 지나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성산(聖山), 곤륜산(昆侖山)․곤륜허(昆侖虛)라고도 한다. 곤
륜이라는 명칭은 혼돈과 관계가 깊으며, 원초적 카오스(혼돈)를 의미한다. 곤륜산의 위치는 지나인의 지리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서쪽으로 옮겨졌는데,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는 간쑤성(甘肅省) 주취
안(酒泉) 남방에 있는 산을 곤륜산이라 믿었다. {산해경}․{목천자전} 등에 기록이 보이며, 초기에는 천상
계에 사는 천제의 지상궁전(地上宮殿)이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후에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아 고
대 지나인의 이상세계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곤륜산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여 산 정상이 북극성을 향해
있으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3층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의 정상에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나무
를 비롯한 온갓 약초가 돋아나 예로부터 불사(不死)의 명약(名藥)을 구하기 위한 인간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으나, 산의 주위를 흐르는 강물의 방해로 아무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한다. 후한(後漢)시대 이
후에는 여신(女神)인 서왕모(西王母)가 여러 선녀들의 호위를 받으며 생활하는 지상낙원으로 알려졌는데
{목천자전}에는 서주(西周)의 목왕(穆王)이 이 산을 방문하여 서왕모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
다.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쿤륜산(崑崙山) ; 지나의 전설에 등장하는 산, 곤륜(昆侖)이라고도 쓴다. 멀리 서방에 있어 황허강(黃河)
이 이 산에서 발원한다고 믿고 있었다. 한늘에 닿을 만큼 높고 보옥(寶玉)이 나는 명산으로 전하여졌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신선설이 유행함에 따라 신선경으로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어 산중에 불사(不
死)의 물이 흐르고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느니 하는 신화들이 생겨났다. 지나의 쿠륜산
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희승 {국어대사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곤륜산(崑崙山) ; 지나의 전설에 나오는 산, 처음에는 한늘에 이르는 높은 산 또는 아름다운 옥이 나는
산으로 알려졌으나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가 살며, 불사(不死)의 물이 흐르는 신선경이라 믿어졌음.
요지(瑤池); 지나 곤륜산에 있는 못, 선인(仙人)이 살고 있다함. 주목왕(周穆王)이 서왕모를 만났다는 이
야기로 유명함.
{석가방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곤륜산이 비록 원산(遠山 ; 신비스러운 산)이라 하더라도 향산(香山)이니 설산(雪山) 중에 있고, 강하(江
河)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강하가 곤륜허(崑崙墟)에서 출원한다 하였고, {곽박도
찬(郭璞圖讚)}에도 이르기를 곤륜은 3층으로써 호(號)를 천주(天柱)라 하고 강하의 원천으로서 수지영부
(水之靈府)라 하였다.
곤륜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우선 이상의 기록에 근거하여 곤륜산의 특수요건을 인출하
여 정리한다.
1) 곤륜산의 정상에 아름다운 못(瑤池)이 있다.
2) 못의 3면이 비등한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못의 북쪽에 큰 못이 있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4) 곤륜산은 3층으로 되어있다.
5) 곤륜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6) 곤륜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7) 곤륜산은 아름다운 옥(玉)이 나는 곳이다.
8) 곤륜산에 서왕모(西王母)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이다.
곤륜산에 대한 요건이 이상 외에도 많으나 대체로 생략하고 위에 제시한 요건에 한정해서 곤륜산
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2) 곤륜산은 지나대륙에 없다
우선 지나대륙의 서쪽에 곤륜산맥이 있는데 거기에 곤륜산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위
에 제시한 요건을 갖춘 그러한 곤륜산이 곤륜산맥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지구상에는 같은 이름
을 가진 산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같은 산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곤륜산맥의 어느 산의 정상에도 하수의 원천이며 아름다운 못이 있다는 기록을 본바 없
고,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산상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있는 티
티카호(湖)와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카호(湖)라 하여 곤륜산맥의 어느 산의 정상에
도 큰 못(호수)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곤륜산맥에 곤륜산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함경도에 함경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함경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며, 인도 북부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히말라야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
다. 동아출판사의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에도 곤륜산은 지나의 곤륜산맥과는 아무런 상관이없다
고 하였다. 따라서 지나대륙에는 분명히 곤륜산이 없는 것이다.
3)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그러면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석가방지}에 곤륜산
이 곧 설산이라 했고, 설산이 백두산이라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백두산의
특수요건을 곤륜산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1) 곤륜산의 정상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 정상에 형형색색의 병풍석으로
둘러싸인 천지가 있다.
2) 곤륜산 정상의 못이 그 모형에 있어서 3면이 비등한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라 했다.
그런데 백두산의 정상에 있는 천지의 모형도 3면이 비등하고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써 못의 북쪽으로 큰 폭포가 흐르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그런
데 백두산도 하수의 원천으로써 백두산 정상의 천지에서 생수가 쏟아져 나와 항상 북쪽으로 넘쳐
폭포를 이루고, 4방으로 두만․압록․송화․소하의 4대하가 흐를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작은 강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수십 개가 흐른다.
4) 곤륜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도 3층으로 되어있고,
실제 답사하여 보거나 사진을 보아도 3층이다.
5) 곤륜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한웅․한검․자부선인 등 신선이 살았으
므로 백두산 일대를 신시 또는 신주라 한다.
6) 곤륜산에서 불사약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삼근영초(三根靈
草)인 산삼(山蔘)이 나고 이를 불사약이라 하였다.
7) 곤륜산에서 아름다운 옥이 난다고 했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7색보옥(七色
寶玉)의 부인(符印)이 생산되었다고 하였다.
8) 곤륜산에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백두산에도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일본열도
는 좌청룡, 지나대륙은 우백호에 해당되며,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대륙
은 외백호에 해당되고, 시베리아 대륙은 현무, 오세아니아주는 주작에 해당되어 백두산이 비교적 지
구의 중심에 있는데, 세계지리학회에서 위성사진을 근거로 백두산을 지구의 중심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이 곤륜산의 성립요건에 백두산의 특수성이 부합일치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백두산이 곤륜산이고, 곤륜산이 백두산임을 의미한다. 백두산 토착민들도 백두산을 곤륜
산이라 하였다.
들째, 곤륜산이 산의 조종이라면, 백두산도 곧 산의 조종임을 의미한다. 청(淸)나라의 제4대 강희
제(康熙帝)도 지나의 태산(泰山)은 물론 한국․지나․만주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뻗어나간 지맥임
을 밝히었다. 즉 백두산이 모든 산의 조종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세째, 지나문화와 유교가 곤륜산에서 기원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기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나의 문화와 사상은 우리민족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우리민족문화의 아류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지나의 학자들은 제 민족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
리민족의 문화와 사상을 말살하려 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우리학자들은 간파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자학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냉정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2. 유교의 창시자는 우리민족이다
지나문화의 개조(開祖)로서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든다. {주역} 계사하전(繫辭
下傳)을 보면 복희는 지나 지역을 최초로 다스린 사람으로서 어망(魚網)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고
기잡이하는 방법과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신농은 농사기구를 만들어 오곡을 재배하는 농
사법을 가르치고 백초를 시험하여 의약을 만들어 치료법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시장을 열어 교역
하는 상법(商法)을 시작하였다. 황제는 사방의 만이융적(蠻夷戎狄)을 정복하여 처음으로 한(漢)민
족을 통일하여 일통정치를 하고 국정이 안정되어 가면서 점차로 문화사업에 힘썼다. 주차(舟車)를
만들어 교통기관을 마련하고 화폐를 제정하여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궁시(弓矢)로 무기를 만들어 국
방을 굳게 하는 한편, 절구를 만들어 정미법을 가르쳤고 문자와 음악을 제정하여 새로운 정치를 하
였다. 다시 말하면 복희․신농․황제는 지나문화의 시원을 열어준 삼황(三皇)인 것이다.
이들 삼황 역시 모두 동이족이다. 주지하다시피 복희는 배달국 태우의한웅(太虞儀桓雄)의 막내아
들로서 동이족이다. 복희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부사년(傅斯年) 등 지나학자들도 인정한다. 신
농(神農)씨는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소전은 고시(高矢)씨의 방계(傍系) 후손이다. 고시씨는 농경
을 맡은 단군왕검의 직속 신하이다. 그러므로 신농씨 역시 동이족인 것이다. 오늘날 강(姜)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황제 헌원 역시 소전(少典)의 별파로서 동이족이다. 그래서 {초사;楚詞}에 "황제
는 백민태생(白民胎生)이고 원래 동이족이라"고 하였다.
삼황 다음 유학은 누구에 의해서 전승되었는가? {중용}을 보면 "중니(仲尼:孔子의 字)는 요순(堯
舜)의 도를 조술하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헌장으로 하였다"고 했다. 또한 유학의
계통을 당(唐)나라 시대의 한자(韓子)는 {맹자집주} 서설에서 "요(堯)임금은 인의(仁義)의 도(道)를
순(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은 이것을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에게 전하고, 우임금은 이것을 은
(殷)나라의 탕(湯)임금에게 전하고, 탕임금은 이것을 주(周)나라의 문(文)․무(武)․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무․주공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맹자)에게 전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를 보면 복희․신농․황제 다음, 지나문화와 유학은 요임금과 순임금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사기}에 의하면 요임금은 황제 헌원의 5세손으로 동이족이다. 요
임금이 동이족이란 것은 안호상과 최동 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전거를 들면서 주장한다. 또한,
{맹자}를 보면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임을 밝히면서 순임금도 동이족임
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사계의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유학을 집대성한 공자는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공자는 은(殷) 왕실과 송(宋) 왕실의 후손이다.
은왕실과 송왕실은 동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 역시 동이계이다.
이상과 같이 지나문화와 유학을 개창한 개조가 모두 동이족이다. 또한 지나문화의 발상지인 곤륜
산 역시 우리나라의 백두산이었다. 이를 생각하면 유교의 원류는 우리민족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
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3. 한자의 창제는 우리민족에서 비롯되었다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이는 한자가 지나족
에 의하여 창제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진 추정이다.
그러면 한자가 어느 민족에 의하여 먼저 창제되기 시작하였는가? 다시 말하면 한문의 사용문제
가 아니라 한자의 기원문제이다. 이는 마치 영어는 영국어이지만 영어를 표기하는 알파벳
(Alphabet)의 기원은 영국이 아니라 페니키아 문자 또는 그리스 문자에 있다고 하듯, 한문은 지나
어이지만 한문을 표기하는 문자 곧 한자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한자는 지나를 위시로 하여 한국․일본․동남아 등 아시아권 일원에서 거의 쓰여지고 있다. 그
제작도 동양 각국에서 이루어져 한자는 동방문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의 기원에 대한 기록
을 보면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의 지역에서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또 이어서 "부여인(扶餘人) 왕문(王文)은 처음에 전(篆)을 번거롭게 만들었으나
점점 그 획을 생략하여 새로이 부예(符隸 ; 예서의 서체)를 만들어 그것을 썼다. 진(秦) 때에 정막
(程邈)이 숙신(肅愼)에 봉사하여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었다. 또 그 획을 가지고 약
간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체(八分體)이다. 진(晉) 때에 왕차중(王次仲)이 또 해서(楷書)를 만들었는
데 차중은 왕문의 먼 후예이다. 지금 문자의 기원을 궁구하여 보면 다 신시의 유법이며 지금의 한
자 역시 그 지류를 이은 것이 분명하다"고 기록은 밝혀주고 있다.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
(嘉勒) 2년조를 보아도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 곧 한자(漢字)가 있었다 하고, 단군왕검
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울 때도 국호를 한자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는 단군왕검 시대에도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학계에서는 위의 기록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통설에 따라 한자의 유래를
따져보기로 한다. 한자의 창제설에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은(殷)나라의 한 때 도읍지였던 안양(安陽)에서 발견된 갑골문자가 한자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갑
골문자 발달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창힐(蒼?) 등 어느 개인이 한자를
창제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1) 갑골문(甲骨文)과 한자의 기원
갑골문(甲骨文)이란 점복에 상용되었던 문자로서 거북의 등딱지인 귀갑(龜甲)이나 소와 말의 어
깨뼈에 새긴 문자를 말한다. 그 문자는 1899년 왕의영(王懿榮)과 유악(劉?) 등에 의하여 발견된 후
많은 연구에 의하여 은(殷)나라의 것임이 밝혀졌고, 은나라는 B.C. 17세기경에서 B.C. 11세기 중
반까지 지나 황하유역에 존재하였던 나라이다.
그러면 은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은나라는 상(尙)나라라고도 한다. 상나라의 시조는 설(契)이
다. 설의 아버지는 제곡고신(帝嘗高辛)이다. 제곡고신의 할아버지는 소호금천(少昊金天)이다. 소
호금천은 황제 헌원의 맏아들이다. 황제 헌원은 동이족이다. 이래서 은민족은 우리민족과 같이 백
의를 입었고, 천신제를 지냈으며, 수골에 의하여 점을 치고, 순장제도(殉葬制度)였으며, 시조의 탄생
설이 난생설(卵生說)로서 은왕실과 은민족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즉 은민족은 우
리민족과 동일계의 민족이다. 그렇다면 갑골문 역시 동이족의 본거지인 동부지방에서 서쪽으로 전
승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장 이른 시기의 복골(卜骨)은 1962년에 서요하(西遼河) 상류 서랍목륜하, 지금
의 내몽고 파림좌기(巴林左旗) 부하구문(富河溝門) 유지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은 동이족의 분포지역
이었다. 이 유지에서 복골 이외에 "之"자형 빗살무늬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 방사선 측정결
과 기원전 3500-3000년으로 나왔다. 부하문구 유지출토의 최초의 복골은 사슴의 어깨뼈에 아무런
가공을 하지 않고 곧 바로 불로 지져 점을 친 흔적이 남아있다. 이와 같이 초기의 복골은 주로 발
해연안에서 발견되었다. 지나의 학자 호후선(胡厚宣)도 은허문자(殷墟文字)는 그 연원이 흑도문화
(黑陶文化)의 계승에서 온 것이라고 밝히고 은나라 사람들이 귀복(龜卜)을 숭상하는 습성은 동방의
수골(獸骨)에 점치는 방법이 점차 발달되어 간 것이라고 증명하였다(胡厚宣,{甲骨學商史論叢}初集,
pp.616-617). 더욱 중요한 것은 흑도표면에 쓰여진 글씨 가운데 "子" 혹은 "大"와 같은 형태가 갑골
에 있는 문자와 아주 근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데에 있다(陳夢家의 {殷墟卜辭綜述}, p.74.)
이와 같이 한자의 기원을 소급하여 보면 그 연원이 더 고대로 소급되고 동부족에 있다는 것은 주목
할만한 일이라고 류승국은 말한다. 따라서 한자의 기원은 이를 갑골문에 둔다 하여도 동이족에
있는 것이다.
2) 한자의 창제와 우리민족
한자의 창제설에 어느 개인을 두고 말할 때는 ?복희설 ?창힐설 ?주양설(朱襄說) ?저송(沮
誦)․창힐설(蒼?說) ?범(梵)․거려(?廬)․창힐설(蒼?說) 등이 있다. 이 다섯 가지 설을 비교하여
보면 가장 공통적인 학설이 창힐설이다. 그래서 창힐을 한자의 최초 창제자로 꼽는다.
그러면 창힐(蒼?;倉?)은 어느 시대 사람이며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
설이 있다.
? 창힐은 상고시대의 황제(黃帝)이다.
?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다.
이들 두 가지 설 가운데 어느 설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창힐이 황제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은 동이족이다. 또한 황제의 사관이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 역시
동이족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창힐과 고신(高辛) 역시 다 치우의 묘예
(苗裔)이다"하였는데 치우는 동이족이다. 그러므로 창힐은 어떻게 보든 동이족이다. 여기에서 한
자의 지나족 창제설은 두번째로 부정된다.
3) 한자의 상형과 우리민족의 민속
이상과 같이 한자의 기원이 동이족 곧 우리민족에 있었다면 한자의 제작원리인 한자의 상형(象
形) 역시 자연적인 현상 외에 우리민족의 생활과 그 습속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명지대
학교의 진태하(陳泰夏)교수는 한자의 형성과정에 우리민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를 제
시하여 국내 언어학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진태하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를 몇가지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가(家)'자는 집면(?)자 안에 '사람인(人)'자가 들어가 있어야 당연한데도 '돼지시(豕)'자가
들어가 있다. 그 이유는 집속에 돼지를 키웠던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가(家)자는 지
나 학자들도 그 이유를 해명할 수 없고, 뱀이나 해충을 피하기 위하여 집 안에 돼지를 키웠던 민족,
즉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글자라는 것이다.
둘째, '날일(日)'자는 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해는 둥글게 그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해 안에 까
마귀 그림이 들어있다. 수천년 전부터 해 가운데 금까마귀가 있다는 신화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
러니까 '날일(日)자'를 만든 민족은 그런 금까마귀 신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날일
(日)'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수만년 전부터 그러한 신화를 전하여 오는 민족은 한민족 밖에 없다. 그
러므로 '날일(日)'자 역시 우리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셋째, 지나에서는 종자를 나타낼 때 '씨(氏)'라고 쓰지 않고, '씨(氏)'는 그런 의미도 아니다. 오직
성씨만을 '씨(氏)'라고 한다. 그런데도 성씨를 나타낼 때 쓰는 '씨(氏)'자는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는 모습에서 출발하였다. 한족(漢族)이 이 말을 만들었다면 종자를 '씨(氏)'라고 표현하는 말
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우리말의 '씨(氏)'는 종자와 성씨 모두에 사용된다. '씨(氏)'자 역시 한
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진태하 교수는 이상과 같이 근거를 제시하면서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
의 글이라는 "옛한글 혹은 동방문자(東方文字)"라고 불러야 옳다고 하였다. 진교수는 "젊은 세대들
은 특히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여야 할 시점이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
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
이다"라고 강조한다.
