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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회상, 21) '세칭 동방교' 김해교회를 건축하다
부산여상을 졸업한 아론 (김영이)전도사가 김해 읍내에 전셋방을 얻어 김해여중 여고생들에게 주산 과외공부방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방교를 포교하였다. 1970년대 그 당시엔 주산을 배워 급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대세였다. 취직이 잘 되기 때문이었다. 부산경남 일대에 개척교회를 세우는데에 아론(김영이)만한 전도사가 없었다. 부모의 극심한 감시를 뿌리치고 동방교적 열정에 불타올라 빈집초월(무단가출)한 그녀는 어느 지방에서던 주산 과외공부방을 열어 학생들을 포섭하여 학생중심의 동방교 지교회를 개설하여 놓고는 새로 파송되는 다른 전도사(전도사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들 모두는 무단가출 빈집초월한 일종의 '예비 대기자' 성격이었다)에 맡겨 인수인계하고는 또 다른 지방으로 옮겨 다시 주산 과외공부방을 개설하여 동방교의 지교회를 세워 인수인계하고 또 다시 다른 지방으로 가서 주산 과외공부방을 여는 충성 봉사의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것이었다. 김해, 가락, 밀양, 언양, 수산, 진영, 진해, 고성, 충무 등등 수많은 좁은길(동방교)의 새로운 개척교회가 우후죽순처럼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의 피나는 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었다. 그중에 김해지역에서 개척한 교회가 김해여중, 여고를 중심으로 하여 학생수가 급증한고로 교회를 새로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조그마한 전세집 방 한칸으로 시작된 교회가 학생들을 더 이상 수용할수 없게 되었으므로 김해읍 동상동의 100여평 감나무 밭을 2대 교주가 된 노광공의 차남 '아브넬 노영구의' 허락을 득하여 매입, 건축공사를 시작하였다. 교회건축이라 하지만 무슨 대단한 공사가 아니라 블록으로 담을 쌓고 스레트지붕을 얹는 원시형태의 건축인지라 공사를 진행할 업체에게 하청을 주어 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 나와 김○○(미리암전도사), 전○○(디몬전도사), 목수일을 할줄아는 서울 대기처에서 지원 내려온 남자대기자(아론) 4명이 교회(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첫째 감나무를 짤라내고 곡괭이로 깊숙히 내리 뻗은 감나무 뿌리를 뽑아 낸다고 몇날 며칠을 땀을 흘렸다. 뿌리가 드러났을때 밧줄을 걸어 출입하는 여고생들까지 총동원하여 잡아 당기니 뿌리가 쑤~욱 뽑혀나와 제거 되었다. 그리고 기초공사를 한후 6인치 블록을 쌓아 사방벽을 만든 후 굵은 나무로 트라스(삼각받침목)를 만들어 건물 좌우벽에 들어 올려 장비없이 4set를 인력으로 세웠던 것이다. 얼마나 강인한 충성심으로 이를 악물고 막노동일을 했었는가를 지금 생각하니 바로 '대단한 충성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붕을 스레트로 덮고 긴 스레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지 못으로 내리박아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모래와 세멘트를 배합하여 미장작업을 하고 마무리로 도색작업을 하였는데 이 모든 작업을 4개월동안 계속하여 예배실(성전), 숙소, 화장실, 담벽쌓기, 대문달기 작업까지 마무리 하였다. 전기공사는 순수한 나의 손으로 완성 시켰다. 그때 당시 김해여고 학생중에 자기집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신도가 있었는데 그 학생은 건축에 소요되는 수많은 전기,철물자재들을 자기집 점포에서 그냥 몰래 가져와서 건축공사에 충당하도록 제공하는 충성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그것을 얼마나 추켜세우고 자랑시키고 격려해 주었던지... 돌이켜 지금 생각하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의 헤밍웨이 소설 제목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얼마나 충성봉사로 몸을 아끼지 않았던지 코에서 피가 터져나오기를 여러번 하였다. 공사가 막바지에 달했을때 노광공의 둘째아들로써 2대교주가 된 '아브넬 노영구'가 외제 승용차를 타고 김해교회에 나타났었다. 그때 당시 하늘같이 떠받들던 '아브넬 할아버지'가 오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 깎듯이 절을 하며 읍조렸던 기억이 4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교회준공때 요나단(정재덕-4주)목사가 부산경남지방의 교역자 2~30여명을 소집하여 준공예배를 보았는데 그때 땀흘리고 코피까지 흘려 가면서 4개월동안이나 무임금으로 노력봉사한 나에게 많은 교역자들 앞에 불러내어서 뺨을 때렸다!!! 그 이유는 높은 책상같은 것을 만들어 흰 무명천으로 덮어 씌워놓고 그위 중앙에 일곱촛대 형상을 만들어 얹어놓고 좌우에 물잔과 성경책을 얹어놓는 것을 제단이라고 불렀는데 그 제단뒤에 보좌라고 부르는 팔걸이가 붙어 있는 조잡한 걸상을 하나 제작하여 놓아 두는데 여기에 '이래 할아버지 노광공'이 무형으로 와서 않는 거룩한 의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그 의자를 조금 크게 제작해서 초량 12교회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온 흰 무명천 덮개가 조금 작아서 씌우지 못하고 그냥 의자에 깔아 놓은것이 뺨때기를 얻어맞은 이유였던 것이다. 아마도 의자의 칫수 전달을 잘못 받았기 때문에 의자를 조금 크게 만든 것이 문제였던 것인데 가혹하리 만큼 마치 정재덕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라도 하는것 처럼 여러사람들 앞에서 사정없이 뺨때기를 때리는 모욕을 나에게 가차없이 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 그 부주의를 뉘우치고 회개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태였다. 