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월요일
제6회 작품상
최화경
그즈막 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항상 억울했다. 훌쩍 떠난다는 것, 평생 나에겐 이 말이 가당치 않았다. 애초에 내겐 9to5라는 삶이 없었고 휴일의 개념도 없었던 터라 모든 것 접어두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는 건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다.
코로나로 확진되던 날 놀랍지도 않았다. 주변이든 지인이든 하물며 방송인, 연예인 확진자들이 재택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잘 쉬었다. 너무 오랜만에 푹 쉬었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오랜만에 잘 쉴 수 있겠구나. 그 생각으로 지독한 통증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고 설레기까지 했다. 합법적으로, 그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법이 날 가두고 있으니 핑계 대기도 좋겠다 싶었다. 며칠간의 심한 통증을 견디고 나니 일주일씩 쉰다는 걸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내 몸이 먼저 알아보는 것 같았다. 매장일도 걱정이었고 밀린 집안일도 스트레스였다. 식구들이 다 외지에 있어 나 혼자 재택치료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것마저 미안했다.
주말에 남편이 노란 과일이 좋다며 오렌지, 귤, 망고, 바나나가 든 바구니를 문 앞에 두고 벨 한번 누르고 갔다. 마치 택배기사처럼. 딸은 하루에 두세 번 전화해서 염려와 명령을 한다. 더운물 많이 마셔라, 잘 먹어라, 푹 자라, 세상의 일이란 잘할 수 없는 일을 잘하라고 주문한다. 곁에 있는 생수 마시기도 귀찮은데 보리차 끓이기가 어디 쉬운가. 식욕이 없는데 어찌 잘 먹으라 하는가. 시간도 안 가고 잠도 안 오는 게 아플 때의 괴로움인데 푹 잠들 수 있겠는가. 야속한 걸 하소연하면 내가 더 야속할 것 같은 죄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가족 외에는 누가 아는 게 두려웠다. 워낙 확진자가 많아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모르는 게 나을듯싶어 그냥 웬만하면 전화도 받지 않았다. 밀린 원고도 부담됐고 내가 쉬고 있어 돌아가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이 걱정돼 사실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쉴 수도 없으면서 어쩔 수 없는 휴가를 왜 못 쉬면서 스트레스받고 있는지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됐다. 워낙 오래된 습관이라 쉬는 걸 힘들어하는 내가 안쓰러웠다. 일 중독이란 이런 증세인가. 난 환자야! 내가 안 쉰다고 나갈 수도 없고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환자라고!
나흘째 아침, 오늘은 월요일이다. 나의 본래 휴무는 월요일이다. 월요일은 모든 약속을 다 미루고 외출하지 않는다. 늦잠을 자기 위해 알람을 꺼둔다. 청소와 빨래가 끝나면 온종일 맨얼굴로 그야말로 뒹구는 편안함으로 지낸다.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삼겹살도 먹고, 라면도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건강 따윈 생각하지 않고 게으른 여자처럼 길게 누워 하루를 보낸다. 행복의 실체가 이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그래, 남은 나흘을 월요일 내 휴무처럼 편안하게 아무 걱정 없이 푹 쉬자. 재충전이 있어야 일의 연장도 매끄럽지 않겠는가. 난 결심했다. 남은 재택치료 4일은 날마다 월요일처럼 살자고.
집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매일 보는 액자와 독일식 책상, 첼로 모양의 cd장 안 타는 날이 더 많은 헬스용 자전거, cd장 안엔 퀸의 앨범이 제일 많을 것이다. 사는 게 고단할 때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머큐리가 에이즈로 세상 뜬 걸 알고서 며칠을 울었던 생각이 났다. 지금도 그런 감수성이 남아 있을지 아직 그런 가수를 못 만나서 잘 모르겠다. 나의 로망이자 허영이었던 독일식 책상은 오붓한 벽을 뒤로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놓여있었다. 닫혀 있는 책상을 살짝 빼 보니 뭔가가 쏟아질 듯 비어져 나왔다. 쥘부채와 한지에 적어진 유명 시인의 자필 시, 코팅해서 보내온 신문에 난 내 기사. 항상 그걸 보내 주시던 교수님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벽 위쪽에 <크림트>의 <생명의 나무>가 걸려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에 그려진 이집트 무희의 모로 돌린 표정이 기다림이란 제목처럼 뭔가 간절해보였다. 오른쪽의 키스하는 남녀의 그림은 여자를 감싸 안은 남자의 모습이 그야말로 충만한 분위기였다. 충만이란 그림 제목을 이해 할 것 같았다.
새집에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라고 이사할 때 동생이 사준 해피트리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칠 년 이상을 실내에서 자라다 보니 잎이 너무 무성해졌다. 옆에 있는 화분이 몸을 휘어 둥글게 자라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 무성한 것들이 창을 가려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을 막으니 몸이 자주 아픈 것 같다. 몸이 좀 우선 하면 화분을 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이 사람을 치유 할 수 있다지만 압도하는 크기의 것들은 사람의 기를 뺏고 맥을 못 추게 하는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맞은편 벽에 붙은 TV를 보는 답답함도 때때로 참을 수 없었다. 주방의 아일랜드를 정리하고 거실 창을 활짝 열어서 창밖의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간단한 요리도 하고 각도를 조절해 TV를 보면서 답답함에서 잠깐 잠깐씩 벗어났다. 그릇장 뒤쪽에 있던 와인잔을 크기대로 앞쪽으로 빼놓고 액자의 먼지를 털었더니 액자 속 그림들이 봄꽃처럼 화사해졌다. 답답하고 후줄근한 것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고 반짝였다. 더 심할 것 같은 통증도 잠시 희미해졌다. 고통스럽고 우울하던 재택치료가 축제 전야처럼 설레고 가뿐해졌다. 나갈 수 없으면 갇힌 그 세계로 들어가 보면 될 일이었다. 날마다 월요일이라고 생각하면 더 달콤하지 않겠는가.
첫댓글 주말에 남편이 노란 과일이 좋다며 오렌지, 귤, 망고, 바나나가 든 바구니를 문 앞에 두고 벨 한번 누르고 갔다. 마치 택배기사처럼. 딸은 하루에 두세 번 전화해서 염려와 명령을 한다. 더운물 많이 마셔라, 잘 먹어라, 푹 자라, 세상의 일이란 잘할 수 없는 일을 잘하라고 주문한다..결심했다. 남은 재택치료 4일은 날마다 월요일처럼 살자고.,, 집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매일 보는 액자와 독일식 책상, 첼로 모양의 cd장 안 타는 날이 더 많은 헬스용 자전거, cd장 안엔 퀸의 앨범.. 답답하고 후줄근한 것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고 반짝였다..고통스럽고 우울하던 재택치료가 축제 전야처럼 설레고 가뿐해졌다. 나갈 수 없으면 갇힌 그 세계로 들어가 보면 될 일이었다. 날마다 월요일이라고 생각하면 더 달콤하지 않겠는가.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 날마다 월요일이라 생각하며 집안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며 아픔의 시간을 견디어 낸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