4) 한자의 반절음(反切音)은 우리민족 중심이다
또한 한자는 자형(字形)․자음(字音)․자의(字義)의 3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자음을 표기하는 발음
부호를 반절음(反切音)이라 한다. 반절음은 한자(漢字)로써 한자의 자음(字音)을 표기한 일자일음
(一字一音)의 발음부호로써 한자를 창제한 민족의 발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반
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깝게 발음하는 민족이 한자의 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나족의 발음과 우리민족의 발음 가운데 어느 민족의 발음이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까운
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백두산(白頭山)을 예로 들면, 백(白)의 반절음은 박맥절(薄陌切)로서 원음이 '백'이다. 지나족의 발
음은 '바이(bai)'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백'이다. 두(頭)의 반절음은 도후절(徒侯切)로서 원음이 '두'
이다. 지나족의 발음은 '또우(tou)'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두'이다. 산(山)의 반절음은 사한절(師閒
切)로서 원음이 '산'이다. 지나족의 발음도 '산(shan)'이고, 우리민족의 발음도 '산'이다. 이와 같이 우
리민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일치하고, 지나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틀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한자는
원래 일자일음(一字一音)인데 지나족의 발음은 일자이음(一字二音)인 경우가 많다. 앞의 예에서 보
면 '백(白)'을 지나족은 '바이(bai)'로 발음한다. 다른 예를 보더라도 우리민족의 발음은 반절음에 거
의 가깝고, 지나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임승국은 한자 53,525자의 발음부호인
반음절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이계가 황하문명의 주인공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보아도 한자의 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
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자의 발생기원을 탐색하여 보면 그것은 동이사회에서 발원되었다. 그러나 {단군세
기}를 보면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 곧 한자가 있었으나 10가(家) 고을의 말이 대부분 통
하지 아니하고, 100리의 국가가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하여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
게 명령하여서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우리민족은 한자의 난해성
으로 인하여 한자를 먼저 창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대에 이미 그 사용을 포기하였다고 할 수 있
다. 이에 반하여 지나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에 걸쳐 한자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글자 수가 늘어
나면서 한자(漢字)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한자가 마치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공자의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Ⅱ. 유교사상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1. {주역}은 신선도의 경전이다
{주역}은 유교의 기본경전으로서 8괘(八卦)와 64괘(六十四卦) 그리고 이를 설명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8괘는 천지만물이 회통하는 이치 곧 천지인삼재지리
(天地人三才之理)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는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기본원리로 하
여 만들어진 것이고, 64괘는 8괘를 더욱 발전시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괘사는 괘의 총체적 뜻을 설명한 것이고, 효사는 육효(六爻)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1) 역(易)은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역(易)에는 환역(桓易)과 희역(羲易) 그리고 금역(今易)이 있다. 희역은
복희의 역을 의미한다. 또 {대변경;大辯經}을 인용하여 기록하기를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를
지냈으며 신룡(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卦圖)를 그렸다고 하였다. 또한 "환역(桓易)은 우사(雨
師)의 관에서 나왔다. 복희가 우사가 되어 육축(六畜)을 기르더니 신룡(神龍)이 날마다 12색으로 변
하는 것을 보고 환역을 지었다"고 하였다. 이는 복희가 괘도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백일
사} 신시본기를 보면, 복희가 어느날 꿈에 "삼신(三神)이 몸에 강령하여 만리를 통철하게 되고 인하
여 삼신산에 가서 한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하(天河;지금의 송화강)에서 괘도를 얻었는데 삼절(三絶;
┏陰爻) 삼연(三連;?陽爻)하여 위치를 바꾸면서 그 이치를 궁구하면 묘하게도 삼극(三極)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고 하였다. 즉 괘도를 복희가 천하에서 얻었다고 하였다. 이는 복희가
괘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전승되고 있던 것을 복희가 얻었다는 것이다. 그
런데 {삼성기전} 상편을 보면, "환국을 이어서 한웅씨가 일어나 약을 복용하고 신선이 되어 괘
(卦)를 그리어 미래를 알고 괘상을 잡아 신통력을 부렸다"고 하여 한웅천황에게서 역(易)이 비롯되
고 있다. 신시본기에도 황제중경 오행치수법의 근본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이
라 하여 {주역}의 근본원리인 음양오행사상이 신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
{한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기원되고 복희에 와서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의 저작에 대하여 학설이 각각이다. 일반적인 학설을 소개하면
제1설로는 8괘와 64괘를 모두 복희씨가 저작하였다는 위(魏)의 왕필설(王弼說)이 있고,
제2설로는 8괘는 복희씨가 저작하고, 64괘와 괘효사(卦爻辭)는 문왕이 저작하였다는 사마천설(司
馬遷說)이 있다.
여기에서 제2설이 통설로 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복희씨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8괘 창안에 대
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복희씨는 동이족이며 좁게는 우리민족이다. 우리민족은 3국시대 이후만하여도
931회의 외침을 당하였다고 한다. 외침을 당할 때마다 사료가 소실되었고 멸실되었다. 여기에서 우
리민족에게는 사료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사료가 없으니 상고시대의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료가 없다거나 전설적인 인물이라 하여 복희씨의 64괘 창제설을 부정함은
모순인 것이다. 더욱이 위에서 밝혔듯이 복희씨에 의하여 괘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 외에 한웅천황
에 의하여 그려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롯되고 복희씨에 의하여 8
괘와 64괘가 그려지고 괘사까지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
역(易)은 날일(日)자와 달월(月)자의 회의문자인 바꿀역(易)자이다. 곧 역이란 해와 달이 바뀌고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을 보면 "역은 천지(天地)에 준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하였고, 계사상전 제2장에는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의 지극한
이치를 표현한 것이라"하였다. 또한 "그런 까닭에 역의 이치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한늘과 땅
두 현상을 낳고, 한늘과 땅은 태양․태음․소양․소음의 4상을 낳고, 그런 까닭에 법의 현상은 한
늘과 땅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을 지적하면,
첫째, 신선도의 일기(一氣)와 {주역}의 태극은 같은 뜻을 지닌다.
둘째, 신선도와 주역은 모두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발생원리로 한다.
셋째, 신선도와 {주역}의 숭배의 대상이 모두 하나님이다.
넷째, 신선도와 주역이 모두 순환론이다.
이와 같이 {주역}과 신선도의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여기에 괘(卦)가 한웅천황과 복희에 의하여
기원되었다는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주역}은 원래 동이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
다.
2.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란 첫째, 오행(五行). 둘째, 경용오사(敬用五事). 셋째, 농용팔정(農用八政). 넷
째, 협용오기(協用五紀). 다섯째, 건용황극(建用皇極). 여섯째, 예용삼덕(乂用三德). 일곱째, 명용계의
(明用稽疑). 여덟째, 염용서징(念用庶徵). 아홉째, 향용오복 위용육극(嚮用五福 威用六極)이다. 이
를 부연한 것이 유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홍범구주는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단군세기}를 보면 단군왕검 갑술 67년(B.C. 2276) 제(帝)가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虞)의 사공
(司空 ; 禹임금)과 도산(塗山)에서 만나게 하여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하였다 하고, {태백
일사} 신시본기에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인 황제중경지서(黃帝中經之書) 가 태자 부루(扶婁)
에게서 나와서 우(虞)의 사공(우임금)에게 전하여지고 후에 다시 주왕(紂王)에게 기자(箕子)가 진술
한 것이 홍범(洪範)이 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五行治水)의 설(說)인 즉
대개 그 학문의 근원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遺法)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지
나에 전승된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신시(神市)에서 연원되었다는 것이다.
신채호 역시 여러 전거를 들면서 말하기를 {상서:尙書}에 "홍범(洪範)은 하우씨(夏禹氏)가 전하는
바라"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에 "하우씨가 치수(治水)할 때에 현토사자(玄?使者)로부터 중경
(中經)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 "단군 태자 부루(扶婁)가 하우(夏禹)씨를 도산(塗山)에서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세 가지 사실을 고찰하여 볼 때, 기자(箕子)의 홍범(洪範)은 곧 부루의 중
경(中經)을 강술한 것이라 하였다. 또한 이 때에 지나(支那)에 일대 재난인 홍수(洪水)가 있었음
은 각종의 고사(古史)가 다 같이 증명하는 바, 대개 단군왕검이 지나의 수재를 구하여 주려 하여 자
(子) 부루로서 창수사자를 배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를 보고, 삼신오제(三神五帝)의 일부가 되는 오
행설을 전하고 치수의 방법을 가르친 고로, 우가 이미 왕이 됨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敎義)를 믿어 이를 지나 안에 전포한 것이며, 정전(井田)과 율도량형(律度量衡)도 또한 지나의
창작이 아니요 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라 하였다. 신채호는 홍범구주는 물론 삼신오제교인 신
선도와 정전법 그리고 율도량형까지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하여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
울러 {한서(漢書)}에 거북이가 문자를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오므로 우(禹)가 홍범을 연(演)하였다
하나, 그것은 망증(妄證)이라 하였다.
3. 인사상(仁思想)은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인(仁)자는 사람인(人)변에 두이(二)자로서 천․지․인(天地人)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그래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고, 유학의 핵심사상을 이루어 사서(四書)의 하나인 {논
어}에만도 인(仁)에 대한 말씀이 무려 50여회나 나타난다. 그러면 인사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고 어디의 무엇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첫째, 고대에 있어서 어질인(仁)자는 사람인(人)자를 의미하고, 사람인(人)자는 오랑캐이(夷)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었다. 즉 인(仁)은 동이족을 의미하였다.
논어․맹자․중용 등의 사서(四書)를 보면 인(仁)자는 인(人)자와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논어}에
殷有三仁焉(은나라에 세 사람이 있었다)
宰我問曰仁者雖告之曰井有仁焉 其從之也(재아가 묻기를 어진 사람은 가령 사람이 우물에 빠졌다
고 누가 말하면 따라가서 건져 주어야 합니까)
위 예문의 주(註)와 해석을 보면 "유삼인(有三仁)"은 "유삼인(有三人)"의 뜻으로, "유인(有仁)"은
"유인(有人)의 뜻으로 썼다. {중용}과 {맹자}의 예를 들면,
仁者 人也(仁이란 人이다).
仁也者 人也(仁이라 함은 人이다).
이와 같이 어질인(仁)자와 사람인(人)자는 동의어로 쓰는 경우가 있다.
또한 갑골문(甲骨文)에 "정이방(征夷方)"이라 할 것을 "정인방(正人方)"이라 표기하였다. 즉 이
(夷)를 인(人)으로 표기하였다. 금문(金文)에도 동이(東夷)나 회이(淮夷)를 동인(東人)․회인(淮人)으
로 기록하였다. 다시 말하면 동이(東夷)의 칭호는 후기에 와서 된 것이고, 본래는 동이족을 인족(人
族)으로 표기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랑캐이(夷)자는 사람인(人)자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사
람인(人)자는 어질인(仁)자와 같은 의미를 지니어 어질인(仁)․사람인(人)․오랑캐이(夷)는 같은 의
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지나의 학자 노간(勞幹)도 말하기를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
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
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차용(借用)하여 전인류의 명사로 쓰인 것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인(人)자와 어질인(仁)
자는 동이족에서 나온 동이족을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설문}에도 어질인(仁)자는 오랑캐이(夷)자의
고자(古字)라 하였다.
둘째,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東方曰夷 夷者?也 言仁而好生 萬物?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
子 不死之國焉(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夷)란 근본이다. 말을 어질게 하고 인생을 즐기며, 만물이
땅에 근본하여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여 이치로써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군
자들이 사는 불사지국에 이르렀다)"하여 동이족의 천성이 근본적으로 어질고 군자임을 말하고
있다. {신이경;神異經} 동황경(東荒經)에도 "東方有人焉 恒恭坐而不相犯 相譽而不相毁 見人有患 投
死救之 名曰善(동방 사람들은 어떠한가 항상 공손히 앉아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서로 칭찬은 하되
서로 헐뜯지 않고 남의 환란을 보면 몸을 던져 죽어도 구제하니 이를 일컬어 선(善)이라 한다)".
이는 곧 인사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나 고서 {이아;爾雅}에 "九夷在東 東至日所出爲太平 太平
之人仁 地氣使之然也(구이는 동방에 사는데 동방은 해돋이 땅으로 태평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
은 어질다. 땅의 정기가 그러한 때문이다)"하여 땅의 정기로 인하여 동이족은 원래 어질다는 것
이다. 따라서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셋째, 인(仁)은 도․불․유(道․佛․儒) 삼교의 근원사상이다.
{최문창후전집} "지증화상비명병서"에 의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방위에 따
라 나누니 동방(動方, 동방(動方)은 만물이 생동하는 방위란 뜻으로 東方을 의미함)에 짝한 바가 인
(仁)이다. 인은 도․불․유(道․佛․儒) 삼교(三敎)를 일으켰으니 정역에 드러낸 이름이 불(佛)이다.
인심(仁心)이 곧 불(佛)이며, 불목(佛目)은 능인(能仁)의 법도니라"하였다. 즉 인(仁)은 동방사상
인데 인사상에서 도․불․유 삼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부에서 상설하였다.
4. 제례의 기원은 우리민족에 있다
지나의 유교에 상제(上帝)와 조상신을 모시는 제례풍속이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이것 역시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 의히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제 그 유래를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서경} 우서를 보면 순(舜)임금이 제위(帝位)에 오르자 상제(上帝)와 육종(六宗)과 명산대천(名山
大川)에 두루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학원세계대백과사전}에도 "요(堯)․순(舜) 시대에 천신
(天神)․지기(地祇)․오악(五嶽)․사독(四瀆)을 제사한 지나인들의 모습이 서경(書經)․사기(史記)에
나타난다 하고, 이 무렵에는 윤리 및 도덕관념의 중시에 따른 조상숭배의식이 싹터 조상신(祖上神)
에 대한 제례는 하(夏)․은(殷) 나라를 지나 주(周) 나라에 이르자 거의 완성된다" 하고 있다. 즉
지나족의 제례풍속의 기원은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에 있음을 중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
례풍속은 한인의 환국시대부터 비롯되고 있다. 또한 신선도 역시 그 시원은 한인의 환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이를 생각하면 지나족의 제례풍속 역시 신선도에 기원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지나족으
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음력 10월에 제천하던 것이 만세의
풍속이 되니, 그것이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순
이 제위에 올랐을 때 상제께 제사를 올리고 육종(六宗)에 제사를 지내며 차례로 산천제신(山川諸神)
에게 두루 제사하니 이는 일찍이 순(舜) 이전에는 없던 일로 이 역시 동방에서 제천보본하는 의식
과 산악하천(山嶽河川)이나 해양소택(海洋沼澤)에 봉명하는 사상에 근원한 것이다"라고 하여 10
월의 소도제천의식에서 제사풍속이 연원되었고, 지나의 제례풍속도 이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
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도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하는 서물
(庶物)의 원의(原義)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禮樂)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
니고 무엇이리요"하여 모든 예의법속이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족
의 제례풍속 역시 우리나라에서 지나족 사회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Ⅲ. 오륜(五倫)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다
역사를 회고하여 보면 우리민족은 원래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심오한 사상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러나 영토는 지나족에게 뺏겨 한반도만이 남아 있고, 사상은 외래의 유교․불교․도교 등에 뺏
겨 무속만이 남아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
友有信)의 오륜사상도 지나의 유교에 뺏겨 지나족에 의하여 창안된 외래사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그러한 인식을 떨쳐버리고 오륜사상이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임을
논증하려 한다. 그러한 논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오륜사상이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다는 종래의 관념이 부정되어야 하며.
둘째, 오륜사상이 동이족에서, 좁게는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 시대에 발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야 하고.
셋째,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륜사상이 오늘날 공맹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하에서 순서대로 하나씩 밝혀나가기로 한다.
1. 오륜은 지나족의 창작이 아니다.
{동몽선습}에 의하면 "한늘과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것
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
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시니 사람으로서
오상(五常)을 알지 못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이 먼데 있지 않으니라" 하였다.
또 {맹자} 등문공장구(상)에 의하면 "사람의 도리에 있어서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기 쉽나니 성인(聖人)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
우유신이 그것이다"하였다. 이를 보면 오륜사상의 유래는 고대의 성인(聖人)과 설(契)로 올라간
다.
그러면 그 성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지나에서 성인이라면 공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는 설
(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설 보다 약 1천 8백여년 뒤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 될 수 없다. 더욱이 공자는 {논어}
에서 "옛 것을 믿고 좋아해서 밝히기는 하였으나 창작한 바는 없다"고 하였다. 이는 공자께서 스
스로 오륜을 창제한 바 없다고 고백한 말과 같은 의미이다. {중용}을 보아도 공자께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사상을 조술하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밝혔다고 하였을뿐 지었다거나
창작하였다는 내용이 어디에도 없다. 이는 제3자인 {중용}의 저자도 공자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공자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오륜사상이 공자에 의해서
창작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부정되어야 한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누구인가? 공자께서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밝혔다고 했으므로
그들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인가? 문왕과 무왕도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천여년이나 후
대의 인물이라는 것은 사계의 학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
인이라 할 수 없다. 공자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을 조술했다고 했다. 그러면 이들이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인가? 그렇다. 그들이 바로 설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
은 요임금 아니면 순임금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경} 요전(堯典)이나 {논어} 요왈편(堯曰
篇) 등 기타 요임금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어디에도 요임금이 설(契)과 더불어 오륜을 가르쳤다는 기
록이 없다. 따라서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이라 할 수 없고, 순임금이라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서경}을 보면 거기에 {맹자}의 기록과 일치되는 대목이 있다. 즉 "임금(舜임금)이 말하기를
설(契)이여! 백성들이 화친하지 않으며 오품(五品)을 따르지 않고 있소. 그대를 사도(司徒)에 임명하
니 오교(五敎)의 가르침을 삼가 펴서 너그럽게 하기 바라오" 하였고, 그 주(註)에 오품(五品)이란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다섯을 가리키는 위계적 등급이라
하였다. 오교(五敎)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
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임이 당연한 이치라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순임금이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표(8)과 같이 {맹자}의 기록을 {서경}의 기록에
대입시킬 경우 서로 일치되기 때문이다. 즉 {맹자}에 성인이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오
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고, {서경}에는 순임금이 설(契)을 사도(司徒)에 임명하여 오교(五敎)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였으므로 {맹자}의 성인은 곧 순임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
다. 순임금과 설(契)은 지나족이 아니다. 따라서 오륜(五倫)사상은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이 아
니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도표(8) 맹자와 서경의 기록 비교
맹자의 기록
聖 人
설(契)
司 徒
五 倫
서경의 기록
舜임금
설(契)
司 徒
五 敎
2. 오륜의 발상지는 배달국이다.