때때로 휘하의 추종하는 신도들에게 군기를 잡아야 하는터에 때마침 정재덕(요나단목사)은 좋은 챤스를 놓칠세라 과감히 채찍을 가함으로써 한 개인이 아닌 단체를 다스리는 처세술로 활용 하였던 것이다!!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이라 했던가! 그로부터48년의 세월이 강물같이 흐른 지금, 많은 교역자(비록 사이비 교단의 전도사들이었지만)들 앞에서 인격 모독을 자행했던 정재덕 요나단목사(교주 다음의 지존자)는 험난했던 시절에 형법에 쫓기고 동방교의 내부적으로는 악령이라고 쫓기던 세월을 마감하고 지금은 이 세상을 하직하여 어느 세계에 갔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아~~~!! 세월 한번 무상이로구나!!
고백과 회상, 22) 동방교를 다시 생각한다.
서론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대주재,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지 우리 인간에게 그 하나님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누누이 쉽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인간들은 계속 하나님이 이땅에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의 섭리를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용하여 내가 재림예수다, 내가 메시아로 다시 왔다는 등으로 세상에 큰 물의를 빚는 이단사이비종교의 출현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내가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엄청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가만히 좌시하고 계실까요. 본인이 단언하건데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spel)에서 그 답을 명백히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구원을 얻고자 하는자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솔라피데(Solafide), 즉 ‘오직 믿음’ 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성경말씀데로 행하여 지키면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본론
동방교는 기독교라는 외피로 감싼 거짓의 옷을 입고 있으나 그 내막은 이단사이비로써 우리 범인과 성정이 같은 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교주 노광공을 신격화하여 1차 초림은 예수 그리스도가 왔으나 2차 재림은 노광공, 즉 두이(二)자에 올래(來)자를 붙여 이래(二來), 두 번째 재림주 메시아로, 심판주로 유독 이땅 한국땅에 임하였다고 현혹하여 포교하고 세뇌교육시켜 노광공 자신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로채 심판주 재림주로 숭배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이른바 천국열쇠를 제시한바 지성, 실천, 복종, 그리고 순교에 까지 나아가도록 정신세계를 장악해 왔던 것이다. 물론 노광공을 신격화시킨 것에는 여러 가지 모티브가 있겠으나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단으로 인간이 행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능력이 성령으로부터 왔던지 악령(사탄)의 능력으로부터 왔던지 간에 결국 그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알수 있듯이 노광공 그는 많은 사람을 혹세무민하여 인간에 불과한 자신을 심판주 메시아로 믿게 오도하였고 그 결과 성경적 지식이 전무했던 민초들과 6.25이후 세대들의 수많은 청년남녀와 어린 학생들을 미혹하여 가정을 파탄시켰고 부모형제를 떠나게 하고 가정을 뛰쳐나와 동방교의 울타리(대기처:동방교 신도들의 합숙소) 안에 은거하도록 하였다. 이땅을 심판한 후에 도래하는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하는 지위를 얻게 된다고 교묘하게 세뇌시켜서 순진무구한 학생들과 일반 성인들까지 학생복 차림으로 고학도인양 행상(껌팔이, 생필품등등)을 시켜 그 수입금을 착취하였다. 남한 일대를 포교하여 많은 동방교 교회(성전)을 개척하여 그 신도들로부터 거둔 헌금(지성금)으로 중앙집권체제하에 재정을 관리하고 운영하였다. 착취와 강요로 모아들인 자금으로 당시에 사들인 엄청난 재물(건물, 토지, 임야등)이 세월이 흐른후 엄청나게 폭등함으로 작금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재산을 이루어 그 재력을 바탕으로 현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교회건물도 현대식으로 건축하여 놓고 버젓이 기성교회 행세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1대교주 노광공, 2대교주 노영구(노광공의 둘째 아들)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고인이 되었으나 1960년대에는 한국의 사회와 종교계 그리고 가정에 크나큰 물의를 야기시킨바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해 동방교의 종교재단법인 인가가 취소되었던 것이다. 핵심리더였던 사주들이 세월따라 표면아래로 사라진후 한때 잠잠한 듯 하였으나 그 뒤를 이은 세대들이 명맥을 계속 이어와 유지 확장에 이르렀다. 지난날 동방교의 틀(프레임)을 구성하고 운용한 핵심간부들이 노쇄하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동방교 지도자의 자리를 내놓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 뒤를 이은 후세대들이 구총회, 신총회의 두 개의 파당으로 나뉘었고 서로를 비방하고 견제하여 다른 운용체제와 신앙관으로 화합이 어려운 것 같다. 