순임금과 설(契)이 지나족이 아니라면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규명하여 보자. {맹
자}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에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낳고, 부하(負夏)로 옮겼다가 명조(鳴條)
에서 운명하였으니 동이인(東夷人)이라 하고, 그 주(註)에 제풍․부하․명조는 모두 지명일 뿐더러
동이족이 다스리던 곳이라 하였다. 즉 {맹자}에는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
이지방이라는 증거를 들면서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또한 {단기고사}에 의하면 순임금은 단군왕검의 중신인 고시(高矢)의 형 고
수(高未)의 아들이다. 이는 오륜사상이 단군조선에서 지나족 사회로 전승되었음을 말한다. 그뿐
만 아니라 단재 신채호 역시 그의 저서 {조선상고문화사}에서 순임금은 고조선의 간부(干部) 즉 산
동반도인(山東半島人)이라 하였다. 이는 산동반도가 상고시대 단군조선의 영토이고 순임금이 단
군조선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류승국도 순임금이 운명하였다는 명조(鳴條)가 동이지방임을
역사과학적으로 고증하고 순임금이 동이족이라고 한 {맹자}의 기록에 대해서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
다. 그리고 안호상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지나의 고서를 전거로 들면서 설(契) 역시 동이족
임을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거나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지나족에게 처음으로 오륜사상을 보급한 순임금과
설(契)이 동이족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동이족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국내고서인 {단기고사}에 의해도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그 이전 배달국에 이미 있었다. 즉
{단기고사} 제1세 단제 왕검편에 단군왕검께서 수두교를 창설하시고, 중신(重臣)인 신우(神佑)에게
명하여 백성에게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오륜의 성립이 단군조선 시대
에 있었고 신선도(수두교)와 함께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신선도는 단군왕검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한웅천황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므로 오륜의 성립은 한웅조인 배달
국 시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태백일사} 마한세가(상)에 유중유일(惟中惟一)의 도(道)는 아
비가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고,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노소(老少)는 마땅히 차례가 있고, 벗은 마땅히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서에도 오륜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 보아도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더욱이 신선도가 유교사상까지 포용하
고 있으며, 지나의 {일주서(逸周書)}에도 "유가(儒家)는 바로 정동방(正東方)의 동방문화라"고 까지
하였으니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오륜은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에서 성립된 우리 민족의 고유덕목이라면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
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삼륜(三倫)이 삼신(三神)사상에서, 오계(五戒)가 오제(五帝)사상에서 발원되
었다면 오륜은 오행(五行)사상에서 발원되어야 한다. 비유컨대, 부자관계(父子關係)는 친자관계
(親子關係)로서 유전인자와 혈액형이 서로 같거나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닌다. 그와 같이 오륜도 오
행과 불가분적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오륜과 오행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첫째, 오행이란 만유의 존재현상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로 동정
변화하면서 돌아가는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륜(五倫)의 륜(倫)은 사람인(人)자와 둥글륜
(侖)자의 회의문자로서 오륜은 인간관계가 부자(父子)․부부(夫婦)․붕우(朋友)․군신(君臣)․장유
(長幼)로 돌아가는 예법을 의미한다. 즉 오행이 자연법칙이라면, 오륜은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둘째, 오행은 지전(地轉)에서 생기고, 지전은 태양과 지구의 인력에서 생긴다. 즉, 오행은 태양과
지구의 쌍무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오륜의 부자유친은 부자자효(父慈子孝)로, 군신유의는 군인신
충(君仁臣忠)으로, 부부유별은 부화부순(夫和婦順)으로, 장유유서는 장혜유순(長惠幼順)으로, 붕우유
신은 상교이신(相交以信)으로 풀이 된다. 즉 오륜 역시 상부상조하는 쌍무관계이다. 이와 같은 공통
점으로만 보아도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에서 오행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오행과 오륜과의 연관성을 밝힌다. 이해의 편의상 일반적인 순
서를 바꿔 설명한다.
① 토(土) : 토는 흙이다. 흙은 농토로 쓰면 농토가 되고, 운동장으로 쓰면 운동장이 되며, 집을
지으면 집터가 될 뿐, 흙 자체로서는 반항이나 저항을 아니한다. 겨울이 되면 습토가 되고 여름이
되면 초토가 되며 가을이나 봄이 되면 신선한 흙이 되어 때와 장소에 순응할 뿐이다. 그뿐인가? 모
든 생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흙은 생명의 보금자리이며 생활의 근본이다. 흙
의 이러한 성격으로 토(土)는 방위로 말하면 동․서․남․북의 중앙으로서 사방(四方)에 모두 관련
을 지니는가 하면, 계절로 말해도 장하(長夏)로서 사계(四季)의 중앙이다. 인간관계로 말하면 부자․
부부․붕우․군신․장유는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로 하는 덕목이 토
에 해당한다. 그러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상(五常) 중 신(信)이며, 오륜 중 붕우유신(朋友有
信)의 신(信)이다. 신은 진실(眞實)․불기(不欺)․무망(無妄)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은 토를 상징한
다.
② 목(木) : 목은 물질로 볼 때 나무를 뜻한다. 나무는 습도와 온도 등 적절한 조건에 해당되는
시기가 되면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뻗어나간다. 이는 하나의 출발이다. 이를 계절로 보면 그것은
봄(春)이며, 방위로 보면 해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동방이다. 사업으로 말하면 시작이다. 인생으로 말
하면 그것은 유년기에 해당되는데, 어린 자녀를 교육시키고 양육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덕목이 무
엇인가? 그것은 사랑(仁)과 친절(親)이다. 사랑과 친절은 오상(仁․義․禮․智․信) 중 인(仁)이며,
오륜 중 부자유친의 친(親)이다. 그래서 인(仁)과 친(親)은 오행(五行) 중 목(木)에 해당된다.
③ 화(火) : 화는 목(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불이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는 계절로 말
하면 여름(夏)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남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번성기이며 성장위주
의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한창 뻗어나가는 청년기로서 그 감정으로 볼 때는 가장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시기이며, 태도로 볼 때는 의기양양하고 투쟁적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예절(禮節)이며, 남녀(男女) 간에는
분별(分別)이다. 이는 오상(五常) 중 예(禮)이며, 오륜(五倫) 중 부부유별 또는 남녀유별의 별(別)이
다. 이래서 예(禮)와 별(別)은 화(火)에 해당된다.
④ 금(金) : 금은 쇠붙이로서 단단하면서도 빛난다. 그래서 금은 완성으로 접어든 단계를 상징한
다. 화(火)가 양적 성장기라면 금은 질적 성숙기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가을(秋)에 해
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서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성장위주에서 공익사업으로 전환하는 시
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40~50대의 장년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
여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어떠한 상량
적 계산이나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지와 투철한 가치관 그리고 인도주의 정신
이 요청된다. 그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의로움(義)이다. 의로움은 오상 중 의(義)이
며 오륜중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의(義)이다. 이래서 의(義)는 오행 중 금에 해당된다.
⑤ 수(水) : 수는 물이다. 물은 생물의 생장과 발육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북방에서 찬바람
과 함께 몰아닥치는 찬이슬과 눈보라는 생물을 말라 죽게 한다. 그런 때가 되면 웬만한 동물은 땅
속에서 잠을 자게 되고, 씨앗이나 뿌리도 땅속에서 잠을 자며, 내년을 기다린다. 이는 계절로 볼 때
겨울(冬)이며 방위로는 북방에 해당된다. 즉 외형적으로는 소멸하였지만 내적으로는 다음 단계를 위
하여 응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인생으로 볼 때,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거친 노년기에 해당
된다. 노년기는 지나온 사회적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정리하여 후예를 양성하고 사회에 은혜를 베
풀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를
정리(序)하면서 지혜(智)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오상(五常) 중 지(智)이며, 오륜(五倫) 중 장유유서
의 서(序)이다. 이래서 지(智)와 서(序)는 수(水)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오륜의 기본사상이 모두 신선도의 오행사상과 일치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륜이
지나족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거나 창제되었다는 기록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족에게 오륜사상을 전
한 순임금과 설(契)이 모두 동이족이었고, 단군조선 사회에도 오륜사상이 있었다. 따라서 오륜이 오
늘날 공맹유교의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그 성립연원이 단군왕검 시대 또는 그 이전 한웅천황 시대
로 볼 수 있고, 오륜사상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나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유교가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集大成)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복희(伏羲)․
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임금․순(舜)임금으로 소급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동이족이다.
3)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데 한자의
창제기원 역시 동이족에 있었다.
4) 지나의 고대문화는 음양오행사상을 비롯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데 음양오행사상과 홍범구주는 단군조선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유교의 기본경전은 {주역}이다. {주역}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주역}은 동
이족에 의해서 비로소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6) 유교의 기본사상은 인(仁)사상이다. 그런데 인은 원래 동이족과 그 성격 및 그 사상을 의미한
다.
7) 유교의 기본덕목이 오륜인데,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었다.
8) 기타 사상에 있어서 숭배의 대상․우주관․발생원리․제례의식․종교적 목적이 신선도와 동일
하였다.
9) 유교사상을 지나족이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지나의 유교는 비록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되었고 체계화되었
다 하더라도 그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그 유파라 아니할 수 없고, 이제 유교는 발상지인
조국으로 되돌아온 격이라 할 수 있다. 곧 유교는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송(宋)나라와 명(明)나라에 걸쳐 정이천(程伊川)․정명도(程明道)․주희(朱熹)에 의하여
지나족 중심의 주자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러한 사상을 고려말엽에 수입한 이래, 외래종교 신자인 주자학
자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고, 근세조선은 5백년 동안 외래사상인 주자학을 국시로 하여 정치․종교
․교육의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의 대학에 해당되는 성균관이나, 지금의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향교
에 나가면 한국 사람으로서 지나족인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오성(五聖)과 공자의 제자
십철(十哲) 및 72제자 그리고 송나라의 육현(六賢)에게 절을 해야 했고, 지나의 역사인 사기(史記)․
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지나의 종교서적이며 사상서인 논어․맹자․대학․중
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워
야 하였다. 사회적으로 관혼상제도 지나의 풍속을 따라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조상인 한
인․한웅․한검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은 평양 구월산의 한쪽 구석에 방치하여 한 왕조에 한번
돌아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일체 가르치지 않았으며, 국가고시인 과거시
험 과목에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과목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근세조선 때의 우리민족은
지나의 삼대(夏․殷․周)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한(고조선의 마한․진한․변한)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신
오제(三神五帝)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또한 지나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이를 줄줄 외우면서도
제 민족의 배달성전(삼화경)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치도 않았다. 그러
한 것이 근세조선의 사회적 풍토였다. 좀 가혹한 표현을 쓰면 근세조선 500년은 지나의 사상적 식
민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외래종교 신자인 주자학자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고 양반이며,
고유의 민족신앙을 지키는 서민들은 노예였고 하인이었다. 그래서 서민을 노예처럼 하인처럼 혹사
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차에 걸쳐 민란이 일어났고, 드디어는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외
세가 개입하면서 나라마저 송두리채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근세조선 때의 지나풍 대신 오늘날은 미국 중심의 서구풍으로 바뀌
었고, 주자학 대신 서양종교로 바뀌었을 뿐 근세조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유교도와 더불어 반성하여야 할 문제점을 몇가지 꼬집고자 한다. 지금의
우리사회와 비교해 보기 바란다.
첫째, {주역}을 해설한 계사상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 이론과 이를 계승한 정주학의 이존기비(理
尊氣卑) 이론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이냐의 문제, 그러한 이론을 국가에 적용시켜 다른 나라인 지
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국(中國)․중화(中華)라 받들고, 제 나라를 스스로 소국(小國)․
자국(子國)․이적(夷狄)․소중화(小中華)라 천시하여 민족적 주체의식을 파괴하였던 행위, 또한 이존
기비이론을 자기민족에 적용시켜 관존민비(官尊民卑)․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만들어내어 서민
을 천민으로, 나약한 여성을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하여 혹사하고 착취를 예사로 하였던 행위가 과
연 옳았던 일인가?
둘째, 우리민족은 지나족이 아니다. 지나족과 다른 역사와 사상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나
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기 전에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런
데 근세조선 시대에는 지나족의 주자학을 국시로 함으로써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쳤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하찮은 것으로 묵살되었다. 그러
한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겠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성균관이나 향교에
서 제 민족의 사상서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가르치고 있는가? 주자학이 이 나라에 전래
된 것이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 민족을 위해서 전래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교의 사서오경과
더불어 제 민족의 성전도 함께 가르쳐야 옳은 일이 아닌가?
셋째, 주자학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는 누구의 땅에 누구를 위하여 세워졌는가? 한국땅에 한
민족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누구를 모시고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지나족인 공자와 맹자 등 5성과 10철과 72제자와 송나라 6현을 모시고 거기에 한민족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자와 맹자는 한인․한웅․한검에 비유하면 까마득한 후배이며 손님이다. 그런
데 주인과 선배를 물리치고 후배인 손님이 선배처럼 또 주인처럼 대우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
이 과연 공자와 맹자가 바라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이는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참
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종교의식 아래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나오겠
는가?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애국애족심은 나오겠는가? 예컨대,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
니에게 절을 하도록 가르치면서 제 할아버지와 제 할머니를 돌아보지 않는 손자가 있다면 그러한
자식에게서 어떻게 효도를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공자와 맹자와 더불어 제 민족의 한인․한웅․한
검도 함께 섬기라는 것이다. 전체 민족이 깊이 반성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4편 도교의 기원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서 론
{삼국사기}를 보면 지나의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한무외(韓無畏)의
{해동전도록}에는 지나의 전진교(全眞敎)에서 우리나라의 최치원 선생에게 전승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지나의 도교는 신선사상이며, 지나는 우리나라와 인접하여 있다. 지나문화의 시조
인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이었고, 이들은 우리민족의 시조인 한인과 한웅보다 후대의 인물들이었
다. 그리고 지나에서 언제 누가 신선사상을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
로부터 약 6000년 전 한웅천황이 삼신산(三神山)인 백두산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를 설파했다는 전거가 있고 근거가 있다. 이를 생각하면 지나 도교의 원류는 당연히 우리민
족의 신선도라 추정할 수 있고, 지나에서 도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함은 역수입된 것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교가 지나에서 발원되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뿐만 아니
라 본 문제는 도교가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이래 처음 제기되는 문제이며, 전체 민족의 대다수가 외
래종교 신자이다. 외래종교 신자는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거나 박약하다. 곧 도교신자는 지나를 정신
적 고향, 신앙의 성지, 아버지 나라라고 믿는다.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그 다음으로 친다.
그럼으로써 좀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나의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
(漢武帝)가 지상선경이라 동경하던 삼신산(三神山)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의 문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신선도의 경전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는가의 문제를 하나씩 밝혀 나가기로 한다.
끝으로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을 밝힌다.
Ⅰ. 도교인(道敎人)의 이상향인 삼신산(三神山)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도교인의 이상향은 삼신산이다
지나의 도교인들이 지상선경이라 동경하였던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그 어의로 말
하면 삼신산이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니고, 삼신을 상징하는 산을 의미하고, 세 개의 신산(神山) 곧
세 개의 선산(仙山)을 의미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삼신산이란 어떤 산인가?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를 보면 "제(齊)의 위왕(威
王)과 연(燕)의 소왕(昭王) 때부터 사람들에게 바다에 들어가서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
를 찾게 하였으니, 이는 삼신산(三神山)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발해(渤海) 가운데에 있는데 사람
이 간다하여도 멀지 아니하다 일찍이 거기에 갔던 사람도 있는데 여러 신선과 불사약이 있고, 물
건과 금수가 모두 희(白)며,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하고, 또 진시황 28년에 "제인 서불
(齊人 徐?) 등이 글을 올려서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으니, 그 이름은 봉래․방장․영주
인데 선인이 살고 있다. 재계하여 동남(童男) 동여(童女)와 더불어 이를 구하고자 청하니, 동남 동녀
수천인을 뽑고 서불을 보내어 바다에 들어가 선인을 찾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무제(漢武
帝)도 역시 그러하여 그가 처음 임금이 되자 귀신에 대한 제사를 더욱 공손히 올리는 동시에 이소
군(李少君)․황추(黃錘)․사관(史寬)․공손경(公孫卿) 등 여러 방사들이 삼신산인 봉래산에 있는 안
기생(安期生) 선인과 잘 통한다 해서 한무제(漢武帝)는 이들을 발해의 삼신산에 보내, 죽지 않는 약
을 구하고 안기생으로부터 신선술을 배우고 또 봉래산의 신선을 데려오게 하였다"고 하였다. 이
를 보면 삼신산은 과연 지상선경이라 할만 하다. 그러면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우선
이상의 기록에 따라 삼신산의 성립요건을 인출한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 삼신산은 발해 곧 바다에 있다.
셋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넷째, 삼신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는 모두 희다.