신총회의 비젼은 노광공이 죽은 이후 2대교주 노영구로부터 장학금 혜택을 받아 그 돈으로 외국에서 공부하여 자칭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 학구파 신진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교주 노광공의 행적과 사상을 옛 그대로 변질없이 숭배하는 것을 고수(수구파)하는 쪽으로, 나름대로의 온고이지신, 옛날 것을 연구하여 새것을 알게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을 고수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총회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쉽게 말해서 빈집초월(가출)하여 평생을 동방교안에서 희노애락을 같이 해 온 신도(성민)들이 이제는 세상이치에 부합되는 안목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합리파들로 보이는데 현 동방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신총회던 구총회던 교주 노광공의 생애를 추앙하고 그의 사상에 신앙적 뿌리를 두고 있기에 크나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론
동방교의 사상과 신앙관에 크나큰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이적기사를 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사도 바울, 베드로, 모세, 엘리아등 신구약 성경 역사속에 기라성 같은 선지자, 예언자, 사도, 제자들의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이적기사들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인적 이적기사를 행했던 예언자와 사도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이적기사였으므로 모두가 겸손히 자신을 하나님의 부름받은 일꾼으로 또한 무익한 존재로 낮추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도 않았다. 동방교 교주 노광공은 자기자신을 이래라고 칭하면서 두 번째 이땅에 온 재림주요 구원의 메시아로 왔다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필하여 자기자신을 섬기게 한 것이 결국 이단 사이비 가짜로 드러남에 따라 우상을 경배하게 하였으므로 결국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씻을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는데 그 구원의 섭리와 영광을 노광공은 크게 훼손하였고 천지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혔다.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은 수원장이나 큰집등 동방교의 대기처라고 하는 곳에 몸을 숨기고 피신해 다녔다. 동방교는 성경을 동방교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조적 위장전술로 쓰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자체가 이단사이비인 것이다. 성경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라’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하므로 성경을 읽고 또 묵상하며 매일의 영의 양식으로 삼으며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의 마땅히 행해야 할 바인데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않고 또 성경외에 경화록이라든가 노광공의 어록등의 것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이단이며 사이비인 것이다. 그런데 동방교의 현재 소위 목회자란 자들 중에는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수 있다고 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 메시아로 믿게 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오직 예수’라고 하는 신앙, 그 일원론이 아닌 이원론적으로 제2의 인물이 나와서 메시아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생뚱맞은 주장을 하는 동방교 목사(사실은 목사라고 할수 없지만)의 말을 직접 들었는데 그 또한 이단사이비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이 재림주 메시아로 이땅에 왔다는 것을 은연중에 호도하는 행위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불경한 우상숭배이며 그것이 곧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죄악이 되는 것이다.
3. 복음의 근본적 정체성(Identity)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와 본질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심판주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본체이신데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며 또한 피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죽으신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그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한 것이 바로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4.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의 신앙적 사상과 그의 정체성을 알아보자.
1) 그의 탄생의 징조부터 믿을수가 없는 허구인 것이다. 누가 보았으며 누가 전했는가, 바로 노광공자신이 설파한 것이 아닌가. 그가 꾸며 내었거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 자신이 퍼뜨린 이야기인 것이다. 평양 상수리 1번지라는 출생지도 실제와 다른 허구이다. 출생시 타원형의 별빛이 하늘로부터 그의 탄생지 주변을 맴돌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그것 또한 증명할 길 없는 허구의 소설이다. 그리고 교주 노광공의 윤리와 도덕성은 대구 동산병원 간호부장 김정선과의 재혼이후 김정선의 기록에 의해서 알려진 것처럼, 그 이후 동방교의 수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밝혀진 것처럼 그 도덕성과 윤리는 무너져 내려버렸다. 하얀 세마포로 만든 의상(성복)을 입고 나비 넥타이에 둥근 안경을 쓴 모습과 그의 마스크에서 풍기는 온유스런 외향적 모습은 동방교 교주의 모습으로는 그럴 듯 하였으나 그의 내면 세계는 추한 모습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의 거처하는 비밀한 공간에서 일어난 변태적 성도착증 행위 그 자체는 놀라울 수 밖에 없다. 그러한 행위를 직접 목도하고 또 그 행위에 가담한 구성민, 노광공교주를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생활했던 그 구성민의 증언을 직접 들은바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 3일만에 부활승천하였으므로 무덤이 애시당초 없었다. 그러나 동방교 교주 노광공은 이 세상을 하직한 후 부활은커녕 왕릉처럼 무덤을 크게 치장하여 제물을 차려놓고 참배를 올리곤 했다. 1914년 정월13일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어나서 여러 직업을 거쳐 동방교 교주로 활동하다가 1967년 7월26일(음6.19) 새벽에 사망한 그의 일생은 참으로 그를 신봉하여 핍박과 환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를 제2의 재림주로 굳게 믿고 신봉해 왔던 수많은 신도(성민)들을 너무나 허탈과 허망에 의욕을 잃게 만들었고 인생을 한탄을 자아내게 한바 있다.
3) 1967년도에 당뇨합병증에 의해 사망하였고 경기도 소사에 왕릉처럼 크게 무덤을 만들고 치장하여 서울 및 각 지방 지교회 신도들을 모두 불러모아 제상에 제물을 어마어마하게 차려놓고 참배를 올리게 하였던바 이것은 한 인간을 하나님처럼 여기고 우상숭배한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현재 동방교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격인 목회자들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방교의 카테고리를 벗어난 신도들, 수많은 성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동방교 교주 노광공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신을 묘한 처세술로 신격화시켜 그 자신을 심판주로 받들어 섬기도록 하였으니 지난 과거사일지라도 이것은 구원과 영생에 관계된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숨기고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를 비롯하여 어린 시절부터 노광공을 재림주 심판주로 믿고 섬겼기 때문에 평생 지울수 없는 안타까운 역사적 산물로 남아있으며 그 허황된 세월을 무엇으로 달랠수 있을 것인가, 정신적 약탈을 당한 것이 아니던가.
4) 동방교의 소위 예배때 하는 기도 행태가 위장되어 있다. 동방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는 기도를마칠때 ‘이 모든 말씀을 이래 조부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고 마쳤는데 1대교주 노광공의 사망이후 2대교주 노영구(노광공의 둘째아들, 아브넬)의 미국 도피후 언제부터인가 기도형태가 바뀐 것이다. 즉 ‘주님의 이름 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바뀐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교주 노광공이가 진정 두번째 오신 재림주 메시아가 확실하다면 순교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래 조부님(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 드린다고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헌데 왜? 뜬금없이 주님 이름으로 바뀌었을까!? 온 세상에 동방교 교주 노광공이는 가짜 메시아인 것이 드러나자 세인들의 눈에 들통 날까봐, 그래서 전도가 안될것이 뻔하니까 위장전술로서 위도각도(동방교 용어)가 바뀌었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된다는 구실과 변명으로 숭배하는 노광공의 ‘이래 조부님’을 숨기고 그 대신 기성교단처럼 ‘주님(主=노광공)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는 것이다. 이때의 주(主)님이라고 하는 그 주(主)님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래 조부님 노광공’이 되는 것이다. 어떤 부류의 맹신자들과 구성민들, 그중에는 현재 동방교의 목사(사실은 기독교의 목사도 아니지만)중에서는 공중기도가 아닌 자기 혼자의 개인기도시에는 ‘이래 조부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다고 실토하는 자들도 있다. 목사라는 호칭을 달고 다니는 자가... 참으로 가관이 아닐수 없는 가증한 위장술수인 것이다. 성경을 절대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믿어야 할찐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이다 아멘!’ 이렇게 분명하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인데 그 기막힌 위장술수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에필로그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부인할수 없듯이 동방교의 실상은 이단사이비이지만 간판은 대한예수교 장로회라고 명칭을 붙여 기성교단처럼 행세하는 그러한 일들이 속살이 드러난것처럼 만천하에 나타난 사실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드리는 것과 노광공 교주의 생애와 사상을 받들어 섬기는 동방교를 신봉하는 것과 어느것이 옳은 일인지를 명철한 판단력으로 결정하기를 현 신총회와 구총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여러 동방교내의 목회자(?)들에게 정중하게 당부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로봇처럼 행하도록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어 좌쪽으로 갈 수도 있고 우쪽으로 갈 수도 있도록 만들었다. 