일곱째, 삼신산에는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
이상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면 그 산이 곧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신선사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산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2.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삼신산은 발해에 있다고 하였다. 발해는 고대 우리나라이다. 그러므로 삼신산은 우선 우리나라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백두산에서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베풀었으므로 백두산이 우선 삼신산이 아
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먼저 백두산에 대한 호칭의 유래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이는 시
대와 국가에 따라 각각 다르다. 지나의 옛 지리책 {산해경}에 의하면 백두산의 최초 이름은 불함산
(不咸山)이다. 지나의 북위(北魏) 때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 북위로부터 남북조까지는 도태산(徒太
山), 당나라 때에는 태백산(太白山), 금나라 이후부터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불렀다. 그밖에도 백
두산에 대한 호칭을 안호상은 구월산(九月山)․궁홀산(弓忽山)․금미달(今彌達)․단단대령(單單大
嶺)․도산(塗山)․단산(丹山)․백산(白山)․백악산(白岳山)․백아강(白牙岡)․신산(神山)․삼신산(三
神山)․삼성산(三聖山)․삼위산(三危山)․천산(天山)․풍산(風山)․환산(丸山) 등 무려 54개나 들고
있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에 대한 호칭이 다양함을 이해하고 그 특수성이 삼신산과 일치하는 지
를 알아보기로 한다. {부도지}를 보면 불함산(백두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 대여산(瀛洲 垈輿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
것을 해삼(海蔘)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대개 인삼은 그 수격(數格)
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 난 것은 반드시 장생(長生)하니 40세(歲)를 1기(期)로 휴면(休眠)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符都)의 지역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不死藥)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符都)의 지역에서 나는 것은 모두 영효(靈效)있으므로 시에 온 사람
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7색보옥(七
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해(天惠)였다.
{역대소사;歷代小史}에는 장백산(백두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백산은 냉산(冷山) 남쪽 10여리에 있는데 대체로 백의관음이 있는 곳이다. 그 산속의 금수와 초목은
모두 희다. 사람들은 감히 이 산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 곳을 더럽힐까 두려워하여서이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태백산(백두산)에 대한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웅천황이 한인의 뜻에 따라 풍백․우사․운사와 그밖에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백두산) 정상
신단수 밑에 하강하여 곡식과 생명과 질병과 형벌과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주관해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시를 베풀고, 한웅천황의 아들 단군왕검이 태어나 조선국을 건국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위의 기록을 토대로 삼신산의 성립요건에 백두산(불함산․태백산․장백산)의 특수요건을 대입하
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신산은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그런데 백두산도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
닌다.
삼신이란 천일․지일․인일 또는 한인․한웅․한검을 의미하는데, 본서 제1부에서 천일․지일․
인일의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하여 신선도가 백두산에서 베풀어졌음을 밝혔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웅천황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풍백․우사․운사 등 신관과 3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백두산정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신시를 베풀었고, 한웅의 아들 한검(단군왕검)
이 조선국을 세운 곳이다. 이래서 백두산은 삼신과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을
보더라도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삼신산은 봉래․방장․영주의 총칭이다. 그런데 백두산에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
다.
{부도지}에 '불함삼역(不咸三域)'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함은 백두산을 의미하며, '삼역(三域)'은 그
주(註)에 의하면 봉래․방장․영주이다. 즉 백두산 내에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
시본기에도 백두산을 논하는 대목에서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라는 묵정밭 곧 천왕이 내려온 곳이
며, 방장은 사방이 일장(一丈)인 각(閣) 즉 소도(蘇塗)가 있는 곳이며, 영주는 못이 섬을 둘러싼 모
양 즉 천지(天池)가 나오는 곳이며, 이들을 말하여 삼신산이라 한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에 봉
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신산이란 봉래․방장․영주를 의미하고,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하는 문제
이다. 인간의 신체에 상단전(上丹田)․중단전(中丹田)․하단전(下丹田)이 있다. 그와 같이 땅에도 상
단전․중단전․하단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상단전, 한반도와 만주대륙과 지나대륙은
중단전, 각 지방은 하단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은 중단전
에 있는 삼신산이라 할 수 있고, 각 지방에도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있을 수 있다. 따라
서 금강산․지리산․한라산도 이들 하나 하나는 선산(仙山)이지만 이를 총칭해서 말하면 삼신산인
것이다.
셋째, 삼신산은 바다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바다는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실제의 짠물바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종교의 발상
지, 종교의 요람, 선인주처(仙人住處),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하고, 그곳은 과거의 우리나라 고조
선을 지칭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2부 제1편 제5장에서 상설하였다.
넷째, 삼신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신선이 살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백산(백두산)은 한웅천황이 풍백․우사․운사 등 선인(仙人)을 거느리고
내려온 곳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도 "백두거악은 대황중(大荒中)에 튼튼히 자리잡았으니 배달
천국의 진산이요, 신인의 오르내림은 실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즉 백두산에는 한
웅․한검․자부선인․발귀리 등 선인이 살던 곳이다. 그러므로 백두산은 선인의 고장이다.
다섯째, 삼신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라 했는데, 백두산에서 불사약이 새산되었다.
{부도지}에 의하면 불함산(백두산)의 영주 대여산 자삭방에서 인삼이 나는데, 이는 4삭(2080년)을
경과하여야 꽃을 피는 삼근영초로서 이를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한다고 하였다. 실제에 있어서도 백
두산에는 산삼씨만 따먹고 사는 인삼조(人蔘鳥)가 있을 정도로 백두산은 산삼의 고장으로서 산
삼을 백두산 삼보(三寶) 중의 하나로 친다.
여섯째, 삼신산의 초목과 금수는 희다고 했다. 그런데 백두산의 초목과 금수도 희다.
{역대소사}에 의하면 백두산(태백산)의 초목과 금수가 모두 희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 밑에는
백양목이 많고, 흰사슴․흰돼지․흰매들이 지금에도 서식하고 있다.실재 백두산을 등반하여 보
아도 백두산 북쪽의 나무들은 거의 백양목이고 소나무 중에 백송(白松)도 있다. 가을이 되어 산상에
서 북쪽의 산밑을 내려다보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을 흐르는 강물 이름을 이도백하
(二道白河)․두도백하(頭道白河) 등 백하(白河)라 부른다.
일곱째, 삼신산에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었다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과장된 나머지 비합리적이고 실제 있을 수 없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한다.
이상 외에 백두산이 삼신산임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적하면 본서 제1부 제4장에서 밝힌 바와 같
이 백두산이 3층으로 되어 있다는 점, 삼강일지(三江一池)라는 점, 천지의 좌우에는 금선(金線)․옥
장(玉漿)․은류(隱流) 등 세 개의 샘이 있다는 점, 천지의 동북쪽에 인만(麟巒)․봉만(鳳巒)․벽라
(碧螺) 등 세 개의 산이 있다는 점 등 거의가 3수로 된 점이 삼신산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은 삼신산의 특수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삼신사
상을 반영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백두산에서 천일․지일․인일 삼신일체의 천도에 의하여 신
선도가 설해졌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삼신산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태백일사} 신신본기에도
"옛날의 삼신산은 곧 태백산인데 지금의 백두산이다"라고 하였다. 그밖에도 백두산에 대한 기록
이라면 거의 백두산이 곧 삼신산임을 밝히고 있다. 이래서 삼신산이 백두산임에 틀림없는 것이
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Ⅱ. 우리민족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선도서(神仙道書)가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이다. {도서전집;道書全集}․{음부경;
陰符經}․{삼황옥결;三皇玉訣}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황제가 치우를 다스리기 어려워 친히 대산(大山)에 이르니 이 산의 이름은 천단(天壇)이라. 제일동천(第
一洞天) 옥청원시지궁(玉淸元始之宮)에 올라 석동(石洞)에 들어가다가 석갑(石匣) 속을 살펴보니 한 권의
경서가 있는데, 제목이 '원시천존혼원삼황옥결음부경(元始天尊混元三皇玉訣陰符經)'이라 쓰여 있었다. 모두
천상의 전서(篆書)로 쓰여졌고 삼백여자가 세권으로 나뉘어졌는데,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이었다(이래서 이를 삼황내문이라 한다). 상권에는 신선과 우주론에 대한 것이 담겨 있
고, 중권에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이 담겨 있으며, 하권에는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과 천지(天地)․
음양(陰陽)․만물의 조화원리가 담겨 있으니, 치국(治國)․제가(齊家)․지신(持身)․불사(不死)의 도(道)는
모두 이 경에서 나온 것이다. 공동산(空同山)에 가서 고성선생(高聖先生) 광성자(廣成子)를 찾아뵙고 가르
침을 바랬더니, 광성자는 황제를 데리고 천진황인(天眞皇人)께 가 뵙고, 이 음부경(陰符經)의 천황(天皇)․
지황(地皇)․인황(人皇)․음양조화(陰陽調和)․치국(治國)․치가(治家)․지신(持身)․장생(長生)․불사(不死
)의 술을 배우고, 다시 한늘에 오르려면 어떻게 수도하는가를 배웠다.
위의 내용을 보면 황제가 신선도서(神仙道書)인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대산(大山)의 천단(天壇)에
서 받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 대산은 큰산․한산(桓山)․일산(一
山)과 그 뜻이 통한다. 그런데 안호상은 한산(桓山)은 '밝은 산'으로서 곧 '밝산(白山)'이요, 일산(一
山)은 한산이요 또 제일산과 머리산으로서 밝산 곧 한밝산이라 하였다. 한밝산은 백두산이다. 또 이
산이 있는 곳이 청주(靑州)라 하였은 즉, 이 청주는 청구(靑邱)요 창주(倉州)요 창해(倉海)로서 우리
배달나라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황제가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가져간 대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의 출처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 추정된다는 것이다.
서기 4세기 경 지나의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내편에 "옛적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갔다"하고, {태백일사}에도 이르기를 "삼황내문을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황제 헌원(黃帝 軒轅)에
게 주어서 마음을 밝히고 의(義)로 돌아가게 하였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三淸宮)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의 양지(陽地)에 있다. 헌후(헌원)가 친히 치우(蚩尤)를 조현(朝見)하
려고 가는 길에 명화(名華)가 있어 승문(承聞)한 것이다. 경전은 신시(神市)의 녹도(鹿圖)로서 그것
을 기록하였다. 나누어 삼편(三篇)이 되었다. 후인(後人)이 추연(推演)하고 가주(加註)하여 별도로
신선음부지설(神仙陰符之說)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보면 지나인의 기록인 {포박자}의 기
록과 우리민족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이 서로 일치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하등의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구(靑邱)는 어디를 가리키고, 풍산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이며, 자부선
생은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구는 지금의 만주 요령지방으로서 고대에 있어
서 우리나라의 지역이었다. 풍산(風山)은 발산→밝산→백산(白山)으로서 한밝산 곧 백두산이라고 안
호상은 말한다. 자부선생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발귀리(發貴理)의 후예이며, 발
귀리는 백두산 신시시대(神市時代)의 선인이다. 이렇게 볼 때, 황제가 삼황내문을 가져갔다는 대
산과 풍산은 백두산이라 단정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제에 의하여 신선도서인 삼황
내문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를 황로교(黃老敎)라 하는 이유도 여기
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신선도서로서 {주역(周易)} 등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
서 제2부 제2편에서 밝혔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Ⅲ. 도교의 시조는 동이족이다
1. 광성자(廣成子)와 동이족
황제가 공동산에서 도를 물었다는 광성자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광성자를 가공인물 또는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광성자를 실존인물이라 할 경우, 그는 지나 도교의 창시자는 아
니라 하더라도 시조라 할 수 있고, 지나의 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실재인물이라 할 경우, 광성자는 지나족인가 아니면 동이족인가의 문제이다. 위의 기록에
는 광성자가 어느 민족인지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광성자가 수도하였다는 공동산이
큰 근거가 된다. 즉 공동산이 지나지역에 있는가, 아니면 동이지역에 있는가에 따라 광성자의 민족
적 소속을 달리 추정할 수 있다.
이능화는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진자앙(陳子昻)의 시(詩)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공동산(空同山)이 계구(?丘)에 있다 하였는데, 계구가 역시 청구에 있고 요동에 가까웁다. 요동은
예로부터 선적(仙跡)이 많은 곳이다" 라고 하였다. 즉 광성자가 수도하던 공동산이 요동에 가까
운 곳, 청구에 있다는 것이다. 청구는 우리민족의 고토이다. 그러면 공동산은 고대 우리민족의 지역
내에 있는 산으로서 광성자는 당연히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라 추정할 수 있다. 지나의 신화에 나오
는 반고를 비롯해서 지나문화를 개척한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족인데 광성자만이 지나족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광성자는 지나족이라 절대 볼 수 없고, 동이족이라 강력히 추정된다. 광성자가 동이
족이라 할 경우 지나 도교의 시원은 당연히 동이족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근세조선 시대에 쓴 조여적의 {청학집}에 의하
면 "한인진인(桓因眞人)은 명유(明由)에게서 수업하였고, 명유는 광성자에게서 수업하였는데 광성자
는 상고의 선인(仙人)이다"하여 광성자는 한인보다 지위도 높고 선대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앞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가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 하였고, 황제는 치우에게 조현하였다 하였으
므로 광성자는 황제나 치우보다 선배라 하더라도 이들 세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다. 치우는 배달
국의 제14세 자오지천황으로서 한웅보다 1000여년 이후의 인물이며, 한인보다 4300여년 이후의 인
물이다. 따라서 광성자가 한인보다 선배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생각하면
{청학집}의 기록은 지나를 상국으로 받드는 근세조선 시대의 기록으로서 그 시대의 영향에 의하여
쓰여진 곡필이라 할 수 밖에 없고, 진실성이 결여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노자(老子)와 동이족
도교에 있어서 황제와 노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신선도서인 삼황내문을 직
접 지나로 수입한 인물이고, 노자(老子)는 {도덕경}을 저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
느 민족에 속하는가? 황제는 동이족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밝혔다. 문제는 노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노자는 주(周)왕실 수장실(守藏室)의 주사직(柱史職)을 지냈다.
그리고 노자 이후의 세계(世系)는 지나에 있어도, 노자 이전의 세계는 지나에 없다. 또한 노자(老子)
를 노담(老聃) 또는 이이(李耳)라 하는데 성씨가 노(老)인지 아니면 이(李)인지, 아니면 그밖에 다른
성씨인지 하는 문제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태백일사}에 의하면 노자 이이(李耳)는 그의 성(姓)이 한(韓)씨요, 동이족이다. 즉 "계미
(B.C.518)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
이의 아버지는 그 성(姓)이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
(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
록을 보면 노자의 성은 원래 한(韓)씨로서 동이족이며, '이이(李耳)'의 '이(李)'는 '목(木)의 자(子)' 즉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고, 노자(老子)는 늙은 학자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지나 도교의 원류는 우리
나라의 신선도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Ⅳ. 도교와 신선도의 동일성
지나 도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라면 그 기본사상이나 숭배의 대상 및 전문용어 등에 있어
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여야 한다. 이하에서 그 유사성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기본사상의 동일성
첫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하나님(옥황상제)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신선도는 천일(한늘님)․지일(한울님)․인일(한얼님)의 삼신일체인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
다. 도교 역시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 즉 천보군(天寶君)․신보군(神寶君)
․영보군(靈寶君)의 삼존신일체(三尊神一體)인 옥황상제(원시천존)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옥황상
제(玉皇上帝)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는 신선도의 삼신하나님과 그대로 일치한다. 부전자승격
(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신선도와 도교는 다 같이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신선도에서는 {천부경}에 "하나에서 비롯하나 하나의 비롯은 없으니, 하나를 나누면 셋이 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하여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도교에서도 {도덕경} 제42장에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하여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근본원인을 도(道)와 하나(一)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도 제39장에는 "한늘은 하나(一)를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여지며, 신(神)은 하
나를 얻어서 영묘하여지며,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가득차게 되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태어나게
되며, 임금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린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하여 도교는 도(道)와 마찬가지로 하나(一)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이와 같이 신선도와 도교는
'하나'를 만유의 본원으로 본다.
셋째, 신선도와 도교는 다 같이 만물동근 내지 만물일체사상이다.
신선도에서는 만유의 근본을 '하나'로 보는가 하면, '하나'는 한알→하날의 전음으로서 그 원의는
숫자적 의미의 '하나' 외에 한늘의 영기(생명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태백일사}에 "하나의 기(一
氣)가 능히 움직여 조․교․치(造․敎․治)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하여 만유의 근본을 일기
(一氣)로 본다. 즉 만유의 근본이 "하나 즉 기(氣)"로서 신선도는 만물동근사상이다. 또한 신선도는
천일․지일․인일의 일체사상으로서 만물일체사상이다.
도교의 경전인 {장자}에도 "사람의 생(生)은 기(氣)의 모임이니, 기가 모이면 생(生)이 되고, 흩어
지면 사(死)가 된다. 이와 같이 생사는 같은 무리이니 내 또한 괴로워할 것이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니라"하여 만유의 근본을 기로 보고 만유를 평등하게 보고 있다.
넷째, 신선도와 도교는 다 같이 순환론이다.
{천부경}에 "만가지가 가고 만가지가 돌아온다(萬往萬來)"하였고, {참전계경} 제91사(조)에 "순환
이라 함은 형상있는 한늘의 윤회이니, 형상있는 한늘은 윤회에 일정한 도수가 있어서 조금도 어김
이 없느니라"하여 순환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제95사에는 "무극이라 함은 돌아서 처음으로 되
돌아오는 원기이니 만약에 잠시라도 그침이 있으면 천리가 멸하느니라. 사람이 신의를 기름도 저
무극의 원기와 같으니 털끝만치라도 그침이 용납되면 인도(人道)는 폐하느니라"하여 사람의 도
리에도 순환론이 적용됨을 말하고 있다. 즉 신선도는 순환론이다.
{도덕경} 제25장을 보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도(道)라 이름지었고, 억지로 그
것을 대(大)라 부르기로 하였다. 대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간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멀리 극
도에 이른다.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하였고, 제16장에도 "마음을 극도로 허하
게 하고 독실히 고요함을 지키면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고 그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
물이란 번성하고 번성하면 제 각기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순환
론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본서 제1부에서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원리에서 음양오행사상이 발원됨을 밝혔다. 또한 제
2부 제2편에서 음양오행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음을 밝혔다. 그런데 도교는 불로장수
를 목적으로 함으로써 연단술(煉丹術)과 양생술(養生術)을 닦게 되고, 연단술과 양생술에서는 음양
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한다. 이와 같이 도교 역시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 역시
부전자승격(父傳子承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도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이에 대하여 신선도를 모르는 유교학자들은
도교가 유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고, 도교학자들은 유교가 도교사상을 수용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신선도와 유교, 신선도와 도교는 부자관계격(父子關係格)이며, 유교와 도교는 동복
형제격(同腹兄弟格)으로 서로 같은 사상을 동시에 지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교와 유교는 신선도의
음양오행사상을 지니게 된다.
여섯째, 신선도와 도교는 모두 조화사상이다.
신선도는 삼극일체(三極一體) 사상으로서 개전일체(個全一體)․선악일체(善惡一體)․유무불이(有
無不二)의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부에서 상설하였다.
도교 역시 {도덕경} 제37장을 보면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한 말이
도의 양극일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제41장에서는 "도에 밝은 것
은 어두운 듯이 보이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듯이 보이며,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듯이
보이고, 훌륭한 덕은 속된 듯이 보인다. 크게 결백한 것은 욕된 듯이 보이고, 광대한 덕은 부족한
듯이 보이며, 튼튼한 덕은 간사한 듯이 보인다. 바탕이 참된 것은 더렵혀진 듯이 보이고, 크게 모난
것은 모퉁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하고, 제45장에서도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고, 크게
교묘한 것은 졸열한 듯이 보이고,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듯이 보인다"고하여 도교
역시 양극일체 내지 조화사상이다.
2. 전문용어의 동일성
신선도와 도교는 그 전문용어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하다. 신선도에서는 삼수(三數)가 가장 기본수
여서 삼수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 예컨대, 삼일신고(三一神誥)․삼화경(三化經)․삼극일체(三極一體)
․삼신일체(三神一體)․삼교일체(三敎一體)․삼륜(三倫)․삼진(三眞)․삼방(三房)․삼관(三關)․삼문(
三門)․삼도(三途)․삼강(三綱)․삼덕(三德)․천부삼인(天符三印)․삼천도(三千徒) 등이다.
도교에도 삼수로 된 용어가 많다. 이는 부전자승(父傳子承)하는 격이다. 예컨대, 삼존신(三尊神)․
삼황(三皇)․삼황내문(三皇內文)․삼원(三元)․삼계(三界)․삼청(三淸)․삼기(三氣)․삼군(三君)․삼
통(三洞)․삼태성(三台星)․삼천공(三千功)․삼화(三華)․삼목(三木)․삼요(三要) 등 삼수로 된 전문
용어가 많다.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우리나라에는 한웅천황이 신선도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2) 지나사회에는 지나족이 도교를 창설했다는 기록이 없다.
3) 지나의 도교인들의 이상향인 삼신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4) 우리나라의 신선도서인 {주역}과 {삼황내문}이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지나 도교의 시조인 광성자는 동이족이라 추정되었고, 황제와 노자는 동이족이었다.
6) 도교와 신선도는 그 기본사상에 있어서 서로 동일하였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지나의 도교는 비록 지나족에 의하여 종교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
상적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이며, 그 유파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도교는 외래종교가
아니라 역수입된 고유종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도교 신자는 외래종교 신자가 아니라 고유종교 신자라는 것이다. 이 점을 깊이
반성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곧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종교를 신앙한다면 한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한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도교가 지나에
서 발생한 외래종교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 처음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 그래서
그 도관이 한국땅에 한국사람의 재력과 노력에 의해 세워졌다. 그 소유권과 운영권이 지나족에 있
는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에 있다. 따라서 한국도교는 한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한민족의 주체
의식을 확립하고 강화하는데 적극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에 누구를 모시어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도교가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면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을 모시고 절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도교의 도관(道觀)에 자연신인 옥황상제(玉皇上帝)와 문창제군(文昌帝君)과 북두진군(北斗眞君)
외에 태상노군(太上老君)에 도덕경을 저술한 주(周)나라의 노자(老子는 실은 한국 사람이라 하더라
도 이를 믿지 않는한 지나족인 것이다), 무재신(武財神)에 촉한(蜀漢)의 무장 관우(武將 關羽), 문재
신(文財神)에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충신 비간(比干), 오현재신(五顯財神)에 은나라 주왕의 신하
조현단(趙玄壇)을 중심으로 한 다섯 신하, 당나라의 선인(仙人) 여조(呂祖), 복건성(福建省) 보전현
(?田縣) 임씨(林氏)의 딸 마조(復祖), 곤륜산(崑崙山)의 서왕모(西王母), 지나의 오악(五岳) 중의 하
나인 태산(泰山)을 신격화시킨 동악대제(東岳大帝) 등 지나의 민족신들에게 한국사람이 절을 하고
공양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유컨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면서 제 할아버지와 할머
니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만을 모시고 섬기는 격이 아닌가? 그러한
종교의식으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확립되고 강화될 수 있겠는가? 윤리도덕은 건전할 수 있겠
는가?
또한 한국도교의 도관에 나가면 무엇을 가르치는가?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과 아울러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도 가르치는가? 아니면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는가? 곧 한국의 도관에 나가
면 한국사람에게 한민족의 경전에 대해서는 일절 가르치지 않고, 도덕경․남화경․황정경․참동계
등 지나족의 도장경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곧 교육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교육대상과
불일치되고 있다. 비유컨대, 고가(高價)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 약이 병의 증상이나 원인과
맞지 않는 격이다. 곧 잘못된 처방과 투약으로 병을 치유하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도교의 신앙과 교육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 곧 주인은 손님이 되고, 손님
은 주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나도교의 신앙과 교육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첫째, 지나를 신앙의 조국 또는 성지로, 지나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 우러르고, 제
나라와 제 민족을 그 다음으로 보게 되며, 나아가서 무시하게 된다는 것.
둘째, 그럼으로써 민족적 긍지와 주체의식이 해이되고, 애국심과 애족심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
셋째, 애국심과 애족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윤리도덕을 가르쳐도 그 공효(功效)가 없게 된다는 것.
넷째, 사회는 결국 타락되고 이기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
다섯째, 궁극에 가서는 국가와 민족보다도 나 개인의 신앙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됨으로써 국
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면, 고구려는 그 말엽 도교가 극성하게 되었을 때, 도교국가인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받
게 되었다. 그러나 도교신자인 고구려 백성들은 거기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는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나라에게 망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신앙에 빠지면 이기주의자가 되어
국가와 민족보다도 일신의 영화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한국도교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거울
삼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제5편 동학은 신선도의 재현이다
Ⅰ. 문제의 제기
동학은 근세조선 말엽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 서기 1824-1864년) 선생에 의하여 설해졌다. 그
때는 외래의 도․불․유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천수백년이 지난 이후이며, 기독교(가톨릭)가 전래
되어 근 백년이 경과한 이후이다. 그리고 현재도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하여 설해진 도․
불․유 三敎一體의 신선도가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반 학계에서는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더욱이 한웅천황이라면 신화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그럼으로써 동학에 내포되고 있는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동양의 전통적 외래사상의 수용 또는 종합 내지 재구성이라고 주장
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선진적 요소까지 수용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
다. 그것이 오늘날 사계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동학발생의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동학은 신화적 허구로 버림받고 있는 배달국 시대의 한
웅천황에 의하여 설파된 신선도에 바탕을 두고, 신라(新羅) 말엽의 대문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
遠) 선생을 거쳐 그 25세손인 수운 최제우 선생에게 전수된다. 그래서 신선도와 동학은 다 같이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인 天道를 발생학적 본원으로 하고, 도․불․유 三敎一體를 기본사상
으로 하며, 그밖에도 지기론(至氣論)․순환론․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일체사상․민주주의사상 그리
고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나, 포교의 목적을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내지 홍익인간 광명이세에 두는 것 등 모든 사상이 동일하다. 따라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배달사상인 신선도의 전승이었다. 이러한 문
제를 새롭게 밝혀 잃어버린 고유사상을 재발굴하고 재정립하는 데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
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동학이 동양의 전통적 외래의 도․불․유 삼교사상을 수용하여 종합 내
지 재구성하였다는 일반적 견해에 대한 반론인 것이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첫째, 동학이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임을 밝히고.
둘째, 동학이 신선도를 전승하였다는 전거의 문제.
셋째, 신선도와 동학이 그 발생원리와 사상에 있어서 서로 동일함을 밝힌다. 그밖의 문제는 논외
로 한다.
그러나 본고의 내용은 새로운 시도로써 거기에 대한 자료도 희귀할 뿐만 아니라 그밖에 보완하여
야 할 점이 많을 것으로 본다. 널리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Ⅱ.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
본고에서 문제삼고 있는 동학사상이다. 동학사상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서기 1860년(단기 4193)
경신 4월 5일 득도(得道)함에서 드러난다. 그 사상은 도․불․유의 삼교일체 사상이다. 송월당(松
月堂)이라는 노승(老僧)과의 문답내용을 보면 최제우 선생은 도․불․유를 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
하고, 비유하면 두 팔 가운데 어느 팔을 좋아하고 어느 팔을 싫어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천도는 없는 곳이 없고, 없는 곳이 없으므로 전체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
였다. 즉 동학사상은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제우 선생께서
그 제자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초명은 崔慶翔)을 향하여 말하되 "우리 도(道)는 원래 유(儒)도 아
니고 불(佛)도 아니며 선(仙 ; 道敎의 고전적 표현)도 아니니라. 그러나 우리 도(道)는 유․불․선
합일이니라. 천도(天道)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의 일부분이니라. 유의 윤리와
불의 각성(覺性)과 선(仙)의 양기(養氣)는 인성(人性)의 자연한 품부(稟賦)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
이니, 우리 도(道)는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은 자니라. 후에 도(道)를 쓰는 자는 이를 오해하지
말도록 지도하라"하시었다. 즉 동학의 도․불․유 삼교사상은 인성의 자연한 품부를 수련하는
사상으로서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따로 따로 전래되어 종합되거나 재구성될 수 없는 사상이란 것
이다. 원래부터 동학은 도․불․유의 삼교일체 사상이란 것이다.
그래서 동학경전에 천령(天靈)․천주(天主)․폁?님(목판본)․하날님(동경대전 원본)․하늘님(수운
교 경전)․한울님(천도교 {동경대전} 근세판)․천명(天命)․천리(天理)․천도(天道)․천덕(天德)․천
성(天性)․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천도에 관한 용어와 사상이 나오고,
신선(神仙)․선풍도골(仙風道骨)․선약(仙藥)․불사약(不死藥)․불로불사(不老不死)․무위이화(無爲
而化)․지상선경(地上仙境)이니 하는 도교적인 용어와 사상, 부처․팔도불전(八道佛前)․산신불공(山
神佛供)․윤회(輪廻)․연화(蓮花)․삼십삼천(三十三天)․도솔천(兜率天)이니 하는 불교적인 용어와
사상, 그리고 상제(上帝)․도성덕립(道成德立)․삼강오륜(三綱五倫)․성인군자(聖人君子)․충효열사
(忠孝烈士)․효자효부(孝子孝婦)하는 유교적인 용어와 사상이 나온다. 그밖에도 중국의 삼황오제(三
皇五帝)․요(堯)임금과 순(舜)임금․공자(孔子)와 맹자(孟子)․제갈량(諸葛亮)․주렴계(周濂溪) 그리
고 주역(周易)․대학(大學)․중용(中庸) 등이 거론된다. 그것은 학자들이 하나의 연구물을 발표할 때
기성의 연구물을 원용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동학경전을 보면 거기에 최제우 선생이 도․불․유 삼교일체의 사상을 창설하였다는 말도
없고,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수용하였다는 말도 없다. 오히려 "유교는 명절(名節)에 구
애되어 아직 현묘의 역(域)에 이르지 못하였고, 불교는 적멸(寂滅)로 들어가 윤상(倫常)을 절(絶)하
였으며, 선교(도교)는 자연에만 유적(悠適)하여 치평(治平)의 술(術)을 결(缺)하였다"하고, 이 세
상은 요순(堯舜)의 정치로도 족(足)히 건지지 못할 것이요, 공․맹(孔․孟)의 도덕으로도 또한 다스
리지 못하리라 하는가 하면, 유도(儒道)․불도(佛道) 누천년(累千年)에 운(運)이 또한 다하였도다
하여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혹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계의 일부 학자들은 동학의 도․불․유 사상을 동양의 전통적 도․불․유
사상을 수용하였다느니 종합하였다느니 재구성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을 안
믿으려는 것으로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발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고, 어느
종교의 신자가 다른 종교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제부모를 헐뜻
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실로 무례하기 그지없고 선인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다. 이것
이 오늘날 한국의 학자가 한국사상을 대하는 태도요, 우리사회의 학문하는 풍토이다.
Ⅲ. 동학의 신선도 전승
1. 백두산 정상의 용왕담(龍王潭)과 동학의 연원
{동경대전} 절구와 {천도교창건사}를 보면, 최제우 선생이 그 제자 최시형에게 도통(道統)을 전수
(傳授)하는 말 가운데 "용담(龍潭)에서 물이 흐르니 사해(四海)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용담에서 사방으로 강물이 흐르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동학의 연원에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시형 선생께서도 제자들에게 도통을 전수할 때 "산상(山上)에서 물이 흐르니 우리 교의 도통연원
(道統淵源)이라. 이 현묘한 기틀과 참다운 이치를 깨달은 연후에야 개벽(開闢)의 운(運)과 무극(無
極)의 도(道)를 알게 되리라. 오호라!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근원없는 물이 없으니 만사가 오직 그
와 같으니라"하여 동학의 연원이 최제우 선생의 창작도 아니고 외래사상의 수용도 재구성도 종
합도 아니라, 산상의 용담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를 용담(龍
潭) 또는 용왕담(龍王潭)이라 하고, 거기에서 압록․송화․소화․두만의 4대강하(四大江河)가 사
방으로 흐르며, 한웅천황에 의하여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설파되었다. 따라서 최제우 선
생이 말한 용담과 최시형 선생이 말한 산상의 물은 백두산 정상의 용담(천지)이라 할 수 있고, 그곳
이 동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최제우 선생의 고향인 경주의 가정리(稼亭里;근세판에는 柯亭里)에 용담이 있는 것
으로 이해한다. {동경대전} 수덕문에 의하면 "난간이 못가에 다다르니 주렴계(周濂溪)의 뜻과 다름
이 없고, 정자(亭子)의 이름을 용담(龍潭)이라 하였으니 제갈양(諸葛亮)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
가"하여, 용담이 정자의 이름임을 말하고 있는데, {용담유사} 용담가에서도 "구미산하 일정각((龜
尾山下 一亭閣)을 용담(龍潭)이라 이름하고"하여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용담은 물이 아니라
정자의 이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곳이 산의 정상도 아니고 거기에서 4방으로 물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동학 발원지로서의 용담은 경주 가정리의 용담(정)이 아니라 백두산 정상의 용담이며, 그
곳이 동학의 발원지로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老․釋․孔의 외래사상
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상고시대부터 전래된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
체 사상을 전승하였다는 증거가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2. 한웅천황과 최고운(崔孤雲)과 동학의 신선도 전승
또한 {동경대전}을 보면 "산하대운(山河大運)이 모두 이 도(道)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극히 깊고
그 이치가 심히 멀도다" 하여 동학의 근원이 극히 심오함을 말하고 있는데, {천도교창건사}를
보면 최시형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오도(吾道)의 대운(大運)은 천황씨(天皇氏)의 근본원리를 회복한
무극지운(無極之運)이며, 천황씨는 선천개벽(先天開闢)의 시조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의암 손병
희(義菴 孫秉熙) 선생도 "우리 대선생(최제우 선생)께서 비로소 무극대도(無極大道)와 대덕(大德)의
근본원리와 접령강화(接靈降話)의 이치를 밝혔다고 하나, 개벽초(開闢初)의 천황씨로부터 처음 비롯
된 운이라 하니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천개벽 또는 개벽초라 함은 우리나라 개국초의 개
벽을 의미하고 개벽은 개천시교(開天施敎)를 의미하니, 천황씨는 우리나라 개국초에 도․불․유 삼
교일체의 신선도를 베푼 한웅천황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한웅천황 외에 신선도를 우리나라에서 처
음으로 베푼 천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해 설해진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전승하였다는 증거가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1부에서 밝힌 바, 최제우 선생의 제25세 선조이신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에 "우리
나라에 현묘지도로서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근본적으로 자체 내에 지닌 신선도(화랑도)가 있
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동경대전} 논학문을 보면 최제우 선생께서 "내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다"하고, 절구(絶句)를 보면 "평생에 받은 천명은 천년운수요, 성덕(聖德)은 우리 집에 내려
오는 백세의 업(業)이라"하였다. 즉 동학사상은 최씨 집안에서 천년 동안이나 전승된 가업이었다
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의 호를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라 하고, 최제우 선생의 호를 수운(水
雲), 최시형 선생의 호를 해월(海月)이라 하여 조손(祖孫) 사이에 그 호가 일맥상통하는 것을 보아
도 동학사상이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승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동학의 도․불․
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한웅천황에 의해 설해진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전승하였다
는 증거가 제3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Ⅳ. 신선도와 동학의 동일성
지금까지 동학의 도․불․유 사상이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신선도의 사상을 전승한 것임을 밝혔다. 이는 곧 신선도와 동학이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뜻한다. 그
렇다면 신선도와 동학은 다 같이 그 발생원리와 그밖에 기본사상이 서로 동일하여야 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조손관계(祖孫關係)나 부자관계(父子關係)에 있어서 그 유전인자와 혈액형이 서로 같거나
불가분적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문제를 본항에서 규명하여 나가
기로 한다.