선악과를 따 먹을수도 있고 따 먹지 않을수도 있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대로 따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지켜 행할수도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결국 사탄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먼저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먹도록 유혹하여 서로가 먹은 후 결국 인간이 그 원죄로 말미암아 그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결국엔 모두가 죽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에 죄의 싹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데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정체성을 확실히 한 후에 노광공 생애와 사상을 추종하는 그러한 엉터리 같은 믿음의 테두리에서 새롭게 탈바꿈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나아와 구원의 반열에 서는 성공적 목회를 새롭게 하기를 간곡히 독려하는 바이다. 현재 동방교에 몸담고 있는 신구 성민들과 그 교단을 이끌고 지도하는 현직 목회자들에게 강력히 고하는 바이다. 동방교의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 전원에게 권면한다. 복음의 정체성만 전하여야 하고 성경외의 다른 것을 전하는것에 대한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기 바란다. 지난날의 노광공의 메시아 거짓 사상을 가르친 것을 진정한 메시아이신 사랑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신도와 목회자 모두 무릎꿇고 눈물로 통회하며 반성하고 동방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올바른 신앙적 노선으로 수정하여 후대의 자녀들에게 떳떳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수 있도록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고백과 회상, 23) 동방교의 진면목...?
며칠전에 이런 내용의 게시글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아마 올린 본인이 삭제한 것 같다. 참 요상하고 가상한 글이라 생각하고 답글을 적었는데 그 글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답글 대신으로 올려놓고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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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은 죽은 사람을 살린다, 하늘에 오르락 내리락 휴거를 한다, 앉아있는 자리에서 천리를 꽤뚫어 본다는 등 요설을 일삼으며 말세에 노광공을 두번째 구원의 메시아로 절대 복종하고 믿고 따르면 말세에 심판을 면하고 휴거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왕노릇 하게 된다고 꼬드겼다. 1차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왔으나 2차는 노광공이가 구원의 메시아격 위도로 이 세상, 그중에서도 한국에 왔다고 하였다. 해방이후 그리고 6.25 전후세대들을 미혹하여 수많은 순진 무구한 사람들이 그가 집회하는 곳마다 몰려다니며 그를 신처럼 신봉하였으나 그가 행하였다고 하는 이적기사가 거짓으로 판명 되고 온갖 비리가 밝혀지는등 세칭 동방교가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이단사이비종교로써 세상을 농락하여 왔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뇨합병증으로 54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구원의 주로 두 번째 이땅에 왔다고 하였으나 가짜임이 명확히 밝혀졌다.
2. 그의 뒤를 이어 노광공의 둘째 아들인 노영구가 동방교의 2대 교주가 되었으나 1960년대에 줄만 서면 누구나 들어가는 대구의 모 대학을 다녔다고는 하나 리포트를 쓸줄 몰라 그 당시 동방교의 모 목사가 대신 리포트를 써 주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소리를 나는 직접 들은바가 있다. 노영구는 말과 발음이 분명치 못한 심한 어눌증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아시겠습니까” 라고 할때 ‘아거슴까’ 이렇게 발음하여 말하였고 모든 대화가 그런 식이었던 것을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동방교의 제단앞에서 기도를 할때면 꿇어앉은 자세로 두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체 무언가 계시를 받는듯한 모습으로 머리를 끄떡끄떡거리고 눈을 깜빡이고 입술을 달싹달싹하며 마치 누구랑 대화하는듯한 이상한 신들린듯한 모습을 보았던 것이 수십년을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아비 노광공이 세상를 떠나고 난뒤 동방교 집단을 이끌어 갈려고 하였으나 리더쉽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하여 힘겨워 하던중 동방교가 가짜임을 간파한 탈퇴신도들의 집단소송에 휘말려 지명수배를 당하기도 하는 등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고 어려움을 겪게되어 고심하던중 그 돌파구의 하나로 동방교 신도들에게 선심쓰듯이 장학사업이랍시고 시행하면서 기존의 신도들을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이비 이단 종교집단의 실제 책임자를 찾아내어 조사를 하고져 하는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도피하여 숨어지내는 은둔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파킨슨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63세의 나이로 그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3. 노영구 2대 교주의 장학금 혜택을 받아 각종 학교를 나온 자들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서 동방교 집단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동방교가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많은 청년들이 뿔뿔이 자기 살길을 찾아 나가고 말았다.