1. 발생원리의 동일성
우리의 민속에 삼신상제(三神上帝)․삼신제왕(三神帝王)․삼신제석(三神帝釋)․삼신(三神)할머니
하는 삼신신앙(三神信仰)이 있고. 삼신사상을 발생원리로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한웅
천황에 의하여 설파되었다. 三神은 天一․地一․人一을 의미하고, 天一․地一․人一이 인체계에서는
식(息)․감(感)․촉(觸)과 기(氣)․심(心)․신(身)과 명(命)․성(性)․정(精)이 된다. 여기에서 도․
불․유 삼교일체 사상이 성립된다. 약설하면 숨을 고르게 쉬고(調息) 원기를 길러(養氣) 불로장수
(長命)하는 신선을 추구하는 사상이 도교이고, 모든 느낌을 끊어 버리고(止感) 마음을 맑게 하여(明
心) 본래의 성품을 깨달아(覺性) 성불을 추구하는 사상이 불교이며, 모든 육체적 감각(관능적인 욕
구)을 극복하여(禁觸) 행실을 닦고(修身) 정기(정력)를 성실하게 함으로써(精誠) 성인군자를 추구하
는 사상이 유교이다. 즉 인체계의 3원적 품부인 식․기․명에서 도교, 감․심․성에서 불교, 촉․
신․정에서 유교가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동학을 설파한 최제우 선생도 말하기를 "유․불․선(도교의 고전적인 표현)은 천도의 일부분이니
유의 윤리와 불의 각성과 선의 양기는 인성의 자연한 품부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우리도는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은 자이다"고 하였다. 이를 음미하여 보면 유의 윤리는 몸을 닦는 것
(修身)이며, 불의 각성은 마음을 맑게 함(明心)으로써 성취될 수 있고, 도(선)의 양기(養氣)는 원기를
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기(氣)와 마음(心)과 몸(身)을 닦고 기르는 것이 도․불․유라는 것
이다. 신선도의 도․불․유 사상도 원기(氣)와 마음(心)과 몸(身)을 닦는데서 발원된다. 따라서 신선
도와 동학은 다 같이 그 발생원리에 있어서 동일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천일․지일․인일의 천도에서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동학의 일파인 수운교의 경전 {동도전서}에도
"이 세가지를 나누어 말하면 유․불․선 삼가(三家)의 가르침이요,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천도라"하
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도 신선도와 마찬가지로 천일․지일․인일 삼
신일체의 천도에서 발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사상은 신선도와 동일한 원리에서 발원되고 있다. 따라
서 동학의 도․불․유 사상은 외래사상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고유사상인 신선도를 전승하였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2. 기본사상의 동일성
다음은 기본사상의 동일성이다.
첫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지기론(至氣論)이다.
신선도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신(神)은 곧 기(氣)를 의미하는데, {한단고기} 소도경전본훈에
의하면 "일기(一氣)가 곧 한늘(天)이요 공(空)이다. 그러나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神)이 있어 능히
삼(三)이 된다. 삼신(三神)은 곧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다. 일기(一氣)가 스스로 동작
하여 조(造)․교(敎)․치(治)의 삼화(三化)의 신(神)이 된다. 신(神)은 곧 기(氣)이다 하여 지기론
(至氣論)이 신선도의 가장 기본사상이다.
동학에서도 "기(氣)라는 것은 허령(虛靈)하고 창창(蒼蒼)하여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어 형용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보기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일기(一氣)니라"하는가 하면, "군자의 덕(德)은 기(氣)가 발라서 마음이 정해
져 있으므로 천지(天地)와 더불어 그 덕(德)에 합하고, 소인(小人)의 덕(德)은 기(氣)가 바르지 못하
여 마음이 옮기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명(命)을 어기나니 이것이 성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하
여 지기론이 동학의 기본사상을 이룬다. 이래서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지기론을 기본사상으로
한다.
둘째, 신선도와 동학에서는 다같이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한다.
신선도의 경전 {삼일신고}를 보면 "하나님은 위없는 제일위(第一位)에 계시어 대덕(大德)․대혜
(大慧)․대력(大力)하시어 한늘을 조화하고 무수 세계를 주재하시며 만물을 가꾸시되 티끌 하나 빠
뜨림이 없고 밝고도 신령하시니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하였는가 하면, 우리의 민
속에 하나님 신앙이 있고, 우리민족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하나님을 부른다. 또한 하나님 사
상에서 도․불․유 삼교일체의 신선도가 성립됐으며, 하나님이 아니면 만물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신선도에서는 하나님을 숭배대상으로 한다.
동학에서도 "그말 저말 다 던지고 하나님(하날님)을 공경하면 아동방(我東方) 삼년괴질(三年怪疾)
죽을 염려 있을소냐"했는가 하면,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어내어 하나님을 공경하면 자아시(自兒
時)있던 신병(身病) 물약자효(勿藥自效)아닐런가"하였으며, 동학의 기본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
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에도 천주(天主)
즉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여 동학의 숭배대상 역시 하나님이다.
셋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순환론이다.
신선도의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는 무두무미(無頭無尾) 무선무후(無先無後)의 일원사상(一
圓思想)인데, 신선도의 경전 {천부경}에 "운삼사성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
萬來)"라 하였고, {참전계경}에 "순환이라 함은 형상있는 한늘의 윤회이니 형상있는 한늘은 윤회에
일정한 도수(度數)가 있어 조금도 어김이 없느니라"하여 신선도는 순환론이다.
동학에서도 "쇠운(衰運)이 지극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同歸一體)
하였던가"하고, "부하고 귀한 사람 이전 시절 빈천(貧賤)이요, 빈하고 천한 사람 오는 시절 부귀
로세, 천운이 순환하사 가고 아니 돌아옴이 없나니"하여 동학 역시 순환론이다.
넷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다.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는 만물동근사상 내지 생명평등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
선도의 경전 {삼일신고}에 "사람과 만물이 다같이 삼진(三眞)을 받았나니 이는 성(性)․명(命)․정
(精)이라. 사람은 그것을 온전하게 받았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나니라"하여 사람과 만물이 근
본적으로 성․명․정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불교에서 만물이 다같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
(皆有佛性)는 말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신선도는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동근사상이다.
동학에서도 "천지(天地)․귀신(鬼神)․조화(造化)라는 것은 유일한 지기(至氣)로 생긴 것이며, 만
물이 또한 지기로 생긴 것이니 이렇게 보면 하필 사람만이 천주를 모셨으랴. 천지만물이 하나님을
모시지 아니함이 없나니, 사람이 다른 물건을 먹음은 이는 곧 한늘이 한늘을 먹음이라. 그러므로 제
군은 하나의 생물이라도 무고히 해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을 상해함이니, 대자대비하야 조화의 길에
순응하라 하여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조화이고, 하나님을 모신 존재로서 존귀함을 말하고 있
다. 그런가 하면 "저 것도 또한 시천주(侍天主)의 소리니라. 묘하도다. 천도의 영묘가 일에 간섭치
않음이 없도다. 한늘의 해와 달로부터 땅의 티끌에 이르기 까지 다 천도의 영광이니라. 우속(愚俗)
이 산이나 물에 빌어 복을 구하는데 또한 이험이 없지 아니함은 천지의 영묘가 조임(照臨)치 않은
곳이 없는 증거니라"하였다. 이 내용 역시 천지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영묘한 기운을 갖추고 있
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학 역시 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일체사상이다.
다섯째, 신선도와 동학은 다같이 민주주의사상이다.
천일․지일․인일의 삼신일체는 천일합일(天人合一)사상으로써 한늘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한
늘이라는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이며, 상․중․하 일체의 인간평등사상이다. 그러므로 신선도는
곧 민주주의사상이다.
동학에 있어서 시천주(侍天主) 사상도 최시형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발전되고, 손병희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된다. 인내천사상 역시 한늘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한늘이라는 뜻으로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이며 인간평등사상이다. 박종
홍(朴鍾鴻) 박사는 "현대사상에서도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만큼 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이 곧 한늘이라면 전통적인 기독교인은 깜짝 놀랄 일이다. 그보다 더
큰 죄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특색이 있다 인내천의 종지는 현대의 그 어느 민주주의보다도
철저하고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고 하여 인내천사상이 곧 민주주의사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래서 신선도의 삼신일체사상과 동학의 인내천사상은 다같이 반상(班常)․적서(嫡庶)․노사(勞
使)․남녀(男女)․노소(老少)․빈부(貧富)․귀천(貴賤)의 차별이 없는 인간평등사상이며 최대 최고의
인권존중사상으로서 민주주의사상인 것이다.
여섯째, 신선도와 동학의 목적이 동일하다. 즉 신선도의 목적은 홍익인간 광명이세인데, 동학의
목적은 포덕천하 광제창생이다.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민족의 신선도가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인데, 최제우 선생이 설한 동학에도 도․불
․유 삼교사상이 일체를 이루고 있다.
둘째. 신선도가 백두산 정상의 용담(천지)에서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로소 설파되었는데, 동학이
산상의 용담과 개벽초의 천황씨에 발생연원을 두고 있다.
셋째. 신선도가 고운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서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 25세손인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천년 동안이나 집안에서 전하여온 백세의 가업(家業)이라 하였다.
넷째. 동학의 발생원리가 신선도와 동일하였다.
다섯째. 그밖에도 지기론․숭배의 대상․순환론․생명평등사상 내지 만물일체사상․민주주의사상
등이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 노․석․공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부터 전승된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계승하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서 동학은 배달사상인 신선도의 재현이며 부활이라 할 수 있고, 최제우 선생과 최시형 선
생은 사라져가는 민족혼과 민족사상을 일깨우고 부활시킨 대종교가요 대학자요 대사상가요 대혁명
가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와 같이 사계의 학자들도 외래사상과 아울러 고유사상에로, 또한 현세사상이나 근세사상과 아
울러 고대사상에로 연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자료가 많고 편의한 데에만
머물을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여야 하고, 연구물의 평가도 자신의 견해와 종전의 통설
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설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문화는 철
석같이 믿던 통설이 무너지면서 발전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여 주기 바란다. 최시형 선생이 말한
바, "천황씨의 본심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보국안민(輔國安民)하리요"하였듯이 새로운 자
세로 동학사상과 신선도를 재조명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는 데에 일조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동학이 곧 신선도요 신선도가 곧 동학으로서 세계주의사상이요, 만물일체사상이다. 다가오는 21세기
에는 세계의 석학이 우리민족을 연구하고 신선도를 연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록】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비판
1. 종교교육의 기능
어느 종교이든 그 교육을 보면 윤리도덕을 가르치고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며 남을 위해 사회에
봉사하게 하고 사회의 복지와 번영을 추구하며 지상낙원 건설을 목표로 한다. 또한 문화사업과 교
육사업 그리고 구호사업을 직접 벌리면서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러므로 종교교육을 통해
가정이 화평케 되고 고매한 인격자가 배출되기도 하며, 어느 면에서 사회발전이 크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종파의 종교인들 끼리는 공동체의식이 투철하여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며
상부상조하고 동고동락한다. 그래서 어떤 민족은 종교교육을 통해 총화단결하고 부강하게 되는가
하면, 화합하고 예의바른 민족이라 칭찬을 받는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교육은 이를 나무랄 데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제도같이 보인다.
그러나 다(多)종교사회인 경우 문제는 다르다. 각 종교의 세부적인 측면을 들여다 보면, 역사적
사회적 발생동기․사상적 발생배경․발생민족․발생지․숭배의 대상․교조․경전․계율․의식과 관
행이 각각 다르다. 그리고 각 종교마다 제 종교의 신앙대상을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하나님(하
느님)․주님․알라․부처님․옥황상제․천조대신이라 찬양하고, 제 종교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
인이라 추앙한다. 그리고 그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하여 동경하고, 그 민족을 가장 거룩한 민족이라
찬양하면서 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운다. 여기에서 어느 나라를 불구하고 다종교사회
인 경우 종교교육에 있어서 크나큰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첫째, 신자는 신앙이 독실할 수록 제 종교의 신앙대상을 절대적인 존재라 섬기고 거기에 사후의
운명까지 의탁한다. 따라서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객관적으로 볼 때 옳지 않다 하더라도 신자 자신
은 그 가르침을 절대적인 진리라 믿고 따르게 된다. 이를 파브로프의 조건반사 원칙이라 한다. 그래
서 신앙은 아편 같다고도 하며, 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아편중독자 같기도 하여 이들에게는 객관적
인 비판력과 자제력도 없게 되고, 다른 종교를 유사종교․미개종교․미신신앙․우상숭배라 하여 무
조건 멸시하거나 부정하게 된다. 즉 다종교사회에 있어서 각 종교는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것이 아
니라 배척하여 사회불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각 종교마다 제 종교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것은 제 종교의 교조보다
다른 종교의 교조와 성인은 하위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웃 어른이나 선배라 하더라도
종교가 다르면 내심으로 하찮은 존재라 업신여기게 된다. 여기에서 다종교사회에 있어서의 종교교
육은 윤리도덕을 가르치면서 윤리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셋째, 각 종교마다 그 종교의 발생지를 신앙의 성지라, 그 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
찬양하면서 그 나라를 순방하고 그 발생지를 순례한다. 이를 성지순례라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자기를 낳고 키워준 제 나라는 성지가 아니며 제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시
사한다. 여기에서 제 나라와 제 민족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동경하는 사대주의 의식
이 싹트게 되며, 애국심과 애족심은 상처를 입게 된다.
넷째, 각 종교마다 그 민족의 위대성을 찬양하면서 주로 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
운다. 곧 외래종교인들은 주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이에 따라 자기 민족
의 역사와 사상을 업신여기고 소홀리 하거나 가르치지 않게 된다. 그러한 풍조가 오래 계속될 경우,
제 민족의 문화는 낙후되고 외래화되기 마련이며, 민족의식은 사대주의에 빠지게 되고,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은 해이되기 마련이다.
다섯째, 신앙이 독실할 수록 종파를 중심으로 신도들은 똘똘 뭉치게 된다. 그것은 종파와 종파,
또는 종교와 종교 사이가 가깝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민족은 종교 또는 종파의 숫자만
큼 분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종교사회에서는 단결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단결할 수도 없는 것
이다.
이상과 같이 다종교사회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은 개인적으로 정서를 순화시키고 인격을 도야시키
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민족정서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강
하다. 그래서 종교가 많이 생기고 교회와 교당이 거리마다 늘어설수록 윤리도덕이 건전하기는 커녕
더욱 타락되고 사회는 이기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사회의 종교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으며, 어
떻게 종교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의 문제이다.
2. 민족총화와 종교교육
이상적인 종교교육이라 할 수는 없으나 민족총화를 위한 종교교육으로써 유대민족의 종교교육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유대민족은 수백만의 인구로서 수억의 아랍인구에 대항하리만큼 민족적 화합
을 굳건히 하고 애족적 애국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종교 지도자는 유대민족을 하나님으로부
터 선택받은 민족 또는 세계의 중심민족이라 극찬하면서 유대민족을 본받으라고 한다.
첫째, 유대민족은 어려서부터 자기민족의 전통적 역사교육과 아울러 종교교육을 철저히 받고 문
화유적을 탐방하면서 자기민족의 위대성을 배운다. 곧 유대민족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인성개발과
아울러 애국자 양성에 중점을 둔다(교육방송, 주한 이스라엘대사 특별초대 강연 중에서). 이래서 유
대민족은 화합적이고 애국적 애족적이다.
둘째, 유대민족의 교회에서는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절대 가르치지 않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바이블 속에 하나로 묶어 전체 민족에게 매주 가르치고 뉘우치게 한다(바이블 구약 참조).
여기에서 유대민족은 더욱 애국적 애족적인 민족이 되기 마련이다.
셋째, 유대민족은 여러 개의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의 신만을 섬기며,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지
않고 자기 민족의 신만을 섬긴다. 이를 유일신 신앙(唯一神 信仰)이라 한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자
기민족의 여호와신 하나만을 섬기고, 유대교 하나만을 신앙한다. 다시 말하면 몰록신(구약 열왕기하
제23장 10절)․그모스신(구약 사사기 제11장 24절)․네르갈신(구약 에래미야 제39장 3절과 13절)․
아드람멜렉신과 아남멜렉신(구약 열왕기하 제17장 31절) 등 많은 신들을 물리치고 교세가 가장 강
한 여호와와 엘로힘을 하나로 묶어 여호와신(여호와 엘로힘) 하나만을 섬기고 다른 신을 절대 섬기
지 못하도록 계명으로 정하고 있다(구약 출애굽기 20장 5절. 신명기 5장 9절). 심지어 다른 민족의
신을 믿자 할 때, 아내․자녀․형제․친구까지도 돌로 쳐서 죽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신명기 13장 6
절에서 10절). 이에 따라 유대민족 사회에는 여호와신을 섬기는 유대교 외에 다른 민족의 신을 섬
기는 종교는 교리상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만 근래에 이르러 여호와를 섬기고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를 믿는 교파가 일부 있을 뿐이고, 다른 신을 믿는 이슬람파가 극소수 있으나 그
것은 비밀조직으로써 타도의 대상이다. 곧 유대사회에서는 여호와를 섬기고 유대교(또는 기독교)를
신앙해야만이 유대인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고, 다른 신을 섬기거나 다른 종교를 신앙하면 유대인
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와 같이 유대민족은 하나의 신만을 섬기고 하나의 종교만을 신앙함으로써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여 똘똘 뭉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해 말하면, 유대민족이 동포의식과 공동체의식이 투철하고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며 애국하
고 애족하게 되는 이유는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고 제 민족의 신만을 섬기며
제 민족의 종교만을 신앙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 역시 거의 전체민족이 자기민족의 천조대신(天照大神)만을 섬기고, 자기민족의 신도(神道
는 사실 우리민족의 신선도가 일본으로 전래된 종교임)와 이를 접목시킨 불교 곧 일본화된 불교만
을 신앙한다. 그리고 신사(神社;法堂)에 나가면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면서 자기 조상들
의 위대성을 찬양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잘 단합하고 예의바른 민족이라 칭찬을 받는다.
이를 생각하면 어느 민족이든 전체민족이 총화단결하고 굳건한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는 제
민족의 국조와 존현을 잘 섬기고, 제 민족의 종교를 신앙하며,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철
저히 받고 회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그 폐단
그러면 오늘날 우리민족의 종교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민족은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종교교육을 받
고 있다. 즉 유대민족은 제 민족의 종교교육만을 받고 다른 민족의 종교교육을 절대 받지 않는데,
우리민족의 절반정도(외래종교인)는 제 민족의 종교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민족의 종교교육만을 받
는다. 이를 세분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민족은 오로지 제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만 절을 하고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는 절
대 절을 않는데, 우리민족의 절반정도는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에게 절을 않고,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절을 한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은 숭배의 대상에 있어서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신앙을 하
고 있다.