4. 노영구는 그의 휴메니티(인간성)랍시고 축적된 재물로 선심을 쓰서 인재를 양성코자 하였는데 그가 이끌어 왔던 동방교 집단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1대 교주 노광공의 사상과 이념을 속으로 감추고 표면으로는 기성 기독교 교단처럼 간판을 버젓이 붙이고 남한일대 각시도군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지난날과 다르게 세칭 동방교를 운용하고 있다.
5.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하고 1대교주 2대교주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땅에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지금 동방교 집단을 이끌고 있는 총회장이하 목화자란 자들이 아직도 노광공을 노목사님이라 신주 모시듯 하고 노영구를 선교사님이라 또 다시 신주모시듯 떠 받들고 있으며 해마다 탄생 몇주년, 사망 몇주기라고 하면서 노광공 교주의 사상과 이념을 숭배하고 기념하며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동방교는 신총회 구총회로 나누어져 서로 악령이 틈탔다고 비방과 모욕을 끊이지 않는 희한한 신흥종교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포장된 예수교 장로회란 명칭으로 전도하고 포교하니까 동방교의 이단사이비 내력을 모른는 요즈음 신세대들은 그냥 일반 기성 기독교 종파로 알고 미혹되어 들어와 일반 교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것이다.
6. 결론적으로 이제 한 인간을 신으로, 재림주로 경배하게 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절대무오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똑바로 믿고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전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각처에 도사리고 있는 총회장이하 목회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난날 노광공과 노영구를 우상시하여 경배하였던 것을 뉘우치며 새롭게 태어나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옛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동방교의 구태를 이어가며 차세대에 학습시켜 미혹한다면 나중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대에서 형벌을 면치못할것은 불보듯이 자명하고 비통한 일이 될것이다.
7. 나는 젊은 시절에 오랜기간 동방교에 충성하고 따랐지만 동방교의 2대교주 노영구가 카리스마나 그 어떤 영적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본일이 없다. 즉, 노광공과 노영구가 진정 두번째 오신 메시아였다면 첫번째 예수 그리스도처럼 무덤이 없이 부활하여 영적 권능을 나타내 보여야 하는데 그러한 능력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와 성정이 같은 한 인간으로써 죽어버리고 말았으며 그를 신봉하는 후예들은 지금 신총회니 구총회니 하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있을 뿐이다. 고로 그는 메시아일 수 없다. 더구나 노영구가 어떤 인간성을 가진 인물이며 어떤 능력을 가진 자인줄을 알아야 동방교의 진면목을 바로 알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동방교의 본체는 분명 노광공인데 노영구를 알아야 동방교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헛다리 집는 소리일까.