예컨대, 불교의 예식을 보면, 대웅전의 중앙 연화대 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나무아미타불 아니면
석가모니불을 부른다. 나무아미타불은 우주의 진여이법(眞如理法)을 상징하는 가상불이지만, 석가모
니불은 인간으로서 따지고 보면 원래 우리민족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불교측은 이를 깨닫지 못하
고 인도 사람이라 믿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섬기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을 섬
기고 있는 것이다.
유교는 어떠한가? 그 교육기관인 성균관이나 향교에서의 예식을 보면, 대성전(大成殿)에 공자를
비롯한 안자․자사․증자․맹자 등 오성(五聖)과 공자의 제자 십철(十哲) 및 칠십이제자(七十二弟
子) 그리고 송왕조육현(宋王朝六賢), 마지막에 우리나라의 주자학자 십팔현(十八賢) 등 대체로 지나
족(종족 이름에는 支那로, 국명에는 중국으로 표기했다)의 위인들을 모시어 거기에 공양을 하고 절
을 한다.
도교는 어떠한가? 도교에서도 자연신인 옥황상제와 미륵불 외에 대체로 지나족의 위인들을 모시
어 공양하고 절을 한다. 예컨대 복희․신농․황제․노자․서왕모․마조․여조․유비․관우․장비․
공명 등 지나의 위인들을 신격화시켜 거기에 공양하고 절을 한다.
기독교는 어떠한가? 기독교에서도 유대민족의 성인인 예수를 모시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그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어 성모라 섬기고, 유대민족의 민족신인 여호와를 할렐루야 하고 찬양한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인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며, 이스라엘도 아니라 한국이다. 또
한 우리민족은 인도족도 아니고, 지나족도 아니며, 유태민족도 아니라 한국 사람이다. 곧 우리나라
는 한국이며, 우리민족은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의 건물 중앙에 다른
민족의 민족신과 위인을 모시어 거기에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곧 내가 내집 안방에
내 조상을 모시지 않고 남의 조상을 모시어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격이다. 그러한 행동을 자
주 반복할 때, 우리민족의 사유체계와 의식구조는 어떻게 되고, 국가관과 민족관은 어떻게 되겠는
가? 우리는 신앙을 떠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또 자연인의 입장에서 냉정히 생각해보자.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될 때는 우리민족을 위해 전래됐다. 그
것은 외래사상을 수입하여 민족사상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함이었다.
외래종교의 노예가 되고 외국의 사상적 식민지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법당과 도관과 교
당이 한국 사람의 노력과 재력에 의해 한국땅에 세워졌다. 그 소유권이 한국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외국사람의 소유가 아니며 외국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법당과 도관과 교당의
중앙에 다른 민족 곧 특정민족의 민족신과 성인을 안치하여 거기에 한국 사람이 공양을 하고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땅에 태어나서 한국의 의식(衣食)으로 살면서 다른 민족의 귀신을 섬기고 다
른 민족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의 예식을 보
면 거기에 우리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모시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다. 일부 불교사찰에서 우리민
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을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대웅전 밖, 어느 한쪽 구석에 형식
상 모시고 있을 뿐이다. 근세조선의 유교도들도 우리민족의 국조를 모시었다고 하나 평양의 구월산
한 모퉁이에 형식상 모시었다. 더욱이 기독교측에서는 형식상일망정 제 민족의 국조를 모시기는 커
녕 이를 우상숭배라 배격하고 단군성전 건립을 방해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주인을 내쫓는 격이며, 남의 조상을 섬기면서 제 조상을 박절하는 격
이다. 이를 유추해석하면 자기의 이익과 부귀영화를 위해서는 국가사직도 무너뜨릴 수 있고, 부모형
제라도 쫓아낼 수 있으며, 절친한 친구라도 용서없이 처단할 수 있다는 신앙인 것이다. 그것이 과연
애국적이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신앙인가? 석가․공자․노자․예수의 가르침인가? 신앙의 주객전
도가 아니고 무엇이며, 정신나간 신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욱이 사람은 돌맹이나 나무를 섬겨도
지성으로만 섬기면 거기에서 신비감을 느끼고 영적 감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다른 민
족의 민족신을 지성으로 섬기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열성으로 배울 경우, 어떻게 되겠는
가? 다른 민족은 훌륭하게 느껴지는 반면, 제 민족은 고유종교와 고유철학도 없는 하찮은 민족이라
고 스스로 제 민족을 멸시하게 될 것이 아닌가? 곧 우리민족의 사유체계와 의식구조는 자연히 외국
화되어 국가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족의식이 무너지게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측은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
다.
둘째, 유대민족은 제 민족의 교조(위인)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절
반정도는 다른 민족의 교조를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 숭배한다. 그것은 제 민족의 국조인 한인․한
웅․한검도 석가모니․공자․노자․예수 보다 하위에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곧
우리나라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대한 성인이 없었고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
서 국제적으로 우리민족은 성인도 하나 배출하지 못하는 미개민족이라 멸시받게 되고, 민족적으로
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기민족을 멸시하고 모함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또한 사회
적으로는 존현과 웃어른을 무시하고 자신만이 잘난체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널리 포용하지 못하
고 파당을 짓게 된다.
셋째, 유대민족은 신앙의 성지가 곧 자기 나라로서 자기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
라 교육한다. 즉 유대민족은 종교교육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세계적인 위인과 유명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절반정도인 경우, 신앙의 성
지가 다른 나라인 것이다. 곧 기독교인의 성지는 이스라엘(그러나 개신교는 미국에서 전래됐으므로
미국을, 성공회는 영국에서 전래됐으므로 영국을 예루살렘 다음의 성지로 친다)이며, 불교인의 성지
는 인도와 네팔이고, 유교인과 도교인의 성지는 중국이다. 그래서 이들 외래종교인들은 이스라엘․
미국․영국․인도․중국을 신앙의 성지 또는 신앙의 조국이라 하여 동경하고 선망하면서 그 나라를
순방하고 그 발생지를 순례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대적인 불찰 또는 교회당을 건립한다. 여
기에서 우리나라는 신앙의 성지가 아니며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을 갖게 되
며, 사대주의 의식이 싹트게 된다.
넷째, 유대민족의 교회에서는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절대 가르치지 않는데, 우리민족의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측에서는 다른 민족의 역
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는다.
예컨대, 불교의 법당에 나가면 반야경․금강경․법화경․화엄경 등 팔만대장경(불경은 대승경과
소승경으로 나뉘어지고, 소승경은 석가세존의 직설법이지만 대승경은 용수보살에 의해 우리나라에
서 인도로 전승된 경전이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만을 가르치고
배우며, 유교의 성균관이나 향교에 나가면 지나족의 삼사(三史; 한서․후한서․사기)와 사서오경(四
書五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도교의 도관에 나가면 지나족의 도덕경․
남화경․참동계․황정경 등 도장경만을 가르치고 배우며, 기독교의 예배당에 나가면 유대민족의 역
사책인 구약과 신약 등 바이블만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에 대해 마치 남의
것을 대하듯 하면서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불합리한 신화같이 취급하고, 우리민족의 사상과 종교를
비과학적인 미신같이 멸시한다.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하
라고 가르친다. 곧 외래종교측에서는 그 교육내용이 극히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교육내용과 교육대상이 불일치되고 있다. 이상 논한
바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유태민족과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비교표
구 분
유태민족의 종교교육
우리민족의 종교교육
숭배대상
오로지 제 민족의 민족신 하나만을 숭배함.
다른 민족의 신을 숭배하면서 여러개의 신을 숭배함.
교조찬양
제 민족의 교조와 제 민족의 성인만을 찬
양함.
다른 민족의 교조와 다른 민족의 성인을 찬양함.
교육방향
교당내에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교
육하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교육하
지 아니함.
교당내에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아니함.
민족찬양
제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찬양하고, 제 민
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찬양함.
다른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찬양하고, 제 민족을 비
하하고 멸시함.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적인 교육이라 생각하는가? 교육의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혼없는 교육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의 불자와 유생과 목자와 도인 등 성직자들은 정신이 있는 것
인가? 없는 것인가? 더욱이 기독교의 목자들은 신도들에게 유대민족을 본받으라고 가르친다. 그러
면서 유대민족과 정반대의 신앙을 유도하고 교육을 한다. 곧 외래종교측은 한가지 병에 의사마다
다른 처방을 내리고 다른 약을 쓰는 격이며, 고가(高價)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 처방이 병의
증상이나 원인과 맞지 않는 격이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
측과 그 성직자들은 조국과 민족 앞에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불교․도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하
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것은 종교지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교인들도 원래 종
교인이기에 앞서 하나의 자연인이었다. 자연인이므로 누구이든 민족적 혈통을 지니고 있다. 민족적
혈통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다될 때까지 불변적이다. 그러나 신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곧 가
변적이다. 가변적인 것보다 불변적인 것이 우선한다. 따라서 신앙에 앞서 민족이 우선한다. 민족이
우선하므로 다른 민족의 신앙보다도 제 민족의 민족사와 민족사상교육이 우선하고, 다른 민족의 신
을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먼저 섬겨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을 예로 들면, 유
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 기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들도 기독교 신앙에 앞서 제 민족의 민족사와 민족사상을 먼저 가르치고 배워야 하며, 여호와를 찬
양하고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기에 앞서 제 민족의 하나님과 국조를 먼저 섬겨야 한다는 이론이 성
립된다. 유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믿는다면 당연히 유태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유태민족의 신인 여
호와를 할렐루야 하고 찬양해야 하며, 예수와 마리아를 섬기고 그에게 공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인은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혈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자기의 주체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눈박이(비정상인) 사회에 가면 두눈박이(정상인)는 병신 취급받고 외눈박이가 정상인으
로 대우받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와 같이 우리사회에서는 외래종교 세력이 막강함으로써
외래종교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자기민족에 대한 역사교육과 사상교
육은 하찮은 것으로 멸시받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사회에는 불교대학과 유교대학이 있고, 특히
기독교 대학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 백개이지만(약 800개, 그중 인가대학은 226,
1995년 현재, 종교신문) 당연히 있어야 할 한국학 대학은 하나도 없으며, 서양사상을 가르치는 철학
과는 각 대학에 모두 있어도 한국사상을 가르치는 한국철학과는 성균관대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
렵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 박사가 있고, 특히 신학박사(기독교 박사)와 서양철학 박사는 수만명이지
만 한국철학 박사는 4천 5백만 인구중에 한두 사람에 불과하다. 또한 대학 때부터 한국철학을 전공
한 전문교수도 전혀 없다. 대학 4년 동안 자기민족의 사상이나 철학을 한 강좌도 수강하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5% 이상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의 바이블, 불교의 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도교의 도장경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의 공자․맹자․노자․관우․장비와 기독교의 12사도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환
국의 7세 한인, 배달국의 18대 한웅, 단군조선의 47대 한검(단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러한
교육적 풍토밑에서 어떻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며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상대의 민족사와 사상사를 말하면 국수주의자 아니면 민족지상주의
자라 푸대접하니 이러한 사회풍토속에서 어떻게 민족정서가 건전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유대민족은 학교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와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 배운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면 하나의 신과 하나의 종교만을 신앙하고, 하나의 역사와 사상 곧 자기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한국계․서구계․인도계․중국계․일본계․
아랍계 등 수백 개의 신과 종교를 신앙하고, 수십 개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운다. 이는 아버
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과 누나의 가르침이 다른 격이다. 그러면 그 어린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것이 아닌가?
그와 같이 우리민족은 방향을 못잡고 있는 것이다. 곧 정신분열 내지 철학없는 민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철학이 없어 이해따라 이합집산하게 되고 교육자도 철학이 없어 조변석
개하게 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 기준이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의 주관대로, 편리한대로, 좋은 대로 하면 그것이 정의이고 진리인 것이며, 서로 충돌이 생길
경우 힘쎄거나 다수 쪽이 이기게 된다. 그래서 각 개인은 유력한 우두머리(boss)와 이익집단을 중
심으로, 또는 종파를 중심으로 단합할 수 밖에 없고, 개인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단결이 잘 안되고 또 단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불합리한 점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단결
이 잘 안되는 것도 민족성 탓이며,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는 것도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나쁜 것은
모두 민족성 탓으로 돌린다.
4. 우리민족의 종교교육과 식민지 교육
오늘날 우리민족의 교육은 어느 면에서 일제시대 식민지 교육의 연장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종교
교육은 식민지 지배전략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민족의 종교정책은 일제시
대 조선총독부가 우리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식민지 지배전략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닌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을 일본의 신사(神社)에 나가서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천황에
게 배례하게 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공양하게 하고 배례하게 한다.
둘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탄압하고 일본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
을 시켰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에게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시키지 않고 다른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만을 시키고 있다.
셋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유사종교니 사이비종교니 멸시하면서 타파의 대상으
로 삼았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미신숭배
니 미개종교니 멸시하고, 불교사찰을 방화하는가 하면 불상을 파괴하고 훼손한다.
넷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단군왕검을 역사적 실재 인물로 인
정하지 않고, 평양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를 헐어버렸다. 그와 같이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측
에서도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면서 단군왕검을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하고 단군성전 건
립을 방해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군성전 건립을 못하고 있다.
다섯째,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성씨를 가내무라․구니모도․야나가와․요시가와 등 일본식으
로 개명하게 했다. 그와 같이 한국의 어느 외래종교측에서도 우리민족의 성명을 교명(敎名)이라 하
여 마리아․요셉․안나․요왕․요안․요환․세레나데․베드로 등 서구식으로 개명하게 한다.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정책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유사하다. 특히
어느 종교의 교육정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그대로 일치된다. 그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있으나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성립된다.
1)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정책 특히 어느 종교의 교육정책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일치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어느 외래종교 당국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와 다름이 없
으며, 그 종교지도자들은 일제시대 친일파와 다름이 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2)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이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문란케 하
기 위한 교육이었다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도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국가기강을
문란케 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인들이 일본군에 참가하면서도 독립군에 참가한 애국지사가 몇명이나 되었는가? 거의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외래종교 교육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이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성을 심어주어 일본을 우러러 받들고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교육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도 우리민족에게 독립의욕을 말살시키고 사대주의 의식과 맹종적 노예근
성을 심어주어 이스라엘․로마․미국․인도․중국 등 다른 나라를 우러러 받들고 다른 나라에 예속
시키기 위한 교육이나 다름없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몇십년이 흘러도 적극적 통일의욕이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외래종교교육은 민족혼을 말살시키고
동포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느 외래종교측의 과오는 너무나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논리대로 해석하면 어느 외래종
교 지도자들은 우리나라가 서구국가 특히 미국의 종교적 식민지로 전락되기를 바라는 격이며, 미국
의 하수인과 같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그래서 미국정부나 미국국민이 볼 때, 우리민족은 미국의 심
부름꾼 같고 용병(傭兵) 같으며 미개민족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외국인들에게 절대 좋
게 보이지 않고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민족이 국제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3년
전 미국 LA교민들이 흑인들로부터 수난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교육은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오해받게 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시키는 교육인 것이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측은 많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5. 종교교육의 신토불이(身土不二)
그러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자께서 인군은 인군 닮아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닮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닮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
닮지 못하고, 이스라엘․미국․영국․로마(이태리)․인도․중국․일본 사람 닮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민족은 거의가 의식과 신앙에 있어서 외국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한국혼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유대민족이 유대교만을 믿고 유대의 역사와 사상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우듯이 한국 사람은
한국의 종교를 믿고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철저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는 지금부터 약 1만년전 한인의 환국(桓國)시대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하고, 그 이후 한웅의 배달국 시대를 우리나라 역사의 기점으로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역사는 약 6천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때는 세계인류가 원시의 미몽에서 깨기 전이다. 그때에
이미 우리민족은 위대한 사상을 성립시켰다. 그 사상은 신선사상이다. 신선사상은 天一․地一․人一
三神一體의 천도를 발생원리로 한다. 그래서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 등 온 인류를 발생학적
배경으로 하는 홍익인간 사상이며, 인간의 지닌 기(氣)․심(心)․신(身)을 잘 닦아 모든 사람이 성인
군자를 지향하게 하는 이화주의(理化主義) 사상이다. 신선사상은 현대사상의 모체이며 동양사상의
원류였다. 어느 사상에도 뒤지지 않는 가장 위대한 사상으로서 21세기를 지도할 사상이었다. 그러한
신선사상이 외래사상에 의해 지금까지 가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외래종교인들도 이제는 제 나라의 종교와 사상을 배우고 연구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곧 농산물만이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아니라, 신앙이 신토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사상이 신토불이 되고, 사상이 신토불이 될 때 의식이 신토불이 되어 민족의식과 동포의식이 확립
되고, 국가기강과 사회기강이 굳건히 되어 세계열강과 대등한 세계화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세계
의 지도적 중심국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소론을 이해한다면 외래종교측은 다음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첫째, 외래종교측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외래종교를 받아들이고 신앙해야 한다.
둘째. 외래종교측은 제 종교가 손님종교임을 자각하여 예의를 지키고 주인행세 말아야 한다.
셋째, 외래종교측은 외래종교가 우리 민족을 위해 전래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인정한다면 외
래종교측도 우리 민족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해야 하고, 또 우리 민족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한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받아들이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외래종교측은 한인․한
웅․한검의 역사 곧 환국사(桓國史)․배달국사․고조선사 그리고 그 사상인 신선사상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대종교(단군교)와 동학(천도교와 수운교)과 증산도(대순진리
회)와 원불교 등 자생종교를 주인종교로 예우해야 하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제 나라와 민족
을 위하는 종교인의 자세라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제 종교(외래종교)의 사상과 교리만을 연구
하고 믿으면서 그것을 제일이라 선전한다면 그것은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
이며, 아울러 제 조상과 국조를 멸시하는 행위로서 반인륜적 반민족적 반국가적 행위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사항을 건의한다.
첫째, 신선사상에서는 우주와 삼라만상의 이법을 간략히 天一․地一․人一의 三神一體(삼신일체)
라 표현한다. 그것은 만물이 하늘이나 땅과 같이 존엄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만물의 근본은 같다는
뜻이기도 하며, 우주와 만물이 그러한 원리로 구성됐음을 의미한다. 또한 하늘․땅․사람은 모든 종
교의 존경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상징물을 제작하여 그것을 최상의 신앙대상으로 함
이 마땅하다. 그것은 종교통일의 기초이기도 하다.