고백과 회상, 24) ‘몬생긴네’ 사건
그 사건이 생긴 것은 아마도 1960년대의 말인 것 같다.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이 당뇨합병증으로 1967년 54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 세상을 떠난 뒤 뒤숭숭하던 시기, 그의 차남 노영구가 교주 노광공의 후광을 입고 성자 하나님으로 등극하여 온갖 위엄을 부리고 세상만물을 다 요리할 것만 같은 시기였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의 용산 수원정으로 몰려 올라온 선택된 신도들이 수원정에 모여 늦은 밤에 집회를 열고 있었다. 나도 갓 스물이 안된 어린나이에 솟아난 성민으로 뽑혀서 그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수원정이란 일제시대의 적산가옥을 내부를 강당처럼 툭 터서 집회장소로 사용하고 외부는 검은 골타르를 칠한 함석으로 둘러싸서 외부에서는 안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만든 장소이다. 그리고 수원정은 세칭 동방교의 본부격이다. 노광공 교주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며 경배하는 신앙심이 솟아난 자들이 전국 각 지교회에서 선택되어 상경해서 이날도 성례식(동방교에서는 집회를 이렇게 불렀다)을 올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거어룩타아 십자아성에 문이 여얼려 부우름이여(거룩다 십자성에 문이열려 부름이여)" 하고 신도들은 동방교의 성가(동방교식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고 실내는 여러군데에 백열등을 환하게 밝혀놓은 체로 모두들 성복이라고 부르는 하얀 두루마기 비슷한 옷을 걸쳐 입고 있었으니, 더구나 하얀 벽지로 도배를 해 놓았으니 분위기는 참으로 요상하고 오묘했다. 그 실내를 향하여 노광공의 차남 노영구는 사주들을 거느리고 수원정의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현관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성가의 노래 소절에 맞추어 들어서고 있었다. 수원정의 이 건물 현관은 보통때는 굳게 닫혀 있고 노광공이나 노영구만 드나들 수 있는 특별한 문이다. 밤 10시가 넘은 고요하고 적막한 깊은밤에 외부에서 들리지 않도록 조용하게 불러야만 하는 성가이기에 숨소리도 들릴만큼 모두들 조심조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좌중에 조근하게 꿇어앉아 있던 성민(동방교의 신도를 이렇게 부름)들의 대열속에서 ‘몬생긴네(’못생겼네‘의 방언)’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먼저 타계한 교주 노광공을 기리며 그의 아들 노영구를 성자 하나님이라고 떠 받들며 섬기고 있던 시절인데 그렇게 소중한 성자 하나님 노영구를 쳐다보고 ‘몬생긴네’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으니 아연실색할 판이다. 신격화 된 성자 하나님을 향하여 이 무슨 망발인가, 아마 그 할머니는 노영구를 오늘 처음 보는지라 엄청나게 영광스런 모습을 기대했을 터인데 비쩍 마르고 얼굴상이 길쭉하게 생겨 좀 이상하게 보이는 노영구를 쳐다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런말이 튀어 나온 듯 하다. 사실 노영구는 말을 할때 발음이 분명하지 못하고 또박 또박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어눌증이 있었다. '여러분, 알겠습니까' 하는 말을 '여어분, 아거슴까' 하고 어눌하고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키도 크고 준수하게 생긴 노광공의 큰아들 노영도(동방교의 명명은 아바)에 비해서 거의 빈상에 가까웠다. 나름대로 사뿐 사뿐 곡조에 맞춰 걸어들어오고 있던 노영구도 '몬생긴네' 하는 그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신경질적인 몸짓을 하더니 되돌아 나가는 것이 아닌가, 노영구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사주들도 '몬생긴네' 라는 소리를 같이 듣고는 혼비백산하여 신도들을 향하여 정신상태가 썩었다고 호통을 치면서 회개기도를 하라고 난리를 쳤는데 모두 울고불고 회개기도를 한참 한 후에야 다시 집회가 개시되어 진행되게 되었다. 50여년이 다되어 가는 세월이지만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혼자 실없는 헛웃음을 웃곤 한다. 아... 이단사이비 종교란 이런 것이던가...
고백과 회상, 25) 서울구치소 방문기
내가 경기도 포천 6군단 사령부에서 군복무를 하던중 세칭 동방교의 사주목사중 한사람인 양학식 베드로목사의 아들 양수언(동방교의 명명은 빌립)의 생각이 간절하였다. 양수언 빌립과는 명지 9교회 시절에 몇 번의 상봉이 있었다. 내가 중2의 어린시절에 세칭동방교에 입교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동방교에 출입하던 초기시절에 고2였던 양수언이 명지9교회를 방문하여 설파하던 이야기에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었기에 군복무중에 두 번이나 용산 수원정으로 양수언 빌립에게 편지를 보냈던바 답장의 내용인즉, 지금 좁은길이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라고 하는 답장이 도래하였다. 군에 입대한지 2년여에 걸쳐 군복무에 충실했던 나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무슨 핍박과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하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당시 군복무기간 3년중 2년을 넘기고 두 번째의 휴가를 받았을때 제일 먼저 용산 수원정으로 향하였다.