둘째, 모든 종교의 교조는 인류를 위해 공헌한 바 크다. 그러므로 각 종교집단은 만성당(萬聖堂)
을 지어 모든 종교의 교조들을 모셔야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의 삼
성을 제 종교의 교조와 함께 봉안하여 섬겨야 마땅하다. 더욱이 불교측부터 먼저 만성당을 지어 예
수를 모시고 대웅전에 자기 민족의 국조를 석가와 더불어 모신다면 아무리 극악한 기독교인이라 하
더라도 제 종교의 교조를 모시고 제 민족의 국조를 모신 사찰을 함부로 방화하거나 파괴하지 못하
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와 불교의 불화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셋째, 외래종교측에서도 신도들에게 제 종교의 경전과 함께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등 우리
민족의 경전과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쳐야 마땅하다. 더욱이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도교․
불교․유교는 신선도의 지류로서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종교였다. 기독교 역시 신선도의 유파라 추
정된다. 즉 모든 종교의 근원은 하나로서 우리민족의 신선사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
로 도교․불교․유교․기독교 등 모든 외래종교가 제 고향으로 돌아온 격이며, 제 고향으로 돌아왔
으니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고 연구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곧 원시반본인 것이다.
넷째, 기독교대학(신학대학)․불교대학․유학대학 등 외래종교의 각 대학에 배달철학과(한국철학
과)와 배달사학과를 설치하여 성직 희망생들에게 우리나라의 철학과 종교와 역사를 가르치고, 도교
․불교․유교․기독교 등 외래종교와 배달사상과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모든 종교가 원시반본되고 한국화될 것이며, 참다운 한국화는 곧 세계화와 동일함을 알아야 할 것
이다.
다섯째, 불교․기독교․유교․도교․천리교․이슬람교 등 외래종교측은 진정으로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한다면 제 종교의 대학과 대학원 설립보다도 제 나라와 제 민족을 위한 한국의 역사․정
치․종교․철학․교육․문학․음악․미술․체육 등 한국학 전반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한국학 대
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세워야 마땅하다. 지금까지의 과오를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한국학 대학교
와 한국학 대학원을 하루 빨리 세워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고유종교측에는 그러할만한 재력이 없고,
불교측과 기독교측은 남의 나라에까지 막대한 자본을 던지면서 불찰과 교당을 세울 정도이다. 이를
생각하면 자기 나라에서 제 민족을 위해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 손
쉽고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생기면 골짜기마다 불찰만을 짓고, 골목마다
교회당만을 세우는가 하면 기껏해야 제 종교의 대학과 대학원만을 세우면서 제 민족을 위한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 설립을 싫어한다거나 꺼려한다면, 그것은 동포를 동포로 보지 않고 조국을
조국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곧 반국가적 반민족적 신앙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워도 내 동포요 싫어도 내 조국이 아닌가? 깊이 깊이 생각해서 불교측과 기독교측부터 솔선하여
한국학 대학교와 한국학 대학원을 설립하시길 간절히 청원한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불교측과 기독
교측 사이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각 종교 사이에 이해와 협조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외래종교
측의 이해와 각성과 참여와 협조를 촉구한다.
한국병의 원인과 교육개혁 시안
1. 우리사회의 병리현상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부 요직에 있는 고위관리가 부정축재를 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할 정도로
부정과 비리 그리고 살인․강도․절도․사기․폭행 등 사회악이 만연하고 있는가 하면, 육해공(陸
海空)에 걸친 대형사고가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그뿐인가?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노사간의
임금투쟁, 정치집단의 당리당략, 지역적 이기주의 등 각개 집단이 정의와 인도보다도 무조건 제 이
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도 힘이 있으면 죄가
되지 않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도 힘이 없으면 정의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병이라 명명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종교와 교육현상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절을 하고 이를 숭배하는 서구계․중국계․인도계․일본계․아랍계 등 외래종교 교단들이 난립하고
있다. 반면에 민족종교의 교단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외래종교의 신도수는 남한 전체
인구의 절반정도인 2천 3백만 정도라 한다. 그러나 민족종교계의 신도수는 몇만에 불과하다. 외래종
교계의 대학은 수백개이지만 민족종교계의 대학은 원광대학교와 근래에 와서 생긴 대진대학교를 제
외하면 하나도 없다. 서양사상 위주의 교육을 하는 철학과는 각 대학에 모두 있지만 한국사상 위주
의 교육을 하는 한국철학과는 성균관대학교를 제외하면 하나도 없다. 한국사상에 대한 과목도 국민
윤리(교육)과를 제외하면 대학 및 대학원의 어느 학과에도 거의 없다. 곧 전국 343개 대학 가운데
한국사상(한국철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19개대학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전국 343개 대학 가운데
324개 대학에서는 한국사상(한국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1996년도 현재).
그래서 정규교육을 받은 목사와 신부 그리고 승려는 수십만명이지만 정규교육을 받은 민족종교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다. 외래종교의 박사와 서양철학 박사는 수천명이지만 한국철학 박사는 한
두 사람에 불과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한국사상 강좌를 단 한 강좌도
수강해 보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학생이 전체의 99% 이상이다. 학부시절부터 한국사상을 전공
한 전문교수 역시 단 한 사람도 없다. 있다면 최근에 성균관대의 한국철학과를 졸업한 조교수 이하
들이다.
요약해 말하면, 민족신과 외래신 숭배의 주객전도, 고유사상 교육과 외래사상 교육의 주객전도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교육현상이라 할 수 있다.
2. 한국병의 원인
이상에서 한국병의 원인을 대략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오늘날 한국병의 근본원인은 산업화
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오는 윤리도덕의 타락이나 공동체의식의 결여보다도 우리 민족의 신앙과
교육의 모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악을 포함한 모든 사회현상은 사람의 의식과 행동
의 소산이며, 사람의 의식과 행은 거의가 신념(불교적으로는 말라야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신념
은 교육과 신앙에 의해서 굳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절반 정도는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에게 절을 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외래
종교 신자들이다. 이를 가정교육에 비유하면 제 아버지와 어머니,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업신여기고, 남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셔다가 섬기면서 그 가르
침을 따르는 격이다. 더욱이 그러한 신앙풍토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민족의 절반정도는 다른 민족의 신앙을 고귀하게 여기는 반면, 자기 민족의 신앙을 비합리적
인 미신이라 불신함을 의미한다.다른 민족의 신을 하나님이라 찬송하고, 다른 민족의 교조를 위대한
성인이라 극찬하는 반면, 자기 민족의 하나님과 한인․한웅․한검의 국조를 불신하고 숭배하지 아
니함을 의미한다.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잘 배우고 잘 알면서도 자기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는
관심도 없고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태민족의 舊約과 新約, 중국의 三史와 四書五經, 불
교의 八萬大藏經은 이를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식하여 한인․한웅․한검(단군
왕검)의 역사를 신화로 돌리는가 하면, 제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있는 줄도
모른다. 또한 제가 믿는 종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인도․중국․일본 등을 신앙의 성지라 하여 동
경하는 반면, 저를 낳고 키워준 조국과 제 민족에 대해서는 그보다 관심이 적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우리민족의 성인남녀 절반정도는 그 의식구조에 있어서 애족심과 애국심이 그리 없고, 서구화․
인도화․중국화․일본화에 가까움을 의미한다. 또한 같은 종교인들 끼리는 똘똘 뭉치고 친목이 돈
독하나, 전체 민족의 총화는 점점 깨어지고 우리민족은 수십개 내지 수백개로 분열되고 있음을 의
미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종교이든 윤리도덕을 가르치고, 마음에 위안을 주며, 남을 위해 사회에 봉사하
고, 나아가 인류의 복지와 행복을 추구하고, 지상낙원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나무랄 데가 없
다. 그러나 각 종교의 세부적인 면을 드려다 보면, 각 종교마다 그 역사적 사회적 발생동기․사상적
민족적 발생배경․발생지․숭배의 대상․교조․경전․계율․의식과 관행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
로 각 종교와 각 교파마다 제 종교의 그것만을 진리라 고집하여 가르치고, 신도는 거기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같은 종교인들 끼리는 서로 똘똘 뭉치고 친목이 돈독하게 될지 모르나, 전체민족의 총
화는 점점 깨어져 우리민족은 종교의 교파 숫자만큼 수백개로 분열될 수 밖에 없으니, 가치관의 혼
란은 더욱 가중되기 마련이며, 동포의식은 더욱 해이되어 집단이기주의 내지 불신사회가 되기 마련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성이 메말라 윤리도덕이 타락되고 공동체의식이 파괴되어 사회악이 만
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병의 첫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학교교육 역시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형성하고 변화시킨다. 따라서 자기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사실대로 배우고 그것이 훌륭하고 심오함을 알게 될 때, 자기 민족을 존경하게 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찬란했던 역사와 심오했던 배달사상은 몽고의 고려지배와 근세조
선의 주자학 일변도 정책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교육정책으로 왜곡됐거나 망실되어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됐고, 지금은 우리민족에게도 고유사상이 있느냐 하고 반문할 정도이며, 배달사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이것이 한국병의 둘째 원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거기에 더하여 전체 민족의 절반 정도가 외래종교에 심취되어 서구적 공동체의식을 강조
하면서도 고유한 동포의식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민족주의를 꺼려할 정도
이니 그러한 종교적 사회적 문화풍토 속에서 어떻게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동포에 대한 봉사
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기대하겠는가? 오히려 반인륜적․반민족적․반국가적 행동 밖에 더 하겠는
가?
역사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역대왕조가 모두 다른 민족의 신과 교조를 섬기고 남의 사상만을 가르
치는 외래종교로 멸망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고구려는 당(唐)나라 오두미교도(五斗米敎徒)의 조정
에 대한 비협조로, 통일신라 역시 당나라 유교도의 문약으로, 고려는 몽고를 경유하여 전래된 라마
교도(불교도의 일파)의 타락과 신진 무장 이성계를 앞장세운 송나라 주자학자들의 쿠데타로, 근세조
선 역시 송나라의 주자학을 국시로 함으로써 멸망했다. 곧 외래종교 교육이 국민도덕을 진작시킨
공로도 크지만 그 피해는 나라까지 멸망케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병의 근본원인은 첫째, 다른 민족의 민족신 숭배와 제 민족의 國祖不信. 둘째, 외래사
상 교육의 과잉과 고유사상 교육의 위축 등 고유신앙과 외래신앙의 주객전도, 고유사상교육과 외래
사상교육의 주객전도로 인한 사상적 신앙적 의식적 외국화 현상에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3. 한국사상교육의 역할과 불가피성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의식적 외국화 현상을 탈피하여 애족적 애국적 동포의식을 굳건히 하겠는
가? 여기에서 세계적으로 애국심이 투철한 유태민족의 종교교육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유태민족은
제 민족의 신과 종교만을 신앙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
우면서도 교회 내에서는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일절 가르치지 않는다. 과거 제 민족의 비참했
던 역사와 훌륭한 사상만을 바이블 속에 하나로 묶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체 민족에게 매주 언
제나 가르치고 과거의 민족사를 반성하고 뉘우치게 한다. 그래서 유태민족이 애족심과 애국심이 투
철하게 되어 세계적으로 강력한 민족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종교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민족의 절반정도는 무종교인이고 절반정도는 유태
민족과 정반대의 종교교육을 받는다. 곧 우리민족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부터는 외
래종교의 교당이나 법당에서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배우면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고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도 전혀 없다. 그러면서 부정과 비리 곧 살인․강도․절도
․사기․폭행 등 사회악의 근본원인을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오는 윤리도덕의 타락과 이기
주의 또는 우리민족의 단결심의 부족과 공동체의식의 결여 때문이라 하면서 유태민족을 부러워하고
본받으라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의 관건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도 유태민족과 같이 자기 민족
의 종교를 믿고, 자기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과거의 민족사를 반성하고 뉘우치
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회교 천리교 등 외래사상교육을 과감하게 탈
피하고, 제 민족의 고유한 역사와 사상인 배달역사와 배달사상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래종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태반을 점유하고 있는 이때에 외래종교 교육을 무시하거나 버
릴 수는 없다. 그러나 고유사상 교육을 강화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고유사상 교육을 강화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가 있는가? 몇가지 예를 든다.
첫째,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은 애국자를 양성할 수 있다고 본다. 부모의 인격이 훌륭할 때 효
자가 태어난다. 그와 같이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이 훌륭함을 알게 될 때, 애국자는 태어나기 마련
이다. 따라서 망실된 배달역사와 배달사상을 발굴하여 재 정리하고 그것이 훌륭함을 교육하게 되면
애국자는 자연히 태어난다고 확신한다.
둘째,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은 분열된 민족의식(가치관)을 하나로 응집시킬 것이다.
현재의 우리민족은 종교가 다름에 따라 수십개의 각각 다른 역사교육과 사상교육(곧 종교교육)을
받음으로써 종교와 종교, 정당과 정당, 지역과 지역 등 집단과 집단 사이에 유기적 공동목표가 없
고, 사분오열되어 가치관의 갈등을 겪고 있을뿐만 아니라, 집단이기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지역과 종교와 정당을 초월하여 전체민족에게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을 시키고, 그것이 훌륭함
을 알게 하면 전체민족이 제 민족의 사상을 중심으로 응집하기 마련이다.
셋째,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은 전체민족에게 동포의식을 심어주어 인명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근래 우리사회에는 동포란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것은 동포의식이 희박함을 의미한다.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을 시켜 전체민족이 모두 단군성조의 자손임을 알게 하면 동근동조(同根
同祖)의 동포의식을 지니게 될 것이다. 동포의식을 지니게 되면 서로 화목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동포 또는 형제자매로 보게 됨으로써 생명경시 풍조가 없어지고 윤리도덕이 자연적으로 회복될 것
이다. 따라서 살인․강도․절도․폭행․사기 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넷째,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은 우리사회의 불신풍조를 해소시킬 것이다.
불신풍조는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남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고, 다른 사람이나 공공의 이익이 희
생되어도 나만이 이익을 보자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 배달역사와 배달사상교육을 시키면 애국심
과 애족심이 생겨 일을 성실히 하게 되고, 아울러 다른 사람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나의 이익으
로 여기게 됨으로써 상대방을 속이지 않게 되고, 개인의 명예보다도 국가와 민족의 명예를 더욱 소
중히 여기게 됨으로써 나만이 이익을 보자는 이기주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불신풍조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생산품이 부실하지 않고 건실하게 될 것이며, 토목․건축 등 모든 공
사에서 성의를 다하게 됨으로써 대형사고 등이 예방될 것이다.
그밖에도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을 시키면, 애국심과 애족심 그리고 주인의식이 생김으로써
부정부패를 예방할 수 있고, 책임전가의식을 일소할 수 있으며, 동포의식이 생김으로서 인명을 소중
하게 여기게 되어 살인 폭행 구타 등 청소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배달역사와 배달사
상 교육은 갖가지의 사회악을 근절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따라서 배달역사와 배달사상교육
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4. 교육개혁 시안
이상과 같은 이유와 필요성에 의해 다음과 같이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을 실시하고 강화할 것
을 정부 당국에 건의한다.
첫째, 정부 산하에 배달사상연구원 설립을 건의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잃어버린 배달사상의 발굴
과 재 정립이기 때문이다.
둘째, 배달철학 교수를 양성하기 위해 우선 각 종합대학교의 문과대학(인문대학)에 배달철학과 내
지 한국철학과를 신설하고, 나아가서 국립 배달대학 설립을 건의한다.
셋째, 각 대학의 기초과정을 정신교육 과정과 교양교육 과정으로 나누고, 정신교육 과정은 배달사
상과 동양사상 과목으로 충당하도록 건의한다. 곧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닮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윤리교육과의 교육과정은 한국윤리사상을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건의한다. 왜냐하면 윤리교
육과는 중고등 학교의 정신교육을 담당할 윤리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이며, 또한 윤리교사는 한국 학
생을 한국인 닮에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를 비롯하여 각종의 공무원시험과 공공단체 및 회사의 입사시험 과
목에 배달사상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부여하도록 장려할 것을 건의한다. 만약 시험과목에 배달사상
과목이 없다면 교육기관에서 아무리 가르쳐도 젊은층과 학생들은 관심을 갖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여섯째, 대학교수 정신수련원(가칭)을 신설하여 교수지망생들에게 자신의 전공 이외에 배달역사와
배달사상 교육을 일정기간 일정한 학점을 이수시키도록 건의한다.
왜냐하면 현행 교육제도에 의하면 거의 모든 교수가 본인 개인의 자각에 의하지 아니하면 서양철
학개론은 이를 읽었다 하더라도 배달사상서(한국사상서)와 동양고전을 단 한권도 못 읽어 본 사람
이 교수가 되어 교단에 서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있어서 크나 큰
맹점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우리사회의 병리현상과 그 원인을 밝혔고, 그에 따라 배달사상 교육을 시행하고 나
아가서 더욱 강화할 것을 건의한다.
저 자 소 개
성명 : 안창범(安昶範). 서기 1933년 癸酉生. (호적상 1936년생), 제주도 태생.
학력 : 만학(晩學). 제주대학교 법학과졸(1972).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졸 (1978).
경력 : 자영. 제주교육대 강사. 제주실업전문대 강사. 제주시 교원단체 연합회 이사. 제주대학교 교수(현재).
상벌 : 제주대학교 학술상 수상(1989).
저서 : 민족사상의 원류(1988). 한민족의 신선도와 불교(1993).
하나님 사상과 불교의 기원(1994). (국역)배달성전(1995). 우리민족의 고유사상(1997)
논문 : 花郞道의 外來 道․佛․儒 三敎受容說 批判. 古神仙敎의 宗敎的 體系.
석가불교의 기원과 한국의 신선도. 中國儒學의 淵源과 東夷 등 20여편.
연락처(학교) : 제주도 제주시 아라동 1번지.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학과전화 (064)54-3260. 연구실 전화 (064)54-3262.
(자택) : 제주도 제주시 일도2동 1045의 8. 전화 (064)52-4906. 전송 (064)21-7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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