포천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고 미아리 고개를 넘어 용산 수원정에 가기 위해 설레는 맘으로 쎄무군화 새 신발에 검정 구두약으로 구두털을 세워 멋을 내고 6군단 사령부 통신대대 소속으로 전방 예하 사단에 비문과 일반문서를 전달하는 전령차를 타고 사령부를 벗어나 20사단 전곡쪽 미군부대 근처에서 스몰기지 군복을 한 벌 구입하여 군 세탁소에서 다리미로 잘 다려 주름을 세워 준비해 두었던 군복을 차려 입고서 상급부대에 근무하는 자존감을 가지고 즐거운 맘으로 서울 용산의 수원정에 들렀던 것이다. 수원정에 도착하여 제단 앞에서 무릎꿇고 합장하여 이래조부님(노광공)에게 기도를 드리고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지난날 그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아닌 썰렁하고 한적한 분위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오후 1시쯤 되니까 교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결심공판이 있는 날인데 서울 구치소에 가야 하니까 희망하는 성민(교인)들은 함께 가자고 하였다.
내용인즉 사주목사중 한명인 양학식 베드로 목사가 오늘 판결을 받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2년간의 군생활로 세칭 동방교의 사정에 공백이 있었기에 돌아가는 형편의 영문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탈교인들이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이단사이비라고 관계당국에 고발을 하여 경찰의 수사에 의해 동방교 몇몇 간부들이 구속수감되었던 것이다. 교인들과 함께 면회를 간 것이긴 하나 양학식 베드로 목사하고 대화를 나눌수는 없었고 교인중 오래된 구성민 선임자 몇 명과 서로 목례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는 양학식 베드로 목사가 포승줄에 묶여 호송버스로 향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결심공판을 받기 위함인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그외 신도들은 멀리서 바라만 보고 교도소를 나와야 했던 것이다. 그때 생각하기를 좁은길, 생명의 길, 참길인 동방이래도를 세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핍박하고 또 배도자들이 불만과 흑심을 품고 경찰에 고발하여 십자가를 지우는구나 하고 다들 이 핍박과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알곡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당시에 구속수감 될만한 사유가 이단사이비로써 넘쳐 났는데도 나는 생각하기를 예수님 당시 고난과 팝박을 받았던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핍박받는 것이구나 하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때 성민(동방교 신도)들과 함께 합심하여 이래조부님(노광공교주)에게 판사들의 맘을 돌이키사 구속되지 않고 풀려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함께 간구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참으로 순진하고 어리석은 허무맹랑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경부선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설파한 종교는 아편이다 라는 문구가 지금 생각하니 그때를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이단사설에 빠져 이단 사이비 종교의 교주 노광공을 신봉하면서 죽어도 이길이 참인데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오류를 범하여 핍박하는 것이라고 하는 한없이 어리석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성경말씀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세칭 동방교 사이비 이단에 빠졌던 풋내기 어슬픈 지난 그 시절이 안타깝기 그지 없을뿐 아니라 빗나간 그 시절의 삶을 뒤돌아볼때 헛웃음만 나오는 것이다.
첫댓글 햐... 멋지네요, 어느 시기에 가서 그 주님이 노광공이라고 살짝 치환시키면 되겠군요.
할아버지(노광공)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신도(구성민)와 아직 그것을 밝히 드러내서 알리지 못하는 신도(신성민)로 구분이 필요했다. '초량12교회'의 1층 큰방에서 알듯 모를 듯한 설교로 호기심을 유발시켜놓고 어느 정도 신심이 인정된다 싶으면 ‘너만 알고 있으라’는 단단한 경고와 함께 할아버지(노광공)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설파하고 2층의 본 성전으로 올려 보내는 것이다. 이때 로마서 8장15절의 설명은 필수적이다. ‘아바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말이니 즉, 할아버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경해석의 새로운 발견이고 억지주장의 극치요 성경에 숨겨놓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이단의 추억 # 22, 주학교회 중에서) 기록된 위의 글처럼 누군가 또 이런짓 하게 되겠네요... ㅎ ㅎ ㅎ...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아적 신앙고백은 손톱의 때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는 ‘이래 조부님(노광공을 지칭)의 이름으로 기도’ 하는 이들이 제도권 기독교 교회인것 처럼 위장하여 성경을 펼쳐 놓고 가증스런 요설을 설교랍시고 공허한 목소리를 허공에 날리는 그 이중성 때문에 그들은 정신병자 같은 자신의 정체성 혼돈을 절감하고 있으리라.
숨겨놓고 마음속으로 믿는 것은 따로, 나타내어 겉으로 태연하게 말하는 것은 따로인 위장과 언행불일치의 이중성은 정신분열증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사고(思考)의 장애를 일으켜 시비(是非)를 분간하지 못하는 인격변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단의 추억 # 13, 기록을 이어가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